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55화>
[신왕좌에 도달하여, 뇌신을 알현하십시오.]
[5명의 플레이어가 살아남거나, 신왕좌에 도달한 플레이어가 있을 경우 게임이 종료됩니다.]
쿠르르르!
하늘에서 샛노란빛이 내리쬠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을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중앙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금빛의 왕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지지직-
조금 전에 봤던 드래곤이나 거인의 위용을 완전히 압도하는 거대한 신왕의 의자.
그 의자에는 푸른 스파크가 이리저리 피어오르고 있었다.
‘왜 성좌의 분신이 도망치는지 알 것 같군.’
멀리서 볼 때야, 그저 푸른 스파크가 왕좌에 감돌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가까이 가서 본다면, 저 스파크가 실제론 웬만한 성인보다 훨씬 커다란 굵기의 번개줄기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거기에 그 안에 담긴 힘은 얼마나 강력한지, 저 번개줄기에 스치기만 해도 어지간한 이는 그대로 소멸할 것 같았다.
“머리야. 안 되겠다. 뇌신 졸라 세다.”
[마지막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뇌신…… 여전하군.]
[안 되겠다. 포기다.]
뇌신의 왕좌가 드러나자, 열다섯 정도 남아 있던 플레이어 중 일부가 게임을 줄줄이 포기했다.
저 강력한 전류를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본 것인지, 포기하는 대상 중에는 거대 개체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어라. 10명 남았네?”
그리고 그렇게 플레이어가 10명만 남자.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히히. 그냥 할까? 나보다 5명이 먼저 뒤질 거 같은데 말이지.”
칼레인은 주변을 스윽 돌아보며 그리 말했다.
신왕좌에 도달하는 조건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는 5인 안에만 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좋아. 머리야. 네가 남는다면 나도 남을게!”
“그냥 가라.”
“안 돼, 안 돼! 널 지켜 줘야 하잖아!”
그러면서 칼레인은 어둠으로 가려진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죽을 거 같으면, 언제든지 이리로 들어와! 합체하자!”
못 살 거 같아도 그냥 벼락 맞고 죽는 게 낫겠군.
성지한은 호들갑 떠는 칼레인을 무시한 채, 주위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목검을 든 엘프.
저번 실험 구역 때 보았던 엘프와 외모는 똑같이 생겼지만, 머리색이 살짝 차이가 났다.
금발에 앞머리 한 가닥만 초록색으로 뒤바뀌어 있는 그녀는.
성지한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녹색 머리…… 세계수 연합의 하이 엘프군.]
‘하이 엘프?’
[그래. 세계수 직속의 강력한 전사다. 녹색의 머리칼이 진할수록 강한 개체지. 머리가 완전히 녹색인 개체는 거의 성좌급의 힘을 지니고 있다.]
‘세계수가 성좌급 아니었나?’
[아니…… 세계수는 성좌로 묶기에는 워낙 강대한 존재다.]
성지한은 그 말에 실험 구역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배틀넷에 꽤 관여하는 것 같던 ‘녹색의 관리자’.
세계수는 성좌를 넘어서서, 이 게임의 관리자급인 건가.
‘골치 아픈 놈들이야.’
왜 쟤들과 같은 리그가 된 건지…….
성지한은 내심 혀를 차며, 하이 엘프가 들고 있는 목검을 바라보았다.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목검.
저걸 여기서 강탈할 수만 있다면, 검왕에게 써먹기 좋아 보였지만…….
‘일단은 생존이 먼저다.’
지금 당장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성지한을 유심히 쳐다보던 하이 엘프의 입술이 열렸다.
-생명의 기운, 감지했습니다. 프로젝트에 성공하셨군요. 원호하겠습니다.
게임 안 플레이어끼리의 대화라 그런지, 자동으로 번역된 하이 엘프의 언어.
‘……뭐야?’
성지한은 그걸 듣고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생명의 기운이라는 데에서,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저번에 녹색의 관리자가 준 생명의 씨앗과 관련이 있나.’
등급 SSS 아이템 생명의 씨앗.
잔여 능력치 +10을 주었던 그 아이템은, 체내에 이상한 기운을 불어넣어 성지한을 장악하려고 했다.
물론 성지한의 무혼으로 인해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서, 90퍼센트 이상은 방출되고 나머지는 연구용으로 몸 한편에 밀봉된 채 있었지만.
하이 엘프는 무슨 착각을 한 건지, 성지한이 완전히 장악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
‘도와준다니 잘 됐네.’
저리 나오면, 타이밍 봐서 목검이나 빼앗아야겠어.
성지한이 하이 엘프를 향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충성!”
그녀는 차렷 자세로 성지한에게 힘차게 경례했다.
