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67화>
조금 전.
텔레포트를 써서 대피한 시즈루는 검왕의 인질극을 지켜보며, 총리의 전화를 받았다.
[시즈루 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견을 주시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매료와 복종을 걸어서, 공손하기 이를 데 없는 총리.
시즈루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하아.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준비하고 갈 테니까.”
[직접 가시면, 위험하실 텐데요……!]
“다 방법이 있어요. 그러니 시간만 좀 끌어 줘요.”
[알겠습니다!]
삑.
전화를 끊은 시즈루는 생각했다.
‘이제 매료는 불가능해.’
시즈루의 ‘매료’는 시각에 크게 의존한다.
검왕이 자신의 눈을 찌르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수를 써 보려 했겠지만.
그의 눈이 사라진 이상, 이제 매료를 거는 건 불가능했다.
‘검왕은 포기해야 해.’
시즈루는 빠르게 검왕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물론 그가 독보적인 플레이어긴 하지만, 세상은 넓고 SSS급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들은 계속 생긴다.
검왕이나 성지한, 이쪽은 경계가 심할 테니 제쳐 놓더라도.
미국의 상태창 2개를 지닌 배런이나, 중국의 천마 왕린 등.
톱급으로 클 수 있는 매물은 아직도 여럿 있었다.
한동안 자중하고 있다가, 다시 그런 이들에게 매혹을 걸면 되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이 문제야.’
검왕이 저렇게 일본 국가대표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이 상황이 문제다.
그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진짜 시즈루가 나오지 않으면 선수들을 죽여 버릴 것 같았다.
국가대표 선수들이야, 누가 죽든 말든 사실 그녀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저들이 죽으면 우리 나라가 배틀넷 순위를 유지 못한단 말이지…….’
시즈루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간 쓸모없는 것들.
검왕 하나를 못 이겨서, 죄다 인질이 되고 있나.
‘미국에서 세력을 구축할걸 그랬어.’
그래도 자기 나라가 편해서 일본에서 세력을 구축했다만.
이렇게 선수들 실력이 영 아닌 걸 미리 알았다면, 진작에 미국 건너가서 매혹 걸고 정착했지.
시즈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은, 가서 죽어 주자.’
시즈루는 저택의 지하로 내려갔다.
여러 보안 장치가 겹겹이 걸려 있는 지하 공간.
삑. 삑.
[지문 인식, 성공했습니다.]
[얼굴 인식, 실패했습니다.]
“아.”
검왕한테 얼굴이 깨졌지.
시즈루는 들고 온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서 스스로를 보았다.
이쁘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극히 평범하고 밋밋한 여성의 이목구비가 거울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 진짜 못생겼다.”
시즈루는 과거 자신의 얼굴을 그렇게 평가하면서.
“편집.”
스스로의 얼굴을 다시 바꾸었다.
[얼굴 인식,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지하의 밀실은.
수십 개의 모니터가 띄워져 있고, 거대한 슈퍼컴퓨터가 돌아가고 있어서.
마치 거대한 서버의 관리실 같았다.
그리고 지하 공간의 중앙부에는.
시즈루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유리관 속에 누워 있었다.
“분신…… 만들 때마다 죽네 참.”
시즈루는 그렇게 한탄하며, 유리관의 윗부분을 열었다.
“얘. 빨리 가서 좀 죽어 주렴.”
그러자.
스으윽.
관 속에 있던 시즈루의 분신이 일어났다.
‘쟤 죽으면, 바로 집착 해제한다.’
그러면 검왕도 자신이 죽은 줄 알겠지.
아니, 더 시즈루를 찾아보겠다고 깽판을 칠지도 모르겠지만.
이 지하 공간까지는 오지 못할 거다.
‘당분간 여기 좀 숨어 있자.’
시즈루는 검왕의 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잠시 잠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검왕의 배틀튜브에서, 자신이 보낸 분신이 백검에 의해 일제히 찔리자.
‘됐어.’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집착을 풀자.’
시즈루가 죽고, 그나마 걸렸던 상태이상 ‘집착’이 해제되면.
검왕도 자신이 죽은 줄 알겠지.
완벽한 그림이다.
그녀는 그리 생각하면서 검왕의 상태이상을 이쪽에서 풀려고 손을 뻗었지만.
“어…….”
거기서 전혀 뜻밖의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간장·막야가 지닌 특수 능력, ‘불복하는 자’가 발동합니다.]
[대상이 상태이상 ‘집착’의 해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집착’이 유지됩니다.]
“……말도 안 돼.”
