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우려
2002년.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월드컵의 뜨거웠던 열기를.
아직 그 열광의 도가니가 식지 않은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오른쪽 다리에 통깁스를 한 차 신부는 병실에 누워 자애 보육원의 코흘리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차 신부는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일을 하다 발을 삐끗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사고였다.
오른쪽 정강이뼈를 내주고 갈비에 금이 가는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일 지경이었다.
교단에서는 막일해서 얼마나 더 보태겠다고 성직자가 몸을 상하게 하냐며 질책 아닌 질책을 했다.
하지만 어디 먹이고, 재우는 것만이 육아의 전부이던가.
남들에게 물려받은 옷보다는 아이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싶은 것이 차 신부의 마음이었다.
따로 고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도 없는 신분이니, 아쉬운 대로 이렇게 일당 치기라도 해왔던 것인데 그만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사실 40대의 차 신부가 이 보육원에 오기까지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다.
여느 사제들처럼 본당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차 신부는 남몰래 종교적인 회의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도들 앞에서 미사를 드릴 때 주님의 섭리에 대해 열심히 강론하고는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믿음은 바람 앞에 힘없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역시도 일종의 시험이며, 자신이 금방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그였다.
하지만 차 신부의 정신적 방황은 시간이 흘러도 쉬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차 신부는 더 열심히 주님을 찾았지만, 어디서도 그분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믿음이 없는 속세의 사람들과 달리, 이것은 차 신부에게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인생의 목표를 박탈당하고 여태껏 살아온 자기 삶이 통째로 부정당할 수도 있는.
‘도대체 당신께서는 어디에 계신 겁니까. 아니, 정말 계시긴 한 겁니까.’
자신이 평생을 믿고 의지하기로 약속한 그분을 향해 역심을 내뱉은 날 차 신부는 교단에 요청했다.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로서 주님을 봉헌하겠다고.
자신이 의심에 시달리는 것은 덜 간절하기 때문이고, 그렇게라도 길을 찾고 싶었던 차 신부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교단은 차 신부가 속세와 인연을 끊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차 신부를 잘 아는 교구장 한 명은 그에게 자애 보육원이라는 곳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잠시라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어깨를 두들겼다.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몇 달, 길어야 일이 년이다 싶었는데, 머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긴 했지만, 제각기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막만 한 것들이 크는 것을 지켜보다 보니 손안에서 물이 빠져나가듯 세월이 숭숭 지나갔다.
주님과의 화해는 아직 요원했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미소 속에서 충만함만은 찾을 수 있었던 차 신부는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영수야, 승우야. 이리 와 보거라.”
차 신부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여기서 그나마 머리가 좀 큰 두 녀석을 가까이 불렀다.
듣자 하니, 차 신부의 면회를 오겠다고 이 녀석들이 동생들을 데리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기까지 하면 병원에 온 모양이었다.
영수와 승우가 다가오자 몸을 잠시 일으키려던 차 신부는 갈비뼈에서 올라오는 찌르르한 통증에 한쪽 눈을 찡그렸다.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 니콜라오 신부님에게 말씀은 드리고 온 거야?”
오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차 신부는 이곳까지 병문안을 온 아이들에게 고마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원래 영수랑 둘이 오려고 했는데요. 저 애들이 자기들도 데려가달라고 계속 떼를 써서···”
어린 승우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말하는 투를 보니, 지금 차 신부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신부의 허락은 받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서울이 얼마나 복잡한 곳인데!”
차 신부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다 또다시 찾아온 통증에 뒷말을 잇지 못했다.
“신부님. 72-1번 버스랑 46번 버스 타고 왔어요. 집에 돌아갈 때도 같은 거 타고 돌아가면 돼요.”
한영수가 똥그란 눈을 뜨고 또박또박 말했다.
차 신부는 손을 뻗어 아직 덜 자란 한영수의 손가락을 잡았다.
“영수야. 누구 하나라도 없어지면 어쩌려고 그랬니.”
차 신부의 말에 한영수가 둥근 머리를 툭 떨궜다.
“··· 죄송해요. 신부님.”
“아니야. 여기까지 온 그 마음은 신부님도 잘 알고 있어. 신부님이 지금 너희를 혼을 내는 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
한영수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붉어진 눈을 들어 한영수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저희 때문에 신부님이 다치신 거잖아요.”
덩달아 영수 옆에 있던 승우까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전 어른이 되면 돈 많이 벌 거에요. 그래서 신부님 힘든 일 안 하게 해드릴 거예요.”
눈물은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대장 격인 두 녀석이 울음을 터트리자, 덩달아 작은놈들까지 엉엉 울어댔다.
이러니 당황스러운 것은 차 신부였다.
“욘석들이···”
그때였다.
순간 차 신부의 뇌리에 번개가 내려친 것은.
자신을 위해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찾아 헤매던 그토록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아··· 이것이었구나.’
계시처럼 자신을 찾아온 깨달음에 차 신부의 온몸에 난 털이 모두 바짝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을 미워했는데, 이미 절 위해 계획을 다 세워놓고 계셨군요. 여기가 제가 쓰여질 곳이었군요···’
“얘들아, 이리 온. 울지 말고 어서.”
차 신부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았다.
“얘들아. 신부님이 큰 소리를 내서 미안하구나. 신부님 화난 거 아니야. 아니, 사실은 지금 감사하고 있단다. 신부님이 하느님께 말씀드렸어. 지금 내가 아픈 대신 너희들은 아프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런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니.”
* * *
“은주야. 무슨 일 있어?”
