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99화>
* * *
5분 전.
내시드 백작과 본격적으로 맞붙은 성지한은 생각했다.
‘이거…… 예상보다 너무 쉽네?’
협곡 맵의 강화 보너스에 소피아의 트리니티가 적용된 버프까지 받아서 그런지.
성지한은 내시드 백작과 맞붙자마자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쉽게 이길 수 있다.
‘괜히 파티원을 모을 필요도 없었군.’
무명신공의 상승무류를 사용하면, 지금이라도 바로 제압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성지한이 5분간 전투를 질질 끈 건.
[주인.]
검영 스탯 때문이었다.
[내시드 백작이 지닌 어둠의 마력이 엄청나다. 조금만 더 베는 게 어떻겠는가?]
이클립스에 들어가 있는 아리엘은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성지한에게 권유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영 스탯이 1 상승합니다.]
능력치가 바로 올랐다.
‘좋은데?’
이러면 시간을 끌 가치가 있지.
[뱀의 비늘을 베면, 그림자의 힘을 더욱 많이 흡수할 수 있다.]
성지한은 아리엘의 권유에 따라, 마시드 백작의 비늘을 모조리 베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5분.
거대 뱀의 비늘은 전체의 70퍼센트가 넘도록 금이 갔으며.
[너희들 말로…… 대박이다.]
검영 스탯은 무려 4가 올랐다.
이번 게임에 들어서, 총 5나 오른 스탯.
그림자검의 힘이 한층 더 강해지자, 성지한은 검의 크기를 보다 더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었다.
[이제 대부분 흡수한 것 같다.]
“그래? 슬슬 죽여야겠군.”
검영 5를 얻은 성지한이 슬슬 기분 좋게 내시드 백작을 베려고 할 때.
동쪽과 북쪽의 계곡에 갑자기 거대한 화염의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기. 배런이 맡고 있는 지역인데.’
지금처럼 견제하면 될 것을.
굳이 불길을 치솟게 한다고?
성지한은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대충 감이 왔다.
‘저번 생에서도 그는 자기 스포트라이트 뺏기는 걸 죽도록 싫어했지.’
그래도 그때는 세계 1등에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 마스터라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사람이 지금보단 여유가 있었다.
그때의 배런이라면 적어도 10분은 기다려 줬을 터.
하나 지금의 그는, 어지간히도 마음이 급했다.
화르르르!
성지한은 파이어 웨이브가 내시드 백작에게 날아가는 걸 보면서, 혀를 찼다.
“쯧.”
저거로 정말 죽을 거라 생각하나?
마나를 집중시켜서 일점을 꿰뚫어도 모자랄 판에, 저런 광역 마법을 펼치다니.
파이어 웨이브 따위에 막타를 빼앗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순 없지.’
아까부터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도 그렇고.
저거…….
‘버릇, 한 번 고쳐 줘야겠어.’
툭, 툭!
성지한은 내시드 백작에게서 재빨리 떨어지며, 파티원이 있는 서쪽 절벽가로 날아갔다.
“뭐, 뭐야. 왜 이리로 와?”
탁.
성지한이 절벽에 착지해서 다가오자, 찔리는 게 있던 배런은 괜히 몸을 움츠렸다.
아까 당당하게 딜 넣겠다고 하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
이에 소피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럴 거면 왜 마법을 썼대…….”
그 지적에 정신을 차린 배런이 애써 가슴을 펴며 말했다.
“크, 크흠! 성지한! 워리어가 몬스터를 전방에서 마크하고 있어야지. 여기로 왜 온 거지?”
“네가 내 지시에 따르질 않잖아?”
“딜이 안 들어가는 거 같아서 도왔을 뿐이다!”
“아. 그래? 한 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상황이 급했지…… 않냐! 원래라면 내가 있었어야 제대로 된 딜이 가능했거늘!”
스으으윽.
그 말에 피식 웃은 성지한이 손바닥을 펼치자.
배런의 뒤편에 있던 파티원 몸이 모두 둥둥 뜬 채, 뒤로 물러났다.
“그럼 해 봐.”
“뭐?”
“난 뒤에서 구경할 테니, 해 보라고.”
성지한은 그러며 나머지 파티원을 지키듯, 배런의 뒤편에 섰다.
“문양은 내가 제어해 줄게. 아리엘.”
[절벽가로 가라고?]
“어. 저놈 발컨이라 위기 상황에선 마법 동시에 못 써. 미리 가서 동, 북의 문양을 막아 줘.”
[아하. 알았다.]
