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주는 무엇으로 마시는가
“어, 영수! 어서 와. 오랜만이다.”
김영하와 만나기로 한 곳.
동표 포차에 들어서자 주방에 있던 사장님이 부리나케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동표 포차, 김영하와 내가 한잔을 적시게 되면 꼭 찾게 되는 약속의 장소.
여기가 클럽인지, 술집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요즘 술집에 비하면 동표 포차는 허름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잘 쓰지도 않는 호프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
하지만 외려 그게 나름의 감성을 자아내기도 하고, 뭣보다 사장님의 손맛이 기가 막혀 2차는 다른 곳에 가더라도 1차는 꼭 이곳을 찾고 있다.
뭐, 빈말로도 손님이 많다고는 할 수 없으니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에도 딱이고.
“예. 사장님. 잘 지내셨죠?”
“응, 영하는 먼저 와서 기다리더라. 안쪽 테이블에 있어. 그나저나 옆에 예쁜 아가씨는 누구? 여자친구?”
“아니에요. 회사 후배. 영하가 주문은 했어요?”
“너희야 늘 먹던 그거잖아. 금방 준비해줄게. 들어가 있어.”
사장님은 너털웃음을 짓고는 다시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자주 오시는 곳인가 봐요.”
“응. 조용하게 먹기 괜찮아서. 사장님이 넉살이 좋으셔. 안주도 잘하고. 예리 씨한테 농담한 거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말고.”
“뭘요? 예쁜 아가씨라고 말한 거? 아니면 대리님 여자친구라고 오해하신 거요?”
“둘 다.”
최예리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왜요. 둘 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요?”
“예리 씨, 아까 만해도 세상 끝난 것 같은 얼굴하고 있더니 이제 기분 다 풀렸네?”
내 말에 최예리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 저기 김 주임님 계시네요. 김 주임님!”
김영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어깨는 휴대전화를 쥔 두 손을 중심으로 잔뜩 말려있었는데, 내 눈에는 마치 김영하가 전화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조용한 술집 안에 퍼진 최예리의 목소리에 김영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 뭐야! 예리 씨도 왔네?”
“응. 자기도 한잔하겠다고 하더라고.”
“저도 같이해도 되죠? 주임님.”
“아이고, 환영합니다. 이리 와서 앉으세요.”
나와 김영하가 나란히 앉고 그 앞에 최예리가 자리를 잡았다.
“넌 뭘 그렇게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어.”
“그냥 코인 보고 있었죠. 뭐.”
“좀 올랐어?”
“선배님. 차라리 지구가 언제 멸망하냐고 물어봐 주세요.”
김영하 코인에 꽤 큰 돈을 투자하고 있다.
오백을 코인에 담았다가 이주 만에 칠백만 원이 되었다고 자랑한 게 1년 전이다.
거기서 그만했으면 좋았을 텐데, 달달한 코인의 맛에 빠진 김영하는 적금까지 깨가며 코인 투자에 승부를 걸었다.
모두가 비트코인은 반드시 1억은 찍는다고 욍알대던 때였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거기가 머리 꼭대기 고점이었을 줄은.
내리막에 내리막, 작은 반등 후에 또 내리막.
김영하는 최근에 신용대출까지 받아 가며 물타기를 한 모양.
그런데도 원금회복은 요원하고, 아직도 반토막 이상 작살이 나 있는 눈치다.
김영하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살 때인가, 남산 꼭대기에 올라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 본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수도의 밤은 마치 낮처럼 환했다.
수많은 건물의 불빛은 마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어린 마음에 분명 여기 어딘가 분명히 내 자리가 하나쯤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웬걸,
서울은커녕 그 외곽도시에서조차 작은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는데 빠듯하게 모아 십수 년이다.
그런데 세상은 화려한 것들로 가득하다.
SNS에는 명품과 외제 차로 무장한 영앤리치들이 피드를 가득 메운다.
돈이 있으면 왕처럼 살 수 있는 세상.
