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63화>
=자. 2020년 배틀넷 하반기 시즌, 동아시아 리그도 거의 끝이 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한민국 대표팀. 올해 상당히 힘들었죠. 검왕의 일본행 파동으로 인해 쭉 연패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성지한 선수가 혜성처럼 등장하기 전까지는 희망이 없어 보였죠.
=그렇습니다. 다행히 성지한 선수 덕에 1승은 챙겼습니다만…….
=그 이후로도 중국과 일본. 모두 배틀넷 강국과 맞붙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일본에는…… 검왕이 있죠.
하반기 시즌 2차 한일전.
8.15때처럼 상황이 암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체적인 예상은 패배 쪽에 기우는 분위기였다.
=성지한과 검왕. 두 선수가 격돌하여 전장에서 이탈하게 된다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음…… 일본 대표팀은 상당히 밸런스가 좋은 팀입니다. 어느 특정 포지션이 강하기보다는 모두가 A급 이상이라고 평가받죠. 다만 저희에 비해 원거리 전력은 확실히 밀리니까 맵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 같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원거리 전력 S, 전사진 C, 서포터 A~B 정도로 평가받는다면.
일본은 모든 전력이 안정적으로 A~A+ 정도는 되는 전력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맵이라면 일본의 우위.
트레인 맵처럼 원거리에서 승부를 보는 맵이라면 한국의 우위가 점쳐졌다.
물론, 이건 성지한과 검왕의 격돌에서 승부가 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고.
=만약 성지한과 검왕, 두 사람의 전투에서 승패가 갈리면…….
=그러면 당연히 이긴 쪽이, 게임을 가져가겠죠!
둘 중 한 명이 승리한다면, 게임의 승패는 당연히 거기서 끝이 날 터.
해설진은 괜찮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성지한 선수…… 상대는 세계 최강의 전사입니다. 도전자의 입장으로, 편한 마음으로 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맞습니다! 성지한 선수는 아직 플래티넘이에요. 다이아까지 성장한다면, 결국 세계 최강은 우리 성지한 선수가 될 겁니다. 그러니 시청자분들께서도 승패와 상관없이, 아낌없는 응원 부탁드립니다!
-아니 해설자들 왜 벌써 진 거처럼 이야기하고 있냐 ㅋㅋㅋㅋ-그니까 검왕한테 베팅한 거 아냐?
-뭔 소리야! 객관적인 데이터가 밀리니 저리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ㅡㅡ-아 지한 오빠 지는 거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는데……. ㅠㅠㅠㅠ-중국도 성지한은 못 꺾었는데 ㅠㅠ 제발 버티기만 해 주라!
해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성지한의 승리 가능성은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상황.
“성지한 선수.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제가 열심히 서포트할게요.”
“그래. 마음 편히 해라. 승패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하연주나 노영준 감독도 성지한의 부담을 덜어 주고자 그리 말했지만.
“아뇨. 한 대 먹여야죠.”
“그, 그래?”
막상 당사자인 성지한은, 검왕에게 유효타를 먹일 생각이 가득했다.
[주인, 정말 그거…… 할 건가?]
‘어, 이제는 거부 반응이 많이 사라졌더만.’ 성지한은 그러며 5일 전을 떠올렸다.
세계수의 가지를 구현해 볼 것인지, 아니면 적뢰를 키울 것인지 고민하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목검을 구현하자.’
지금 수준에서 적뢰를 발전시킨다 한들, 검왕을 제압하고 나뭇잎을 먹이긴 힘든 일.
차라리 목검을 흉내 내서, 이거로 검왕을 한 대 치는 걸 목표로 한 것이다.
이번 한일전이 끝나면, 다음 경기는 내년에 잡혀 있었으니까.
그 전에 안정적인 적뢰 완성보다는, 무리해서라도 목검 구현에 힘쓰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은 생명의 기운과 그림자 힘을 무작정 섞어 보았지만.
[으으…… 제, 제발 멈추어다오. 주인.]
생명의 기운이 들어갈 때마다, 아리엘의 저항이 심상치 않았다.
[이건…… 정말 아닌 거 같다. 쉐도우 엘프의 근간이 흔들리는 기분이야. 차라리 생명의 기운만 운용해 보지 그래? 맞아. 목검 하나 가지고 실험하는 게 어떻겠는가.]
나중에는 자기 말고 다른 검에다가 해 보라고 권유하는 아리엘.
성지한은 한 번 그녀의 말에 따라 목검을 구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봤지만.
‘음, 세계수의 가지 같지 않아. 목검은 탈락이다.’
