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화>
* * *
2010년의 어느 날.
-지구인을 배틀넷에 초대합니다.
우주에서 날아온 한 초대장은 인류의 생활상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어제 경기 봤어?”
“봤지. 멕시코는 그래도 쉽게 이기더라.”
“검왕님이 다 쓸어버렸잖아. 걔넨 탱커가 약해서 우리한테 안 돼.”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는 배틀넷 리그.
서바이벌Survival.
인베이드Invade.
디펜스Defense.
던전Dungeon.
4종류로 이루어진 전투 게임.
그것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비롯한 모든 프로 스포츠를 사라지게 했다.
브라질 골목에서 축구공을 달고 다니던 아이들은 검을 친구 삼기 시작했고.
미국 야구부의 유망주들은 야구공 대신 단검을 던져 대기 바빴다.
지구가 배틀넷에 초대된 지 겨우 1년도 되지 않아서 생긴 기묘한 인식 변화였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2020년.
[올해를 마지막으로 배틀넷의 튜토리얼 시즌이 종료됩니다.]
[2021년부터 인류는 스페이스 리그 - 브론즈 리그에 소속됩니다.]
인류가 요람 속에 머무를 수 있던 시간이, 어느덧 끝이 났다.
* * *
드넓고 화려한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성지한은 눈을 떴다.
‘여기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한다.
전형적인 숙취 증상.
이것은 성지한이 요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느낌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정말, 리그 최초 진입 시기로 돌아왔어.”
재도전의 기회.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를 볼 때만 해도 정말 실현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는데.
진짜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을 차도 될 만큼 커다란 거실.
그에게는 매우 눈에 익은 장소였다.
누나의 집.
그리고 윤세진의 집.
이때까지만 해도, 성지한은 이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그리고…….’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수많은 양주병까지.
‘진짜 맞아. 그때가.’
그때.
그것은 인생이 격변한 시기이자, 그가 2레벨이 되어 브론즈 리그에 최초로 참가했던 때였다.
-그러면 다시 한번, 검왕 윤세진의…… 기자 회견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한편 TV에서는 침울한 음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성지한이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자, 벽 전체를 가득 채운 TV에서 한 남자의 기자 회견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성지한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를 악물었다.
저 기자 회견 영상.
평생을 잊지 못했던 장면이다.
2020년 7월 31일.
날짜마저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저 윤세진 본인은.
검왕 윤세진.
성지한의 매형이자 한국이 낳은 최강의 플레이어.
세계 TOP 11 플레이어 중 3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워리어 클래스 중에서는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국의 자랑이자 국보라고 불렸던 그는.
화면 속에서, 떳떳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루머에 대해, 오늘 진실을 밝히러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감 있게 말을 이어 나갔다.
-먼저 일본의 신 자위대로 이적한다는 소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부분은, 사실입니다.
‘하필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저 새끼 면상을 보다니.’
윤세진의 기자 회견.
한국을 뒤흔들고, 몰락하게 만들었던 시발점.
그가 일본으로 이적한 것이 연쇄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의 리그 순위는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멸망했지.’
성지한은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화면 속 기자들은 허탈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윤세진 씨. 윤세진 씨!
-신 자위대로 이적한다니요! 그게 정말로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신 자위대는 일본 정부 직속 길드입니다! 그곳은 리그 국가 대표를 선발하는 곳이기에, 일본 국적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 그럼 혹시……?
-그 역시 알고 있습니다. 신 자위대는 일본인만 받지요.
찰칵. 찰칵. 찰칵.
침묵에 휩싸인 기자 회견장.
플래시 소리만 계속 울려 퍼졌다.
-그래서 저 윤세진은…… 류헤이로 이름을 개명하고, 일본인으로 귀화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는 이토 류헤이로 불러 주십시오.
술렁. 술렁.
기자들이 동요하는 소리가 TV 화면 너머로까지 들려왔다.
-뭐, 뭣?! 윤세진 씨!
-이게 무슨…… 검왕님!
-일본으로 귀화라니요!
-국가대표도 은퇴하신다는 말입니까!
-예. 저 이토 류헤이. 이제부터 일본 국가대표로 월드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게 될 겁니다. 그때 보도록 하지요. 그럼.
일본인이 되겠다는 윤세진의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마저 감돌고 있었다.
수많은 기자들이 움찔할 정도로 차가운 표정.
여태껏 한국의 영웅이라 불리며, 부드러운 이미지로 인기를 구가하던 평소의 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잠,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윤세진 씨! 대한민국 정부와 협의는 된 내용입니까!
-이름마저 바꾸다니…….
윤세진의 주위로 기자들이 몰려들려 했지만.
이내 그에게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어느새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뭐…… 뭐야?
-어디 갔어?!
그리고 전환되는 화면.
침통한 분위기의 토론장을 비추는 화면 아래에는 큼지막한 헤드라인이 쓰여 있었다.
[검왕의 이탈. 차후 대한민국의 리그 순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으음, 다시 봐도 참…… 당혹스러운 장면이군요. 정부 측에서는 사전에 논의되지 않은 이야기였다고 했었지요?
-예. 정부에서는 윤세진 씨를 찾아 차분히 설득해 보겠다는 입장입니다만, 현재 그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검왕이 하필 일본에 가다니…….