그림자검 이클립스가 바닥으로 스며들더니, 긴 그림자로 변해 절벽가로 이동했다.
“발컨? 누가 발컨이라고……!”
배런은 그 말에 발끈했지만, 성지한은 이를 무시한 채 할 말을 계속했다.
“마시드는 남쪽에서 계속 문양을 제어하고.”
“알겠다. 오너.”
남쪽 절벽가에 머문 채 공을 차고 있는 마시드에게 계속 해 달라는 지시를 내리고.
“세아는 소피아 님과 같이 이 옆쪽으로 와서, 서쪽 문양을 공격해 줘.”
“응. 하던 대로 하면 되지?”
“하아아…… 죄송해요. 지한. 말리지 못해서.”
“뭘요. 저놈이 할 수 있다잖아요? 둘은 제가 지키죠.”
“…….”
배런의 말문이 막혔다.
“자. 판은 짜였고.”
그렇게 파티원을 재배치한 성지한은, 배런을 향해 싱긋 웃었다.
“알아서 해 봐.”
-캬 가차없네. 참교육 들어가죠?
-근데 배런이 잡으면 어떻게 함?
-그럴 리 걱정 마라.
-쟤 죽어도 문제 아닌가? 저거 어떻게 잡아?
-지한 님이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뭘 그렇게 염려해요?
-내시드 트라이가 실패할까 봐 그렇지;
-저희 배런이 문제가 많네요.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오 아이디 옆에 성조기 문양ㅋㅋㅋㅋ
-찐미국인이네 ㅋㅋㅋㅋ
참교육해서 고소하다는 사람과, 저러다 레이드 실패하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사람.
거기에 이에 곁들어 사과하는 미국인까지.
혼란의 도가니가 된 채팅창 스크롤은, 정신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한편.
“하. 이 자식이……! 문양만 제어되면 누가 못할 줄 알고!”
배런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여겼다.
성지한이 내시드 백작 상대하는 거 보니까,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만!
차라리 여기서 자신이 잡으면, 지금의 상황을 180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절대영역도 있으니까. 저딴 뱀의 공격은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번쩍. 번쩍.
내시드 백작의 세 개 남은 눈이 빛나고.
“어…….”
스르르르-
아까 사용했던 파이어 웨이브가, 내시드 백작에게 닿자마자 꺼지는 걸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 배런은 분명 자신이 있었다.
[네가- 이번 상대인가?]
거대한 뱀의 시선이 배런을 향한다.
괴물의 목소리는, 성지한을 상대할 때에 비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죽어라.]
내시드 백작이 입을 벌리자,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스 실드!”
배런은 황급히 얼음 방패를 만들어 냈지만.
툭- 투툭-
뱀의 불길은 이를 가볍게 녹여 버렸다.
“뭐 해. 포스 안 사용하나?”
휭. 휭.
뒤에서 봉황시를 돌리며, 얄밉게 훈수를 두는 성지한.
“절대영역도 넓은데. 저 정도 불길도 못 끄고.”
“실드! 아이스 실드!”
“급하다 급해. 공격은 안 하냐?”
“시끄러워! 집중 안 된다!”
“포스로 밀라니까? 불아! 꺼져라! 하면 꺼진다니까?”
“이이익!”
-성지한 뒤에서 겁나 깐족거리넼ㅋㅋㅋㅋ
-ㅋㅋㅋ훈수충은 개빡치지
두 겹으로 만들어 낸 보호 마법이 또다시 녹아내리고.
뱀의 불길은 배런의 절대영역에 들어섰다.
‘그래…… 나도 포스로 불길을 밀어 낼 수 있다고!’
저놈도 하는 거.
내가 못할 리가 없잖아?
배런은 포스를 운용하며, 간절히 염원했다.
저 불길의 궤도가 틀어지기를!
강한 의지력만 깃들어 있으면, 포스의 운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단순히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왜…… 왜 안 돼……!’
이글이글……!
불길은 꺾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절대영역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배런의 눈앞까지 뻗어 왔다.
이러다가, 금방이라도 저 불길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그의 가슴이 덜컥 가라앉았다.
“큭……!”
지금까지, 절대영역이라는 강력한 방어 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위기라는 걸 거의 겪지 못한 그는, 이런 상황에 있어서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새가슴이라는 성지한의 표현이, 배런에게는 딱 어울렸다.
그는 애써 포스를 움직여 불길을 튕겨 내려고 했지만…….
퉁!
튕겨진 건 불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어. 어…….”
불 속에 몸을 던지는 배런.
