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할 필요는 없지만 (2)
‘이거….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인가…?’
폐가 정도가 아니라 무슨 담력 체험장으로나 쓸 법한 흉가였다.
“저… 촬영지가, 정말, 여기가 맞는 거죠?”
내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당황을 금치 못하자 온갖 잡초들이 사람 허리 위 높이로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공터 사이에서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헉.’
나도 모르게 놀라 움찔 뒷걸음질을 친 순간. 잡초를 헤치고 나타난 것은 카메라를 든 보조 감독님이었다.
“아, 인수 씨 오셨어요? 오늘 다들 좀 집합 시간보다 일찍 오셔서 안쪽부터 둘러보고 있었어요.”
우리가 잘못 온 게 아니라 여기가 정말 맞았단 말야?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을 비볐다. 그러나 몇 번을 눈을 괴롭혀 봐도 보이는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유튜브 같은 데서 N대 흉가 담력 체험 명소, 같은 걸로 소개될 것 같은 곳이 진짜 숙소라고?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스태프를 바라보자 스태프가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웃었다.
“인수 씨도 안에서 대기하실래요? 안에 앉을 데 많으니까 편히 있으셔도 돼요.”
그 말에 나는 순간 의심과 함께 희망이 샘솟았다. 안은 좀 괜찮은 거겠지? 리모델링이라도 잘해 놨나….
약간의 기대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안녕하세… 응?”
‘…….’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내부는 리모델링은커녕. 폐가 그대로의 날것 그 자체였다.
무슨 가구도 없고 텅 비어서는 보이는 것이라고는 거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텐트가 전부였다.
낡기만 한 숙소와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저 그러니까 이게….”
내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스태프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스태프가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네. 여기서 이제 수리도 하고 다른 분들이랑 힘을 합쳐서 셀프 인테리어도 할 겁니다.”
그러고는 웬 DIY 영상을 보여 주었다.
“여기 보시면 지금 벽은 어쨌거나 상태가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서 이렇게 풀만 발라서 붙이면 집에서도 손쉽게 따라 하실 수 있거든요. 오늘 목표가 여기 영상 보시고 벽이랑 바닥 마무리하고, 내일은 화장실 타일 붙이는 것까지 촬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무슨 폐공장 카페 같은 비주얼의 집구석을 우리보고 직접 그럴듯하게 만들어라 이건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아주 간결했다.
‘이걸 무슨 재주로요.’
세상에는 내가 노력을 하면 할 수 있는 게 있고 노력을 해도 절대 불가능, 이건 무리다 진짜! 싶은 게 있는데 이건 명백히 후자였다.
하면 뭐 벽에 벽지를 붙일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되겠냐고. 보기 흉한 것은 물론이요 한 시간 만에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물었다.
“혹시 옆에서 보조로 도와주시는 스태프분은….”
내가 머뭇거리며 묻자 보조 감독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저희 대본도 거의 개요 정도만 적어서 드리는 리얼리티인데 도와드리면 어떡해요. 그건 시청자분들을 우롱하는 거죠.”
아니 그럼 진짜로 우리한테 이걸 다 시키겠다고? 내가 멈칫 굳어 버린 그때. 닫혀 있던 방 안에서 요리뿅이 걸어 나왔다.
“어, 인수 씨 오셨어요? 주방도 한번 보실래요? 엄청 웃겨요.”
이 난장판 속에서 대체 어떻게 헤실헤실 웃을 수 있는 건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나타난 요리뿅이 냅다 나를 데리고 주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마주한 것은….
“이건….”
‘아궁이?’
아니, 아궁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화덕이라기에도 좀 그렇고. 실내에 있는 것도 아니라 미닫이문을 열고 나가야 보이는, 처참한 몰골의 화구가 우리를 반겨 주고 있었다.
“여기서 고구마 구워 먹으면 진짜 맛있겠죠? 가스 끊긴 화구라서 저희가 직접 토치로 불붙여서 써야 한대요!”
“네?”
연이어서 치고 들어오는 믿기 힘든 발언에 내가 경악하기도 잠시. 곧이어 모델 출신 출연자, 이원우가 맞은편에서 들어왔다.
“아… 인수 씨 오셨어요?”
나름대로 차분하면서도 여유가 보였던 사전 미팅 때와 달리 잔뜩 피곤해 보이는 게 어째 심상치 않았다.
“아, 네네. 다들 일찍 오셨네요.”
가볍게 인사를 마무리 짓고 이 난장판에 경악한 건 나뿐인가 이원우의 표정을 살핀 그때. 이원우가 불쑥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기 혹시 매트리스는 없는 건가요?”
‘응?’
갑자기 매트리스?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이원우가 당당한 얼굴로 덧붙였다.
“저 매트리스 없으면 진짜 못 자거든요. 바닥에 등 배겨서 체형 흐트러져서 안 돼요. 저 이번 주에도 스케줄 많아서 허리 휘거나 그러면 큰일 나요.”
그러자 보조 감독이 정말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어… 저희 침낭은 준비되어 있는데요. 컨셉이 아무래도 생존이다 보니까 매트리스는 좀 안 어울리기도 하고….”
“네? 아니 그런 말씀은 없으셨잖아요. 저 당장 이틀 후에도 촬영 있는데 등 배겨서 체형 변한 것 때문에 캔슬되면 어떻게 책임지시려고요?”
