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87화 (187/224)

#187. 굳이 그런 생각을 (1)

“빨리 일어나 봐, 급한 연락 온 것 같은데.”

어깨를 가볍게 잡고 흔들자 제현호가 잠시 잠이 덜 깼는지 두 눈을 찌푸리며 깜빡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연락, 뭐요?”

“나도 모르지. 확인 안 한 문자가 잔뜩 쌓여 있어서.”

“……!”

그 순간 제현호가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내 손에 있던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

더듬거리며 잠금 패턴을 풀자 센터에서 남긴 메시지가 현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들갑 떨었다가 냅다 김칫국 드링킹한 게 될까 봐 뭐라고 물어보지도 못하겠네.’

내가 서 있는 쪽에서는 메시지 내용이 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슬쩍 제현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뭐라는데?”

순간 현호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역시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도저히 안 되겠으니 또 연락하면 그때는 센터와도 소통하지 않겠다는 엄포라도 들었나.

잔뜩 긴장한 채로 현호의 눈치를 보자 놈이 답지 않게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서 인천 공항까지 택시 타고 가면 얼마나 걸려요?”

“어?”

생각도 못 하고 있던 질문의 등장에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여기서 갑자기 인천 공항 얘기가 왜 나와?

내가 상황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제현호가 당장이라도 숙소에서 튀어 나갈 듯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인천 공항은 왜?”

나는 자기가 뭘 입고 있는지 확인할 정신도 없는지 윗옷을 뒤집어서 입고 있는 현호를 뜯어말렸다.

“정신 차려, 너 옷 뒤집어 입었다. 근데 공항은 갑자기 왜?”

놀라 재차 묻자 놈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누나가 지금 공항에 있대요!”

***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제현호는 내내 아무 말도 없었다. 나나 현호나 얼굴 하나 드러낸 곳 없이 마스크에 선글라스로 중무장을 한 채 모자까지 눌러쓰니 영락없이 튀는 차림이 되었다.

범죄를 모의 중인 수상한 사람이든, 눈에 띌 정도로 비율이 좋고 키가 큰 행인이든.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센터 담당자분에게서 온 연락에 따르면 하필 누나분이 오늘 출국 일정이 있어서 정오 즈음에는 더는 한국에 있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내가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가 9시였으니까… 타임 어택도 이런 타임 어택이 따로 없었다.

“이 넓은 인천 공항에서 사람을 어떻게 찾냐…….”

허겁지겁 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10시가 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데 이거.

정말 기적적으로 센터 담당자를 통해 국적기는 아니고 해외의 저가 항공이었던 것 같다는 힌트만 얻은 상황이었다.

‘그걸로 어떻게 알아.’

그 와중에 다행인 건 아직 2터미널이 개장하기 전이라서 뒤져 봐야 할 장소가 2018년 이후처럼 광활하진 않다는 것이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다 나네….’

정오쯤 이륙이라면 아직은 탑승장 안에 안 들어갔을 수도 있겠는데.

현호와 흩어져서 최대한 닮은 사람을 찾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기웃거리는 와중 슬슬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저기 서인수 아냐?”

“에이 서인수가 공항을 혼자 왜 돌아다녀. 어제 대상까지 받은 사람이 이런 데를 그냥 혼자 다닌다고? 그럴 리가.”

“그런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진짜 어쩌다…. 슬쩍 리퀘스트 미션의 남은 제한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이대로 실패인가. 눈앞이 컴컴해진 그때 내 앞으로 어린아이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헉, 도현아 좀! 조금만 얌전히 있자. 도현아!”

음… 힘든 육아를 하고 계시군요. 낡고 지쳐 보이는 보호자의 모습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 보편적인 인류애가 솟아났다.

“멀리 가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야지.”

재빨리 아이의 진로를 가로막고 버티자 아이가 순간 놀라 멈칫하는 사이 멀리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던 부모가 겨우 아이를 따라잡았다.

“어우 죄송해요. 애가 한시도 가만 있지를 않아서… 여기서 엄마 잃어버리면 영영 못 만난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속이 타는 보호자와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를 번갈아 보고 있으려니 순간 퍼뜩 무언가 떠올랐다.

“어디 부딪히거나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곧이어 나를 발견하고 사색이 되어 묻는 부모에게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니 괜찮다고 대답하고 돌아선 나는 곧장 현호를 붙잡고 말했다.

“빨리 인포 데스크로 가자!”

“네?”

내 갑작스러운 제안에 현호가 이해를 못 한 듯 눈살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한 번 더 외쳤다.

“얼른!”

그렇게 인포 데스크로 제현호를 끌고 간 다음 나는 직원에게 다급히 말했다.

“정말 죄송한데 저희가 지금 촬영 중인데 혹시 협조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고는 슥, 마스크를 내려 얼굴을 보여 주자 직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헉, 서인수 씨 맞으세요?”

“우와, 대박!”