몸이 녹아내리기 전, 그는 멍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성지한은 배런을 무덤덤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서, 설마…… 네가?”
“응? 누구의 미스인지는 너도 잘 알 텐데.”
성지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것까지 내 탓하진 마라.”
“아…….”
배런은, 그 말에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정말로 자신의 컨트롤 미스였으니까.
“젠…… 장…….”
그의 몸이, 곧 불길에 잠겨 사라졌다.
처음 기세 좋게 막타를 먹으려고 나선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망한 최후였다.
* * *
-뭐 하냐 재 ㅋㅋㅋㅋ 혼자 튕겨져 나가네 ㅋㅋㅋㅋ
-흑역사 박제네 이건 ㅋㅋㅋㅋㅋ-성지한이 포스로 밀어 버린 거 아님?
-말하는 거 들어 보니까 아닌 거 같은데? 지가 급발진한 듯 ㅋㅋㅋ-마이 갓...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이란 말인가...
-AF팬으로 배런 유니폼도 샀는데... :(
-여신님! 배런은 스카웃 안 해도 되겠다는wwwwww
배런이 자폭해 버리자, 채팅창은 그를 비웃는 채팅으로 가득했다.
-근데 이제 어떻게 잡죠? 내시드 백작 사냥 실패하는 건가요? ㅠㅠ-아쉽다…… 그냥 대승적으로 눈감아 주지.
-그러니까요. 성지한 지가 딜 못 넣었으면서…… 성격 너무 더러워요! 왜 배런한테만 이래?!
-배런 팬들 출몰함? 왜 이렇게 성조기 달고 있는 아이디가 많냐 ㅋㅋㅋ-다 지한 님이 생각이 있으니 저러신 거겠지~!
-아놔~~ 그냥, , , 믿고 따라라~!
그리고 성지한이 5분간 일방적으로 때렸음에도, 내시드 백작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배런이 빠진 빈자리를 잘 커버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성지한은 여유롭게 발을 떼었다.
‘섬천뢰보.’
그러자 그의 신형이 쏜살같이 내시드 백작을 향해 날아갔다.
[너도- 죽여…… 주마ㅡ!]
배런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목소리가 살짝 떨려 오는 내시드 백작.
그는 성지한의 접근을 막아서기 위해, 비늘에서 거대한 가시를 쏘고.
입으로는 열심히 불을 내뿜었지만.
성지한은 이전처럼 가시를 발판 삼아 뛰어다니면서, 내시드 백작을 뛰어넘었다.
“아리엘. 와라.”
[알겠다. 주인.]
반대편에 있던 그림자검을 회수한 성지한은 전력을 펼쳤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암영신결暗影神訣
흑영승천黑影升天
그림자검의 검날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거대 뱀이 몸담고 있는 호수가 검게 물든다.
그것은 그저 색이 변하는 게 아니라, 물질의 형질이 완전히 뒤바뀌는 과정이었다.
호수에 가득했던 수천 톤의 물이 어느새 사라지고.
검은 그림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으- 으으윽-!]
조금 전 수없이 베이고도 별 반응이 없었던 내시드 백작의 음성에서 두려움이 섞였다.
그는 애써 몸을 비틀어서, 그림자 지대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슈우우우-!
그림자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햇빛이 내리쬐는 전장에서 홀로 빛을 집어삼킨 채, 하늘로 승천하는 그림자.
[아-.]
뱀은 말을 채 끝내지 못한 채, 어둠에 완전히 잠기고.
검은 그림자는 더욱 위로 뻗어 나가, 하늘 위로 기둥처럼 우뚝 솟았다.
흑영승천.
그림자임에도 빛을 집어삼키는 역천의 힘은, 이 세상에서 홀로 괴리되어 세계의 법칙을 거슬렀다.
가만히 두면, 구름을 넘어 저 위까지 올라갈 것만 같았지만.
‘……지금 힘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스르르르-
그림자 기둥은 언제 있었냐는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상대를 세상에서 아예 지워 버리는 암영신결의 절초, 흑영승천.
이것은 암혼와류보다도 더 강력한 초식이었기에, 사실 현재의 성지한이 펼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악마 진영의 강화에, 소피아의 축복이 없었다면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
그렇지만.
‘효과는 그대로군.’
그림자가 사라진 곳에는.
내시드 백작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깔끔하게 소멸해 있었다.
호수의 물은 모두 증발하여 마른 웅덩이처럼 파였고.
내시드 백작은 비늘 하나 남기질 못했다.
그리고.
[내시드 백작을 토벌했습니다.]
성지한에게 바로, 토벌 보상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