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생각을 해야 해
“새끼··· 영수 너 이상한데? 뭔가 좀 변한 것 같다?”
식당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이승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오늘은 모처럼 승우가 쉬는 날 만나 둘이서 술잔을 나누는 중이었다.
“변하긴 뭐가 변해. 얼굴 안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이 서른둘에 사춘기라도 왔냐? 생각이 많아 보이니까 그렇지. 내가 먼저 말을 안 걸면 입을 꾹 다물고. 뭐, 이 형님한테 삐진 거라도 있냐?”
내가 그랬나?
하긴,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승우의 말이다.
그의 눈이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교 시절, ‘데미안’이라는 고전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소설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에게 퍽 인상 깊게 남아있는데, 선과 악의 경계에서 고뇌하던 화자(話者)가 데미안이라는 신비한 인물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상황을 그 소설에 감히 빗대보자면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였고, 복희 할머니는 내게 데미안이었다.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복희 할머니를 만나고 사고의 폭이 놀랍도록 확장되었다.
- 요즘 애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
- 뭐가요?
- 자기 머리로 생각을 하지 않잖아.
- 할머니 그런 소리 하면 젊은 사람들이 꼰대라고 그래요.
- 요놈아, 내가 나이가 여든하고도 셋이야. 이만큼 인생 살았으면 좀 권위적으로 굴어도 되지.
- 영앤리치라는 말 모르시죠? 요즘 젊은 친구들이 돈 버는 방법은 더 잘 알걸요? 세상에 정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 그게 문제라는 거야. 남이 떠 먹여주는 정보가 무슨 가치가 있겠어. 그건 쓰레기나 다름없어. 개호주야, 네가 생각을 해야 해. 그래야 살아. 네가 먼저 본질을 이해해야 정보들도 금덩이가 되는 거야.
문득 할머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씩 떠올랐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복희 할머니의 지혜는 세상의 어느 유명한 석학이라도 알려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지혜의 뿌리는 책이 아닌 몸으로 배운 경험에서 나온 것이니까.
나는 할머니 옆에서 스펀지가 되려고 노력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난 복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당신의 작은 말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근육을 찢어서 몸을 만들 듯, 내 정신도 알을 깨고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은연중에 정신의 변화가 겉모습으로 나타났고, 승우가 그걸 예리하게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이봐, 이봐. 또 딴생각하지.”
“아, 미안.”
“뭔 문제 있냐?”
“문제는 무슨. 요즘처럼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승우와 나는 잔을 짠하고 부딪쳤다.
꿀꺽━
이승우와 나의 입에서 동시에 캬━ 하며 추임새가 흘러나왔다.
인생이 재밌으니 술맛도 달다.
“요즘 장사는 어때?”
친구를 앞에 두고 잠깐 정신을 판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일부러 주제를 이승우 쪽으로 돌렸다.
사람 마음을 풀어주는 데는 말을 들어주는 것만큼 훌륭한 약이 없으니까.
하지만 어쩐 일일까, 한동안 장사 이야기만 나오면 그리도 신나하던 이승우였는데,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고 보니 승우의 가게 ‘만리향’을 찾아가 본 지도 꽤 되었다.
마냥 잘되고 있을 줄 알았더니 뭔가 또 속사정이 있는 모양.
“그게··· 처음 시작했을 때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거든? 이런 게 내 장사하는 재미구나 하면서. 그런데 진짜 그냥 오픈빨이었나 싶어.”
“왜? 매출이 많이 줄었어?”
이승우는 심란한 마음을 몸으로 표현이라도 하듯, 볼을 부풀려 푸━ 하고 숨을 내쉬었다.
“점심 장사는 괜찮아. 하지만 저녁 손님들이 많이 빠졌어. 뭐 이것저것 다 빼도 주방장 할 때보다는 낫긴 한데··· 야, 그래서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한번 들어봐. 이벤트 같은 걸 해볼까? 한시적으로 가격 인하하는 그런 식으로.”
“그렇게까지 힘들어?”
“그건 아닌데. 북적거리던 홀이 점점 썰렁해지니까 마음이 너무 안 좋아.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얼마나 싸게 받으려고?”
“음··· 우리가 지금 짬뽕 8천 원 받고 있잖아. 그래도 이벤트 하는 건데 2천 원 정도는 깎아야 하지 않을까?”
답답한 마음에 내놓은 궁여지책이겠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게 신통한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렇지 않나.
한번 인식이 된 가격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행사 기간에야 반짝 손님들이 몰릴 수는 있겠으나, 마진을 생각하면 영원히 그렇게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법.
다시 제 가격을 받게 되면 무의식중에 자기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손님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열에 아홉으로 그 손님은 다신 승우의 가게를 찾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
“인마. 너 지금 너무 조급해. 사람이 급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개업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출혈 경쟁을 하려고 해. 그래, 2천 원 깎는다고 치자. 그럼 너한테는 얼마나 떨어지는데.”
“글쎄··· 한 그릇에 천원 정도 아닐까.”
아이고, 그럼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다.
- 개호주야, 네가 생각을 해야 해.
문득, 복희 할머니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 친형제 같은 친구의 고민이다.
그저 듣고 넘길 일은 아니다.
무어라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자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다.
분명히 승우의 음식 솜씨는 동네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 녀석이 경업자들보다 정말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식대가 다른 중국집에 비해 유난히 비싼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거시적으로 큰 틀을 뒤집어엎기보단, 미처 생각지 못한 작은 디테일들을 손봐야 하지 않을까?
“요식업의 근본은 음식의 맛이잖아. 네가 음식에 쏟고 있는 노력을 믿어봐.”
