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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159화 (159/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159화>

이틀 전.

이하연은 배틀넷 베팅 사이트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만 띄운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임가영이 한마디 꺼냈다.

“아가씨. 베팅 안 하십니까? 왜 계속 한 화면만 보고 계세요.”

“아…….”

이하연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다음 날 있을 TOP 100 승급전은 배틀넷 베팅 사이트에서는 가장 큰 대목.

이하연도 승부 예측사답게 이번 대목에 거하게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그런 그녀의 귓가에, 환청처럼 성지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박중독자는 이성으로 안 보여서요.

정확히는 한국에 방문한 소피아가 위장 연애 관계에 대해 걱정하니, 성지한이 명쾌하게 내놓은 답변이었다.

‘에이 씨…… 왜 자꾸 그 말이 생각나는 거야.’

솔직히 자기가 생각해도 베팅 좋아하는 건 사실인지라 그때는 웃으며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말은 가슴속에 계속 찝찝하게 남아 있었다.

‘남자한테 이성 취급조차 못 받은 게 처음이라 그런가? 왜 이러지.’

자신을 도박 중독자라고 칭할 때 봤던 성지한의 무심한 표정이 자꾸만 모니터 화면 위에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소피아가 안심한 표정을 지은 것까지…….

아무리 도박 중독자라고 해도 꼭 그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겠어?

순간 이하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에이. 해야지! 그래, 나 도박 중독잔데! 도박! 도박하자!”

“……갑자기 왜 발끈하십니까?”

“어디 그래. 오너님부터 픽해 볼까? 어…… 근데 없네?”

“그러게요. 레벨 100 달성하신 걸로 들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세아가 승급전이지? 늦게 각성한 세아도 벌써 골드 가려고 하는데, 넌 아직도 왜 실버니?”

“세아처럼 하루 두 번 게임할 수 있으면 저도 50레벨 됐을 겁니다.”

대기만성의 영향으로 어느새 임가영을 추월해 버린 윤세아였다.

“세아도 요즘 상당히 강하던데…… 배당률 왜 이렇게 높지?”

“아무래도 대기만성 기프트 등급이 낮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100배는 예상외군요. 요즘 거의 1등 행진이던데…… 아. 다른 플레이어들 중 유망한 사람이 3명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유망한 사람? 누구?”

“그게…….”

임가영은 미리 준비라도 해 온 양, 상위권 선수 3명을 지목했다.

너무 잘 아는 모습에 이하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도 베팅하니?”

“같은 실버라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기엔 꾼의 냄새가 나는데…….”

“아닙니다. 전 아가씨의 베팅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나랑 반대로 하게?”

“그럼요.”

기다렸다는 듯이 즉답하는 임가영을 쏘아본 이하연은.

그녀가 찍어 준 세 플레이어의 영상을 조금 보다가, 어느 순간 화면을 꺼 버렸다.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원래라면 선수 전력을 분석하면서 누가 이길까 예측해 보는 게 베팅 과정에 있어 제일 재밌는 과정이었는데.

오늘은 뭔가 흥이 안 나고, 시시하기만 했다.

-크리스티안 선수. 이번 TOP 100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목받는 선수인데요, 이 선수는…….

선수 분석 영상의 해설자 코멘트는 들리지도 않고.

자꾸 성지한이 도박 중독자라고 한 것만 생각이 난다.

“에이. 안 볼래.”

“……아가씨?”

“됐어. 세아 기 좀 살려 줄 겸, 세아한테 베팅하려고.”

“세아한테요?”

“응. 천만 원만 넣자.”

틱틱.

그렇게 이하연은 윤세아의 베팅을 마치곤 미련 없이 화면을 꺼 버렸다.

“나 러닝 좀 하고 올게.”

그러면서 운동을 하겠다며 길드 마스터실을 나간 이하연.

임가영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왜 이러시지?’

TOP 100 경기 전날에는 양주병을 홀랑 까면서 세상에 다시없을 분석가로 빙의하던 이하연이.

그렇게 환장하는 영상을 세상 재미없단 표정으로 보다가 대충 베팅하고 운동이나 한다고?

아가씨를 모시면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에 임가영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다음 날.

그녀와 같이 성지한의 TOP 25 경기를 보았을 때,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 안 돼……!”

성지한이 제우스의 빛의 창에 내리찍혔을 때.

이하연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두 눈에는 눈물마저 머금은 상태였다.

“아. 진짜! 걱정했잖아!”

그러면서 성지한이 멀쩡한 채 살아 돌아오니 소리를 빽 지르면서 다시 자리에 앉는 이하연.

임가영은 그녀가 울고 웃는 광경을 지켜보며, 쎄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성지한 님 신경 쓰여서 베팅을 안 한 거였어……?’

아가씨가 남자한테 관심을 가지다니!