“저희도 설마 매트리스 아니면 절대 안 되는 분이 계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해서요. 미리 말씀을 해 주셨으면 저희도 기획할 때 반영을 했을 텐데 이렇게 갑자기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느닷없이 번진 싸움에 나와 요리뿅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그러자 요리뿅이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먼저 왔으면 뭔가 확인한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당황을 금치 못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이원우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잠깐만요. 저 매니저 형이랑 다시 얘기 좀 해 볼게요. 저 이런 데서 자고 일어나서 일 못 가요.”
“하, 나 참… 아니 다른 분들은 다 괜찮으시다는데 원우 씨만 그렇게 나오면 저희가 뭐 어떻게 해 드려야 합니까?”
“어, 형, 다른 게 아니고 나 지금 아까 데려다주고 나서 계속 대기 중인데….”
뭐냐고 이 분위기. 나머지 스태프와 나는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이거 뭐 누구 편을 들어야 하냐 고민하던 그때. 갑자기 요리뿅이 거실 중앙에서 손을 들었다.
“……?”
통화 중이던 이원우가 요리뿅 쪽을 쳐다보며 눈썹을 꿈틀거리기 무섭게 요리뿅이 외쳤다.
“아무튼 맨바닥에서 자는 것만 아니면 되는 거죠?”
그러자 이원우가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를 깔고 주무시면 될 것 같은데요? 저 엄청 푹신하거든요. 요즘 체지방률 올라가서 쿠션감도 좋을 거예요.”
“……?”
“인수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낫겠죠?”
나는 이번에 눈에 이어 귀를 의심하며 요리뿅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낫긴 뭐가 나아. 이상한 말만 잔뜩 늘어놓는 표정이 어째 웃음을 가까스로 참는 것 같은 눈치였다.
그제야 퍼뜩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설마…?’
설마가 맞는 것 같은데. 여기서 이 이상한 연극도 끝낼 겸 눈치챈 티를 내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나는 역으로 요리뿅을 당황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아…. 근데 저도 사실 맨바닥에 잘 못 자는 편이라서요. 저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네?”
갑자기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요리뿅이 당황한 듯 말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혹시 저도 좀 다리 한 짝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걸로 좀 다리 높이라도 올리고 자면 나을 것 같은데.”
“네?”
“아, 아니면 혹시 요리뿅 님 위에 원우 씨 다리를 올리고 그 위에 제 다리를 좀 올려도 될까요? 그 정도 높이는 되어야 붓기가 잘 빠지다 보니….”
그 순간 요리뿅이 ‘이거 뭐 어떻게 해요?’라고 얼굴에 써 둔 것처럼 당황하며 보조 감독을 바라보았다.
나는 씩 웃으며 요리뿅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깜짝 카메라였습니다?”
“아!”
요리뿅이 그와 동시에 이건 사기라는 듯 거칠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아 감독님~. 이런 게 어딨어요! 제가 대상자였어요?”
그러자 감독이 당황해서 허둥지둥 대답했다.
“아뇨 원래 대상자는 인수 씨가 맞는데…. 아니, 인수 씨 알아차리셨으면 그냥 알아차리셨다고 하지 왜 사람들 오해하게 얘기를 그렇게….”
“무슨 소리세요, 저 오기 전부터 계속 통화로 지시해 주셨으면서. 저 덕분에 아까 직접 도배하는 시늉까지 할 뻔했잖아요.”
내 능청스러운 대답에 요리뿅이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요? 와, 그럼 지금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지금 제가 속은 건가?”
“네.”
“인수 씨!”
온통 혼란스러운 와중 나는 진짜 급한 것부터 불쑥 물었다.
“근데 저희 진짜 세트장으로는 언제 이동하는 거예요?”
제발. 제발! 이것도 깜짝 카메라에 포함이었다고 해 주라.
감독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까지 그 짧은 순간이 무슨 10년이라도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잠시 후. 무사히 본촬영장으로 이동한 나는 조금 전 봤던 흉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말끔한 주택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난 또.”
내가 가슴을 쓸어내리자 요리뿅과 이원우가 웃으며 물었다.
“혹시 언제쯤까지 진짜 저기서 자야 하는 줄 알았어요?”
나는 대답하기 전에 먼저 물었디.
“요리뿅 님은요?”
“저는 보자마자 알겠던데. 아 여기서 촬영하자고 하는 건 진짜 말도 안 된다, 하고.”
그러자 우우, 이원우가 야유와 함께 쏘아붙였다.
“그거는 솔직히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고요. 그거 말고. 진짜 이건 가짜구나 했던 거요.”
“아, 그건 사실 제작진분들 설명 듣고 겨우 알았어요. 제가 제일 일찍 와 가지고.”
알고 보니 오늘 일부러 출연진별로 집합 시간을 다르게 알려서 한 명씩 올 때마다 반응을 보는 게 제작진이 의도한 부분이었다.
‘굳이…?’
진짜 촬영장은 같은 부지 내에 있는 정돈된 별채로 조금 전 봤던 주택보다는 크기가 작지만 여섯이서 살기에 큰 지장은 없는 집이었다.
바로 등을 맞대고 있어서 처음 차를 대고 봤던 쪽에서는 존재하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걸어서 마트도 갈 수 있고 편의점도 갈 수 있는 거면 입지 자체는 나쁘지 않네.’
내부는 이렇다 할 장식품은 없었으나 깔끔한 톤으로 꾸며져 있었다.
널찍한 거실이 있는 방 세 개짜리 집.
엔카운터 숙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에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으나 이쪽은 잔뜩 꾸며 놓은 덕에 훨씬 보기 좋았다.
‘잠깐, 그러면….’
그리고 그 순간 또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