[그, 그럼 생명의 기운을 내뿜을 때 나오는 씨앗 같은 게 나온다고 했지? 그걸 키워 보자!]
어떻게든 생명의 기운과 섞이기 싫어서,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아리엘.
“게임 안이라 그런지, 잘 자라진 않는데.”
하지만 생명의 기운에서 내뿜는 초록빛의 씨앗은 발아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 외에도 여러 방법을 써먹어 보았지만 모두 성지한의 성에 차질 않았다.
“안 되겠다. 좀만 고생해라.”
결국 성지한은 아리엘에게 그 한마디를 던지곤, 융합을 지속했고.
[으…… 으으으…….]
5일간의 시도를 통해, 어느 정도 섞는 데에는 성공했다.
‘섞어도 아직 그 목검 같지는 않지만…… 일단 이거로 싸워 보자.’
[……검왕은 이 행성 최고의 전사라 하지 않았나? 생명의 기운이 들어오면 이클립스의 힘이 약해진다. 어차피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다음 기회에 쓰는 게 어떻겠나.]
어떻게든 생명의 기운을 받기 싫어서 아리엘은 그리 말했지만.
‘괜찮아. 결정적일 때만 기운을 부여하면 되니까.’
성지한은 이번에 써먹을 생각을 굳힌 상태였다.
* * *
=첫 번째 맵은, 사우스게이트입니다.
=시청자분들도 이제는 상당히 익숙하실 겁니다. 이번 하반기 시즌에서 매번 1, 2경기를 도맡아 주는 맵이죠. 저희가 공격이군요.
=예, 일본 대표팀 전사들. 성문을 막아섭니다. 제대로 진형을 짜거나 하지는 않고 있군요.
=어…… 근데 앞 열의 전사들, 각자 무기가 아니라 기다란 못을 들고 있군요…….
사우스게이트의 열린 성문 앞.
스으윽.
일본 전사 열 명이 일제히 시즈루에게 받았던, 희생의 못을 꺼냈을 때.
“그거 하지 마라.”
맨 앞에 서 있던 검왕이 불쾌한 표정으로 이를 제지했다.
“아, 검왕님……!”
“하지만…….”
“이번 게임은 나한테 맡겨라. 내가 버프 없이 짓밟아 버리면 될 것 아니냐?”
시즈루 앞에서는 그녀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세계 1위 전사라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깟 버프 없어도, 저 녀석은 이길 수 있다.’
플래티넘 상대로 새크리파이스까지 사용한다?
검왕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이토 시즈루에게 ‘집착’은 걸렸으되, ‘복종’은 걸리지 않는 검왕은.
때때로 이렇게 돌발 행동을 하곤 했다.
“아, 알겠습니다.”
전사들도 그런 검왕의 마음을 이해하고, 못을 집어넣자.
“그럼 가지.”
스으으윽…….
검왕의 등 뒤에서 청홍의 쌍검, 간장과 막야가 떠올랐다.
“갈라져라.”
검왕이 뒤로 손을 뻗자.
번쩍!
청검 간장과, 홍검 막야의 형상이 서서히 사라지며, 그 대신 청빛과 적빛의 구체가 검왕의 손 앞에 떠올랐다.
“백검百劍.”
검왕이 빛의 구체를 손으로 움켜쥐자.
파아아악……!
청홍의 빛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그의 주변으로 검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청색과 홍색을 띤, 빛의 검 100자루.
=아니, 저것은 백검……! 올해 초 검왕이 한국에 있을 때, MVP 인터뷰한 기억이 나는군요!
=예 저도 기억납니다. 쌍검 간장과 막야를 일백으로 구현하여, 전장을 홀로 지배하겠다고 했죠. 그때만 해도 한국 대표팀이었는데…….
=허허…… 10월 경기 때만 해도 백검의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더니. 하필 저희랑 경기할 때 이걸 보여 주는군요!
슈슈슈슉!
일백의 검이 일제히 한국 대표팀을 향해 날아가고, 그 뒤를 검왕이 따른다.
“앱솔루트 배리어!”
한국 서포터들은 미리 보호막 마법을 전방에 쳐 두었지만.
쩌적……!
보호막은 절대 보호막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검 하나하나가, 절대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는 백검.
‘여기 있다간 다 휩쓸려 죽겠군.’
공격 진영인 한국 진영이 수비 태세인 상황.
성지한은 검왕을 맞이하기 위해, 선두로 나섰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천뢰봉염天雷鳳炎.
적뢰포赤雷砲.
검왕을 향해 번뜩이는 적색 뇌전.
“흥.”
넓게 퍼져 있던 백검이, 순식간에 뭉쳐 이를 막아섰다.