그렇게 일말의 가능성을 엿본 임가영은 바로 돌직구를 날렸다.

“아가씨. 성지한 님 좋아하세요?”

“무, 무슨 소리야! 갑자기!”

“도박에 시들해지셔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지한 님에게 도박 중독자 소리 들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거기에 성지한 님 죽으려고 하니까 펑펑 우시고.”

“야! 뭘 펑펑 울어! 놀, 놀라서 그런 거지. 오너님 돌아가시면 우리 길드도 끝이잖아!”

“아하~ 그렇구나~?”

“……너. 입조심해. 쓸데없는 소리 하면 바로 버프 박탈이야!”

“네네. 알겠습니다.”

임가영은 그리 대답하면서, 확신을 가졌다.

저렇게 오버하는 거 보니까.

‘아가씨 진짜 마음 있나 보네?’

이러면 보디가드 입장에서, 어떻게든 도와드려야지.

임가영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감돌았다.

*   *   *

한편.

성지한은 이하연에게 문자를 받았다.

-오너님~ 저 기프트 육성 등급이 올랐어요. 근데 설명이 추가된 게 있어서, 와서 한번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흠…… 설명이 추가되었다고?’

-네. 곧 내려가겠습니다.

성지한은 답 문자를 보내며,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ㅇ0ㅇ서포팅 기프트에 이런 효과가 있었어?

-신기한 게 많누

-탐색에 던전핵 찾는 기능이 있었음! 성지한 말이 사실이었어 ㄷㄷ-육성? 이거 길드 마스터 되면 효율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음?

난이도 하향으로 인해, 뜻밖으로 득을 본 건 서포팅 기프트를 지닌 이들이었다.

원래 서포팅 기프트는 대부분 부실한 설명을 띠고 있었는데,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기프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추가 설명을 해 주는 경우가 많아졌던 것이다.

‘이러면 하연 씨도 자기 능력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겠군.’

지금도 이하연은 자신의 육성 능력이 길드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건 추상적으로 알고 있는 거고, 이번처럼 시스템에서 명확히 기능을 알려 주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대기 길드의 놀라운 육성 효과에, 이하연이 기여하는 바는 90퍼센트 이상.

성지한이 한 거라고는, 처음에 길드 포인트를 성장률에 올인한 것과 나중에 봉황기로 길드 레벨을 올린 것밖에 없었다.

‘이성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건 아닌가 싶네.’

이하연이 막상 이성 가문이랑 사이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서 제대로 대우해 준다고 하고 데려가면, 혹시 몰랐다.

‘지분을 좀 더 주더라도 붙잡아야겠어.’

이하연이 이번에 등급이 한 번 더 올랐다면, SS급 육성을 지니게 된 상황.

저번 생에 A급일 때도 세계 최고 길드의 육성군 길드 마스터를 했던 그녀였는데.

두 등급이나 더 올랐으니, 이건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다.

“아. 삼촌. 길드 가려고?”

“어. 하연 씨 기프트 등급이 올랐다네.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래? 나도 같이 가.”

“너도?”

“응. 하연 언니 좀 전에 나한테 전화해서, 나 때문에 10억 벌었다고. 큰절 올리겠다고 했거든. 절 좀 받아 보자. 히히.”

“하연 씨가…… 돈을 땄다고?”

“어. 의리로 천만 원 넣어 줬대 나한테.”

“아. 의리. 어쩐지.”

실력으로 땄을 리가 없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윤세아와 같이 길드로 내려갔다.

“어머. 우리 세아 님도 같이 오셨어요?”

윤세아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반기는 이하연.

“자자. 절 받으세요~!”

“에이 뭘 진짜 하시나.”

진짜로 절하려는 걸 윤세아가 말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언니. 그럼 내 덕분에 그간 날린 거 다 복구한 거야?”

“아니? 한참 멀었는데?”

“……천만 원의 100배면 10억 아냐? 10억인데, 한참?”

“응. 겨우 그거로 어떻게 다 복구하니?”

“……언니는 진짜 베팅 그만두는 게 나을 거 같아.”

이하연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자, 윤세아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 기프트 말인데요…….”

이하연은 기프트를 공개했다.

[기프트 - 육성 (등급 SS)]

-서포팅 기프트입니다. 다른 플레이어가 빠르게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10명의 플레이어에게 집중 성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집중 성장을 사용할 시, 기존의 성장률 보너스가 3배로 증가합니다.

-기프트 육성을 지닌 플레이어가 길드 마스터가 될 시, 길드 성장률 보너스를 크게 증가시킵니다.

* 육성 등급이 SS급입니다. 길드 성장률 보너스를 기존의 3배로 증폭시키며, 경험치 보너스를 60퍼센트 추가합니다.

