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7화>
* * *
[서포터 클래스를 선택했습니다.]
[*주의* 사용자와 궁합이 맞지 않는 직업입니다. 그래도 정말 서포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시스템 메시지가 뜨며, 선택지에 있는 워리어를 빛냈다.
왜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하냐고, 시스템이 친히 충고를 해 주는 상황.
하지만 성지한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 워리어 클래스는 급하지 않아.’
당장 워리어를 선택한다면, 직업 보너스를 통해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해지겠지만.
브론즈 리그를 헤쳐 나가는 데 있어서 굳이 그 힘을 빌릴 필요는 없었다.
지금 지닌 무력만으로도 충분히 손쉬웠다.
‘그것보다 서포터만이 지닌 스탯을 미리 받아 놓아야 해.’
서포터로 전직하면 플레이어에게는 새로운 힘, 신성력神聖力이 생긴다.
‘신성력이 가장 성장이 더디다고 했지.’
배틀넷에서 스탯을 올리기 위해서는, 잔여 포인트를 찍거나 스탯에 걸맞은 단련을 해서 올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힘이나 민첩은 몸을 단련하면 곧잘 오르고. 마력도 마법을 많이 수련하다 보면 오르곤 했지만…….’
신성력은 수련을 통해 올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니크 스탯을 얻기 위해선 신성력이 일정 수치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아까운 잔여 포인트를 소모해서 신성력을 올린다면 이도 저도 안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지한에게는 포인트를 쓰지 않고도 신성력 수치를 올릴 방법이 있었다.
‘성녀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신성력은 당연히 잔여 포인트를 써야 오르는 거라고 생각했지.’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의 랭킹 3위, ‘성녀’.
그녀는 성지한이 한국이 멸망한 후, 망명자의 신분으로 길드에 가입한 이후부터 그에게 참 신경을 많이 써 줬다.
‘귀찮을 정도였어.’
랭킹 3위씩이나 되는 여자가 할 일이 그렇게 없는지.
성지한이 수련하는 길드 수련실에 뻔질나게 오가면서 잡담을 늘어놓았다.
-지한~ 길드 빌딩 앞에 스테이크 하우스가 새로 생겼대요. 길드 사람들이 가 봤는데 그렇게 맛있다네요. 아. 나도 먹고 싶다.
-지한~ 수련만 한다고 능력치가 올라요? 사람이 쉴 땐 쉬어야죠.
-지한~ 이제 불쌍한 강철 인형 그만 부수고, 저랑 놀아요.
성녀는 참 시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쉬는 시간에 그녀와 나누는 잡담 속에선 고급 정보가 여럿 들어 있었다.
세계 각지 랭커들의 동향. 그들의 추정 능력치. 스킬 등등…….
그리고 이 중에서는, 랭커들의 과거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그 랭커에는 성녀 자신도 포함되었다.
-지한~ 제가 어떻게 성녀가 되었는지 알아요?
-글세.
-신성력이 높아서 그렇게 된 거죠!
-타고나 봤자 어차피 최대치가 10 아닌가?
-후후…… 옛날 지구 튜토리얼 시기 땐 말이죠. 신성력을 올릴 수 있는, 어메이징한 방법이 있었답니다.
그렇게 성녀가 알려 준 방법은, 2020년이 지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것.
지금이 7월 말인 걸 생각하면, 하루빨리 이 방법을 써먹어야 했다.
[서포터로 전직하셨습니다.]
[서포터 전용 능력치, ‘신성력’이 추가됩니다.]
[F급 스킬 ‘힐’이 추가됩니다.]
[F급 스킬 ‘스트렝스’가 추가됩니다.]
[F급 스킬 ‘배리어’가 추가됩니다.]
시스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포터로 전직한 성지한.
그는 새로 얻은 스킬들을 눌러 보았다.
[힐]
스킬 등급 : F
필요 신성력 : 8
상처를 치유합니다.
필요 신성력 8.
이것은 적어도 신성력 스탯이 8 이상이 되어야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성지한의 신성력은 처참했다.
신성력 - 5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 몸뚱이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군.
스트렝스나 배리어도 최소한 8의 신성력은 가지고 있어야 사용 가능한 버프 스킬.
성지한은 피식 웃고는 스킬 창을 닫았다.
‘안 써.’ 무력에 전부 투자해도 모자랄 판에, 신성력에 잔여 포인트를 쓸 수는 없지.
‘대신 신성력은 성녀가 말한 방법으로 올리면 돼.’