“쟤 왜 저래?”
“그런 게 있다.”
“머리야! 세계수는 안 돼! 쟤네는 나보다 더 악질이라고! 쟤네한테 잡히면 너 전신이 해부돼서 영원히 실험 자료로 쓰인다니까!”
“너도 네가 악질인 건 아는구나.”
“헤헤. 그래도 난 너랑 영원히 함께잖아! 우리 같이 왕들 목 따고 다니자!”
성지한은 질척거리는 칼레인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은 언제까지 여기 있는 거야.
그때.
번쩍! 번쩍!
신왕좌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면서.
어두컴컴하던 바닥에, 새하얀 전류가 피어올랐다.
“아. 시작했네. 머리야, 기억해! 죽을 거 같으면 내 이름을 불러! 언제든 갈 테니!”
그걸 보고 칼레인은 성지한에게 손을 흔들더니 휙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지지지직-!
남아 있는 10명의 플레이어 앞으로, 거대한 뇌전의 길이 생겨났다.
[길을 따라, 신왕좌에 도달하십시오.]
TOP 25 승급전 맵 신왕좌.
게임의 목표는 간단했다.
그저 길을 따라, 신왕좌에 도달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세계에서, ‘뇌신’의 개념을 적출합니다.]
[등급 평가…… 상上.]
[NO. 4212, ‘인류‘에게 벼락은 항거할 수 없는 강렬한 자연 현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번개를 신의 진노라 여기며 두려워하고 숭배했습니다. 자연스레 뇌신은 많은 신화 속에서 신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뇌신의 대표 개념을 불러옵니다…… 제우스, 토르, 인드라가 1차적으로 선별됩니다.]
‘뭐?’ 제우스, 토르, 인드라.
모두 번개를 다루며, 다들 각자의 신화에서 한 끗발 날리던 신들이다.
그런 애들이 왜 지금 여기서 선별이 되는 거야?
성지한이 찝찝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지켜보고 있자니.
[올림푸스의 신왕 ‘제우스’가 수문장으로 뽑힙니다.]
[제우스가 길을 막습니다.]
길을 막아서는 존재로.
터무니없는 것이 나왔다.
* * *
스페이스 리그 TOP 25 승급전 중계.
이건 전 인류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안이었다.
드디어 베일에 숨겨져 있던, 스페이스 리그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었으니까.
=크리스토프. 하와이에서 또 급히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저번 달에도 그랬는데, 성 덕분에 매번 휴가를 반납하게 되는군요!
=와 시청자 숫자가 어마어마하군요. 배틀넷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이런 수치가 다시는 나올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론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또 모르죠. 성이 자기 기록을 경신할지도요!
=하하하. 이런 게임의 캐스터가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저도 오늘은 캐스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해설자가 아는 정보가 없어서, 해설 역할을 못하는 이번 승급전.
크리스토프는 넉살 좋게 웃으면서 자신도 캐스터 역할에 충실하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어…… 뇌신 페널티가…… 사망이라구요?
=아니. 무슨 게임에서 사람을 진짜 죽인답니까!
=성! 이런 게임은 할 필요 없습니다! 빨리 나와야 해요!
화면에서 뇌신 페널티가 공유되자, 중계진은 깜짝 놀랐다.
아니, 무슨 배틀넷 게임에서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와 ㅅㅂ 미친 거 아님? ㄷㄷ
-뭔 페널티가 찐사망이야??
-스페이스 리그로 올라가면 튜토리얼 때랑은 달리 진짜 저런 일 생길 수 있는 건가...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반응도 격렬했다.
무슨 놈의 게임 페널티가 ‘죽음’이 될 수 있어?
대부분이 이를 보면서 게임에서 나오라고 채팅을 쳤지만.
칼레인이 승급전 보상을 말해 주자.
-헐 그런 보상이 있다고?
-저 미친 새끼 말을 믿냐? ㅋㅋㅋㅋㅋㅋ
-성좌의 분신이라는데?
-근데 성좌가 뭐임??
-몰라 지들만 아는 이야기함;
시청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잠시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자, 중계 화면을 통해 정식으로 시스템 보상이 떠올랐다.
[완성된 별의 조각]
-등급 : EX
-‘모든 시험’을 통과한 별의 조각.
-모행성 전체의 배틀넷 게임 난이도를 한 단계 하향합니다.
-모행성에서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가 보다 더 자주 출현합니다.
-아이템 획득 시, 즉시 적용됩니다.
=드, 등급 EX……!
=배틀넷 난이도를 낮춰 준다니! 지구 전역에 적용되는 말도 안 되는 아이템입니다!
EX급의 아이템.