시즈루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푹! 푹!
접근 따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백검이 시즈루의 전신을 꿰뚫고.
세계 최고의 미녀였던 그녀는 끔찍한 모습으로 검에 파묻혀 죽어 갔다.
“부족해.”
하나 백검은 그녀를 단지 찌르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마구 움직이며, 시즈루의 전신을 잔혹하게 잘라 냈다.
-으으…… 극혐인데 이거;
-배틀넷 보면서 저런 거 적응된 줄 알았는데. 이건 쫌…….
-검왕이 사람을 죽였다! 배틀넷 관리국은 당장 검왕의 플레이어 자격을 박탈해라!
-뭘 박탈해! 정당한 복수야 이건!
-아. 근데 이제 시즈루 못 보는 건가요…… 그건 아쉽네.
-아쉽긴 시발 속이 시원하구만 ㅋㅋㅋㅋ-근데 허무하게 죽긴 했다. 매혹 또 거나 싶었는데 ㅋㅋ-저거 진짜 맞긴 하나?
검왕의 배틀튜브에는 시즈루의 죽음을 두고 별별 채팅이 올라왔지만.
어차피 눈이 먼 검왕은 이 메시지를 보지 못했다.
그는 다만.
“이렇게 쉽게…… 믿을 수 없군.”
“검왕! 이제는 인질을 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습니까!”
“기다려라.”
시즈루를 짓이기고 나서도, 그녀의 죽음을 쉽게 믿지 않은 채 상황을 주시했다.
그때.
[상태이상 ‘집착’이 해제됩니다.]
눈이 멀어 시각 대신 청각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오자.
“정말…… 죽었다고?”
그제야 검왕은, 시즈루의 죽음이 진짜인가 싶었다.
일본 선수들을 인질로 잡았다고, 그들 대신 자기가 희생하겠다고?
그럴 여자가 아닌데.
‘시즈루가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내가 죽인 건가…….’
그래도 시스템 메시지가 저리 떴기 때문에.
검왕은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복하는 자’의 특성으로 상태이상 ‘집착’ 해제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불복하시겠습니까?]
간장·막야의 특성, ‘불복하는 자’가 발동하자.
검왕이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가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지.
“불복한다.”
[상태이상 ‘집착’이 유지됩니다.]
[집착의 대상은 ‘이토 시즈루’입니다.]
검왕은 그 메시지를 듣고는, 확신을 지닌 채 입을 열었다.
“시즈루. 분신을 보내 놓고, 숨어 있으면 끝날 줄 알았나? 네가 내게 건 집착…… 잘 유지되고 있구나.”
“그게 무슨……!”
“분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당장 인질을 풀어 주십시오!”
배틀넷 센터 건너편.
일본 측의 사람들이, 검왕의 말을 믿지 못하고 항의했지만.
“후후…….”
스으으윽.
검왕의 발아래에 검이 모여들고, 그의 몸이 검에 의해 공중으로 떴다.
검왕의 전매특허인 어검비행.
그와 함께, 20명을 가둔 검옥도 동시에 허공에 떠올랐다.
“어, 어딜 가는 건가!”
“인질은 왜……!”
자위대의 특수부대장이 소리치자, 검왕은 검 위에서 입을 열었다.
“2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풀어 주지. 하나 이들은, 내가 데리고 간다.”
“뭐…… 뭣?”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시즈루가 죽으면, 이들도 해방될 것이다.”
“이놈……! 그렇게 놔둘 순 없다! 발포하겠다!”
특수부대장이 악을 썼지만.
“이들이 죽어도 좋다면, 그리하라.”
검왕의 주변에는 마치 그를 보호하듯, 20개의 검옥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발포하면 검왕보다, 저들이 먼저 사망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
“크윽…….”
특수부대장은 이를 갈면서도, 검왕의 비행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그럼.”
휘이이잉!
검이 날자, 검왕은 20명의 인질과 함께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졌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특수부대장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저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아무리 대 플레이어 전용 총과 탄환을 준비했다지만.
저런 괴물과 특수부대가 맞붙었다면, 사상자가 엄청나게 나왔겠지.
그런 극단적인 사태까지는 안 간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배틀넷 센터로 진입한다.”
특수부대장은 하늘에서 눈을 돌리고는.
남겨진 인질들을 챙기기 위해, 부대원과 함께 센터로 진입했다.
일본 하네다 공항.
“착륙했군.”
“……화물칸에 타는 건 처음입니다.”
일본에 몰래 잠입하기 위해, 아카리와 함께 비행기 화물칸에 타게 된 성지한.