하지만 그 방법을 써먹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배틀넷에서 사용되는 통화, GP(게임 포인트).
그리고 그건.
GP : 0
튜토리얼을 막 마친 성지한에겐 있을 리가 없는 포인트였다.
‘GP부터 벌어야겠군. 이제부터는 GP도 정산되니 다음 게임까지 탐사나 해야겠어.’
GP는 현질이나 배틀넷 마켓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었다.
성지한은 윤세진의 집을 둘러보았다.
윤세진은 쓸 만한 물건을 죄다 처분하고 일본으로 떠나 버렸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마켓에 올릴 만한 물건이 있을지도 몰랐다.
‘보물찾기, 가자.’
성지한은 본격적으로 펜트하우스 탐사를 시작했다.
* * *
[브론즈 리그 - 강남 에어리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미션은 디펜스입니다.]
으워어어어어어.
게임에 소환되자마자 사방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임가영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여기가 그 악명 높은 좀비 맵…….’
브론즈 전용 디펜스 맵, 10개의 탑.
이 미션은 10개의 탑 위에 소환된 4명의 플레이어가, 탑 위로 기어오르는 좀비들을 막는 심플한 미션이었다.
[크리스털을 보호하고, 좀비들에게서 생존하세요.]
[5개의 탑이 남을 때까지, 전투는 계속됩니다.]
임가영은 소환된 장소를 둘러보았다.
반경 10여 미터 정도 되는, 탑의 좁은 옥상 공간.
왼쪽과 오른쪽에는 성벽이 길게 늘어져 있었으며.
후방은 성 안쪽이라, 좀비가 쳐들어올 틈새가 없었다.
‘전방만 신경 쓰면 돼.’
뚜벅. 뚜벅.
임가영은 탑의 전방으로 걸어가, 아래를 살펴보았다.
셀 수도 없이 가득 깔린 좀비가 탑 위를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더러워.’
이래서 이 맵이 싫었다.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저 더러운 좀비들이랑 드잡이질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후우.”
파티가 잘 걸려야 하는데.
그녀는 한숨을 쉬며, 나머지 사람들이 소환되길 기다렸다.
번쩍-!
“……아. 이 맵이네.”
곧 궁수가 한 명 소환되더니, 볼멘소리를 내뱉었으며.
“오. 디펜스?”
히죽.
반짝반짝 빛나는, 비싸 보이는 지팡이를 들고 소환된 마법사가 두 사람을 둘러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전사. 궁수. 마법사.
3개의 직업이 소환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서포터뿐.
‘지금까지 소환된 사람들은 수준이 괜찮은 것 같은데.’
임가영은 묵묵히 궁수와 마법사를 둘러보았다.
다들 장비가 빵빵했다.
궁수는 대기업 LK의 인장이 찍혀 있는 최소 B급 아이템을 둘렀으며.
마법사는 딱히 길드 인장이 찍혀 있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10대 길드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더 화려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 정도 장비를 두르고 있으면, 기본은 하겠지.
그렇지만, 임가영은 아직 소환되지 않은 1인이 제일 신경 쓰였다.
‘이 맵, 서포터가 가장 중요해.’
좀비 디펜스는 아무래도 게임이 장기전으로 흘러가기에,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서포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서포터만 정상적인 사람이 온다면, 충분히 5개의 탑 안에는 들 것 같은데.
임가영이 그리 생각하면서 아직 안 온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번쩍.
탑 위에서 빛이 내려오며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서포터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어……?!”
검은 추리닝 상하의 세트를 입은 채, 기다란 철봉을 들고 나타난 한 남자.
그는 그녀를 제치고 튜토리얼에서 1등을 한, 성지한이었다.
* * *
“…….”
LK 출신 궁수는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브론즈 리그라고 해도, 여기는 강남 에어리어.
서포터가 저딴 장비를 들고 오다니!
‘싸늘하다.’
아무래도 이번 판, 조짐이 좋지 않다.
서포터 장비만 봐도 똥 밟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네가 서포터냐?”
그리고.
성지한을 보자마자 얼굴을 잔뜩 찌푸린 마법사는 다짜고짜 반말을 쏟아 냈다.
“하…… 입고 다니는 꼴 봐. 거지야?”
“…….”
“이러니까 튜토리얼 시즌에 게임하면 안 되는데. 뭐 이런 병신 같은 놈이 왔냐.”
마법사가 자기 머리를 향해,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너 미쳤냐는 뜻.
