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60화>
일본 도쿄의 대저택.
“성가시다니까. 정말.”
이토 시즈루는 성지한이 초래한 세상의 변화에 미간을 찌푸렸다.
‘내 기프트 등급이라도 올랐으면 모르겠는데…….’
시즈루의 기프트는 SSS급 ‘편집’.
본래는 S급에서 시작했지만, 수많은 아카식 페이지를 사용해서 겨우 달성해 낸 SSS 등급이었다.
이번에 서포팅 기프트가 대거 업그레이드되는 걸 보곤 혹시나 SSS급에서 한 등급 더 오르는 건 아닌가 기대를 했지만.
편집의 등급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천대받던 서포팅 기프트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돼서, 아카식 페이지의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는 돈만 더 안겨 주면 규제를 피해서 아카식 페이지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
시즈루를 견제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여러 곳과 연계하여 SZ상사의 아카식 페이지 매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이런 견제책이 전 세계에 모두 먹히진 않았다.
지구 반대편에서야 돈만 더 안겨 주면, 시즈루가 남을 세뇌하든 말든 상관없었으니까.
평소보다 지출이 커지긴 했어도, 아카식 페이지의 공급 수량 자체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서포팅 기프트의 쓸모가 발견되어서 수요가 늘면, 가격이 폭등할 텐데.’
지금이야 감당 가능한 가격이라지만, 여기서 아카식 페이지의 가격이 더 크게 오른다면 아무리 천하의 이토 시즈루라고 해도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속속들이 밝혀지는 서포팅 기프트의 쓸모가 크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시즈루는 시장의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던 때.
[여러분~ 저 ‘육성’ SS급 됐어요~]
성지한의 연인이라고 알려진 대기 길드 마스터가 올린 영상이 배틀 튜브의 최신 인기 영상으로 올라왔다.
‘그 여자가 육성을 지니고 있었어?!’ 제아무리 성지한이라고 해도 그냥 여자 친구를 길드 마스터로 임명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육성이라는 서포팅 기프트가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기 길드에 잠입했을 때 그녀도 세뇌해 버릴걸!
시즈루는 그렇게 아쉬워하면서 방송을 틀었고.
[여러분 안녕하세요~ 대기 길드 마스터 이하연입니다. 이번에 서포팅 기프트가 드러난 김에, 꿀팁 한번 풀어 보려고 해요~]
이하연이 꿀팁을 푼다는 이야기에,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길마눈나 육성 가지고 있었음? ㄷㄷ
-어쩐지 여친이라고 길드 마스터 시키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ㅋㅋㅋ-육성 SS급이면 원래 S급이었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아! 원래는 육성 A급이었는데, 우리 오빠…… 아니 오너님께서 아카식 페이지를 주신 덕분에 S로 올랐죠!]
-ㅎㄷㄷ 아카식 페이지로 서포팅 기프트 강화가 되는구나???
-아카식 페이지 3천억짜리 아님?? 우리횽 배포 미쳤넼ㅋㅋㅋ-ㄴㄴ 요즘 더 오름 SZ에서 웃돈 주고 사간대 -SZ 거기 시즈루 거 아님? ㅡㅡ 규제도 소용없네ㅅㅂ
-솔직히 3천억짜리 4천억에 사가면 나라도 팔지ㅋㅋㅋㅋ아카식 페이지 이야기가 나오니, SZ 상사 이야기도 같이 딸려 나왔다.
대중들도 알 만큼, 규제책은 가격만 올렸을 뿐 큰 효과가 없는 상황.
하지만 이하연은 여기서 폭탄을 던졌다.
[자자. 여러분, 주목! 이게 제 기프트 효과랍니다!]
육성 기프트의 효과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ㅇ0ㅇ성장률 뭐임??
-대기 길드 뭐 괴물들만 모아 뒀어? 길마에 오너에 이번에 우승한 윤세아까지 다들 왜 저래?
-아니... 저 성장률이면 그냥 괴물 육성소 아님?
-이거 공개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이 정도 능력이면 어떤 분이 나올 것 같은데...
빠바바밤!
[R.E.Gates가 100,000GP를 후원했습니다.]
[대기 길드 마스터께 정식으로 스카웃 제의를 드립니다. 계약금 10억 달러에 AF 지분 2퍼센트를 드리겠습니다.]
[앗. 아아! 저한테도 게이츠 씨의 영입 제안이……!]
이하연의 육성 효과는 길드 관계자라면 모두 눈이 돌아갈 만한 것이었다.
A급일 때도 아메리칸 퍼스트의 2군 길드장이었던 그녀였는데.
SS급이 된 지금은, 훨씬 더 높은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로버트 게이츠는 이하연의 기프트가 공개되자마자 거액의 제안을 바로 날렸지만.
