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68화>
“이건…… 나뭇잎인가?”
“네. 상태이상이 풀리는 아이템입니다.”
세계수의 잎사귀를 매만지던 검왕은, 성지한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지금은 못 먹겠군. 상태이상을 유지해야 하거든.”
“상태이상이라면…….”
“상태이상 ‘집착’. 내가 시즈루의 생존을 확신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거다. 거기에…….”
검왕은 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초토화 상태에 놓인 시즈루의 저택이 있었다.
“내가 여기 온 것도 이 ‘집착’ 때문인 것 같구나.”
“그게 무슨 말이죠?”
“눈이 먼 내가 어떻게 시즈루의 저택을 이렇게 바로 찾아왔을 것 같으냐?”
“……집착이랑 연관이 있습니까?”
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쪽은 괜찮은데. 이쪽 방향을 바라볼 때만 분노가 불같이 치밀어 오르더구나. 오고 나니 시즈루의 집인 걸 알았지.”
집착만 남은 게 시즈루에게는 최악의 결과가 되었군.
성지한은 인벤토리에 잎사귀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럼 시즈루 없애고 드시죠.”
“그래. 신경 써 줘서 고맙다. 그럼…….”
스으윽.
검왕을 태운 검 끝이, 초토화된 저택을 향하고.
“내려가자.”
파괴된 시즈루의 저택을 향해 검왕이 먼저 착지했다.
“으, 으으…….”
“이게 무슨…….”
시즈루의 집 안에서 고용되어 일하고 있던 사용인들은 몸을 웅크린 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수십이 넘는 그들은 특이하게도, 저택이 거의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모습이었다.
“괜찮나? 이들은.”
“멀쩡합니다.”
“그래. 일반인까지 피해를 입어선 안 되지…….”
저택을 부순 백검이, 일반인은 역으로 지켰기에 가능한 일.
“너희들 중 시즈루는 없군…… 떠나라.”
검왕은 사람들의 기척을 스윽 읽더니, 집 밖을 나서라고 축객령을 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빨리 가자……!”
“으, 으으…… 주, 죽는 줄 알았어!”
검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급히 몸을 일으켜 집을 떠나려는 사람들.
뇌운에서 내린 성지한은 이를 잠시 지켜보다가 아카리에게 물었다.
“아카리, 이 저택에 숨을 곳이 있나? 집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도, 시즈루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군.”
“……별채의 지하 공간에서 실험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저를 분신으로 만들려고도 했죠.”
“좋아, 안내해 줘.”
“알겠습니다.”
한때 시즈루의 분신으로 편집을 당한 아카리가 길을 안내하자.
성지한 일행은 금방 시즈루가 있던 지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안장치가 겹겹이 쳐져 있습니다만…….”
거대한 두께의 문을 보며, 아카리는 질린 듯이 말했지만.
“부수면 되지.”
“그래, 그게 가장 간단하다.”
세계 탑급 전사 둘을 막기에는, 문 하나론 역부족이었다.
쾅!
그렇게 문이 부서지고 나서 보이는 건.
아이기스의 방패를 또다시 발동한 채 굳건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 시즈루였다.
“저거 누나 거 아니었습니까?”
“미안하군. 내가 미쳤었다.”
“후우…… 다시 되찾아 오시죠.”
“그래. 저 여자 목도 같이 가지고 오지.”
태연하게 목을 가지고 오니 마니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건너편에서 이를 듣던 시즈루가 황급히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 이야기 좀 해요!”
“시끄럽다.”
슈욱!
검왕의 백검이 일제히 날아갔지만.
펑! 펑!
“후후, 이번엔 그리 쉽게 안 뚫려요. 아이기스에 ‘편집’을 했으니까요.”
“정말…… 성가시구나.”
검왕은 살기 가득한 음성으로 으르렁거렸다.
서포팅 기프트 ‘편집’.
대체 저 능력, 활용도가 어디까지인가.
“성지한 씨, 제 능력 SSS급 편집. 어떠신가요.”
“지랄같지.”
“후후, 그렇게 극찬을 받은 능력…… 이제부터는 당신네들을 위해 쓸게요.”
“……뭐?”
시즈루는 성지한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대신, 저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해 줄 거라 생각하나?”
