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07화>
* * *
봉황시.
등급은 비록 A급이지만, 실제 창으로 사용했을 때의 성능은 S급을 웃도는 아이템.
거기에 비록 5번의 기회밖에 없다지만, 투사할 때는 더욱 강력한 힘을 내뿜기까지 했다.
등급을 매기자면, SS급에 필적할 힘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저 두 혼이 싸우면서, 봉황시가 강화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SS급을 넘어, SSS급의 힘을 노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아이템 자체의 성능으론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성지한의 힘이 곁들어진다면, SSS급의 위력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SSS급이면, 이 이면 세계의 존재에게 타격을 줄 수 있겠지.’
성지한이 뒤집어쓴 ‘공허의 장막’ 아이템 설명에서는.
SS등급 이하의 공격은 피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SSS급의 공격은 당한단 말이겠지.
물론 공허의 장막 특성만 그런 거고, 저 상대에게는 공격이 안 통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시도는 해 봐야지.’
이대로 잡힐 수는 없었으니까.
[네놈…… 가짜 주제에 어떻게 그 힘까지?]
[얌전히 흡수되라. 망령이여.]
화르르르!
백염이 더욱 강력하게 타오르고, 봉황시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한계에 다다르자.
‘지금이다.’
성지한은 장막 안에서 창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은신이 풀리며, 이면 세계에 있던 로브의 존재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 어떻게 네가 여길…….”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성지한.
로브의 존재가 서 있던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지체하지 않고 창을 던졌다.
로브의 존재가 있던 곳이 아닌, 하늘을 향해.
무명신공無名神功
천뢰신결天雷神訣
천주심판天主審判
치이이익……!
창을 던진 성지한의 오른손이 새까맣게 타올랐다.
화상은 순식간에 윗팔까지 번져, 신경을 모조리 불살랐다.
배틀넷 커넥터를 통해 접속하지 않은 성지한에게, 극렬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성공했군.’
통증에 익숙한 그는, 얼굴을 찡그리기보다는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른 하늘에 원형의 구멍이 뚫리고.
그 안에, 새하얀빛이 가득한 공간이 드러났다.
[끄, 끄끄……! 허튼 짓을!]
블랙 핸드가 황급히 성지한의 눈앞에 나타나, 그를 쥐려고 했다.
일단은 잡기만 하면 된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손이 그에게 닿기도 전에.
번쩍!
하늘의 공간에서 빛이 한 차례 점멸하더니, 그대로 강철의 손이 순백의 빛무리에 잠겼다.
가까이서 보기에는 그저 빛에 잠겼을 뿐이지만.
멀리서 보면,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에 완전히 파묻힌 블랙 핸드.
‘됐다.’
천뢰신결의 무공 중에서도, 절초에 속하는 천주심판.
하늘에서 빛의 창을 소환하는 이 무공은, 마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는 으뜸이었다.
사실 실버인 지금 수준에서는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절초였지만.
소피아의 버프에 더불어, 봉황시가 강화된 덕분에 팔 하나를 날려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었다.
슈우우우-!
블랙 핸드의 강철의 몸뚱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럴 수가…….”
거기서, 이면세계에서 보았던 로브의 존재가 튀어나왔다.
검은 로브는 빛이 옮겨붙었는지 제 몸을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로브에서 미지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거기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나왔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킬 더 킹이 운용했던 혼의 무리가 무분별하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믿지 못할 광경에, 별안간 검은 로브가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
“넌 왕 따위가 아니구나! 그래…… 왕이 아니야!”
이내 로브가 모두 불타오르자.
그의 존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튀어나온 혼들이 서로 뭉쳐 모였다.
그것은 곧 다리가 되고, 몸통이 되고, 팔을 만들어.
수많은 혼이 뭉친, 군집체가 되었다.
사지와 몸뚱아리는 모두 있지만.
머리만이 없는, 군집체가.
‘로브는…… 힘을 억제하는 수단이었나?’
성지한은 상대를 보고 침음을 흘렸다.
유령이 뭉친 상대의 크기는 엄청났다.