월급 이백, 삼백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불길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대박을 찾아 여린 날개를 퍼덕이게 되는 것이다.
“아, 김 주임님도 가상화폐 하시는구나. 제 주변에도 하는 친구들 많던데.”
“예리 씨, 내가 한마디만 할게요.”
“네?”
“코인, 절대! 절대! 하지 마.”
김영하의 표정은 몹시나 결연했다.
나야, 주식도 코인도 하지 않으니 대박을 상상해봐야 기껏해야 로또 정도가 전부.
요즘 로또 1등이 20억이 안 되던가.
거기서 또 세금도 엄청나게 뗄 테고.
분명 20억이라는 건 엄청나게 큰돈. 하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에는 뭔가 애매한 액수다.
“자, 안주 나왔습니다.”
술집 사장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안주와 밑반찬, 그리고 알아서 소주를 한 병 가져왔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동표 포차에서 늘 깔고 시작하는 안주는 알탕과 모둠꼬치.
사실 술집에서 파는 안주들이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 파는 알탕의 얼큰한 국물맛은 정말 기가 막힌다.
그 맛에 반해 나와 김영하는 이곳의 단골이 된 것.
“와, 국물이 정말 끝내주는데요?”
최예리는 국물을 살짝 제 앞접시에 덜어 맛을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까드득━
나는 손안에 잡힌 소주 뚜껑을 힘주어 뜯었다.
“예리 씨. 소주 괜찮아?”
“그럼요. 저 소주 잘 마셔요.”
최예리는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각자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우리 셋은 잔을 높게 들었다.
“자,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소주가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자 온몸이 금세 싸해진다.
소주는 무엇으로 마시는가.
수많은 사람이 입에 대는 물건이니, 이에 대한 대답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내 경우에는 소주의 소리를 좋아한다.
까드득 술병을 까는 소리.
꽐꽐 술잔에 소주가 차는 소리.
꼴깍꼴깍 소주가 목을 넘어가는 소리.
그리고 독주의 알코올 내음을 이기지 못해 절로 나오는 크━ 소리까지.
이게 내가 좋아하는 소주의 맛이다.
“예리 씨, 아까 고생했어요. 와 임 차장 그 양반. 오늘따라 왜 그렇게 독해? 마누라가 아침을 안 차려줬나.”
“아니에요. 제가 잘 점검했어야 하는데.”
“아니, 우리가 지금 맡아서 하는 일이 한두갠가. 이 상황에 뭔가 일이 잘못되지 않는 게 이상하지.”
할 말 많은 김영하가 자기 앞에의 소주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선배님, 도대체 인원 충원은 언제 해준대요?”
“글쎄다. 인사팀에 슬쩍 물어보니 채용 공고는 계속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와 진짜 이게 두 달째인데, 진짜 날마다 야근이니 미치겠어요.”
팀에 일 안 하는 사람 하나. 공석이 둘.
결국 오 과장까지 넷이서 일곱 명이 해야 하는 일을 나눠서 하는 상황이다.
힘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에라이, 진짜. 선배님! 한 잔 더 해요. 예리 씨도. 자! 짠!”
*
“혀엉”
그렇게 몇 순배 술이 돌자, 김영하가 꼬인 혀로 나를 불렀다.
“형, 인사팀 김 대리. 형이랑 입사 동기죠?”
“입사 동기 맞지.”
“김 대리 그 사람, 이번 인사 때 과장 진급 노린다는데. 벌써 약 엄청 치고 다닌대요. 아니.누가 봐도 훨씬 능력 있는 우리 형이 과장 달아야지, 안 그래요? 예리 씨?”
“저는 아직 그런 거 잘 몰라서요. 제 앞가림도 힘든걸요.”
“정규직 전환? 걱정하지 마요 예리 씨. 100프로 될 거니까. 있는 자리도 못 채워주면서 앉아 있는 조건 챙겨줘야지.”
진급이라.
지금 내 관심사는 이직이지, 진급이 아니다.