지지지직……!
백검의 반이 순식간에 형태를 잃고 빛으로 사라지자.
“위력은 좀 있구나.”
검왕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손을 한 번 돌렸다.
휘이이이……!
그러자 검이 와해되며 흩어졌던 빛이 스르르 돌며.
하나둘씩, 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꿰뚫리고, 꿰뚫려도 계속 새로 생성되는 검이 적뢰를 막아서고.
“이젠 내가 가마.”
슈웅!
검왕은 빛의 검 하나에 올라타, 성지한에게로 날아왔다.
그의 뒤를 바싹 따라오는 99개의 검.
백검은 검왕의 신체 일부인 것마냥, 자유롭게 그의 컨트롤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성지한의 봉황기가 빛을 번뜩이며 적뢰포를 몇 번 더 발사했지만.
검왕은 어쩔 때는 막고, 어쩔 때는 피하며 성지한과의 거리를 좁혔다.
‘백검 때문에 기존에 보았던 데이터보다 훨씬 강해졌군.’
과연 자신이 성장하고 있을 동안, 검왕도 놀고 있는 건 아니었는가.
성지한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봉황기를 하늘 위로 던졌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천뢰신결天雷神訣.
천주심판天主審判.
지지지직……!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빛의 창.
창의 낙하지점은 정확히 검왕이 진격해 오는 곳이었다.
“잔재주를.”
스르르릉.
검왕이 손가락을 위로 올리자, 백검 중 대다수가 빛의 창을 향해 날아갔다.
=검왕의 백검…… 공수전환이 완벽하군요.
=하나, 성지한이 내보이는 하늘의 창도 위력은 대단합니다. 검왕의 검이 모조리 찢겨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에게 잠시 막혀서일까요? 낙하 속도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검왕의 진격로에 정확하게 떨어질 것 같았던 창은.
검왕의 백검을 수없이 찢어 두긴 했으되, 그의 진로를 막지는 못했다.
푹!
검왕이 이미 지나간 이후에야 땅에 꽂히는 빛의 창.
“네게 첫 패배를 안겨 주마.”
거리를 좁힌 검왕이 그리 말하고.
스르르릉.
부서졌다가 재생된 백검의 끝이, 일제히 성지한을 향했다.
스윽.
성지한이 그걸 보며,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자.
검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내 눈도 못 마주치던 놈이…….”
“여자에 미쳐 딸을 버린 아비가 말이 많군.”
“내게 딸은 없다.”
성지한은 태연하게 그리 지껄이는 검왕을 보며 진심으로 고민했다.
저놈을 세계수의 잎사귀로 갱생시키는 게 맞는 걸까?
아니 갱생이 되긴 할까?
“너, 나중에라도 아버지로 인정받고 싶다면, 시즈루 목 따고 와라. 안 그럼 인정 안 해 줘.”
성지한은 최대한 양보해서, 이 정도 하면 다시 받아 주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이 자식이……!”
그 말에 검왕의 눈이 완전히 돌아갔다.
딸을 버린 이야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더니.
시즈루와 관련된 도발은 즉효였다.
“아무래도 네놈, 한국에 직접 가서 죽여 줘야겠군.”
“말은 잘해요. 꼬우면 진짜 오던가?”
성지한의 비웃음에, 검왕의 두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슈슈슈슉!
백검이 일제히 성지한에게 쏘아지고.
“검해劍海.”
백검의 검기는 말 그대로, 해일처럼 세상을 압도했다.
봉황기는 이미 손을 떠났고, 성지한의 손에는 이클립스밖에 없는 상황.
누가 보더라도, 성지한의 압도적인 열세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성지한은 검의 바다를 보며, 눈을 번뜩였다.
검왕의 백검.
‘바다에 빈틈이 많군.’
위력은 발군이나, 완전치는 못했다.
‘준비해라, 아리엘.’
[아니. 지금 상황에서? 힘을 섞으면 이클립스의 위력은 약해진다. 그럼 저 검의 바다에 파묻힐 텐데?]
물론 검해의 틈새는, 쉐도우 엘프인 아리엘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미세했지만.
무혼을 지닌 성지한은 그 틈새를 파악할 눈과, 파고들 능력이 있었다.
‘다 방법이 있어. 검왕 놈 한 방 먹이러 가자.’
[……그래. 검이 주인을 따라야지.]
아리엘이 반쯤 포기한 상태로 응답했다.
성지한은 싱긋 웃으며, 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무명신공無名神功.
보법步法.
섬천뢰보閃天雷步.
“……!”
전력으로 보법을 사용하여, 검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