“그럼 하네다 공항에서의 루트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저는 영체화, 성지한 님은 그림자로 변해 몰래 빠져나가서…….”
그녀는 비행기 타기 전, 나름 조사했던 자료를 토대로 성지한에게 루트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아니. 뭐 몰래 가. 대놓고 가도 돼.”
“대, 대놓고요?”
“어. 어차피 매형과 합류하면 사람들이 다 알 텐데.”
“그래도…….”
“가자.”
화물칸 문이 열리자마자 성지한은 그녀와 함께 대놓고 빠져나왔다.
“뭐, 뭐야……!”
“서. 서. 성지한이다!”
화물칸에서 튀어나온 그들을 보고 공항 직원들이 화들짝 놀랐지만.
성지한은 그들을 무시한 채, 스킬을 사용했다.
“뇌운 소환.”
그러자 성지한의 위에 떠오르는 샛노란 구름.
지직. 지지직.
구름 표면에는 강렬한 전류가 흘렀다.
“타자.”
휙.
성지한이 그 위에 올라타고, 아카리에게 손짓했다.
“……감전 안 될까요?”
“내가 허락하는 대상은 괜찮아.”
“알겠습니다.”
재빨리 구름 위로 점프한 아카리는 발밑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지한의 말대로, 구름 위의 전기가 신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금 매형은 어디 있지?”
“네. 지금은 시즈루의 저택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합류하면 되겠군. 방향 알려 줘.”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휘잉!
아카리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순식간에 날아가는 뇌운.
“이, 이쪽입니다……!”
“아. 갔다…….”
공항 직원들은 황급히 공항 경찰들을 불렀지만.
그들로서는 성지한이 떠난 모습밖에 보질 못했다.
그리고.
그가 일본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금방 한일 양국에 퍼졌다.
-성지한 일본 갔다는데?
-헐 ㅋㅋㅋㅋ 아니 MVP 인터뷰 생략하더니 언제 갔냐?
-화물칸에서 튀어나왔대.
-미쳤다 진짜 ㅋㅋㅋㅋ 추진력 뭐래?
-으 근데 너무 위험한 거 아님?
-ㄴㄴ 검왕이랑 성지한이 합류하면 일본이 위험해질걸.
-ㄹㅇㅋㅋ
한국 사람들은 성지한의 일본행 뉴스를 보고 검왕에 대한 걱정을 접었지만.
-아니 성지한…… 경기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길 와!
-이번 기회에 쟤들 다 죽여 버려! 자위대 특수부대 뭐 하냐!
-특수부대가 쓸릴 거 같은데…….
-배틀넷 관리국에 항의해서, 두 놈 다 선수 자격 정지시켜야 한다!!
-관리국에 항의하는 게 일본의 유일한 희망입니까 wwww -잘됐다. 성지한은 밀입국으로 감옥 보내고. 검왕은 살인죄로 사형시키자.
-근데 쟤넬 누가 잡아?
일본 사람들은 길길이 날뛰면서도, 현 상황이 답 없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검왕에 성지한까지 합류하면, 누가 저들을 막을 것인가.
아무리 특수부대가 출동한다 한들, 견적이 나오질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리그 1위, 챔스 진출 확정 파티 열었는데…….
-이거…… 꿈? 꿈이라고 해 줘요
-시즈루상 저택 잘 무너지네요 wwww
상황이 이리 되니.
일본 시청자 중 일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돼서, 검왕 채널로 가 시즈루 저택이 폭격당하는 걸 보고 낄낄거렸다.
-매혹 좀 잘 걸지 뭐 했냐 wwww
-성지한도 꼬드겨 왔어야지!
-덕분에 내년 시즌 리그 최하위 확정 wwww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을 무렵.
슈우우웅……!
성지한 일행을 태운 뇌운이, 어느새 시즈루의 저택에 도착했다.
“하…… 하아…… 여깁니다.”
“어. 저기서 매형이 검 날리는 게 보이네.”
쾅! 쾅!
시즈루의 대저택을, 기둥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백검으로 폭격하고 있는 검왕.
성지한은 뇌운을 이끌고 검왕에게로 다가갔다.
“저 왔습니다. 매형.”
정신을 차린 검왕에게, 예전처럼 존대를 한 성지한.
검왕은 그 목소리를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지한이냐? 어떻게 벌써…….”
“그냥 좀 빨리 왔어요.”
가볍게 답한 성지한은 인벤토리에서 세계수의 잎사귀를 꺼냈다.
“일단, 이것부터 드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