그걸 본 성지한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뭐야. 그 눈깔?”
마법사는 오히려 그 시선에 벌컥 화를 냈다.
“하. 기본도 안 된 놈이 꼴아보네? 어이가 없네? 나 오늘 게임 안 함.”
그러더니 게임 포기를 선언하는 마법사.
그 말에 궁수가 얼른 마법사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 마법사님! 그러지 마시고~ 서포터님이 장비는 비록 저래도, 여기까지 오신 걸 보면 능력은 있을 거예요.”
마법사가 심드렁한 눈으로 궁수를 잠깐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갑옷에 새겨진 LK 마크를.
“아. 됐어요. 저딴 놈이랑은 기분 더러워서 게임 못하겠어요. 내가 저런 버스충들 키워 주려고 장비 비싼 돈 주고 산 줄 알아요?”
성깔도 사람 가려서 부리는 마법사.
궁수는 마법사를 계속 달랬다.
“에이. 에이. 그러지 마시고…… 그래, 서포터님도 사과하세요.”
“제가 왜요?”
“아. 그, 그래도…….”
네 장비가 너무 별로잖아!
……이렇게 대놓고 말하기는 도의상 뭣했기에 더 말을 못하는 사이.
마법사가 다시 소리를 빽 질렀다.
“와, 저 새끼 봐라! 내가 궁수님 말 듣고 좀 참아 보려고 했는데…… 저 새끼가 무릎 꿇고 사과할 때까진 게임 안 합니다!”
“무, 무릎을 꿇으라니. 그건 좀 너무 나가셨는데…….”
뭐 이런 걸로 무릎까지 꿇으래?
궁수가 어이없게 마법사를 쳐다보았지만.
털썩.
마법사는 땅바닥에 아예 걸터앉아 시위 모드에 돌입했다.
“야, 이 버스충 새끼야. 대가리까지 안 박으면 국물도 없다.”
임가영은 그렇게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소환되자마자 시비를 틀더니, 대뜸 도게자까지 시키는 또라이라니.
저놈, 입으로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저 마법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브론즈 리그의 진상 마법사, 김규혁……!’
김규혁.
한때는 10대 길드에 소속된 촉망받는 마법사였지만.
실버 승급전에서 의문의 4연속 승급 실패 이후, 사람이 이상하게 변했다.
이렇게 팀전이 걸리면, 초보나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시비를 털고.
제 맘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으면 저런 식으로 꼬장을 부려 댔다.
패배하면 자기도 레벨 다운을 비롯한 손해를 보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행패를 부리는 김규혁.
그는 브론즈 리그, 강남 3대 진상 중 한 명으로 유명했다.
‘쓰레기.’
상대를 살피고, 만만한 이에게만 행패를 부리는 사람.
그를 바라보는 임가영의 눈빛에 혐오가 짙어졌다.
그래도 좀비 디펜스에서 마법사는 서포터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직업군이었기 때문에, 그녀도 어떻게든 김규혁을 말려 보려고 했다.
그런데.
뚜벅. 뚜벅.
성지한이 김규혁에게 걸어가더니, 가볍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응. 하지 마.”
“……뭐?”
쑤욱.
성지한이 마법사의 멱살을 잡더니, 그대로 그를 들어 올렸다.
“게임. 하지 말라고.”
휙!
김규혁의 몸이 훨훨 날았다.
당황한 그의 얼굴과, 허공에서 부등거리는 몸이 잠시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이나 싶더니.
“뭐, 뭐야! 뭐야아아아악!”
김규혁의 비명 소리는 곧.
으워어어어어-!
탑 아래의 좀비 떼가 내뱉은 괴성에 의해, 잠겨 버렸다.
콰직. 콰직!
씹어 먹히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번쩍.
김규혁이 다시 탑 위, 원위치로 돌아왔다.
디펜스 게임의 3번의 부활 기회 중 한 번을 써 버린 것이었다.
“너, 너 이 미친놈이……!”
김규혁이 욕지거리를 내뱉을 찰나.
그를 의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성지한이 한마디 했다.
“살아 있네?”
“뭐?”
예상외의 반응에 침묵이 감돌길 몇 초가 지났을까.
문득 손뼉을 친 성지한이 곧바로 김규혁의 멱살을 잡았다
“아, 브론즈 땐 부활이 있었지?”
“……?”
“그럼 또 가시고.”
김규혁의 몸이 또다시 하늘을 날았다.
“으…… 으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