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08화>
* * *
[정말…… 그놈에게서의 연결이 끊겼구나.]
정복자의 혼은 감격한 얼굴로 자신의 영혼체를 매만졌다.
[고맙다. 정말로 고맙다! 드디어 소멸할 수 있겠어!]
죽은 별의 성좌와 함께했던 나날이 그렇게 끔찍했던 걸까.
그는 풀리자마자, 바로 스스로의 혼을 소멸시키려 들었다.
몸이 순식간에 완전히 투명해지며 사라지려는 정복자의 혼.
하지만.
[아. 보상…… 그래. 줘야지! 다 줘야지!]
그에게 죽더라도 보상을 주고 죽으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는지, 스스로의 소멸을 멈췄다.
[근데 그놈한테 오염된 부분이 너무 많군…….]
정복자의 혼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몸 안에 손을 이리저리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가슴께에 손을 집어넣고는, 새하얀 불꽃을 꺼냈다.
[저게 자네가 쓰던 무긴가. 그래…… 내 봉황시구나.]
천뢰신결의 절초 ‘천주심판’의 매개체가 되어, 완전히 새카맣게 타오른 채 땅바닥에 꽂힌 봉황시.
5번의 투사 기회가 사라져서, 이제는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 된 봉황시에 정복자의 혼이 다가갔다.
[최초의 칸이 명한다. 봉황이여. 이에 깃들지어다.]
화르르륵……!
아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셈인지, 불타오른 봉황시에 새하얀 불길이 감돌았다.
하나, 불길이 거세질수록 봉황시는 오히려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아니,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커진 봉황시는.
‘깃발…… 인가?’
창끝에 이루어진 봉황이 그려진 깃발로 변했다.
기를 이루는 천은, 새하얀 불꽃으로 이루어진 채.
봉황시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기존의 것보다 몇 배는 강렬한 열기를 머금었다.
[봉황기鳳凰旗. 이게 오염된 내가 줄 수 있는 전부구나. 고마운 구원자여.]
그러며 몸이 순식간에 투명해지는 정복자의 혼 옆에서.
이를 탐탁지않게 지켜보던 게임 내 정복자의 혼이 한마디 했다.
[네놈. 아무리 그래도 봉황기를 어떻게 줄 수 있단 말인가…… 봉황의 후예로서 저것은 영원히 품고 있어야 하거늘!]
[네가 거기 들어가 봐라. 구원만 해 준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이다.]
[하!]
[그럼…… 드디어 소멸이구나! 하하하! 고맙다! 고마워!]
뭐가 그리 급한 건지.
정복자의 혼은 봉황기를 주고는,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소멸되는 와중에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정복자의 혼.
그는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성지한에게 한마디 충고를 했다.
[절대…… 그놈이랑 엮이지 마라. 그 어떤 감언이설을 내뱉더라도, 절대로…… 가지 마라.]
“그럴 생각 전혀 없습니다.”
[그 생각, 죽더라도 변치 말아야 한다. 죽은 별. 그곳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곳이니까.]
스으으으-
정복자의 혼은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특수 맵에서 치러진 실버 승급전의 끝을 알리는 소멸이었다.
[플레이어 성지한이 특수 보스 ‘블랙 핸드’를 제압했습니다.]
[북쪽 팀의 승리로, 게임이 곧 종료됩니다.]
한편.
이 결과를 두고, 중계진 측에서는 난리가 났다.
* * *
조금 전.
=어…… 어떻게 된 일이죠? 크리스토프! 성도 사라졌어요! 해설을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저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한 달 전 브론즈 승급전 때도 그런 말씀을 들은 것 같군요! 해설자가 그러시면 월급 못 받을지도 몰라요!
=하하! 성 때문에 잘리게 생겼네요. 하지만 저 말고도 다른 해설자들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들도 성의 중계를 맡는다면, 해고당하게 되겠죠!
블랙 핸드가 사라진 데 이어, 성지한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진 걸 두고 중계진은 영문을 몰라 했다.
이면 세계 안까지는 중계가 되지 않았기에, 그저 텅 빈 공간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쪽은…….
=아, 어느새 배런과 왕린만 남았습니다!
=역시 물량 공세에는 장사 없군요.
=자, 그럼 남쪽도 봤으니 다시 북쪽으로 가 볼까요?
남쪽의 전장.
성벽 위가 언데드에게 완전히 점령당한 채, 배런과 왕린만이 살아남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언데드 부대에게서 버티고는 있었지만.
