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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86화 (186/224)

#186. 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4)

‘기분이 썩 좋진 않을 건 알겠는데. 이러고 결국 연락 안 오면 내가 괜히 더 힘들게 만든 꼴 될까 봐 걱정이네.’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더라도 나야 미션을 망치는 선에서 끝나겠지만. 제현호는 본인 일이니 더 심란할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지금은 우선 기다리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아 이제 슬슬 뺨이 아프다. 얼른 들어가서 몸 좀 녹일래.”

“안에 야식 시켜 놓은 거 있으니까 먹고 자요.”

“뭐 시켰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추억 여행도 끝나고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제현호는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어딘가 고장 난 로봇 같다고 해야 하나.

“일어나. 다들 정리했어.”

다른 멤버들은 벌써 남은 주전부리와 마시던 캔을 챙겨서 하나둘 계단으로 향하는 와중 현호만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남아 있었다.

“얼른 내려와요!”

“어어!”

나는 벌써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우리를 부르는 영인에게 적당히 대답하고는 제현호를 추슬러 숙소로 데리고 갔다.

“오늘 좀 피곤해서 졸린가 보다. 일찍 자게 현호는 먼저 들여보낼게.”

“엥, 배 안 고프겠어?”

규민의 물음에 제현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조금 챙겨 놓을 테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먹어. 우리끼리 다 먹기엔 양이 좀 많다.”

평소 제현호가 팀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식가에 속했기 때문에 현호가 빠지면 남은 분량이 꽤 되는 모양이었다.

아깝다고 다른 멤버들이 나눠서 먹기엔… 물리는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한동안 휴식기라고 해도 좋을 대로 먹어 대는 건 곤란하니까.

관리를 위해서라도 안 될 일이었다.

“얼른 들어가서 눈 좀 붙여. 핸드폰은 불안하면 소리 켜 두고. 전화 오거나 하면 내가 깨워 줄 테니까.”

제현호도 잠귀가 어두운 편은 아니었지만 내 쪽이 좀 더 예민해서 나는 잠결에 들리는 소리라도 벨 소리를 놓쳐 본 적은 없었다.

제현호가 잠시 나를 믿어도 되나 고민이라도 하는지 흘끔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침대 위로 몸을 쓰러트렸다.

분장이랑 머리는 다 대기실에서 정리했고 씻는 건 좀 더럽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씻어도 되니까.

나는 본인도 퍽 찝찝한지 이불도 덮지 않고 그 위로 쓰려져서 몸을 웅크린 현호를 내려다보며 거실에서 담요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건 밖에 나가서도 사용하는 거니까 괜찮겠지.

무대 위에서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으면서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평범한 그 나이대 청소년처럼 어깨가 축 늘어져서는 기절하듯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퍽 안쓰러웠다.

‘무대 위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1군 아이돌이래도 내려오면 그냥 평범한 10대인 거니까.’

겉으로는 티를 안 내고 의연한 척해도. 만나고 싶었던 가족에게 거절당한 경험이 유쾌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을 리 없었다.

“잘 자. 넌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으니까 뭐든 너무 신경 쓰지 마.”

만약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을 것 같아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자 거실에서는 떠들썩하게 뒤풀이가 한창이었다,

“얼른 와서 뭐라도 좀 먹어. 너도 배고플 텐데 현호 챙겨 주느라 고생이네.”

곧바로 나를 발견한 혜성이 주섬주섬 무슨 할머니처럼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아,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먹으면 돼요. 그냥 앉아 있어요, 형.”

주섬주섬 일단 주는 건 받아 들고 더 줄 필요는 없다고 말리고 나니 그제야 조금씩 내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누나분이 그래도 만나기 싫다고 연락을 거부하면 어떡하지.

그때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또 뭘 해야 하나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으음….’

나도 모르게 심각한 생각을 하느라 인상을 잔뜩 찌푸려서 그런가. 어느새 멤버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내게로 향해 있었다.

“응…?”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바보 같은 감탄사가 빠져나온 순간 영인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형도 뭐 걱정이나 문제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죠?”

왜 갑자기 불씨가 나한테 튀지? 미처 생각도 못 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온 물음에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어?”

이럴 땐 뭐 어떻게 말해야 하더라. 빠르게 머리를 굴려 변명거리를 생각해 낸 나는 겨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냥, 아무래도 현호가 조금 신경 쓰여서. 이번 활동도 너 나 할 거 없이 다 힘들었으니까, 마무리도 좋은 게 좋잖아.”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다들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희 이번에 스케줄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해외 스케줄 쳐 내느라 그렇게 부지런히 다녀와서는 얼마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대형 행사들이 줄줄이 이어져서 준비하느라 난리였으니 다들 무리를 했을 만도 했다.

작년부터 계속 대략적인 일정만 잡아 두었던 해외 투어가 시작되는 건 날이 좀 풀리고 나서부터였으니까 그때까지 한두 달 정도는 완전히 휴식기는 아니더라도 느긋하게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예능 찍는다고 정신없을 것 같기는 하다만….’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영인도 음방 MC 신규 합류 얘기가 오가고 있고 그 외 다른 멤버들도 예능 고정 출연 등의 제안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당연히 활동기보다는 느슨할 테니까. 다 같이 연말 이후의 달콤한 휴식을 생각하고 달려온 만큼 슬슬 한계를 맞지 않은 멤버가 없었다.