[저 대기 길드에 뼈를 묻기로 해서요. 제안은 고맙지만 죄송합니다!]
-와 ㅋㅋㅋㅋ 저걸 단칼에 거절하네 단호박인줄
-대기 길드가 뭐가 그리 좋다고;
-길마 지분도 꽤 있을걸?
-대기 길드 지분보다 AF 지분 2퍼센트가 훨씬 비쌀 텐데ㅋㅋㅋㅋ
[대신 이렇게 좋은 제안을 해 주셨으니, 팁을 드릴게요. 아카식 페이지로 육성 능력자를 키우신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답니다. S급만 돼도 집중 성장 3명까지 돼요~]
이하연은 친절하게 다른 육성 능력자를 키워 보라고 어드바이스를 했다.
-저런 방법 다 가르쳐 주면 대기 길드 입지만 줄어드는 거 아닌가?
-ㅇㅇ; 다른 길드들도 자체적으로 육성 길드 운용할 거 같은데 -아니지 어차피 대기 길드에서 받을 수 있는 인원은 한정적임. 최고 선수들은 더 높은 성장률 때문에 대기 길드 갈걸?
-그래도 저렇게 팁 알려 주는 건 좀ㅠㅠ
시청자들은 왜 이하연이 굳이 육성을 키우라고 푸쉬하냐 의아해했지만.
이를 본 시즈루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아카식 페이지 가격이 오르겠는데…….’
아니, 가격이 오르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살 수라도 있었지, 이제는 구입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아. 그리고 왜 제가 이런 팁을 알려 드리냐고 안타까워하시는 분이 많으신데요.]
방송 속에서 이하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너님이 아카식 페이지 규제가 제대로 안 들어간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셔서요. 가격 좀 올려 보려고 한 거랍니다. 바다 건너 어느 분이, 이거 구하기 힘들어지시라고요.]
타깃은 아카식 페이지. 그리고 자신임을 명시한 그녀.
시즈루는 입술을 깨물더니, 핸드폰을 들었다.
“아카식 페이지. 2배를 주더라도, 지금 당장 매입해.”
-아, 알겠습니다. 시즈루 님……!
시즈루의 명령에 따라 SZ상사의 일원은 아카식 페이지를 매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상대 정부의 규제가 까다로워졌습니다. 거기에 가격이 폭등해서, 이미 계약되어 있던 물건도 상대방이 계약 파기를 선언하며 물건을 인도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돈을 더 주겠다고 하는데도, 그냥 자국 길드에 넘기겠다고……!
-배틀넷 관리국에서 불법 거래 신고를 듣고 왔다면서, 아카식 페이지를 압수해 갔습니다. 그간 그렇게 뇌물을 먹였던 곳인데!
-아카식 페이지 가격이 근래 2배 이상 폭등해서 저희 제안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안 그래도 요즘 매물이 없어서, 가격이 천장을 뚫고 치솟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진짜…….”
각지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들으며, 시즈루는 이를 갈았다.
배틀넷과 관련된 일에는 민첩하기 그지없는 각국 정부의 행태에 시즈루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후우…….”
이내 숨을 고르면서, 현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 보았다.
‘지금 같은 규모로 복종과 매료를 유지할 수는 없겠어.’
아무리 편집이 SSS급이라 한들, 지금처럼 대규모의 매료를 걸어 유지하는 건 아카식 페이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아카식 페이지의 계속된 공급이 없다면, 어느 한순간 매료가 모조리 깨져 버릴 수도 있었으니.
시즈루는 지금 장악한 사람들을 파악하며, 중요 인물과 아닌 케이스를 나누었다.
원을 그리면서 가장 중요한 그룹과, 그다음 그룹 등.
5단계의 분류로 매료시킨 인원을 정리한 그녀는.
‘그리고 내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가장 가운데 있는 원의 중심에, 검왕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설령 일본 정재계의 인사들의 매료가 모조리 풀린다 한들, 검왕 이토 류헤이만큼은 꼭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일본에서 입지가 흔들려도, 검왕의 주인으로서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의 두 눈이 스산한 빛을 띠었다.
‘모두가 날 배신한다고 해도, 너만은 내 것이어야 해. 검왕.’
생각난 김에, 매료를 다시 한번 공고하게 해야겠다.
그녀는 가정부에게 손수 과일과 음료를 받아, 대저택 안에 위치한 검왕의 훈련장으로 찾아갔다.
휭. 휭!
쌍검, 간장과 막야가 하늘을 날고.
그 뒤를, 훈련장 바닥에 놓인 검이 일제히 따라 나간다.
검사의 극의, 이기어검을 두 개가 아닌 백검百劍으로 펼치는 검왕.