기존 S급일 때보다 집중 성장을 쓸 수 있는 사람 숫자가 3명에서 10명으로 증가하고, 성장률 보너스도 2배에서 3배 증가한 기프트.

이것만 봐도 등급 업그레이드의 효과가 확실했지만.

문제의 문구는 뒤에 있었다.

길드의 성장률 증가 효과를 이하연이 얼마나 보조하는지, 추가된 기프트 설명이 수치상으로 확실히 드러내 준 것이다.

“어?! 하연 언니 기프트가 우리 길드 육성 효과 다 도맡은 거였네?”

“허어…… 아가씨의 능력이 이 정도였습니까?”

이하연의 육성이 보이는 효과에 두 사람이 놀랄 때.

“에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오너님. 어떻게 하죠?”

정작 이하연은 자기의 기여도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대신.

“저처럼 다른 육성을 지닌 플레이어도 다 이 설명이 뜰 텐데. 경쟁 길드가 늘어나면 저희 입지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이하연 씨만큼 강력한 육성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는 없을 겁니다. 사람 빠지면, 임대료 낮춰서 받으면 되죠.”

“그럼 이번에 실적 안 좋아져도 저 탓하시면 안 돼요?”

“당연하죠. 하연 씨 기프트가 길드에 기여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데요. 실적 마이너스 떠도 괜찮습니다.”

“후후. 그런가요? 이렇게 수치로 보니 좋긴 하네요. 내 기프트…… 쓸 만했네요.”

그러면서 더 이상의 코멘트는 하지 않는 이하연.

오히려 성지한이 그녀에게 권유할 정도였다.

“하연 씨. 하연 씨 능력이 대기 길드를 완전히 지탱하고 있는데, 지분 20퍼센트는 너무 작은 것 같군요. 더 드리겠습니다.”

“지분요? 20퍼센트로도 충분히 괜찮은데요…….”

“아뇨. 오히려 지금까지 제가 능력껏 대우를 못해 드린 것 같군요. 제 지분 중 50퍼센트 드릴게요.”

“그럼 제가 대기 길드의 오너가 돼 버리는데요?”

기존 20퍼센트에 50퍼센트를 더 받으면 길드 주인이 바뀌어 버리는 상황.

이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오너님은 오너님 자리에 계셔야죠.”

“그래도 능력껏 대우를 해야죠.”

“저 그럼 20퍼센트만 더 주세요. 더 이상은 안 바랄게요.”

지분 40퍼센트로 있겠다고?

‘참 욕심도 없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여 지분을 넘겨주었다.

“하연 언니 좀 더 받지. 내가 아쉽네.”

“난 이 정도면 충분해.”

“길드 GP 팍팍 쓰세요. 40퍼센트는 하연 씨 거니까요. 베팅할 때 쓰셔도 뭐라 안 하겠습니다.”

“어떻게 길드 공금으로 베팅을 해요! 저 도박 안 할 거예요, 이제!”

“……그럴 리가?!”

제로가 도박을 안 한다고?

해가 서쪽에서 뜰 소리다.

“진짜예요!”

“어제도 했잖아요. 세아한테.”

“그, 그건 의리로…….”

“아. 네. 의리로…… 베팅하신 거죠.”

성지한이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하연이 울컥하는 얼굴로 홱- 뒤를 돌아봤다.

“가영아. 이제부터 나 감시해. 네가 증인이 되어 줘. 나 진짜 베팅 접을 거야!”

“……정말이십니까? 24시간 붙어 있을 겁니다? 매일 계정에 제가 직접 접속해서 베팅했나 안 했나 체크할 겁니다.”

“해! 하라고! 감시해!”

임가영은 그 말에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성지한에게 고개를 숙였다.

“성지한 님. 아가씨께서 덕분에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제 덕이라니, 왜죠?”

“너…… 더 이상 말하지 마.”

“후후. 네. 지금은 말고, 진짜 접으면 말씀드리죠. 개과천선의 계기에 대해서.”

“아! 그거 아니라니깐!”

성지한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도박 접는 거랑 나랑 뭔 상관이지?’

그러면서도, 제로인 이하연이 진짜 도박을 접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제로가 베팅을 접을 리가…… 그래도 잠깐이나마 정신 차리면 세아한테 전염시키진 않겠군.’

윤세아한테만 베팅 안 가르치면 되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이번 서포팅 기프트의 범람을 보고는, 일본 쪽에 생각이 미쳤다.

‘하연 씨가 확실히 남기로 했으니. 이토 시즈루를 견제할 방책을 쓸 수 있게 됐군.’

지금까지는 이렇게 수치상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게 없어서 사용하기가 애매했던 견제책을 쓸 때가 왔다.

“하연 씨.”

“네?”

“방송 한번 찍으실까요?”

성지한은 이참에 그 비책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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