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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을 상속받았다-145화 (139/200)

145. 인샬라

“참 야경 하나는 기가 막힌 도시에요. 안 그래요, 부장님?”

오준호 대리는 호텔 방의 창가 앞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입으로 뱉은 말의 내용과 달리 어쩐 일인지 그의 목소리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그 시기에 어려웠던 건 마찬가지지만, 도하에 처음 학교가 생긴 게 1950년대라고 하더라. 불과 반 백 년 만에 놀랍게도 이 도시가 세계적인 무역항이 된 거야. 그야말로 오일달러의 엄청난 힘이고 카타르라는 국가의 성장을 보여주는 단면이지.”

김영남 부장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기 룸메이트에게 말했다.

그의 손가락은 타닥타닥, 타자를 치느라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는 카타르의 수도 도하.

김영남 부장과 오준호 대리는 TF팀의 선발대로 중동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이 도시에 벌써 이 주째 장기 체류하고 있었다.

“하, 진짜 기분 꿀꿀하네요. 소주 생각나요.”

“아서라. 우리 일하러 온 거야. 여기서 일을 하려면 이 사람들 문화를 존중해줘야지. 회장님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좋은 숙소에서 편하게 쉬고 있잖아. 그깟 술이야 한국에 가서 마시면 그만이잖아. 조금만 더 참아.”

“알죠. 회장님이 많이 신경 써주신 거. 그래서 더 마음이 그래요. 여기 와서 괜히 밥만 축내고 있는 것 같아서.”

오 대리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김영남 부장은 술 한잔하고 싶다는 오 대리의 기분을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었다.

다 집어치우고 코가 삐뚤어지게 취하고 싶었던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카타르에 온 뒤로 잡을 수 없는 바람을 잡겠다고 쫓아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김 부장이었다.

선발대는 도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고왕 건설을 카타르에 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애쓴 만큼 성과가 따라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선발대는 카타르에 머문 이 주 동안 기분 좋게 한국에 전할 만한 소식을 단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이종현 사장의 인맥으로 연결된 카타르의 고위층들은 선발대를 손님으로 환대를 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인샬라.”

신의 뜻대로.

카타르의 관료와 왕족들은 오직 이 말뿐이었다.

선발대는 그 신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벌써 다음 주면 모든 일정이 마무리하고 귀국을 해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한영수 회장은 카타르 선발대를 위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이대로라면 그 성원에 찬물만 끼얹는 경우가 되고 말리라.

김영남 부장은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사모님께서 장기 출장 간다고 뭐라 하시진 않았어요?”

창가에서 발을 뗀 오 대리가 푹신한 침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물었다.

“··· 뭐라 하기는. 귀국할 때 빈손으로 오지 말고 면세점에서 빽 하나 사서 돌아오라고 하더라. 어제도 전화로 신신당부를 하더라고.”

“이야, 놀러 온 것도 아니고··· 사모님이 너무 하셨다. 우리는 지금 속이 타들어 가는데.”

“뭐, 마누라도 만년 차장 와이프로 있으면서 속앓이 좀 했지. 승진도 했겠다 작은 거라도 하나 사주려고.”

“이거, 그야말로 가장의 슬픔인데요. 선물은 승진하신 부장님이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김 부장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신의 파트너를 바라보았다.

“··· 그러니까 넌 결혼 하지 마라. 할 거면 최대한 늦게 하든지.”

오 대리가 김 부장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한참 고민하는 동안 김영남 부장은 자기 가족, 그리고 한영수 회장을 떠올렸다.

말은 그리 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말이다.

만약 한영수 회장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고왕 건설에는 인원 감축의 칼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겠지.’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자기 가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김 부장이었다.

특히나 이제 겨우 중학생, 초등학생에 불과한 자식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아내에게 뭐라도 사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지금이 감사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한영수 회장이 은인처럼 느껴지는 김 부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이번 카타르 출장에 열의를 보였다.

회장의 기대를 꼭 충족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만 흘러갈 뿐, 미진한 성과에 실망감만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부장님, 생각해 봤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사실 저 한국 들어가면 소개팅이···”

그때였다.

쿵━ 쿵━

천장 위 어딘가에서 진동과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또 이러네. 어제도 밤새 쿵쿵거리더니. 무슨 놈의 호텔이 이렇게 층간 소음이 심한지. 아주 건물이 다 울려요. 오성급이라면서 왜 이래.”

오 대리가 입이 한 뼘은 나와 투덜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간밤에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닌 김영남 부장도 쿵쿵 소리에 몇 번 잠에서 깼었다.

“우리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런 소리 안 났었지?”

“예. 위에서 뭐 파티라도 하는지···”

“요란스러운 손님이라도 입실을 했나 보다.”

“잠시만요. 이거 오늘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어요. 항의라도 해야지.”

호텔 전화기를 귀에 대고 얼마간 기다리던 오 대리는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는지 수화기를 다시 내려놓았다.

“뭐야, 프런트는 전화도 안 받고. 부장님, 잠시만 계셔보세요. 제가 내려갔다가 올게요. 방을 바꿔 달라고 하던지.”

황급히 옷을 걸치고 나가려는 오 대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대리, 같이 내려가자.”

“아니에요. 부장님은 그냥 계세요. 저 혼자 다녀올게요.”

“입이 심심하던 참이야. 내려가서 주전부리라도 좀 사 오든지 하자고.”