병상에 누워있는 누군가의 옆을 지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은주에게 몇 번이고 간병인을 붙여주겠다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나의 권유를 거절했다.
“찾아봤는데, 의식이 없는 사람도 옆에서 말하는 거 다 듣는데요. 그래서 내가 옆에서 우리 오빠한테 계속 말 걸어줘야 해요. 그것마저 없으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 말에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었지만, 도저히 그녀의 굳은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만 갈아입을 옷이라도 챙길 수 있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그녀를 대신해 내가 승우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도 그 약속의 날.
그런데 왠지 나에게 인사를 하는 은주의 표정이 어색했다.
“영수 오빠. 손님이 오셨어요. 오빠한테 연락하려고 했는데, 그냥 두라고 하셔서···”
“손님? 누구?”
“저, 신부님이···”
아차, 싶었다.
물론 언젠가는 말씀을 드려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신부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짓을 고할 수밖에 없었는데, 차마 당신의 눈을 보고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숙제처럼 미뤄두기만 했었는데, 결국 신부님이 먼저 알고 찾아오신 것이다.
“알겠어. 내가 신부님과 이야기해볼게. 집에 가서 챙길 것 챙기고 눈이라도 붙이고 와.”
은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승우가 입원한 1인실은, 보호자 대기실과 환자의 침대가 있는 곳이 별실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 구분을 나누는 미닫이문의 유리창을 슬쩍 들여다보자, 승우의 팔을 주무르고 있는 신부님의 손이 보였다.
“신부님.”
문을 밀고 들어가 나는 차 신부님을 작게 불렀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신부님.
오늘따라 당신의 얼굴에 주름이 더 깊게 패어 있었다.
환자를 생각해 어둡게 켜 놓은 조명은 그 주름의 음영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신부님은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나셨다.
발걸음을 내 앞까지 옮기신 신부님은 내 옷 소매를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가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마주 앉은 상태로 한동안 신부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엄한 꾸지람을 각오하고 있었기에 나 역시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 나에게 말을 해주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승우가 저렇게 된 마당에 이 늙은이의 섭섭한 마음을 떠들지는 않겠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죄송해요. 신부님. 놀라시거나 걱정하실까 봐···”
“내가 하나 묻자. 네 이야기로 온 세상이 시끄럽더구나.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다. 영수, 네 성격에 이렇게 소란을 피울 리가 없으니까. 설마··· 승우에게 사고가 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
신부님은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헛된 말로 당신을 속일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눈을 질끈 감는 신부님.
“··· 승우는 아무 죄도 없는데, 제 탓이에요. 승우가 아니라 제가 누워있어야 했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신부님께서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어른이 된 후에 당신이 이렇게 말씀하시긴 처음인 듯싶었다.
하지만 목소리와 달리 신부님의 얼굴은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그럼 너는 무슨 죄라도 지었다는 소리냐···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영수야, 지금 네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 있겠구나. 특히나 너 자신에게 말이다.”
순간 몸 저 아래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부님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미웠다.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든 쥐어보려는 모든 것을 다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미웠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세상 누구 못지않게 선량한 내 친구를 고통받게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차갑고 단단해진 마음이 신부님의 말 한마디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신부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지금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제가 착각했어요. 그냥 조용히 살면 나를 내버려 둘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와르르 무너진 마음을 도저히 걷잡을 수 없었다.
신부님은 내 말을 한참 동안 가만히 들어주셨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옆으로 자리를 옮겨 내 손을 잡았다.
“신부님. 세상은 왜 이렇게 잔인한가요. 저 녀석, 이제야 겨우 뿌리를 내릴 결심을 했는데···”
“차마 이 상황에서 모든 일에는 주님의 계획이 있다고 말 못 하겠구나. 그래, 나도 참 그분이 원망스럽다.”
신부님은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내 등을 토닥이셨다.
“영수야. 내가 평생 혼자 간직한 비밀 하나 이야기해 주마.”
나는 고개를 들어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믿음을 포기할 뻔했던 시절이 있었다. 주님 아래 조화로워야 할 세상에 왜 이리 부조리한 일들이 가득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개인적으로 굉장한 고난의 시기였다. 그런데 너, 혹시 기억하고 있니? 너와 승우가 내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 병문안 왔던 것 말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7살, 8살 동생들을 양손으로 잡고 버스를 잘못 타기라도 할까 봐 눈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있었던 날.
“너에게 지금 내 말을 믿으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날 나는 나를 위해 울어주는 너희들을 보면서 하느님의 존재하심을 느꼈다. 그때, 마음속으로 딱 하나 기도를 드렸다. 평생 당신이 맡긴 이 일에 오롯이 나를 바칠 터이니, 그 대신 딱 하나만 내 바람을 들어주시라고.”
”나는 아파도 좋으니, 이 아이들은 앞으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래서 승우는 반드시 일어날 거다.”
위로나 희망이 담긴 말이 아니었다.
신부님은 강한 확신에 가득 차 계셨다.
그 믿음이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신부님과 같은 것을 바라고 있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이만 일어나보마.”
신부님은 작은 몸을 일으키셨다.
“아니야. 괜찮다. 괜찮아.”
보육원까지 모셔드리겠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부님은 네 속을 다 안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셨다.
그리곤, 신부님은 입술을 달싹거리시며 잠시 무언가 말하기를 주저하셨다.
“영수야. 네 적이 누구인지 나는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말을 기억하렴. 괴물과 싸우려는 자는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한참의 망설임 끝에 나온 신부님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