워낙에 큰 공공 기관이니만큼 방송 협조 요청도 많이 받았을 거고 하루가 멀다고 연예인들이 들락거리니 별로 놀라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내내 어긋나다가 이번만큼은 천운이 따랐는지 때마침 직원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보조 배터리가 다른 아이돌 그룹의 굿즈였다.

‘우리 팬분은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아이돌이나 이쪽에 좀 관심이 많고 호의적이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닌 듯 뒤에서 다른 직원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뭐 아이돌이 뭐라고 저렇게들 난리….”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 바람에 눈이 마주친 순간.

“헉…! 와, 오… 우와….”

어색한 적막이 흘러 나는 눈치껏 활짝 웃어 보였다.

“진짜…. 잘생기셨네요.”

그리고 타이밍 좋게 아까 우리가 협조를 부탁드렸던 직원분이 현호와 나를 불렀다.

“저희가 어떻게 도움 드리면 될까요?”

“아, 잠시만요!”

나는 더 생각할 겨를 없이 직원에게 준비해 온 멘트를 전달했다.

[아동을 찾고 있습니다. 이름은 제현아, 나이는 7세.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회색 티셔츠와 남색 반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제현아, 아동은 지금 바로 안내 데스크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공항에 이런 특징을 가진 아동은 어디에서도 없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알겠지. 이게 누구를 찾는 방송인지.

진짜 아동이 실종된 상황도 아니니 안내 방송을 부탁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 한 번이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으니 이제는 기적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나는 초조해 보이는 표정의 현호를 바라보고는 속으로 옅은 한숨을 삼켰다.

1분, 5분, 그리고 10분.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에 이미 출국장으로 나가 버린 걸까 포기하려던 그때.

“…저 죄송한데 혹시 조금 전에 방송으로 미아 방송 하나 나오지 않았나요?”

인포 데스크의 맞은편에 조촐한 캐리어를 끌고 온 여자분이 나타났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제현호의 눈이 지금껏 그래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래졌다.

***

잠시 후. 공항에서 돌아오는 택시에서 제현호는 내내 아무 말도 없었다. 나도 뾰족하게 할 말이 있는 건 아니라서 둘 다 어색하게 뒷좌석의 양 끝에 앉아 입을 다물었다.

제현호의 누나는 센터를 통해 들었던 대로 형편이 썩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해외로의 출국은 여행이나 이민은 아니고. 원래 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급히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그쪽에 남은 짐이나 집 등등을 전혀 처분을 못 하고 와서 이번에 아주 정리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뭐든 잘돼서 금의환향하는 것이면 모르겠는데 표정이 꽤 수척해 보이고 버거운 기색이 역력한 것이 뭔가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뭐… 본인이 말할 생각이 없고, 이런 자리에서 할 만한 얘기도 아닌 것 같으니까….’

내가 참견할 만한 일은 아니지.

겨우 자리를 옮겨서 쥐어 짜낸 시간은 15분 남짓. 그 짧은 사이에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가슴속에 꾹꾹 담아 두었던 말을 모두 꺼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방송 봤어. 잘됐더라. 내가 계속 외국에 나가 있어서 네가 데뷔하고 나서야 알았어.’

현호가 데뷔했다는 사실을 안 건 외국에서였다고. 우연히 팬들이 내건 광고판을 보고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 보여 설마 했는데 이름을 보니 맞아서 미안한 마음에 전광판을 피해 다녔다고 했다.

‘…미안할 게 뭐가 있어.’

현호의 말대로. 계속 가족과 살았던 누나 역시도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아서 어느 쪽이 더 좋은 환경이었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빠는…? 잘 지내셔?’

현호가 가까스로 부모님의 안부를 입에 올리자 누나분은 어쩐지 조금은 후련한 듯하면서도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너랑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어. ……사고로.’

덕분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그동안 내내 남매가 신경 쓰였으나 형편상 둘 다 거둘 수가 없어서 외면해 왔던 친척이 누나를 거둬 주었다나.

그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많겠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이상 어쩔 수 없이 곧바로 헤어질 때가 되었다.

연락처도 교환하고, 현지에 도착하는 대로 꼭 문자라도 달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헤어지기 직전.

현호가 했던 말이 나는 남남일 뿐인데도 계속 뇌리에 박혀서 사라지질 않았다.

‘나는…. 그때 누나가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해.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버려진 쪽은 아이돌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고, 버린 쪽은 썩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이니 결과적으로는 그렇긴 하겠지만.

그 말 한마디에 출국장으로 나가다 말고 주저앉아서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족이 아닌 나조차도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울진 않았지만.

만약 내가 유 대표와 이렇게 툭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나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글쎄다….’

지금의 부모님과 함께 자라서 충분히 행복했고 과분한 애정을 받았다고 생각이야 하지만.

나를 버린 가족에 대한 원망이 사그라들기에는 아직 복잡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건지 들어야 나도 이해를 하든 할 거 아냐.’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숙소로 돌아오자 다들 야단법석이었다.

“뭐야. 왜 아침부터 둘이서만 몰래 나갔다 와? 뭐 했어?”

“뭐 먹었어?”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대뜸 뭘 먹었냐는 질문이 나온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며 무거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