***

프런트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준호 대리보다 한발 앞서 거세게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발의 백인 커플이었다.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요. 가방이고 옷이고 다 젖었습니다. 어떻게 보상하실 겁니까.”

단단히 화가 난듯한 그들의 말의 옮겨보자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물이 샌다··· 쿵쿵 소리··· 건물의 진동···’

뒤에서 백인 커플의 컴플레인을 듣고 있던 김영남 부장은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의 퍼즐들이 맞춰지며 어떤 징조가 떠오르자 그의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1층 홀을 크게 둘러보았다.

“··· 오 대리, 잠깐만”

김영남 부장은 어떻게 항의할지 미리 영어로 중얼중얼 연습을 하고 있는 오 대리의 옷 소매를 잡아당겼다.

“예? 부장님. 왜 그러세요?”

김 부장은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중앙 홀을 가리켰다.

“이 건물, 무량판 구조로 지어져 있어.”

무량판 구조란 쉽게 말해 들보를 사용하지 않고, 기둥으로 직접 슬래브, 즉 바닥 판을 지지하는 공법.

오 대리는 김 부장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네요. 뭐,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잖아요. 보가 빠지는 만큼 공간이 생기니 심미성도 살리고, 공기도 상대적으로 짧으니까.”

“이 호텔, 몇 층짜리였지?”

“28층이요.”

“무량판 구조는 저층 건물에나 적합한 공법이야. 수평하중에 취약한 편이니까.”

“··· 예? 어, 어, 부장님!”

김 부장은 성큼성큼 프런트로 다가가더니 백인 커플을 밀어내었다.

평소의 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What the···”

김영남 부장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백인 남자는 이건 또 뭐냐는 듯 뒷걸음질을 쳤고, 프런트 직원들은 피곤한 눈을 들어 새롭게 등장한 동양인 남성을 바라보았다.

“What is on the roof of this building? (이 건물 옥상에 뭐가 있습니까?)”

“Sir. What did you just say? (선생님, 지금 뭐라고···)”

“roof! roof!”

“There is··· a cooling tower on the rooftop. (옥상에는 냉각탑이 있습니다만···)”

“뭐요? 냉각탑? 이런··· How heavy is the cooling tower? (냉각탑 무게가 얼마나 되는데요?)”

“I don't know that much. Sir.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김 부장은 몸을 돌려 백인 커플을 바라보았다.

김영남 부장의 일그러진 얼굴에 커플은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Excuse me. What floor are you staying on? (혹시 몇 층에 숙박하고 계십니까?)”

“26th floor.”

백인 남자는 경계의 눈초리로 김 부장을 바라보면서도 대답만은 선선히 해주었다.

“부장님. 왜 그러세요.”

김 부장의 돌발 행동을 뒤에서 벙쪄서 바라보던 오 대리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오 대리. 이 호텔, 지금 위험한 걸지도 몰라. 쿵쿵거리는 소리에, 천장에서 물이 새고. 전형적인 붕괴 전조증상이잖아.”

“··· 설마요. 이 호텔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곳이라고요.”

“신축이니까 여태껏 버틴 거야. 냉각탑, 옥상에 냉각탑이 있어! 냉각수까지 채웠으면 무게가 얼마일지 몰라. 이 건물 무량판 구조야. 위에서부터 무너지면 누진 파괴라고.”

오 대리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We have to go up to the rooftop. Right now! (옥상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요!)”

오준호 대리는 프런트 직원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 * *

“All right, let's go in. (자, 들어갑시다.)”

호텔 관리 직원은 옥상 출입문을 열며, 자신과 함께 이곳까지 올라온 두 동양인을 향해 불퉁스럽게 말했다.

이 한국인들은 당장 보수 업체를 불러서 옥상을 확인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고, 지금 시간에는 사람을 부를 수 없다고 하자 본인들이 직접 확인하겠다고 고집을 계속 부렸다.

자기들은 한국에서 온 건설사 직원이라며.

웅━ 웅━

옥상의 냉각탑은 중동의 밤을 식히기 위해 온몸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Normally, the cooling tower makes this sound(원래 냉각탑은 이렇게 소리를 내요.)”

뭘 그렇게 예민을 부리냐는 관리원의 말을 들은 척도 않은 채, 두 남자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바닥만 살필 뿐이었다.

관리원은 못 말리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부장님! 김 부장님!”

그렇게 얼마나 바닥을 훑었을까.

오 대리가 큰 소리로 김 부장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이거 보세요.”

오 대리는 바닥 한 부분을 휴대전화 불빛으로 밝혔다.

“펀칭···”

입술을 깨문 김 부장의 입에서 신음처럼 짧은 말이 새어 나왔다.

“맞죠? 이거 펀칭이죠, 부장님.”

펀칭.

바닥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처지면서 기둥이 바닥을 뚫고 나오는 현상.

그저 하나의 헤프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 부장이 우려를 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 호텔은 이미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호텔 건물이 당장 와르르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부장님,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빨리 나가야 해요.”

오 대리는 멍하니 서 있는 김 부장의 옷고름을 잡아끌었다.

“준호야.”

김영남 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프런트로 가서 사람들 다 대피해야 한다고 전해. 나는 우리 일행들 모두 챙겨서 내려갈 테니까.”

김 부장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찾기라도 하겠다는 듯.

“··· 인샬라”

한숨처럼 나지막하게 그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망치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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