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7화>
* * *
분명 920마리 정도에서 탑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퀘스트 완료라니.
‘뭐지?’
성지한은 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자신이 섬천뢰보를 사용했던 그 위치를.
‘저것 때문인가.’
몸을 뇌전으로 변화시켜 먼 거리를 한 번에 뛰어넘는 궁극의 보법, 섬천뢰보.
발을 떼기 전, 폭발적인 전류가 튀는 것이 특징인 무공이었다.
한데, 바로 그 전류 중 일부가 아직도 그가 지나온 대지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성지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공의 운용이 완벽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구나.’
원래는 발을 떼었을 때, 대지로 퍼져 나갔던 전류가 모조리 자신에게로 모여야 했다.
하지만 무명신공을 스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삼단전을 통해 일으켜서 그런지, 대지로 뻗어 냈던 힘이 완벽하게 모이지 않았다.
‘수련할 시간이 필요하겠어.’
덕분에 연계 퀘스트를 깨기는 했지만, 무인의 관점으로 본다면 뜻밖의 행운에 불과했다.
성지한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실감하며 다음 연계 퀘스트를 기다렸다.
[업적 포인트 3,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연계 퀘스트가 좀비의 근원지 (2)로 이어집니다.]
쿠르르르르-
대지가 크게 뒤흔들리더니, 끝없이 돌진해 오던 좀비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우…… 워…….
전장에 울려 퍼지던 좀비의 음성도 뚝 끊긴 채.
탑 너머의 대지에 일제히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것은 성지한의 탑뿐만이 아니라, 다른 탑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뭐지
-좀비 맵에서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버근가?
-배틀넷인데? 만약 진짜면 역대급 사건 아님??
그때.
쿠구구궁!
땅이 갈라지며, 거대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탑의 높이와 근접할 정도로 거대한, 검은 강철로 이루어진 손이었다.
이내 손바닥의 한가운데에서부터 사람의 입이 생겨나더니, 전장 전체를 울릴 정도의 귀곡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
“……우웃!”
“대체 이게 무슨…….”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플레이어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마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소리였다.
그리고.
좀비 떼가 그 거대한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손이 좀비를 그대로 쥐어 으깨고 반죽하는 손.
뼈와 살점이 분리된 좀비들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졌지만.
떨어진 좀비의 파편은 다시 검은 손으로 모여, 차근차근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손은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아니…… 저건…….”
BJ금빛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생명체의 피와 살과 뼈가 한데 섞여서 만들어진 거대한 흉물.
“플래시 골렘?! 골드급에서나 나오는 몬스터가 왜 여기에?”
그것도 좀비의 파편이 이리저리 뒤섞여 만들어진 흉측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감을 상실케 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콰드득- 콰드드득!
검은 손은 플래시 골렘을 총 일곱 구를 만들더니.
끄끄끄끄끄-!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고는 다시 땅속으로 사라졌다.
[디펜스 맵, ‘10개의 탑’을 클리어했습니다.]
[보너스 미션이 개방됩니다.]
브론즈 전용 맵, 10개의 탑.
아직 살아남은 탑이 7개나 되는데도, 모든 탑이 미션을 클리어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너스 미션?
-브론즈 맵에 그런 게 있었어?
[파멸의 사도, ‘블랙 핸드’가 만들어 낸 플래시 골렘의 진격을 막아 내세요. 크리스털의 축복을 이용한다면 힘의 격차를 좁힐 수 있습니다!]
보상 - 미션 클리어 시 경험치 & GP 3배 획득
보너스 미션의 보상은 심플했다.
본래 받을 보상의 3배.
‘크리스털이 축복을 준다고?’
‘그렇다면…… 할 만한 건가?’
어차피 클리어로 쳐주는 마당에, 보너스 미션은 부담 없이 도전해 볼 만했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각오를 다지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을 때.
성지한에게는 그들과는 다른 퀘스트 메시지가 떴다.
[연계 퀘스트 - 좀비의 근원지 (2)]
크리스털의 도움 없이 플래시 골렘을 처치하세요.
보상 - 업적 포인트 10,000 / 크리스털의 파편
크리스털의 도움 없이 플래시 골렘을 처치하라니?
성지한은 그 미션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거 깨라고 만든 미션 맞나?
