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41화>
“후우…….”
한참을 흥분하던 하유리는 이내 어질어질해졌는지 머리를 붙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유리야! 괜찮아?”
“응, 언니…… 너무 신났나 봐.”
“으이그, 정말!”
“삼촌…… 힐 한 번 해 드리는 게 어때?”
“그래야겠네.”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복 마법 3종 세트를 시전해 주었다.
“힐. 그레이트 힐. 리제네레이션.”
클래스가 올 포 원으로 변환되어서 새로운 회복 마법은 못 배워도, 기존에 있던 건 써먹을 수 있었기에 사용한 치료 마법이었다.
하유리는 몸에 활력이 돋는 걸 느끼고는 눈을 반짝였다.
“이거 세아 님 트레이닝할 때 받는 3종 세트죠? 와~ 오늘 포스에 치료 마법에! 채널에서 본 걸 다 체험했어!”
“그래도 무리하진 마시고요.”
“네네!”
성지한은 병실의 시계를 힐끗 보았다.
8시 반.
이제 슬슬 배틀넷에 접속해야 할 때였다.
‘이번엔 서바이벌 맵에 걸릴 것 같은데.’
엘프에게 세계수의 잎을 주입당한 후, 지금껏 서바이벌 맵이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한 번쯤은 나올 때도 됐지.
‘이번 게임에서 세계수의 잎을 얻는다면, 하유리가 감정해 낼 수도 있겠어.’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세계수의 잎사귀.
이걸 게임 속 엘프가 빼낼 때를 포착해 탈취하고 돌아온다면, 바로 하유리에게 감정을 받을 수 있겠지.
‘그럼 집에 돌아가기보다는, 여기서 게임을 치르는 게 낫겠군.’
“지금 게임 접속할 건데, 갔다 와서 혹시 아이템 하나 감정 가능할까요?”
“엥? 삼촌, 여기서 게임하게?”
“그…… 성지한 선수. 게임 끝나면 시간이 늦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무조건 감정해 드릴게요! 어차피 저 방송 볼 거라 안 잘 거거든요?!”
하연주는 몸이 다 낫지 않은 동생이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걱정스러운 기색이었지만.
하유리는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성지한에게 얼른 다녀오라고 했다.
“저, 나는 뭐 하지…….”
“아까처럼 하연주 선수랑 얘기하고 있어. 조언을 들어도 좋고.”
“……그래도 돼요?”
“응. 물론이지.”
하연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윤세아도 냉큼 성지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삼촌. 천천히 하다 와!”
성지한은 피식 웃고는 아카리 쪽을 향해 다가갔다.
“잠깐 쉬고 있어.”
툭.
점혈을 짚자, 스르르 눈을 감는 아카리.
아직 완전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럼 다녀올게.”
휘이이잉-
아리엘을 회수하고, 게임에 접속하는 성지한.
그가 사라지자, 하유리는 자신의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언니. 부탁해.”
“……그래.”
매니저는 가방을 뒤지더니, 빔 프로젝터를 꺼냈다.
VIP병실 벽면에 가득 찬 화면.
그걸 본 하연주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저기…… TV 있는데 왜 빔 프로젝터를 쏴?”
“화면이 작잖아. 지한 님 방송은 큰 화면에서 봐야지…… 어! 시작하겠다. 언니, 불 좀 꺼 줄 수 있어?”
“너어는 정말…… 하아.”
얘가 성지한의 팬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중증인 줄은 몰랐다.
하연주는 한숨을 푹 쉬면서도.
‘쉬라고 해도 들을 애가 아니지.’
불을 끄러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디, 나도 보자.”
“좋아 언니. 입덕시켜 줄게!”
“뭔 입덕…… 성지한 선수가 아이돌이니?”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 앉았다.
* ? * ? *
[이번 미션은 서바이벌입니다.]
[‘실험 구역’에 들어섭니다.]
게임에 접속한 성지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의 주변 환경은 저번 게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존이 바뀌었군.’
저번엔 붉은빛의 벽에 갇혀 있었다면, 이곳은 녹음이 우거진 숲속.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생존 확률이 가장 높은 그린 존이었다.
“오~ 성지한 선수다!”
“오늘 정말 대단했습니다! 러시아를 이길 때 캬……!”
“아…… 나 3경기 MVP 하연주 걸었는데! 성지한 님이 MVP 쓸어 가시면 어떻게 해요!”
성지한이 소환되자 그린 존의 플레이어들이 신나게 떠들었다.
