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207화 (207/224)

#207. 눈앞에 가려진 것 (3)

“그냥 뭐….”

예상한 것과 달리 생각보다 밋밋한 반응이었다.

“……?”

악마처럼 엄격했다느니 도망치고 싶었다 같은 대답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상당히 김빠지는 대답이었다.

“그냥 뭐?”

내가 한 번 더 묻자 유역이 합, 고기를 한 점 집어 들어 대수롭지 않게 먹어 치우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대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아시잖아요? 형도 그 오디션 나갔을 때 지도받으셨던 것 같았는데.”

“아, 어어.”

“그것보다는 좀 더 둥글둥글한 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쁜 분은 아니었어요!”

평이 뭐 이래? 싱겁기 그지없었다. 그때 나랑 같이 연성 조 했던 연습생들은 다 본 소속사 디렉터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눈치가 보여서 고통스러웠다고 대답했을 텐데.

“너랑은 좀 잘 맞으셨나 보네? 혼도 별로 안 내시고.”

슬쩍 조금 더 정보를 캐 볼까 싶어서 덧붙이자 유역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설마요. 저 진짜 엄청 혼났거든요. 맨날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뺀질거린다고 남아서 연습하고 가라고 하고… 근데 그게 절 그냥 괴롭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나쁜 뜻으로 그러시는 건 아니니까….”

이게 구박을 너무 많이 받아서 뭐가 문제인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몰아붙인 건지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이 녀석에게만 마치 특별 대우처럼 잘 대해 줬던 건 아닌 것 같지? 이제 또 뭘 물어봐야 하나 잠시 생각을 하던 참에 유역이 생각도 못 한 이야기를 했다.

“아, 그리고. 의외로 좀 인간적인 면도 있으시고요.”

“……?”

인간적? 유 대표가? 그게 유 대표의 대외적인 모습과 어울리는 단어던가. 방송에 비치는 순간은 물론 카메라 뒤에 있을 때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꼿꼿하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상한 표정을 짓자 유역이 아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 형은 연성 대표실 한 번도 안 가 보셨겠네요? 유 대표님 책상 위에 되게 조그만 사진이 있거든요. 조카라던데요? 막 태어났는지 피부도 빨갛고 완전 애기인데 책상에 붙어 있길래 다들 엄청 의외라고 놀랐어요.”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조카’라는 말이 사실일지 아니면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사진의 주인공이 나일 것만 같아서.

‘왜….’

겟 데뷔 출연 때는 내가 데뷔하지 못하도록 방해까지 했다면서 대체 왜? 순간 내가 너무 앞서 가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고 머리가 핑 돌아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 형?”

결국 내가 반응이 없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유역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부를 때에서야 놀란 가슴이 다시 쿵쿵 뛰며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아아, 아니 그냥… 너무 의외여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아무 말이나 둘러대자 유역이 곧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웃었다.

“그죠? 예전에 단톡방에서 누가 사진 찍어 가지고 올려서 난리였었는데. 한번 보실래요?”

그러고는 나와 대화를 나눌 만한 접점을 찾았다는 것이 반갑기라도 했는지 메신저 어플의 기록을 한참 거슬러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리고 싶었으나 혀가 굳어서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아, 찾았다!”

벌써 수년 전 기록이라 화질이 다운된 미리 보기로만 남아 있는 사진을 불러오자 나는 더더욱 할 말을 잃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듯 발간 피부의 아기 목덜미에 익숙한 반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꼭 감은 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기 피부 위에 새겨진 반점은 지금도 내 목에 남아 있는 것과 형태가 같았다.

지금은 워낙 많이 흐려지기도 했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것도 아니라 내 사진을 매일같이 봐 주시는 팬분들도 모를, 나만이 알고 있는 특징이었다.

‘이걸, 왜….’

연습생들 사이에서 의외라고 얘기가 나올 정도면 하루 이틀 가져다 둔 게 아니었던 모양인데.

지금껏 내 걸림돌이었다고만 생각했던 사람이 내 어릴 적 사진을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뭐냐고 대체….’

내 존재 자체를 원망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연예계에 발을 들이는 건 싫었다는 건가? 내가 혹시라도 자기 활동에 누가 될까 봐? 어떻게 해석해도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에 나는 유 대표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다시 되짚어 봤다.

“…….”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봐도 그냥 X나게 갈구는 엄격하고 성격 나쁜 상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물론 그 결과 무대 자체는 잘 나오긴 했지만 매 순간순간이 ‘이딴 걸 연출이라고 제안해!?’ 하고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릴 것만 같아서 살얼음 밟는 기분이었단 말이다.

여기에 애정이 어디 있냐고. 감히 연성 이름 달고 무대 올리면서 이것밖에 못 해? 어차피 책임은 니들이 지는 거지만 협력한 건 우리니까 절대 흠 잡히면 안 돼! 하고 데굴데굴 굴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차근차근 되짚어 보니 어쩐지 유전으로 보이는, 유 대표와 나 사이에 비슷한 성질머리도 되새겨져서 고통스러웠다.

‘아 진짜 의식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잠시 혼란에 빠진 사이 유역이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어쨌든 그거 보고 말씀은 좀 딱딱하게 하셔도 엄청 무서운 분은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형도 진짜 의외죠? 충격받으셨나?”