“저희가 비록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딱히 피해 본 사람은 없잖아요?”
“……허, 피해 본 사람이 없다?”
“그래요. 당신 멀쩡하고. 당신 조카도 잘 나가는데. 아, 그래요. 검왕이야 두 눈이 저리 돼서 좀 피해를 봤다지만. 편집 능력을 활용하면, 손상된 안구도 치료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시즈루는 입을 계속 놀렸다.
“당신들의 강력한 무력과, 제 서포팅 기프트가 더해진다면. 세계에서 저희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없을 거예요. 지금까지는 대립해 왔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저희는 다시 없을 협력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성지한을 향해 고혹적인 눈빛을 보내는 시즈루.
성지한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나한테 지금 매혹 거는 거냐?’
편집 능력.
확실히 탐나는 재능이기는 했다.
튜토리얼이 끝난 후에, 지구가 맞닥뜨릴 운명을 생각하면.
저걸 살려 둬서 써먹는 게 인류를 위해서는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된다.’
저 위험한 여자를 기프트 때문에 아쉬워서 살려 두느니.
성지한은 자기가 더 열심히 배틀넷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매형, 빨리 제거하죠.”
“좋아. 그 대답을 기다렸다.”
성지한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검이 아이기스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툭. 투두둑.
아이기스가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검왕의 백검이 매섭게 내리찍자, 금방 금이 시작하는 방패와 보호막.
“안타깝네요…… 후후.”
하나 시즈루는 그걸 여유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더니.
“그럼, 저희. 다시는 보지 말아요.”
검왕에게 탈출했을 때처럼, 텔레포트 목걸이를 꺼냈다.
“어딜!”
검왕은 급하게 아이기스를 두드렸지만.
번쩍!
시즈루는 강화된 아이기스가 부서지기 전에 탈출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부우우웅……!
주변에 있던 거대한 슈퍼컴퓨터에서 빛이 나면서, 일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쾅! 쾅!
기프트의 힘이 깃들었는지, 꽤 강력한 폭발.
하지만 이것의 목표는, 두 전사가 아니라.
“거, 검옥이…… 이대로면 녹겠어요!”
검왕이 인질로 검에 가둬둔, 일본의 탑 플레이어들이었다.
어차피 기프트를 사용해서 컴퓨터를 폭발시킨다 한들, 성지한이나 검왕은 제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자위대 특수부대가 현재 개입을 하지 못하는 이유인, 인질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이 불…… 쉽게 진화가 안 되는군……!”
“저도 돕죠.”
마치 검왕의 검에 특화된 듯, 끈질기게 안 꺼지던 불길은.
성지한마저 나서서 돕자, 그제야 하나둘 씩 진화되었다.
“시즈루쪽에서 인질을 죽이려고 할 줄이야…….”
“인질이 없어지면 일본의 특수부대가 개입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걸 노린 것 같군요.”
인질이 사라져서, 검왕 측과 일본 특수부대와 맞붙는다면.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생길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 방법을 택한 건, 자기가 보다 수월하게 도망치기 위해서겠지.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군…….”
“100만 명이 죽어도 자기가 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 길을 택할 사람입니다. 그 여자는.”
아카리는 뒤에서 이를 갈며 말하자,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즈루는 그런 여자지. 그러니 이번에, 그녀를 꼭 제거해야 한다. 한국은…… 조금 늦게 돌아갈 것 같군. 처남, 미안하지만 먼저 귀국하겠나?”
시즈루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한국 갈 생각이 없는 검왕.
그는 미안한 기색으로, 성지한에게 그리 말했지만.
“아뇨, 저도 돕겠습니다. 후환은 뿌리 뽑아야죠.”
“레벨 업 해야 할 텐데…… 지금이 중요한 시기 아닌가.”
“좀 쉬어도 됩니다.”
어차피 12월까지, 플래티넘에 머물 생각이던 성지한은.
이번 기회에 레벨 업은 좀 미뤄 두고, 시즈루부터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대표팀은 어쩌고?”
“어차피 이번 시즌은 챔스 못 갑니다. 누구 때문에 말이죠.”
“크, 크흠. 그렇지…… 근데 세아는…….”
“하연주 씨가 맡아 주고 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연주가…… 그럼 믿을 만하겠어.”