사실 그들 입장에선 서바이벌에서 성지한이 같은 존에 있다는 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지만, 러시아전의 흥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여기 서바이벌 맵 맞음? 분위기 훈훈하누-어차피 게임은 글렀고 슈퍼스타나 구경하자는 생각인 거지ㅋㅋㅋ-크... 오늘 러시아전 진짜 지렸다. 리그 1승이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이제부터 연승 가즈아!
-당연 연승 각이지. 그놈의 러시아 워리어들도 압살해 버렸는데 솔직히 다른 나라도 이길 만하지 않냐?
-일본 중국이 좀 세서ㄷㄷ... 적어도 대만은 이길 듯.
-검왕 있었으면 둘이 쌍두마차로 미국이랑도 비볐을 텐데ㅜㅜ-그 새끼 이야긴 아닥 좀 ㅡㅡ게임 이야기보다는 오늘 러시아전 이야기를 꽃피우는 시청자들.
거기에 최소한도 1만 GP의 후원도 심심찮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이디를 밝혔던 하유리였다.
[‘Downglass’가 10,000GP를 후원했습니다.]
[러시아전 승리 축하드려요!]
[‘만렙일등이’가 10,000GP를 후원했습니다.]
[오늘도 1등 사수!]
…….
-1만 GP도 ㅈㄴ 터지네 ㄷㄷ
-미쳤다; 러시아전 뽕이 크긴 크네ㅋㅋㅋㅋ최소한도 후원이 천만 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르륵 뜨는 후원 메시지.
“후원 감사합니다.”
성지한은 후원 메시지에 간단히 답하며 생각했다.
‘10만 GP로 늘려야겠는데?’
길드 창설 이후, 돈은 이제 넘치는 수준.
괜히 게임하다가 후원 메시지 뜨는 데 대답하느니, 아예 한도를 확 늘리는 게 낫겠어.
그러는 사이, 100명의 플레이어가 전부 소환되며 게임이 시작됐다.
[게임이 시작합니다.]
‘엘프가 자길 찾아오라고 했는데, 존이 달라졌네.’ 레드 존일 때야 포탈을 역으로 타고 엘프한테 갈 수 있었지만, 그린 존의 경우에는 실마리가 없었다.
성지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 포함, 10명의 플레이어가 숲속에 모여 있는 상황.
‘일단 킬부터 챙기자.’
배틀넷 연속 1등 기록은 계속 유지해야 하니까.
성지한은 이클립스를 소환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러시아전의 감동이 싹 가라앉은 플레이어들은 대항은 포기한 채 이곳저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튀어!”
“사방으로 흩어집시다!”
플레이어들 간의 간격은 꽤 떨어져 있었기에,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면 그래도 몇 명은 살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처리하자.”
성지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으으으-
도망치는 플레이어들의 그림자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푹! 푹!
순식간에 급소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는 플레이어들.
9명의 플레이어가 거의 동시에 죽어 나갔다.
-역시 순삭이쥬?
-조금 전에 러시아 대표팀도 박살 낸 성지한인데, 골드가 도망가 봤자 뭐 껌이지.
이제는 시청자들도 심드렁하게 받아들일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성지한은 9킬을 가볍게 챙기고는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마치 정글처럼, 큰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 속.
하나 숲의 중심부 쪽에만, 나무가 없었다.
‘저리로 가 봐야겠군.’
성지한은 하늘 위에 뜬 채로 전방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 아래에는, 그린 존 다른 지역에 걸린 플레이어들이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괜히 더 킬을 먹었다가는 게임만 빨리 끝나.’
9킬 챙겼으면 1등은 확정.
성지한은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시한 채 숲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숲의 중심부는 이상하게도 한 그루의 나무도 보이질 않았는데, 그 한가운데엔 타원형의 거대한 갈색 구체가 있었다.
[세계수의 씨앗이군. 주변 나무의 생명력을 흡수하고 있어.]
‘왜 다른 곳과는 달리 나무가 없나 했더니.’ 주변의 나무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면서, 자신이 지닌 생명력을 고스란히 세계수의 씨앗에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안에 저번의 레드존이 있는 건가.’
세계수의 씨앗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레드존에다가 그 외부의 빈 공간까지 다 들어갈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공간의 왜곡이 있는 듯했다.
성지한은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씨앗에 접근했다.
그러자.
우우우웅-!
성지한의 가슴팍에 새겨졌던 나뭇잎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빛은 씨앗의 껍질에 닿더니.
화아아악……!
껍질을 초록색의 포탈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미성이 울려 퍼졌다.
-드디어 왔구나. 방송을 끄고 들어와라.
‘방송에 집착하는군. 왜 저러지?’