검왕이 떠난 것에 대한 한탄도 잠시.
배틀넷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이 향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건 검왕이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는 것이겠습니다만…….
-만약에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저희의 리그 순위는 안정적일 것이라 전망합니다.
-동북아 리그가 워낙 치열해서, 당장의 순위는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전체 국가의 순위를 놓고 보면 상위권입니다.
-맞아요. ‘던전’은 하위 10퍼센트의 국가에서 나오는 현상이니까요.
“흥.”
성지한은 ‘하위 10퍼센트’라는 말을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여전히 행복 회로를 돌리는군.’
배틀넷의 리그 순위가 중요한 이유.
그것은 순위가 곧 국가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던전이 생겨나면 끝이건만. 북한을 보고도 모르나.’
정확히는 배틀넷 게임 속에서만 보던 던전이 현실로 일어나는 현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던전 발생 현상을 직격탄으로 맞은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다.
정권에 치명적일 것이라 우려한 북한은 플레이어의 육성을 금지하고 배틀넷 참가를 전면적으로 보이콧했다.
그 결과, 결국 리그 순위에서 압도적인 최하위가 된 북한은 국토 전역에서 나타난 던전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 20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검왕이 빠진다고 해도 30위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일본이야말로 검왕을 설득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대가를 치렀겠죠. 이는 결국 그들에게 손해로 다가갈 겁니다.
괜찮다. 살아남을 수 있다.
오히려 일본이 손해를 본 거다.
픽-
패널들의 정신 승리를 듣자니, 성지한은 짜증이 나서 TV를 꺼 버렸다.
‘일본이 손해를 봐? 어처구니가 없군.’
성지한은 미래의 일을 떠올렸다.
‘일본은 그의 합류로 최후의 10국 중 하나에 당당히 남을 수 있었지.’
검왕 윤세진.
개인적인 도덕성을 차치하고 능력만을 본다면 그의 재능은 독보적이다.
물론 일본이 치른 대가는 분명 만만치 않았다.
당시에는 뭐 하러 플레이어 하나를 영입하려고 그런 부담을 짊어지냐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3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 평가는 완전히 뒤집어졌지.’
지구의 ‘튜토리얼’이 끝나고 세계가 지옥에 빠지자, 검왕의 영입은 신의 한수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지한은 소파에서 일어나 벽면에 걸린 윤세진의 가족사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누나와 어린 조카.
그리고 윤세진이 해맑게 웃는 가족사진.
쾅!
그의 주먹에, 윤세진의 얼굴이 그대로 짓뭉개졌다.
‘이번엔 그렇게 안 될 거다.’
이 게임의 끝을 본 그가 돌아왔으니까.
* * *
지구가 배틀넷에 초대된 이후.
18세 이상의 인류는 모두 배틀넷에서 게임을 할 권리를 부여받은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플, 플레이어라니……!
-상태창이 보여!
마치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 보아 오던 상태창이 뜨자, 지구에서는 한동안 대혼란이 일어났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 0번 채널…… 이런 것도 있었나?
-이런 프로그램은 설치한 적이 없는데?
TV의 0번 채널에서는 배틀넷 방송이 나왔으며.
인터넷 연결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컴퓨터와 핸드폰에는 배틀넷 관련 프로그램이 인스톨되었다.
-우주 문명에게 초대받았다더니…….
-실화냐?
하루아침에 벌어진 이상한 일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괴현상에 호기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기 마련.
-배틀넷이라…… 어디 해 볼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배틀넷 시스템에 접근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갑작스레 나타난 배틀넷에 대해 철저하게 주의하는 것이 일반적었지만…….
2010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배틀넷에 참가하게 된 사람은 이 게임에 의문을 품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었지.’
성지한은 미래에서 밝혀진 사실을 잠시 떠올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상태창.”
이름 : 성지한
레벨 : 2
소속 : 브론즈 리그 - 강남 1 에어리어
힘 : 5
민첩 : 5
체력 : 5
마력 : 5
클래스 : 무직
기프트 : 방랑자의 눈 (등급 F)
-다른 플레이어를 잘 파악합니다.
칭호 : 없음
업적 포인트 : 100,000
성지한은 작게 탄식했다.
‘처참하군.’
능력치는 최하 수치인 5에, 클래스는 무직.
비록 소수의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재능인 기프트의 존재가 있다지만.
‘이땐 저 기프트가 쓸모없는 줄 알고, 도박에 빠져 살았지.’
‘상대를 파악한다’는 애매모호한 능력.
다만 그것은 화면 너머로도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에, 성지한은 배틀넷에 존재하는 도박 시스템을 톡톡히 이용했다.
‘하지만 이 기프트의 진가는 그게 아니었다.’
그저 도박에 쓸모 있는 기프트인 줄 알고 있던 성지한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인생이 급변하게 되었다.
F급의 기프트가, 완전히 환골탈태하게 되니까.
‘다만 지금은 기프트 각성 조건을 갖추기에는 여건이 되지 않아.’
일단 이 기프트는 내버려 두고.
성지한은 다른 것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수치가 있었다.
상태창의 맨 밑, 업적 포인트 10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