“형, 형! 무조건 김 대리보다 과장 빨리 달아요. 알겠죠?”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너부터 잘해. 작년에 한 번 물먹었는데, 이번엔 대리 꼭 달아야지.”
“에이. 이번에도 대리 못 달면 나 그냥 회사 확 때려쳐버릴까요. 형, 우리도 그냥 회사 그만두고 같이 술집이나 차릴까?”
노포느낌··· 레트로 감성··· 인싸··· SNS 홍보···
어쭈?
김 주임의 입에서 제법 디테일한 사업계획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술이 깨고 나면 기억에서 잊혀질 몽상.
나와 최예리도 기꺼이 그 몽상에 합류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야! 이거, 되겠네. 형 우리 둘이, 아니 예리 씨까지 셋이서 한 번 해봅시다.”
“어머, 저도 끼워주시는 거예요?”
모처럼 일 얘기에서 벗어나 우리 셋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어느새 빈 소주병이 만만치 않게 쌓였다.
“이제 일어날까?”
“형, 2차 가야죠. 2차! 오늘 불금인데!”
“너 취했어.”
“아우, 선배님! 저 끄떡없습니다.”
김영하는 익살스럽게 나에게 경례를 올려붙였다.
“2차를 가던, 자리를 파하던 일단 일어나자 여긴 내가 계산할게.”
“어··· 형, 잠깐만! 내가 계산할 거예요.”
나는 빠르게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어?”
“예. 오늘도 알탕 정말 맛있던데요. 얼마 나왔어요?”
“응, 아까 저기 아가씨가 계산 다 했어.”
“예?”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걸어 나오고 있는 최예리를 바라보았다.
최예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등판을 땀으로 적셔가며 외근을 다니던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완연한 가을.
“잠깐만요. 나 요 앞에 편의점 가서 담배 좀 사 올게요. 둘 다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김영하 주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예리 씨. 내가 사려고 했는데 왜 계산했어.”
“아니에요. 제가 고집부려서 따라온 거고, 오늘 대리님께 감사하기도 했으니까요.”
“고집은 무슨, 같은 동료들끼리 한잔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나저나 예리 씨도 술 잘 마시는구나. 얼굴색 하나 안 변했네?”
“하하, 선배님들이랑 마시는 데 긴장해야죠.”
“예리 씨,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도 돼. 난 아무래도 영하랑 한잔 더 해야 할 것 같네.”
“한 대리님, 왜 자꾸 저 집에 보내시려고 하세요. 혹시 거리두기 하시는 거 아니죠? 저 그럼 정말 섭섭해요.”
제법 대범한 말이 나오는 거 보니, 최예리도 취기가 올라오긴 한 모양.
“··· 그런데 대리님은 만나시는 분은 없으세요?”
”응?“
생뚱맞은 질문에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나는 최예리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대리님은 외모나 성격이 너무 좋으신데 당연히 만나는 분이 있겠지 싶어서요.”
“지금은 혼자야. 야근한다고 누구 만날 시간도 없고. 퇴근하면 운동 갔다가 바로 집에 가서 자기 바쁘니까.”
“아, 운동 정말 열심히 하시는구나. 어쩐지 몸이···”
최예리는 웃으며 양손의 팔을 ㄴ자로 굽히며 이두근을 부풀리는 자세를 흉내 냈다.
“혹시라도 생각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제 친구 중에 제일 괜찮은 애들로 소개해드릴게요.”
”글쎄. 지금은 딱히 생각이 없네. 어쨌든 마음 써줘서 고마워.”
조금 전까지도 말갛던 최예리의 얼굴에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자, 자 2차 가야죠. 2차!”
담뱃불을 튀겨 끄며, 김영하 주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예리 씨도 같이 갈 거죠?”
“예. 주임님. 저도 같이 가도 되죠?”
“그럼요! 야, 오늘 내가 사랑하는 영수 형도 있고, 예리 씨까지 같이 있으니까 기분 좋네. 자 어서 갑시다.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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