‘그러니 보상에 크리스털의 파편이 있겠지.’ 업적 퀘스트에서 업적 포인트 외의 보상이 추가된 건, 서바이벌 맵 관련 에픽 퀘스트밖에 없었으니까.
성지한은 멀리서 다가오는 플래시 골렘을 바라보았다.
쿵, 쿵, 쿵.
검은 손이 만들어 낸 7구의 플래시 골렘이 7개의 탑을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인간이었던 것의 파편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은 다시 봐도 역겨웠다.
한편, BJ금빛은 플래시 골램의 위용에 혀를 내두르며 성지한에게 다가왔다.
“허어…… 저거, 대충 봐도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 성지한 님, 빨리 버프 받으시죠.”
“…….”
금빛의 말에도 묵묵부답인 채 플래시 골렘을 주시하기만 하고 있는 성지한.
그 모습에 금빛의 시청자들이 온갖 추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성지한 쫄았다에 내 소중이 건다ㅋㅋㅋ
-쟤 1등 못하면 상태창 공개한다고 하지 않음?
-각인가???????
-상식적으로 브론즈따리가 골드 준보스급을 어케 잡음? 이건 논외로 쳐야지 -벌써부터 실드 치누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생각이 맞았다.
크리스탈의 버프가 있다손 쳐도 과연 저 거대한 괴수를 제압할 수 있을까?
힘들겠지.
‘성지한 님이라 해도 저건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아마 성지한은 죽을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내 금빛은 그를 따라 죽을 각오를 했다.
그나마 욕심이 있다면, 방송인으로서 좋은 영상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할 뿐.
BJ금빛이 그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성지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버프, 괜찮습니다.”
“……네?”
금빛의 말에 짧게 대답한 성지한은 삼단전의 힘을 끌어올렸다.
* * *
플래시 골렘.
골드 리그의 플레이어조차 레벨이 부족하면 단독으로는 잡기 힘든 강력한 몬스터다.
또한 언데드에 기원한 몬스터이기에 몸 중심에 있는 핵을 부수지 않으면 계속 재생하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몸에 박힌 시체의 파편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기 때문에, 개체 하나하나가 준보스급 몬스터로 평가받는다.
성지한이 브론즈를 초월한 플레이어라고는 하지만, 아직 플래시 골렘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무명신공을 다시 사용하지 못했다면 그랬겠지.’
그렇지만 완벽하지는 않아도,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지금은.
죽일 수 있다.
파지지지직-
성지한의 발치에 하얀 전류가 퍼져 나갔다.
그 광폭한 기세에 괜히 옆에 서 있던 BJ금빛이 얼른 몸을 옆으로 피했다.
“이건……?”
“제가 혼자 상대하겠습니다.”
무명신공無名神功
보법步法
섬천뢰보閃天雷步
성지한이 발을 떼자, 탑 위에 깊은 발자국이 찍히며.
팟-
그의 몸이 빛이 되어 사라졌다.
“어, 어어?!”
BJ금빛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탑으로 걸어오던 플래시 골렘의 머리 위에 어느새 성지한이 떠 있었던 것이다.
한때 골드리거였던 금빛조차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초속의 신법.
성지한은 플래시 골렘의 머리 위에서, 참마도를 높이 들어 올렸다.
‘포스를 얻고 클래스도 메이지니 서포터니 부가적인 것을 먼저 얻긴 했지만.’
그것은 모두 더 강해지기 위한 수단일 뿐.
성지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무인이었다.
성지한이 삼단전의 기운을 참마도에 응축시켰다.
지끈-
제대로 얻지도 못한 무공을 연속으로 사용해서 그런지 온몸이 쥐어짜이듯 아팠지만.
‘이 정도야.’
성지한은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며, 무공을 펼쳤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태산압정泰山押頂
삼재무극三才武極.
천지인天地人을 본따 만들어진 이 무공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무명신공의 기본이나 다름없었다.
천은 세로를 베고, 지는 가로를 베고, 인은 찌른다.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
삼류 중의 삼류.
그럼에도, 무명신공의 기초.
삼재무극도 이러한 이치를 따랐다.
그리고 성지한이 펼친 태산압정도 초식으로서는 단순했다.
태산을 눌러 찌그러뜨린다는 거창한 뜻과는 달리, 실상은 그저 세로 베기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극한으로 발휘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촤악!