거대한 발은 금방이라도 성벽을 무너뜨릴 것 같았고, 머리 없는 목은 하늘에 닿았다.
차원이 다른 스케일.
이건, 종말의 괴수 베히모스보다도 더 큰 것 같았다.
[하하하! 여기서, ‘머리’가 될 존재를 발견하다니!]
진면목을 드러낸 상대의 가슴팍에 거대한 붉은 입술이 떠오르며.
성지한을 향해 즐거운 포효를 날렸다.
그러자 남아 있던 북쪽의 성벽이 일제히 가루가 되고.
성지한을 제외한 주변의 존재는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자연재해와도 같은, 압도적인 힘.
이 정도면 저번 생의 성지한이라고 해도 이기지 못할 상대였다.
그때.
갑자기 세상이 멈추며.
[배틀넷 시스템에서 이상을 감지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죽은 별’의 성좌가 부정한 방법을 통해 게임 내에 잠입했습니다.]
[추방 절차에 들어갑니다.]
‘저게 성좌라고?’
상대를 ‘죽은 별’의 성좌로 규명한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성지한은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별의 주인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성좌급이라기엔 약해 보이는데.’
지금까지 보았던 몬스터 중에서는 가장 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좌라는 칭호를 달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이는 유령의 군집체.
‘저게 전력은 아니겠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죽은 별의 성좌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몸을 이룬 유령은 멀리서 볼 때는 그냥 연기가 뭉친 것에 불과했지만.
이를 자세히 지켜보니, 왕관을 쓴 유령들이 모두 그로테스크하게 섞여서 절규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킬 더 킹.
왕의 혼을 모아서, 자신의 몸뚱이로 만들어 버린 건가.
‘우주적 규모의 언데드 군단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다르군.’
사지와 몸통 전신이 다 왕의 유령이 뭉쳐서 생성된 죽은 별의 성좌.
하지만, 맨 위 쪽은 사정이 달랐다.
목 중간 부위에서 뚝 끊긴 채, 머리가 만들어지질 않았으니까.
성지한은 그걸 보자, 조금 전 성좌가 한 말이 생각났다.
‘……설마 저기서 나보고 머리를 하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저기엔 끼고 싶지 않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시스템은 본격적으로 성좌를 추방하고 있었다.
펑!
아무리 성좌라고 해도, 시스템에는 대항할 수 없는 것일까.
유령으로 이뤄진 왼팔이 그대로 날아간다.
그래도 세상은 멈추었지만, 몸통에 위치한 입술은 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인지 활발하게 움직였다.
[아. 알았어. 갈게. 간다고! 근데 가기 전에 쟤한테 한마디만 할게!]
펑! 펑!
그러자 그 말이 시스템을 자극한 것인지.
아까 보다 더 빠르게 두 다리가 날아갔다.
하늘까지 닿던 거대한 성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몸통과 오른팔만 남은 상대.
[아, 거참…… 빈틈 보인 시스템 니가 잘못한 거지! 왜 나한테 이래?]
세상 모든 도둑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몸이 부서지는데도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는 죽은 별의 성좌.
성지한은 정체가 드러났음에도 경박하기만 한 죽은 별의 성좌에게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저딴 놈도 성좌가 되는구나.’
펑! 펑! 펑!
오른팔도 사라지고, 성좌의 몸통도 마구 축소된다.
어느새 입술과 그 부위만 남은 죽은 별의 성좌는.
갑자기 입에서 퉤 하고 무언가를 뱉어 내었다.
[아. 알았어. 이놈 줄게. 그러니까 쟤랑 대화 조금만 나누자. 응?]
그가 내뱉은 건, 조금 전 죽은 별의 성좌에게 순종하던 정복자의 혼이었다.
그러자 잠시, 시스템의 추방 절차가 멈췄다.
[성좌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플레이어 성지한에게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성좌의 이야기를 들을 시, 구원받은 정복자의 혼에게서 막대한 보상을 얻을 것입니다.]