[글세. 배틀튜브에 기록이 남는 걸 걱정하는 건가? 하지만, 그런다 해도 배틀넷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진 않을 텐데.]
‘내가 방송을 켜고 있는지, 저쪽에서 확인할 방도가 있나?’
[어떤 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엘프라면 가능할 거다.]
‘그렇다면 일단 끄고 가야겠군.’
성지한은 일단 장단을 맞춰 주기로 마음먹었다.
“시청자 여러분. 잠시 방송 끄겠습니다.”
-?????????
-아니 갑자기 왜????
삑-
설정에서 방송을 끈 성지한은 포탈에 들어섰다.
* ? * ? *
“드디어 왔구나. 상위 실험체야.”
엘프는 성지한을 반겼다.
저번처럼 엘프어를 하고 있었지만, 성지한은 세계수의 잎을 흡수한 이후로 그 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리로 오거라.”
그 목소리에, 성지한의 가슴팍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러고는, 몸뚱이가 저절로 움직이려 했다.
‘일단 내버려 둘까.’
이 정도의 강제 제어력이면, 언제든지 원래대로 원상 복구할 수 있는 수준.
성지한은 완전히 엘프에게 넘어간 척 연기를 했다.
“역시 또 봐도 대단한 육체야…….”
주물럭. 주물럭.
성지한의 몸을 만지고, 피를 뽑아 맛본 엘프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최상위의 이레귤러로 평가받을지도 모르겠어!”
슈우우-!
엘프는 초록색의 포탈을 다시 한번 소환했다.
“따라와.”
성지한은 멍한 얼굴로 그녀를 뒤따랐다.
번쩍. 번쩍!
뭐가 그리 이동할 곳이 많은지 다섯 번이나 포탈을 갈아탄 엘프.
포탈에 들어설 때마다 나오는 공간은, 원래 엘프가 있던 장소와 거의 똑같았다.
그냥 똑같은 장소를 계속 이동하는 느낌.
‘언제까지 이동하는 거야?’
이러다가 게임 끝나면 어쩌나, 오히려 성지한이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었을 때.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포탈 너머의 공간은,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본 광경은 엘프 특유의 이미지에 걸맞은 숲속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거대한 실험관이 기둥처럼 깔린, 순백의 실험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접선했습니다.
-상위 실험체, 수거를 시작합니다.
두 눈에 렌즈를 낀 바람의 정령이 성지한의 몸을 떠돌아다니면서 엘프어를 내뱉었다.
[여긴…… 뭐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지이이잉-
바람의 정령의 렌즈에 붉은빛이 퍼져 나오고.
성지한의 몸을 스캔하던 빛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현재 장비로는 분석할 수 없는 개체입니다.
-최상위 개체입니다. 시급히 연구소로 보내야 합니다.
정령의 말에, 엘프가 희열에 떨었다.
“최상위……!? 설마 했는데 진짜 최상위일 줄이야!”
-배틀넷 시스템이 감지하기까지 2분.
-세계수의 잎사귀를 회수해 주십시오. 차원 포탈을 열겠습니다.
“알았어.”
스으윽.
엘프가 황급히 성지한의 가슴에 손을 댔다.
부우우웅-
그러자 초록빛이 강하게 뻗어 나오며, 성지한의 가슴에서 잎사귀가 나오려고 했지만.
쑤욱.
“세, 세계수이시여…….”
빠져나오려던 세계수의 잎이, 갑자기 다시 성지한의 몸으로 들어갔다.
‘이건 또 왜 안 나가?’
갑자기 말썽이네.
성지한은 엘프가 허겁지겁 자신의 가슴에 다시 손을 대자.
자기도 내부에서 호응했다.
부우우웅-!
“아. 나왔다!”
잎사귀가 나오자, 엘프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마지막 순간에 웬 트러블이 생기나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끝났으니 이제 이 실험체를 보내기만 하면 임무 완수다.
그녀가 세계수의 잎사귀를 다시 잘 보관하려고 할 때.
서걱!
“……어?”
갑자기, 그녀의 오른팔이 잘렸다.
그리고 오른손에서 쥐고 있던 잎사귀는.
“인벤토리.”
성지한이 가볍게 빼앗아,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넣은 상태였다.
“너. 너…….”
“고맙다, 야. 안 그래도 이거 필요했는데.”
성지한은 씩 웃으며, 설정에서 방송을 다시 켰다.
-어. 뭐야. 여기는?
-엥…… 여기 서바이벌 맵 맞아요?
시청자들이 갑자기 바뀐 환경에 의아해할 때쯤.
[배틀넷 시스템에서 이상을 감지합니다.]
배틀튜브를 틀자마자.
성지한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긴급히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