두 눈을 감은 채 훈련에 매진하는 그에게서는, 한 자루 검과 같이 날카로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류헤이. 저 왔어요.”
시즈루는 훈련장 한편에 놓인 책상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말했지만.
“시즈루. 잠깐 기다려 주겠나? 백검을 완성할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검왕은 시즈루만 보면 목을 매던 평소와는 달리,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훈련에 완전히 매진한 모습.
‘성지한의 영상을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훈련을 열심히 하더니…… 벌써 성취가 있을 거 같다고?’
과연 워리어 1위.
성지한이 무서운 기세로 추격해 오고 있지만, 원래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워리어는 명실상부 검왕이다.
그는 이제 곧 있을 한일전에서 자신을 맹렬히 추격해 오는 성지한을 짓밟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럼, 다시 훈련하겠네.”
그렇게 백검이 허공에 떠오르고.
이리저리 움직인 지 1시간째.
그런 믿음직한 모습에도,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즈루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아니…… 내가 옆에 있는데, 이렇게 훈련만 한다고?’
원래라면 옆에서 가만히 훈련을 지켜보면 집중이 안 된다면서 시즈루를 껴안아 오던 검왕이었는데.
지금은 예상보다도 너무 심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도 평소라면 검왕이 집중하는 걸 보며, 열심히 하네 하고 넘어갈 시즈루였지만.
‘……안 되겠어.’
이하연의 방송으로 인해 아카식 페이지의 가격이 요동치는 이 상황에서.
일본에서 장악력을 꽤 잃을 것이 확실시된 시즈루로서는 눈앞의 검왕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훈련에만 매진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스르륵.
겉옷 한 겹을 벗고는.
“류헤이. 저 좀 봐요.”
“……시즈루?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 않느냐.”
“아뇨. 전 못 기다리겠어요.”
매료를 다시 한번, 증폭시켰다.
“하…….”
검왕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백검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왜 그걸 못 기다려서……!
하지만.
그런 그의 아쉬움은, 시즈루의 새하얀 살결을 보자 점차 사라져 갔다.
“혼 좀 나야겠어. 시즈루.”
“네. 빨리 혼내 주세요.”
그는 어느덧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
조금 전의 깨달음을 잊어 버리고 말았다.
완벽하게 매료에 한 번 더 빠져 버린 모습이었다.
* * *
이하연의 방송 이후.
집으로 돌아온 성지한은 뇌신과 관련된 시스템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후원 성좌 ‘뇌신’이 당신에게 적합한 후원 방안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뭘 후원할지 숙고에 들어간다고 하더니, 참 오래도 걸렸다.
[뇌신이 당신에게 레어 스탯, ‘업화業火’를 부여합니다.]
“……?”
성지한은 눈을 깜빡였다.
지옥의 불길, 업화.
뇌신의 이름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이걸 왜 줘?
[뇌신이 화신火神에게 막대한 대가를 치러서 얻어 온 능력이라고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화신에게 얻어 온 거라며, 생색까지 내는 뇌신.
‘설마, 적뢰와 관련이 있나?’
봉황염과 섞어 만들어 낸 적뢰.
기존의 천뢰신결을 한층 더 강화시켜 준 그 힘을 보고, 뇌신이 관심을 보이는 것 같더라니.
아예 이쪽으로 가라고 밀어 주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그런 성지한의 예상대로.
[성좌 뇌신이 당신에게 의뢰합니다. 뇌인과 업화를 섞어 적뢰를 완성하십시오.]
뇌신은 적뢰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적뢰를 완성할 시, 유니크 스탯 ‘적뢰’를 비롯하여 막대한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의뢰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적뢰를 완성만 하면 선물 보따리를 주겠다는 뇌신.
하지만 성지한은 그걸 보고는 단칼에 거절했다.
“싫은데?”
[뇌신이 당신의 대답에 당황합니다.]
[뇌신이 당신이 무엄하다며 분노합니다.]
[그가 당장 후원을 중단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습니다.]
성지한은 시스템 메시지에 뜬 뇌신의 협박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무엄은 무슨. 마음에 안 들면 애초에 후원하지 말든가.”
[뇌신이 이런 맹랑한 플레이어는 처음 본다며 분개합니다.]
“화났나? 화났으면 가시던지?”
휙. 휙.
파리 쫓듯 허공에 손짓을 하는 성지한.
그는 성좌 상대로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적뢰는 내가 완성하는 거지, 네가 부여하는 게 아니잖아. 근데 보상으로 적뢰를 준다고? 어디서 사기를 치고 있어?”
상대가 원하는 것이 적뢰란 걸 안 이상, 이 거래의 갑은 자신임을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성지한의 판단은 정확했다.
[뇌신이 무엇을 원하냐고 물어봅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뇌신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