중계진은 그 치열한 사투를 잠깐 보여 주고는, 바로 카메라의 포커스를 옮겼다.
=성, 어디로 갔는지를 도통 모르겠네요! 둘 다 사라져서 뭐 하는 거죠?
=그러고 보니 성은 개인 채널을 운용했죠! 지금도 틀고 있던데, 그리로 잠시 화면을 옮겨 보겠습니다! 아……!
성지한의 채널 화면으로라도 중계를 하려던 캐스터는, 여기서 뜬 화면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튜토리얼에서는 시청이 불가능한 장면입니다.]
전투 게임 배틀넷.
여기서는 온갖 잔인한 장면이 펼쳐지더라도, 단 한 번도 시청 불가가 뜬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가 뜨다니…….
=크리스토프. 이런 메시지는 처음 아닌가요? 본 적 있으십니까?
=글쎄요…… 저도 처음 보는 광경이군요.
=그 대답도 이제 슬슬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하하! 그래도 사장님이 이건 봐주시지 않을까요? 오늘 정말 평소와는 다른 장면이 많이 연출되는군요!
방송 사고나 다름없는 상황.
캐스터는 이 상황을 넘기기 위해, 크리스토프의 고용안정을 걱정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오. 성이 다시 나타납니다!
=어 근데, 창을 하늘로 던지는군요?!
급작스레 나타난 성지한이 창을 하늘에 던지고.
그것은 곧 거대한 빛의 창이 되어 블랙 핸드의 손을 꿰뚫어 버리자.
=성!! 지!! 한!! 상대를 찢어버립니다!!
=성!! 미쳤습니다. 그는 미쳤어요! 배틀넷, 밸런스 조절을 더 해야겠는데요?!
=마치 하늘에서 심판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왜 실버 승급전에 있는지 의아할 정도네요!!
캐스터와 해설은 이때다 싶어 목이 나가도록 샤우팅을 내질렀다.
하늘에서 내리꽂는 빛의 창은 그만큼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용이 있었다.
그리고 블랙 핸드가 사라지며, 로브의 존재가 튀어나오자.
화면이 급히 꺼지며, 그 위에 새하얀 메시지만 올라왔다.
[튜토리얼에서는 시청이 불가능한 장면입니다.]
=……크리스토프? 이게 뭐죠? 해설 가능하십니까?
=몰라요! 확실히 모릅니다! 이거 아는 사람 대신 여기 데려오세요!
=아, 아쉽게도 아무도 없을 것 같군요!
죽은 별의 성좌, 칼레인의 모습은 그렇게 아무도 보질 못한 채 어두운 화면만이 송출될 뿐이었다.
…….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남쪽으로도 중계 화면이 안 넘어갑니다!
=아예 멈췄어요! 이거 어마어마한 방송 사고가 터졌네요!
=이거 물론 저희 잘못 아닙니다! 배틀넷 잘못이에요!
=우주적 하이퍼 테크놀로지도 실수를 범하는군요!
캐스터와 해설자가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플레이어 성지한이 특수 보스 ‘블랙 핸드’를 제압했습니다.]
[북쪽 팀의 승리로, 게임이 곧 종료됩니다.]
어두운 화면에서 두 메시지가 뜨더니.
게임이 끝이 나 버렸다.
=아니…… 이대로 끝이라고요?
=아, 그런 것 같습니다. 종료라고 하네요!
캐스터와 해설자도 영문을 모른 채 끝나 버린 게임.
지금껏 수많은 TOP 100 승급전을 중계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방송 사고라면 지난달에 치러진, 성지한의 TOP 100 승급전 정도일까.
하지만 그때는 화면만 어두워졌을 뿐, 이렇게 시청이 불가능하다고 뜨지는 않았는데…….
=승급전이 이대로 끝이라니…… 왜죠?
=대체 어떻게 성이 블랙 핸드를 제압한 겁니까?!
=크리스토프,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떻게 해요!
해설을 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의문을 제기하는 오늘의 게임이었다.
난리가 난 건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성지한이 뭘 한 건데?
-모르겠음. 나 성지한 채널 통해서 승급전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계속 시청 불가라고 뜨더라.
-방송 사고 이거 항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디에 하시려고요??
-ESPN에요.
-걔들이 뭔 잘못임 딱 봐도 배틀넷 문제구만 ㅋㅋㅋㅋ
방송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 갑론을박하던 시청자들은.
성지한이 천주심판을 사용하고 난 후, 또 시청불가가 뜨고 게임이 끝나자 야단법석이 되었다.
