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87화>
‘성지한…… 배틀튜브 방송을 진행하다니.’
주은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성지한은 지금껏 매료에 걸린 척을 했을 뿐, 실제로는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어.’
한국 정부도 바보는 아니다.
이렇게 생방송이 버젓이 나가는 판국에, 성지한이 강남 한복판에서 납치당하는 꼴을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시간이 지체되면, 곤란해지는 것은 자신들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성지한 씨. 당신은 참으로 골치아픈 사람이군요.”
주은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서포팅 기프트.
‘편집’을 사용하기 위해선, 두 가지의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접촉.
살갗이 닿으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를 편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성지한에게 몇 번이고 시도했던 방법이 바로 이 접촉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상대가 경계하고 있을 때에는.
접촉 대신, 다른 방법이 있었다.
“플레이어 성지한. 당신을 ‘편집’하겠습니다.”
우우우웅-
테이블의 중심부와, 천장이 흔들리며 금빛이 번쩍였다.
다케다가 들었던 것과는 또 다른, 미리 숨겨져 있었던 아카식 페이지 2장.
그것이 활용되며, 성지한에게 주은지의 ‘편집’이 가해졌다.
[이토 시즈루의 분신이 플레이어 성지한에게 상태이상 ‘매료’를 추가합니다. 매료의 대상은 이토 시즈루입니다.]
[이토 시즈루의 분신이 플레이어 성지한에게 상태이상 ‘복종’을 추가합니다. 복종의 대상은 이토 시즈루입니다.]
시스템창에 떠오르는 메시지.
이건, 성지한과 시점을 공유하는 시청자들도 모두 볼 수 있었다.
-매료... 복종?
-이토 시즈루??
-이토? 어 ㅅㅂ 설마?
-어. 뭐, 뭐야. 저 여자 왜 이렇게 예뻐 보여?
-와....씹...
-헤...헤으으으응...!!!
상태이상 매료와 복종이 추가된 성지한의 시야에서는, 주은지가 세상에 다시 없을 여신으로 보였다.
‘저번보다 강하군.’
저번에는 아카식 페이지 한 개를 써서 매료, 복종, 광신 세 가지 상태이상을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두 개를 매료와 복종에 집중했으니, 성지한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저번보다 훨씬 심했다.
‘하지만 이럴 줄 알고 있었던 이상, 소용없는 일이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심법心法
유심소조唯心所造
성지한은 아름답게 변한 주은지를 눈앞에 두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심법을 운용했다.
주은지가 아무리 아카식 페이지를 사용해서 매료를 시도했다고 한들, 그녀의 권능이 서큐버스 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미리 그녀를 경계한 이상, 이 정도는 이겨 낼 수 있었다.
-헤으으...으응???
-뭐야! 존예녀 어디 갔어!!
-아 다시 돌려줘요!!
-나 무릎 꿇으면서 봤는데ㅋㅋㅋ 이건 또 뭐냐?
-세상...세상 어떻게 그렇게 생긴 사람이 있지?
-아 성지한 저항하지 말라고!!
시청자들의 원성이 채팅창을 도배했지만, 성지한은 꿋꿋이 유심소조를 운용했다.
그러자 주은지는 여신의 모습에서, 다시 원래의 평범한 얼굴로 돌아갔다.
“편집…… 이게 이토 시즈루의 권능인가?”
지금까지 겪어 보았던 서포팅 기프트 중, 가장 사기적인 능력이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주은지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조금쯤은 동요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먹히지 않을 줄이야.
‘저번에는 분명히 어느 정도 먹혔는데…….’
여기까지는 계산에 없었다.
이 정도의 권능이면, 검왕 윤세진도 속절없이 당했을 터인데!
“당신…… 무슨 수를 쓴 겁니까?”
“그걸 말해 줄 의리는 없지.”
성지한은 손을 뻗었다.
천장과 테이블.
두 곳에 숨겨진 채,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던 아카식 페이지가 성지한의 손아귀에 빨려 들어갔다.
두 개만 해도, 수천억의 가치.