“근데 다들 연초 일정 벌써 다 잡히지 않았어요? 말만 들으면 해 넘어가는 대로 파업하고 쉴 것처럼 말해 놓고 다들 하나씩 잡아 둔 거 있는 것 같던데.”

하연이 툭 농담처럼 던진 말에 영인이 불쑥 손을 들었다.

“어, 맞아. 저 진짜 궁금했는데요. 은찬 형은 뭐 해요? 다른 사람들은 뭐 하는지 건너 건너 힌트라도 좀 들었는데 형은 진짜 모르겠어서요.”

“아, 맞아. 나도 궁금했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혜성은 물론 규민과 지원도 호기심에 눈을 빛내자 하연이 순간 말을 잘못 꺼냈나? 후회가 섞여 있는 눈으로 은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은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크몬에서 컴필 앨범 내는 거 있어서 MV 찍고 프로듀싱해.”

“오….”

모두의 시선이 덩달아 하연에게로 향했다. 하연이 민망한 듯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두 팔을 가로저었다.

“저는 아니에요! 저 말고 은찬 형만 하는 거예요.”

“엥?”

다들 의외라는 듯 고개가 돌아가자 하연이 허둥지둥 설명했다.

“아. 형은 프로듀서기도 하고, 아무래도 저희 소속사 간판이니까 지금부터 부지런히 어필하는 거고요. 저는 신인이기도 하고 래퍼는 아무래도 라인업이 좀 쎄서….”

“아아….”

대충 어떤 느낌인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레이블마다 비율은 다르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회사별로 래퍼보다 프로듀서의 수가 훨씬 적은 게 일반적이니까.

은찬은 한쪽만 하는 것도 아니고 양쪽을 병행하는, 거기다 한창 유명 아이돌로 활동 중이기까지 해서 화제성도 높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입장이었다.

그에 반해 하연은 래퍼나 퍼포머로서의 기량은 더 우수할지 몰라도 소속사 내의 명성을 떨치는 래퍼 선배들과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제가 아직 저희 소속사 선배님들 사이에 끼고 들어갈 연차는 아니니까요.”

물론 때에 따라서 그해에 가장 밀어 주고자 하는 신인을 넣는 경우도 꽤 있지만.

‘이번에는 그게 정은찬인 거겠지.’

어색해진 분위기에 혜성이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하연의 컵에 탄산음료를 더 따라 주었다.

“그래도 아쉽다. 은찬이랑 하연이 서로 톤이 상성이 잘 맞아서 같이하면 더 잘 어울릴 텐데. 내년에는 꼭 같이했으면 좋겠네.”

내년이 아니라 내후년이겠지만 그건 어쨌든 중요한 건 아니니 다들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 이런저런, 평소에는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기에 바빠서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누고 나니 시간이 금방 3시가 넘어 있었다.

“어우 졸려. 진짜 기절할 것 같아.”

“그냥 일찍 들어가서 자지.”

“아 나 빼고 재밌는 얘기할 것 같으니까 그렇지.”

규민이 흐아암,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괜히 놀리고 싶어져서 나는 슬쩍 말을 보탰다.

“어떻게 알았어? 너 가면 바로 이규민 뒷담 하려고 했는데.”

“아… 규민 형, 역시 저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저는 전부터 좀 쎄하더라고요.”

영인이 타이밍 좋게 농담을 받아 주자 지원이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 나는 아닌데…!”

우리도 당연히 아니란다. 너무 졸려서 제정신이 아닌 듯한 지원의 머리를 여러 사람의 손이 동시에 마구 헝클어트리며 웃었다.

“얼른 가서 자. 넌 자리 비워도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까.”

애당초 고등학생을 이 시간까지 안 재운 우리가 잘못이다. 웃으며 자리를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문득 조금 전까지의 떠들썩함과 대조되는 고요함에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이런 생활이 일 년도 안 남았다는 거구나. 새삼스러운 실감과 함께 불쌍하기 짝이 없는 꼴로 잠들어 있는 제현호가 눈에 들어왔다.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려야지.’

부디 시상식에서의 마음이, 이 녀석이 가장 보고 싶을 사람에게 전달되었기를.

내 손을 떠났으니 운이 따라 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상당히 늦은 시간에 눈을 붙였음에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무슨 할아버지도 아니고 아침잠이 이렇게 줄어 버렸지.’

요새 스케줄 때문에 워낙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려서 몸에 밴 듯한데. 거실에는 아무도 없는 걸 보면 그렇다고 이 시간에 눈을 떠 버린 건 나뿐인 듯했다.

‘나만 늙은이라 이거냐….’

실제로도 정신적인 나이만 따지자면 내가 최연장자인 건 맞았다. 하지만 혜성이랑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닌데.

뭔가 억울한 마음에 옹졸한 생각을 곱씹던 그때.

제현호의 핸드폰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어…?’

뭐지. 슬쩍 핸드폰을 확인하자 잠금이 걸려 있어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급한 일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 6건]

‘이거 혹시?’

나는 재빨리 현호를 흔들어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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