참마도를 내려치자, 탑을 향해 진격하던 거인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골렘의 크기에 비하면 이 한 번의 휘두름은 일개 벌레가 무는 것이나 진배없을진대.
골렘은 단 한 걸음도 더 걷지 못했다.
그리고 곧.
쩌어억-
플래시 골렘의 머리부터 하체까지, 몸 전체가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다.
수많은 시체가 모인 살덩이는 물론이거니와, 플래시 골렘의 중심핵인 심장도 그대로 반토막이 나 버린 것이다.
이후 성지한이 바닥에 착지하자.
쿠르르르-!
대지가 갈라졌다.
거인을 벤 것도 모자라 대지에 상흔을 새긴, 무의 극한에 도달한 참격.
이것이 바로 삼재무극 태산압정이었다.
* * *
성지한은 썩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힘의 운용이 역시 자유롭지 않군.’
정확히 플래시 골렘만 베었어야 했는데, 힘의 여파가 그 아래까지 닿아 버렸다.
완전치 않은 태산압정이었다.
다만, 이는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
성지한의 뒤편에서는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툭. 데구르르-
마시드는 리프팅하던 공을 떨어뜨렸고.
“어…… 어.”
BJ금빛은 자신의 본분을 잃어 버렸다.
‘지금…… 뭘 본 거죠?’
성지한이 펼친 일검.
단순한 동작이었다.
그저 중력에 몸을 실은, 내려 베기가 아니었나.
오히려 그 이전에, 벼락이 되어 하늘 위로 올라간 그 신법이 엄청났었지.
하지만.
그가 내보인 참격의 결과는 그마저도 잊게 만들 정도의 규모였다.
성지한의 참마도에 빛이 모이고, 그것이 플래시 골렘을 내려찍을 때.
BJ금빛은 자신마저 통째로 쪼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박동 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전율, 그리고 두려움의 발로였다.
‘저,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그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마시드를 바라보았다.
밝은 빛의 스포츠웨어를 입고 있던 그는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BJ금빛은 확신했다.
저 감정 무딘 축구공 트롤러가 저런 반응을 보인 것만 해도 그렇다.
저 일격은 ‘생물’로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
핵을 잃고 시체 더미로 해체되는 플래시 골렘을 바라보던 BJ금빛.
“아!”
그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자신의 채팅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지한의 활약상을 보기 위해 유입된 수많은 시청자들.
그들도 마찬가지로 얼이 나가 있었는지, 채팅은 일순간 렉이 걸린 듯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내가 뭘 본 거지?
-브론즈가? 플래시 골렘을? 일격에?
-버그다! 버그 플레이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주르르 채팅창에 올라왔지만.
금빛은 작게 고개를 젓기만 했다.
‘저건, 실제로 봐야 안답니다.’
성지한의 일격은 화면 너머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신도 갈라져 버리는 듯한 감각.
온몸이 굳어 버린 채 그저 심장만 속절없이 두근거리는 이 느낌.
골드 리그에 있을 때조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입니다.’
두려움, 절망, 기대, 갈망.
수많은 감정이 가슴속에서 뒤섞였다.
워리어 클래스로서,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성지한을 따라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잠시 마음에 먼저 스쳐 지나갔다면.
‘당신은…… 최고가 될 사람이에요.’
그다음으로 금빛의 가슴을 사로잡는 감정은.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제 화면에 담아, 찍고 싶어요.’
방송인으로서, 최고의 스타가 될 이를 찍고 싶다는 기대와 갈망이었다.
BJ금빛이 몽롱해진 눈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우수수수-
워낙 거대했던 탓에 플래시 골렘을 이루던 시체 조각이 아직도 떨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성지한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자리만큼은 그런 괴기스러움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오직 그만이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전설이 될 플레이어의 현재를 찍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보너스 미션을 클리어했습니다.]
[경험치와 GP를 세 배로 보상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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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보상을 세 배로 준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BJ금빛은 이깟 보상보다, 성지한을 더 이상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이렇게 헤어지다니요.’
BJ금빛이 아쉽다는 눈빛으로 성지한을 바라보고 있을 때.
번쩍!
갑자기 성지한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그가 다시 탑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음…….”
축구공을 발치에 대고 있던, 마시드의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