이왕 카페에 와서 주은지와 대적하기로 한 이상, 성지한은 이걸 전리품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주은지의 입장에서는 빼앗기기에는 너무나도 값비싼 물건이었지만…….
‘성지한부터 제압해야 해!’
그녀는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다.
아카식 페이지야 또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성지한은 지금 사로잡지 않으면 한국에서 빼내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저깟 종이 쪼가리 따위, 날리더라도 어떻게든 그의 신병을 장악해야 했다.
[아카리. 아카식 페이지는 상관하지 말고, 성지한을 우선적으로 제압하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휙-
다케다 근처에 있던 아카리가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으며 성지한에게 짓쳐 들어왔다.
아카리의 침투는 은밀하고 신속했다.
성지한과 아카리의 격차는 어마어마하여, 최소 레벨이 100 이상 차이가 났지만.
[주인. 왼쪽이다.]
‘달의 그림자’ 기프트가 있는 성지한은.
암살자의 스킬트리 중, 그림자 관련 스킬을 찍은 아카리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거기에 현실 세계에서도 힘을 모조리 사용할 수 있는 유니크 스탯 ‘무력’과.
공간을 지배하는 ‘포스’의 권능을 더하니.
“오. 빠른데?”
성지한은 아카리의 단검을 가볍게 피하며, 아카리가 품고 있던 아카식 페이지를 포스로 끄집어냈다.
[네놈……!]
-키, 킷사마!
-찐텐으로 킷사마 들음 ㄷㄷ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함? 빨리 신고해야죠!
-지금 성지한 님 납치당하려 하잖아요! 저 저 여닌자 봤어요. 일본의 닌자 오타쿠 아카리예요!
-헐 나도 봄. 노답 직업 암살자 고른 아카리? 그 사람 다이아리거인데ㄷㄷ-야야 이거 실제 상황인데? 빨리 신고해!!!
[아카리. 아카식 페이지는 상관하지 마세요! 당신은 타깃의 확보에만 집중을!]
[알겠습니다!]
휙! 휙!
다이아와 실버의 차이를 보여 주겠다는 듯, 아카리가 재빠른 움직임으로 성지한을 습격했다.
여러 개의 단검이 허공에 어지러이 춤을 추며 성지한을 위협하고, 그녀의 그림자는 성지한을 사방에서 옭아매려고 했다.
캉! 캉!
성지한의 왼손에서 급히 흑검이 튀어나와 이를 모두 튕겨 내지 않았다면, 이는 모두 살초가 되었을 터.
-어우.. 개빠르네 진짜;
-암살자가 이렇게 쩔었냐??
-현실에서 첩보용으론 제일 쓸 만하대.
-그런 다이아리거랑 대등하게 맞서는 게 성지한 님이시다!!
-저, 저 성지한 님한테 조금 전에 사인 받았어요! 여기 소드 팰리스 옆 건물, 지번 강남구 134...
-빨리 지원 와야 해요! 이러다가 납치당한다고요!!
상대의 정체가 다이아리거 암살자인 아카리인 게 밝혀지자, 채팅창은 난리가 났지만.
실제 전황은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진 않았다.
“블레스. 스트렝스. 헤이스트.”
셀프 버프 3종 세트를 건 성지한은, 자신 있게 아카리와 검을 맞댔다.
‘큭……!’
챙! 챙!
성지한의 암검 이클립스와, 아카리의 단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튄다.
능력치는 분명히 아카리가 앞섰다.
검의 속도도 물론이거니와, 무기가 서로 부딪쳤을 때 느껴지는 힘의 차이만 해도 아카리 쪽이 훨씬 유리했다.
하지만.
‘……말도 안 돼.’
밖에서 보는 제삼자의 시선이 아니라.
당사자인 아카리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막히고 있다.
자신이 내지르는 모든 공격이 막히다 못해 상대에게 완전히 읽히고 있었다.
내가 상대보다 느린가?
아니다.
훨씬 더 빠르다.
그렇다고 힘이 약한가?
그것도 아니다.
상대를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런데…… 왜지?
카앙!
분명히 여러 허초를 섞어서, 제대로 내지른 일격인데.
밀린다.
밀어붙일 수 있는데, 밀린다.