나는 애써 표정을 수습하고는 적당히 둘러댔다.

“뭐, 아무래도 이미지가 그럴 만한 분은 아니니까… 아, 벌써 고기 탄다. 얼른 먹어, 얼른.”

재빨리 화제를 돌리고 식사를 마치니 벌써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흥분하면 아무 말이나 하는 애를 데리고 술집에 가기도 좀 그래서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시즌으로 나온 디저트를 먹였다.

방송에서는 적당히 조절해서 먹더니만. 사석에서는 고삐가 풀리기라도 했는지 엄청난 대식가의 면모를 보여 줘서 문득 겟 데뷔 출연 전 영인과 카페에 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

나도 모르게 푸핫, 웃어 버리자 유역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아냐. 잘 먹길래. 뭐 관리만 잘되면 잘 먹는 건 좋은 거니까.”

적당히 근황이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헤어지니 아직 멤버들이 잠자리에 들지 않고 깨어 있을 시간이었다.

“다녀왔어.”

“오~ 내 선물은?”

“제 거는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당당하게 뭐 사 온 거 없냐며 걸근거리는 2인조 뒤로 지원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 이럴 줄 알고 오다가 들렸다. 나는 손에 쥔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오! 대박!”

“와!”

그러자 기대도 안 하고 그냥 해 본 말에 놀란 영인과 규민이 제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달려 나왔다.

“뭔데? 뭐 사 왔는데?”

마치 피라냐 떼처럼 봉지를 가져가서 내용물을 확인하는데 저칼로리, 저당 아이스바만 잔뜩 들어 있는 걸 확인한 영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10칼로리 특집 뭔데요!”

싫어서라기보다는 어쩜 사 온 것도 내 취향대로만 골라 왔는지 싶어서 웃겼던 모양이었다.

“싫으면 먹지 말든가. 압수한다?”

내가 다시 가져갈 듯 손을 뻗자 영인이 쾌활하게 웃으며 가로저었다.

“줬다가 뺏는 게 어디 있어요! 잘 먹을게요!”

그리고는 라임 맛 하드를 하나 집어서 남 입에 넣고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돌렸다.

“인수 형이 산 거요. 10칼로리밖에 안 해서 살 안 찌는 거예요.”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은찬도 흔쾌히 오렌지 맛 아이스바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어서 지원도 딸기 맛을, 혜성도 키위 맛을 집어 들고 나니 순식간에 온 집 안이 조용해지고 아삭아삭 얼음 씹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러니까 되게 어디 시골집 같은 데 놀러 온 것 같다.”

지원이 헤헤 웃으며 말하자 규민이 툭,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 도시 한복판에 있긴 해도 집 자체는 엄청 오래된 낡은 집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두런두런 대수롭지 않은 얘기나 하며 아이스바를 먹는 사이 나는 다시 상념에 젖어 들었다.

‘결국 오늘 그렇게 영양가 있는 얘기는 못 들었네.’

유역을 통해 유 대표에 대해 알아낸 건, 책상 위에 내 사진이 있다는 것과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저희 실장님이 결혼하실 때 대표님을 엄청 놀렸거든요. 그러다가 정말 처녀 귀신으로 죽는 거 아니냐고. 골드 미스도 좋지만 연애 정도는 해 보라고. 물론 대표님은 조금도 타격 없어 보였어요.’

그도 그럴 게 유 대표 정도 되는 사람이면 연애를 ‘안’ 하는 거지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본인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성격에 대체 뭐가 아쉬워서 다른 사람이랑 맞춰 가야 하는 장기적인 만남을 지속하겠어. 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였다.

상대방도 사사건건 사감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기분일 텐데 서로 고통스럽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으려니 불쑥 규민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어?”

갑자기 정곡을 훅 찔린 것 같아서 나는 떨떠름하게 아무 말이나 일단 대답했다.

“아, 그러니까….”

뭔 얘기를 하지? 이 녀석이랑 말해도 이상할 것 없는 화제가… 그러다 불쑥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건이 떠올랐다.

“임희록 말이야. 아직도 소식이 없나 싶어서. 요즘 한동안 나도 신경을 못 썼으니까.”

그러자 규민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네가 신경 쓸 게 뭐가 있어. 자기 혼자 실종된 건데. 요즘도 뭐 들리는 얘기 없는 거 보니 진전없는 게 아닐까?”

“그래? …안 됐네.”

더 얘기할 것도 없어서 나도 어깨를 으쓱이며 다 먹고 난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자 슬슬 하나둘 잘 준비를 시작했다.

“으윽…. 내일도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일정이네”

본격적으로 다가온 출국일에 다들 설레면서도 긴장한 것이 눈에 보였다.

“뭘 새삼. 출국 직전까지 쭉 연습실에서 살아야 하는데 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출국 전까지 또 어디를 찾아볼 수 있을지 골똘히 생각했다.

같은 소속사 출신이었으면 비안도 서천향에 대해 알고 있으려나? 어떻게 연락을 해야 자연스러울까.

오늘을 마지막으로 여유 시간이 끝나서 전화나 문자로밖에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안부차 전화라도 드릴까.’

이제는 비안이 단순한 관계자 선배님이라기보단 내 고모나 이모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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