“마음먹기가 그렇게 쉽게 되냐.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어. 내가 이런 쫄보인지 나도 처음 알았다.”
“불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못 있겠다면 사소하지만 작은 것들을 바꿔보는 건 어때?”
“작은 거? 뭘 말하는 거야.”
“음··· 예를 들어보자. 단무지 같은 것도 말이야. 보통 중국집 단무지는 두껍잖아. 그래서 여러 번 깨물어서 나눠 먹고. 그런데 너희 집은 그 집들과는 다르게 통단무지를 얇게 썰어 쓰는 거야. 한입에 먹을 수 있게. 그렇다고 너무 얇으면 씹는 맛이 줄어들 테니 네가 적당한 두께를 찾아야겠지. 의외로 이런 작은 디테일이 손님들에게 강한 기억을 남겨줄 수도 있지 않을까?”
오━!
이승우의 입술이 둥글게 모였다.
“야, 그거 진짜 괜찮은데?”
“이건 어때? 너 지금 손님들에게 그냥 생수 내놓지? 차 같은 걸 미리 우려서 차갑게 보관했다가 내놓는 건 어때? 중국 음식이 좀 기름지잖아.”
“잠깐만!”
이승우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더니 내가 말한 것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또, 뭐 없어?”
엄마의 젖에 목마른 갓난아이처럼 승우는 나에게 답을 갈구했다.
조금 전까지 침울해하던 녀석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뭣보다 홀 장사만 너무 고집하지 말고 배달 업체도 좀 써봐.”
“그 생각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야, 음식이라는 게 막 나와야 맛있는 거잖아.”
“장인정신은 존중하는데 말이야. 시대의 흐름도 따라가야지. 요즘 배달 없는 요식업은 앙꼬없는 찐빵아냐? 지금 네 고민이 저녁 타임에 장사가 잘 안된다는 거잖아. 괜히 시간 놀리지 말고 점심에는 네 뜻대로 홀 위주로 영업하고, 저녁때는 배달 장사해보는 게 어때? 새로운 파이프라인은 무조건 늘려야지.”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말들이 술술 나왔다.
사실 19살부터 중국집 기름 냄새를 맡아온 이승우에게 조언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인을 먼저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니 그럴듯한 아이디어들이 화수분처럼 튀어나왔다.
초월적인 고수에게 지도받은 효과가 톡톡히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이승우는 급하게 술잔에 술을 따르고 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고 승우는 급한 일이라도 갑자기 생긴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미안한데 나온 음식도 다 먹었으니 오늘은 1차만 하고 들어가자. 나 집에 가서 은주랑 이야기 좀 해봐야겠어. 그리고 계산은 내가 할 거니까 넌 가만히 있어라.”
외투를 찾는 이승우의 손은 바빴지만, 녀석의 얼굴은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었다는 듯 밝기만 했다.
*
“할머니, 저 왔어요.”
오늘도 복희 할머니를 만나러 명동에 왔다.
“뭐야. 집에 안 계신가?”
몇 번 더 목소리를 높여 할머니를 불러보았지만, 여전히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이곳을 처음 찾아온 날의 데자뷔 같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 출발하기 전에 이미 전화를 드렸던 참.
별일 없다고, 할미 심심하니까 빨리 오라고 말씀하셨던 당신이다.
쿵쿵━
문을 몇 번 두드려보았지만, 기척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때,
으··· 으···
아주 희미하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내가 서 있는 대문 안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대문에 귀를 바짝 대었다.
으···
잘못 듣지 않았다.
귀를 가까이 대자 다 죽어가는 신음이 훨씬 더 분명하게 들려왔다.
안에 무슨 일이 있구나!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내 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높은 담장에 두 손을 얹었다.
양팔에 힘을 주고 크게 도약하여 단숨에 담을 뛰어넘었다.
“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발목이 살짝 꺾였다.
찌르르한 통증이 낮은 곳부터 머리끝까지 순식간에 올라왔다.
하지만 그 통증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둘이서 나란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던 마당의 평상.
그 평상 앞 할머니가 몸을 둥글게 모으고 쓰러져 있었다.
“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향해 달음박질을 쳤다.
“으··· 으···”
“할머니, 정신 좀 차려보세요.”
복희 할머니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
“예, 선생님. 여기 노인 분이 쓰러지셨어요. 아니요, 집입니다. ··· 예, 어디가 안 좋으신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외상은 안보이고요. 여기 위치가···”
그때였다.
무언가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복희 할머니가 손을 뻗어 내 바짓가랑이 끝을 잡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잠시만요, 제가 다시 전화할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할머니를 향해 몸을 숙였다.
“할머니,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여기 주소가 어떻게 되죠. 119 구급차 부를게요.”
복희 할머니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괜찮아. 사람··· 부르지 마라. 그럴 것··· 없어.”
통증이 좀 가라앉았는지, 낱말만을 간신히 뱉던 할머니의 입에서 문장으로 완성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장 할머니를 업었다.
일단 편안한 자리로 옮겨야 할 것 같았다.
“할머니, 괜찮으신 거 맞아요?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병원 가봐요.”
“괜찮대도. 그나저나 우리 개호주··· 다리를 다쳤구나.”
고개를 돌려보니 내 등에 업힌 복희 할머니의 눈은 발목의 통증 탓에 땅바닥에 질질 끌리는 나의 왼쪽 다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까짓 것 아무렇지도 않아요. 할머니, 원래 어디 안 좋으셨어요?”
투둑투둑━
때마침 하늘에선 예고에도 없었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영복의 두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