* 시스템의 정신 보호를 통해, 상대가 가할 수 있는 정신 오염은 완벽하게 차단됩니다.
* 정복자의 혼은 죽은 별의 성좌의 목을 구성하는 핵심 영혼입니다. 그의 힘이 크게 약화될 것입니다.
* 플레이어 성지한이 이야기를 들을 시, 배틀넷 시스템 차원에서도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집니다.
평소와는 조금 톤이 다른 시스템 메시지였다.
어째 느낌이 웬만해서는 이야기를 들어 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정복자의 혼을 성좌에게서 풀어 주는 게 중요한 건가.’
목을 구성할 정도면, 그래도 나름 한가락 하는 왕이었나 보군.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 우리 머리. 대단한데? 바로 제안을 승낙했어?”
죽은 별의 성좌는 성지한 쪽을 향해 입을 현란하게 놀렸다.
“할 이야기가 뭐지?”
“머리! 나랑 하나가 되자! 너 머리 해! 나 가슴 할게! 천뢰의 힘을 지닌 네가 합류한다면, 우리는 완전해질 거야!”
“싫은데.”
“잘 생각해 봐! 너, 성좌가 될 수 있다고! 그것도 우주에서 손꼽히게 강력한 별인 ‘죽은 별’의 성좌가! 우리가 합치면, 모든 걸 평등하게 만들 수 있어!”
성좌는 무슨.
성지한은 유령 무리의 머리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됐으니까 가라.”
“아니. 성좌 뭔 줄 몰라? 이게 얼마나 대단한데…… 어휴. 거참!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별의 주인으로! 떵떵거리면서!”
“너같이 시끄러운 놈이랑 영원히 살라고? 지옥이군.”
“그 지옥의 왕이 되는 거라니까! 하. 그래. 아직은 낯설 거야. 맞어. 우린 너무 친해지지 못했지? 자. 그럼 통성명부터 할까? 너 이름이 뭐니? 아 맞아. 내 이름부터 소개해야겠지, 이런 건? 그래. 음…….”
정신없이 입술을 놀리는 죽은 별의 성좌.
“이 세계에서는…… 칼 마르크스와 레닌이 나랑 사상이 비슷하구나! 좋아. 난 칼 마르크스 레닌이야! 너는 특별히 칼레인이라고 불러도 돼! 와. 애칭을 허락한 건 네가 처음이야! 영광이지?”
진짜 말 많은 미친놈이군.
성지한은 절대 저놈이랑은 합체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자. 다 들었으니까 꺼져.”
“응? 왜? 머리야. 합체 안 할 거야?”
성지한은 대꾸도 하기 싫어서, 그냥 가볍게 중지를 올렸다.
그러자 입술은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그 제스처는…… 이 세계에서 너랑 합체하고 싶다는 뜻으로 쓰이는 거잖아?! 짜아식~ 본심은 역시 나랑 같이 있고 싶었구나? 자. 입 안으로 들어올래?”
쩌어억.
칼레인이 입술을 벌리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진짜 대화가 안 통하는 상대다.
“이제 이야기 다 들었으니까, 쟤 좀 쫓아내지?”
성지한이 그리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스템의 추방 절차가 시작되었다.
펑! 펑! 펑!
입술 주변의 몸통이 모조리 날아가고.
붉은 입술도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아. 아파아파! 갈게. 간다고!”
시스템의 공세에 견디지 못한 입술은 부르르 떨며, 성지한에게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날렸다.
“머리야! 다음에 꼭 보러 올게! 내가 어떻게든 너 찾으러 온다!”
[죽은 별의 성좌에게 강력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죽은 별의 성좌에게 이 세계로의 접근을 불허합니다.]
그 말에 대항하듯 배틀넷 시스템 메시지가 떴지만.
“어디 막아 봐라! 머리는! 내가! 꼭 가질 거니까!”
칼레인은 집착이 가득 들어간 한마디를 남기며 사라졌다.
그리고 멈췄던 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내가…… 진짜 풀린 건가?]
성좌가 입으로 뱉어 낸 정복자의 혼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