양립할 수 없는 명제가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기를 휘두르니 알겠다.
일격을 뻗어 나갈 때마다, 자신은 이미 상대의 계산 안에 들어가 있음을.
‘이럴 수가……!’
게임 상의 등급은 비록 다이아와 실버라고 할지라도.
무기를 다루는 기예에서, 이미 현격한 차이가 났다.
그래.
저건 능력의 격차를, 사용자의 술術로 메운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해치운다는 생각으로 간다!’
아카리는 보다 더 위협적으로 성지한을 압박해 갔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급소를 피했다면, 이제는 상관없이 공격을 감행했고.
그림자를 이용한 후방 기습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캉- 카강-!
“그래 봤자군.”
진심을 다한 살초를 날려도 모든 게 막히는 건 매한가지였다.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검로가 완전히 읽혀 버리니, 어떤 짓을 해도 무소용이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아카리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빠져 버렸다.
“암살자가 정면 승부를 해 온다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지.”
성지한이 이죽거리며 말하자, 아카리의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저 한국인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발임은 분명했다.
이대로 질 수는 없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제압해 주리라.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자신하는 스킬을 사용했다.
인술忍術
환영수리검幻影手裏劍
휘리리릭!
성지한의 사방에, 검은색의 표창이 날아든다.
어떤 것에는 실체가 있고, 어떤 것에는 실체가 없다.
암살자의 스킬답게, 허와 실이 절묘하게 섞인 인술, 환영수리검.
하지만, 성지한에게는 이를 파훼할 손쉬운 수단이 있었다.
“아리엘.”
[뒤에 것 두 개 빼고 다 헛것이다.]
“알아서 제압할 수 있지?”
[당연하다.]
그림자 권능으로 따지면, 독보적인 능력을 자랑하는 아리엘.
그녀는 아카리의 허와 실을 모조리 파악하고는, 성지한을 대신해서 뒤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모두 막아 냈다.
슈우우우-
암검 이클립스에서, 그림자가 일부 빠져나가며 성지한의 뒤에 날아드는 표창을 막아서고.
캉!
검은 검대로, 아카리를 밀어붙였다.
[큭……!]
-와. 씹.. 미친 거 아니야? 상대 다이아인데??
-저 지금 112 119에 다 전화 돌리고 청와대 청원까지 올려서 제발 성지한 님 살려 달라고 했는데... 헛된 일이었나요?
-ㄴㄴ 잘했음. 그게 정상임. 성지한이 미친놈이었을 뿐이지.
-성지한 님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야;;;이건 극찬이라고.
-검왕가보다 더한 애들이 되는 게 아닌지 몰라ㅋㅋ
작은 욕설조차 참지 못던 성지한의 팬들이 기세등등해졌다.
실버가 다이아를 상대로 우세를 점한다니?
분명히 적의 스탯이 더 강하고, 더 빠른데.
이에 대항하는 성지한은 신묘한 움직임으로 적을 밀어붙이고 있잖나.
[아카리……! 당신을 강화하겠습니다. 이번에 승부를 보세요!]
주은지는 서서히 밀리는 아카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잠깐은 다이아인 그녀의 체면을 봐주어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전황이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아카리가 성지한과의 1:1대결에서 서서히 밀리고 있었으니까.
‘믿을 수 없어.’
주은지의 두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지만.
그 안에는 흥분도 담겨 있었다.
‘성지한. 너는…… 너는 무조건 내가 가진다.’
그는 모든 예측을 깼다.
아카식 페이지로 인해 강화된 서포팅 기프트 ‘편집’도 이겨 냈으며.
다이아리거인 아카리의 습격조차도 역으로 이겨 내고 있었다.
이 플레이어는 규격 외의 존재다.
어떻게든 이번에 잡지 않으면, 나중에 무조건 후회할 상황이 올 것이다.
주은지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플레이어 가토 아카리. 당신을 편집하여, 튜토리얼의 금제를 해제하겠습니다.]
이번에 그녀가 편집한 대상은 성지한이 아니라.
튜토리얼의 금제에 걸려, 배틀넷의 능력치를 모두 활용하지 못하는 아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