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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54화 (54/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54화>

*   *   *

‘대체 뭐냐……!’

배런은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1위 : 성지한 - 20킬 - 무소속]

[2위 : 배런 - 17킬 - 아메리칸 퍼스트]

이 내가…… 2등이라니?

포스를 얻은 이후, 지금껏 1등 자리를 빼앗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늘!

자신의 화려한 모습을 전 세계에 뽐내야 할 TOP 100 승급전에서, 웬 아시안에게 이렇게 밀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배런. 이번 승급전에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플레이어의 자료입니다. 시간 되실 때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길드 매니저가 플레이어 성지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서 보여 줬을 때.

-하. 그깟 중위권 리그 출신이 날 위협한다고? 매니저,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이딴 자료는 치우고, 이번에 나이크 광고주와 체결한 계약서나 가져와.

-……알겠습니다.

배런은 코웃음을 치며 자료를 치워 버렸던 걸 떠올렸다.

성지한이라는 이름.

그때 한 번 듣고, 다시는 볼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위에 있다니…….’ 그때 어떤 놈인지 좀 봐둘걸 그랬나?

‘아니!’

배런은 이를 악물었다.

‘나 배런 윌리엄스, 선택받은 SSS급 기프트를 지닌 대마법사가 그깟 놈을 경계할 필요가 있겠나!’

그래.

자신답지 않은 나약한 마음가짐이었다.

“파이어 웨이브!”

손끝에서 퍼져 나온 거대한 불의 파도가 경기장을 완전히 불길로 뒤덮어 갔다.

제깟 놈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고 있다지만, 포스라는 대마력이 받쳐 주는 파이어 웨이브 앞에선 감히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밀리는 건 잠깐일 뿐.

이대로 모든 적을 불태우고 나면, 1등을 확정 짓는 건 자신이 될 것이다.

분명 그래야 했다.

그런데…….

“이, 이게 무슨!”

촤악-!

놈의 일검에 불의 파도가 통째로 갈라졌다.

아니, 갈라지는 건 파이어 웨이브뿐만이 아니었다.

포스로 완전히 지배하고 있던 배런 주변의 공간이 송두리째 잘려 나갔다.

“큭-!”

경악도 잠시.

배런은 포스를 최대한도로 끌어올렸다.

대체 무슨 공격이 들어왔는지는 아직도 파악이 되질 않았지만, 이대로 손을 놓을 순 없었다.

치이이익-!

다시금 영역을 넓혀 가던 포스가 성지한의 검격을 밀어 내고, 갈라지고, 맞부딪쳤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비등비등한 상황.

배런이 아는 한 이는 브론즈 수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대체 이 무지막지한 공격은 뭐란 말인가!

‘그래도, 어떻게든 막고 있다!’

포스로 지배하고 있던 영역이 무참히 밀려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 주변의 절대영역은 건재했다.

그래,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고 해도 이 절대영역까지 침범할 수는 없지.

“후우-.”

배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갈라진 불길 사이로 드러난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흰 셔츠를 입고 있는 동양인이, 백색의 창을 든 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가 성지한인가……!’

아시아 리그, 그것도 나름 잘나간다는 중국이나 일본도 아니고.

중위권 리그에 속하는 한국 출신이라고 해서 무시했는데, 이 정도나 되는 힘을 잘도 얻어 냈군.

한차례 입술을 짓씹은 배런이 포스를 끌어올렸다.

저 무지막지한 공격을 펼쳤으니, 저쪽도 만만치 않게 힘을 소모했을 터.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대인 마법으로 확실하게 끝내 버려야 했다.

그 어떤 마법보다도 빠르고, 그 어떤 마법보다도 위력적인 마법.

“라이트닝!”

배런의 손아귀에서 파멸적인 뇌전이 뻗어 나갔다.

*   *   *

배런 윌리엄스.

성지한의 눈에 비친 2020년의 그는 회귀 전에 비하면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뭐, 암만 비교해도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자신의 파이어 웨이브가 반으로 갈라지니, 당황하며 허둥지둥 다음 마법을 시전하려는 배런.