-뭐야. 끝났어?
-진짜 이렇게 끝? 성지한 우승? 또 우승이냐?
-당연히 우승이지. 아까 하늘의 창 못 봄? 미친 괴물이야ㅋㅋㅋㅋ 대체 그런 걸 실버가 어떻게 쓰냐?
-아ㅏㅏㅏㅏㅏㅏㅏ!! 배틀넷 대체 뭐야. 밸런스 조절한다며! 아니 전기도 안 통하는데 0번 볼 수 있게 해 주는 놈들이 밸런스를 이따구로 조정해?!
-이것도 또한 성지한 님의 위엄이겠지요……
-그저 믿고 따라야 하거늘. 쯧쯧…… 제한성 모르세요? 제발 한국인이면 성지한 찍읍시다!
-근데 윗님 아이디가 ‘대기길마 이하연’인데…… HOXY…….
“그래 길마다! 내가 길마! 대기 길드 마스턴데 오너님 안 찍고 전 재산 날린 길마라고!”
“아…… 아가씨. 그쯤 하시죠.”
분노의 타이핑을 치려던 이하연을 임가영이 황급히 말렸다.
“아아…… 내가 미쳤지…… 오너님만 믿을걸. 왜 또 눈이 돌아가서…….”
이하연은 키보드 앞에서 얼굴을 파묻은 채, 눈물까지 글썽였다.
지금까지 성지한이 알려 준 정답만 따라갔어도, 날린 돈 죄다 복구하고 오히려 부자가 되었을 텐데.
제대로 따르질 않아서 이게 뭔 꼴인가.
“왜 생각을 해서! 그냥 따르면 되는데! 왜 생각을 하는 거야, 이하연!”
‘그러니까요.’ 임가영은 이하연 앞에 있는 키보드를 멀리 치우며 그렇게 생각했다.
꼭 돈을 날리고 나서야, 정답을 안다.
임가영은 절망한 이하연을 보며, 비록 자기는 반대로 베팅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차라리 잘됐어.’
아가씨는 역시 도박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이렇게 전 재산을 탕진하기는 했지만, 성지한에게서 대기 길드 마스터로 중하게 쓰이고 있으니까.
그냥 그쪽 일만 열심히 하면, 지금 날린 돈도 그리 오래지 않아 다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서, 사람이 건실하게 살면…….
[금일 배틀넷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게임 내적인 오류로 인해, 공정한 베팅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배틀넷 베팅 시스템을 통해, 이번 게임에 베팅한 사람들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플레이어 성지한에게 베팅을 건 케이스는 그대로 배당하되, 다른 플레이어에게 베팅한 인원들에게는 걸었던 GP를 환급합니다.]
“……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이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야.
보상을 해 준다고?
“역시. 배틀넷……! 그래! 살다보면 실수가 있을 순 있지! 그래도 이렇게 실수를 만회하면 되잖아!”
“와. 성지한한테 건 걸 주면 GP 손해 엄청날 텐데…….”
“내 돈 아니야! 상관없어!”
죽다 살아난 이하연은 임가영이 치운 키보드를 다시 가지고 왔다.
-으아ㅏㅏㅏㅏㅏㅏ!! ㅠㅠㅠㅠㅠ 배틀넷!! 싸랑해요!!
-배틀넷은 신이야! 배틀넷은 신이야! 배틀넷은 신이야!
-진짜 보상 들어왔네? 미쳤다 ㅋㅋㅋㅋㅋ
-이게 바로 하이퍼 테크놀로지!!! 갓겜의 표본!!!!
-와... 오늘 게임 여러모로 대박이네.
“난…… 역시 틀리지 않았어!”
“아뇨. 틀렸어요. 지금까지 왕창 틀렸어요. 아가씨. 배틀넷이 한 번 살려 준 거니까 이제 그만하십시오.”
“아니. 이건 계속 하라는 계시야……!”
눈이 돌아간 이하연을 보고 임가영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오늘 보상 받아 봤자, 어차피 전 재산이 0으로 수렴할 게 조금 뒤로 미뤄진 거나 마찬가지인데.
‘에휴. 나라도 벌어야겠다.’
어쩔 수 없지.
하반꿀이라도 계속 빨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임가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 *
한편 성지한은.
[금일 배틀넷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한 보상이 플레이어 ‘성지한’에게 주어집니다.]
성좌가 잠입했던 게 큰일은 큰일이었는지.
성지한은 평소 게임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보상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