‘완성된 별의 조각’은 지구 전역에 적용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난이도 하향에, 기프트 출현 확률 증가까지.
지구인이라면, 탐낼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성 개인에게는 메리트가 없습니다! 난이도 하향 따위야, 그에겐 솔직히 불필요하지 않나요?
=그렇죠…… 저걸 얻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게임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성지한! 그냥 나오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만…….
-아 형아야 제발 거기서 나와ㅠㅠㅠㅠ 죽으면 끝이라니까!!!!! ㅠㅠㅠㅠ-ㄹㅇ 성지한한테 난이도가 무슨 상관이야. 혼자 다 때려 부수면서!
-그니까! 기프트 ㅅㅂ 더 튀어나오든 말든 뭔 상관임 성지한이 중요하지 -성지한의 영웅적인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세계를 위한 결심이다.
-지한 상 제발 게임 해서 살아남아 주세요 wwww 나도 각성 좀 www -아오 외국인 새끼들 존나 얄밉네 지네 나라 사람 아니라 이거지? ㅡㅡ-성이 안 죽으면 되잖아? 코리안 왜 성 못 믿어?
성지한만 믿고 가는 한국 입장에서야 그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지만.
외국인들은 보상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은근히 성지한이 게임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아. 게임을 그대로 진행하는군요!
=허어…… 이렇게 된 이상. 꼭 5인에 남아야 합니다! 그런데 뇌신의 개념 적출이라니…… 등급 평가 상을 받은 게 불안하군요!
=아, 제우스. 토르. 인드라…… 이들이 왜 나옵니까!
=셋 중, 뭐가 그나마 약하죠?
=글쎄요? 앗, 제, 제우스가 걸립니다!
지지지지직……!
성지한에게로 뻗은 뇌전의 길 위.
전류가 솟구치더니,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
크기는 4, 5미터 정도의 거인.
새하얀 수염에 사자머리를 한 그는.
얼굴 아래의 몸뚱이가 모두 전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
개념 적출로 인해 수문장으로 임명된 그는, 권태로운 눈으로 성지한을 내려다보았다.
“흐음…….”
스윽.
자신의 수염에 손을 가져다 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자가 아니군.”
“뭐?”
나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냐?
스으윽-
제우스는 고개를 살짝 숙여 성지한의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표정을 찡그렸다.
“미소년도 아니야.”
“……그래서?”
“여자도 미소년도 아닌 놈이 나를 불러내다니. 불쾌하구나. 단번에 죽여 주마.”
본능에 충실한 제우스였다.
그는 불쾌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양손을 하늘 위로 들었다.
번쩍! 번쩍!
하늘 위의 구름에서 강렬한 빛이 반짝이자.
‘저걸 기다려 줄 필요야 없지.’
성지한은 선공을 당하기 전에, 봉황기를 꺼내 먼저 출수했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천뢰봉염天雷鳳炎
적뢰포赤雷砲
창끝에 붉은빛의 전류가 피어오르나 싶더니, 적색의 뇌전 한 줄기가 제우스를 향해 광속으로 뻗어 나갔다.
백팔나한진에서 억제되었을 때에 비하면, 훨씬 강렬해진 적뢰.
“허. 나한테 벼락을?”
제우스는 적뢰를 보고는 코웃음을 치며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거대한 적뢰가 몸통을 꿰뚫고 지나가자.
그 안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뭣……!? 이, 이놈…… 이게 대체……!”
제우스는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배를 꿰뚫은 적뢰를 바라보았다.
뇌신인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번개라니!
배에서 생겨난 균열은 빠르게 주변으로 파급되면서, 불길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적뢰에서 파생된 불은 아무리 끄려고 해도 잘 꺼지지가 않아, 순식간에 가슴께까지 올라왔다.
“이익!”
치이이익!
제우스는 황급히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횡으로 잘라 냈다.
그러자 상반신만 뚝 떨어진 채. 하늘 위로 떠오르는 뇌신.
“네놈. 뼛조각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
다른 것도 아닌 뇌전에 당했던 게 더 치욕스러웠던 걸까.
그는 분노한 얼굴로 하늘 위에서 손을 뻗었다.
“아스트라페!”
제우스가 아스트라페를 외치자.
검은 하늘에 원형의 구멍이 뚫리고.
그 안에서, 새하얀빛이 가득한 공간이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성지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이러한 일련의 광경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눈에 익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천주심판?’
천뢰신결의 상승무공 중 하나인 천주심판.
그것과 현재 보이는 광경이 너무나도 흡사했다.
‘그럼 이 다음은……!’
쿠르르르!
하늘의 균열 속에서, 거대한 빛의 창이 나타나 성지한을 그대로 내리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