지금의 그에게서는 평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봐도 재능이 아깝군.’

SSS급 기프트, 내 상태창 2개.

그 좋은 기프트로 결국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주제에, 결국 죽을 때까지 발컨을 극복하지 못하고 인류를 멸망시킨 한 원인이 되었지.

성지한의 시선이 배런을 넘어 경기장의 관중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흑안의 다크엘프가 묵묵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1위와 시선이 마주치는 곳에 나타나는, ‘그림자 여왕’으로 추정되는 존재.

‘그녀도 내가 승리할 줄 알고 있었군.’

역시 성좌, 통찰력이 있어.

성지한은 씨익 웃으며, 봉황시를 들어 투창 자세를 취했다.

‘봉황시…… 5번을 던지면 사라진다고 했나.’

지금까지는 던질 필요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배런은 물론이고 경기장을 둘러싼 저 단단한 배리어를 깡그리 부수기 위해서라도, 총력을 다해야 했다.

이내 성지한이 쥐고 있는 봉황시에서, 새하얀 불길이 일어났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선인지로仙人指路

일점을 꿰뚫는 데 최적화된 선인지로의 초식.

찌르기의 법과 무기를 던지는 법은 묘가 달랐지만, 한 점을 관통한다는 궤가 같았기에 선택한 무공이었다.

화르르르-

봉황시 역시 준비를 마쳤다는 듯 어느덧 새하얀 불길에 잠겨 있었다.

다만, 정작 그 불길의 크기는 봉황시를 간신히 덮을 정도로 미묘했다.

정복자의 황릉에서 정복자의 상이 사용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

“라이트닝!”

오히려 포스를 총동원해 발출한 배런의 라이트닝 마법이야말로 압도적으로 보였다.

봉황시만큼이나 굵고 찬란한 빛을 내뿜는 전류. 그것들이 수십, 수백 가닥으로 뻗어 성지한에게 짓쳐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쉬이이익!

성지한의 손에서, 봉황시가 떠났다.

한 타이밍 늦게 발사된 새하얀 불길은, 배런의 라이트닝에 비하면 단번에 먹혀 버릴 만큼 크기가 작았다.

하나, 이를 보는 배런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막을 수 없다.’

배런은 ‘라이트닝’이 봉황시에 닿자마자 시간이 멈추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력이 압축된 정도가,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마법으로 저걸 저지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부수겠다고 하는 격.

‘포스의 영역도,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있어…….’

어느덧 봉황시가 지척에 이르렀다.

포스가 지배하던 영역은 있었는데 없었다는 듯 허무하게 뚫려 버렸고.

저 투창을 피하기에는 한참 늦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배런은 포스의 절대영역에 희망을 걸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뚫린 역사가 없었던, 4m 남짓한 무적의 영역.

‘거기서 한 번만 막아 주면…….’

바로 연달아 마법을 사용해서, 저 동양인을 제압할 수 있다!

‘제발……!’

그렇게 배런은 자신의 절대영역에 한 줄기 희망을 걸었다.

포스를 어떻게 컨트롤해서 막아 볼까 하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로.

치이이익!

“……!”

그리고 잠깐은.

희망대로 봉황시가 허공에서 멈추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말 잠깐.

배런이 자랑하는 절대영역이 막아 낼 수 있는 건 그 잠깐이 끝이었다.

지배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

푸우욱!

“컥……!”

배런의 몸은 봉황시에 그대로 관통당한 채, 순식간에 타올라 사라졌다.

전 세계가 우승을 예상하던 미국의 천재 마법사, 배런 윌리엄스가 성지한의 일격에 전사하고 만 것이다.

한편, 그 모습을 본 성지한은 혀를 찼다.

‘여전히 포스를 전혀 다루질 못하는군.’

예상대로였다.

보호 마법을 쓸 시간이 없으면, 포스를 총동원해서 전방을 최대한 막든지 해야지.

스스로 대응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포스에 기대 희망 회로만 돌리다 죽는 꼴이라니.

이건 컨트롤의 문제가 아닌 의지의 문제였다.

‘됐고, 이제 1등은 확고히 다졌으니…….’

성지한은 배런을 뚫고 계속 나아가는 봉황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진짜 목표.

경기장의 배리어를 부술 때였다.

*   *   *

=홀리…… 크흠! 배런의 파이어 웨이브가 통째로 갈라집니다!

=플레이어 성! 파이어 웨이브를 피하던 플레이어 4명도 통째로 베어 넘기네요! 4킬을 추가합니다!

0번 채널의 포커스는 어느덧 배런보다도 성지한을 중심으로 잡고 있었다.

거대한 화염의 파도를 통째로 베어 내는 성지한의 모습에, 해설자 크리스토프는 자신도 모르게 오싹한 감정을 느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퍼포먼스는 모든 클래스를 통틀어 마법사가 최고라지만.

이를 한 자루 창으로 단번에 베어 버리는 성지한의 무용을 보고 있노라니 온몸에 전율이 흐른 것이다.

‘이러다 진짜 팬이 되겠어……!’

방금 전만 해도, 성지한의 팬이라고 말한 건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했거늘.

이번 승급전에서 그가 보여 주는 활약을 보다 보니, 점점 생각이 바뀌어 갔다.

그가 아무리 배런의 대적자라고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만큼 성지한이 보여 주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자극했으니까.

그리고.

=아-! 플레이어 성! 배런을 향해 투창했습니다!

=새하얀 불길을 머금고 있군요. 겉보기에는…… 으음?!

=겉보기뿐이었습니다! 배런의 라이트닝이 모두 갈라지고 있어요!

=오 마이 갓! 배런의 절대방어가 단번에 깨져 나갑니다!

상황은 더욱 믿을 수 없게 흘러갔다.

배런 윌리엄스가 미국 최고의 유망주로 칭송을 받는 데에는 포스 자체의 위력이 워낙 강력해서였던 것도 있었지만…….

그의 주변을 언제나 감싸는 상대의 모든 공격을 원천 봉쇄하는 강력한 배리어도 큰 몫을 차지했다.

미국의 그 어떤 브론즈 선수도, 배런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먹인 적이 없었으니까.

한데, 그 굳건한 방패가 단번에 깨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배, 배런! 전사했습니다!

=탈락…… 입니다아아!

미국 해설진의 절규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미국 전역에서 충격과 공포의 장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을 때.

“앗…… 아아…….”

자신의 집에서 TOP 100 승급전을 시청하던 이하연은 미국 시청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털썩-!

“말도 안 돼…….”

배런에게 투자한 돈이 얼만데, 저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리다니…….

혼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지한 씨가 문자로 두 번이나 알려 줬는데…….’

그래.

첫 번째 한일전 베팅은 솔직히 너무 말이 안 된다 싶었지만, 두 번째는 확실히 성지한에게 걸 만했다.

승률 100퍼센트.

그게 어디 배틀넷에서 가능한 기록이던가!

그런 압도적인 실적을 보여 주는 성지한을 믿지 못하고, 배런에게 걸었다가 쪽박이라니!

이하연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책하던 도중.

=플레이어 성의 봉황시. 멈추지 않습니다! 배리어에 그대로 부딪칠 기세입니다!

=어…… 어어……?!

=이, 이건 대체……!

이하연의 귓가에, 미국 해설자들의 샤우팅이 들려왔다.

‘아. 왜! 또 무슨 일인데!’

그리고.

푹 숙인 고개를 애써 들어, TV를 바라본 이하연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제는 개인 채널처럼, 성지한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0번 채널.

“뭐, 뭐야.”

화면을 보고 있는 이하연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려 왔다.

“저건…… 뭐냐고.”

콜로세움을 둘러싸고 있던 배리어는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배리어가 사라진 공간에는.

엘프들이 자리한 관객석이 아닌,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밤바다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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