같은 한국 대표팀 출신으로 하연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좀 부탁하지. 이번 기회에, 꼭 시즈루를 제거하자.”
“네.”
“그럼…….”
검왕은 지하에서 나와, 동서남북으로 몸을 돌려 보았다.
그러더니, 서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기군.”
“그렇게 아는 겁니까?”
“그래, 저길 바라볼 때, 화가 치솟고 있거든.”
시즈루가 있는 방향을 실시간으로 알려 주는 상태이상 ‘집착’.
그건 그녀가 텔레포트를 썼음에도 계속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가지.”
검왕은 살기가 가득한 얼굴로, 먼저 출발했다.
* * *
시즈루의 저택이 부서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성지한이랑 검왕 어디 있음? 배틀 튜브 끄니 알 수가 없네.
-몰라. 저번엔 나고야에서 사진 찍혔었는데 이젠 제보도 안 들어오네.
-인질도 이제 셋만 데리고 다닌다던데…….
-ㅇㅇㅇ 나머진 풀려났더라. 추격전 벌이는 데 거추장스럽잖아.
워낙 은밀하게 움직였기 때문일까.
성지한 일행의 위치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풍문으로만 떠돌 뿐.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간간이 백검이 목격되었을 때나 이야기가 나왔다.
-엇, 백검이 오사카에 떴대!
-검의 폭격이 진행되더니, 또 멈췄다네.
-그럼 시즈루 또 튄거임?
-하 진짜 징글맞게 도망친다ㅋㅋㅋㅋ
-텔레포트 무한이냐?
히로시마 시의 한 호텔.
본래의 평범한 얼굴로 돌아온 시즈루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놈들…… 대체 어디까지 따라오는 거야!”
아니, 검왕에 성지한.
할 일이 그렇게 없나?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시즈루는 자신의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대로라면 진짜 위험해.”
시즈루가 지닌 텔레포트 목걸이.
이건 원래 짧은 거리만 이동할 수 있었다.
그걸 검왕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특별히 개조한 게 지금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조에 들어간 비용은 상당해서.
시즈루는 아카식 페이지 여러 장을 소모하고, 편집 권능의 대부분을 투자했다.
그렇게 자원을 써서 얻은 탈출 기회는 1번.
하지만 요 일주일간, 그녀가 탈출한 건 벌써 30번째였다.
“여기서 또 탈출하면…… 매혹을 너무 많이 풀게 되는데…….”
일본 정재계의 유력한 사람들에게 걸어 두었던 매혹은 이미 70퍼센트 이상 풀리고.
이제 남은 건, 총리를 비롯한 가장 중요한 직책의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때, 총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저, 시즈루님…… 괜찮으십니까?
“특수부대는 대체 뭐 하는 거죠? 왜 계속 미적거리기만 하고 출동은 하지 않는 거죠?”
-출동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상대가 너무 은밀하게 움직이는지라…… 추격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거기에 아직도 3명의 인질이 잡혀 있는 통에……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3명! 3명 정도는 그냥 무시하고 밀어 버려도 되잖아요!”
-그 3명이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라서…….
“하, 일본에서 가장 기프트 등급이 높은 건 바로 저예요. SS급들이 아니라! 절 가장 우대해서 지켜 줘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저 무뢰배들이 날아다니게 놔둬요?”
-죄, 죄송합니다.
“당장 어떻게 좀 해 봐요!”
평소와는 달리 냉정을 잃은 시즈루.
근래에 수많은 탈출을 감행하고 있는지라 그녀에게서는 평정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카식 페이지가 점점 사라지면서.
일본에서 구축해 두었던 자신의 영향력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니.
그녀는 처음 탈출했을 때처럼 여유롭질 못했다.
“……정말, 나라를 떠야 하나.”
그녀는 텔레포트 목걸이를 매만졌다.
이렇게 일본 내에서 텔레포트로 도망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가 없다.
검왕은 정말 징글징글하게 계속 자신을 찾아왔으니까.
‘……그래. 권능을 최대한 집중시켜서 미국으로 가자. GP는 그래도 많으니까.’
아예 바다를 건너서, 나라 뜨는 게 검왕의 그 망할 ‘집착’에게서 도망칠 길이다.
태평양을 건너면, 거기까지 날아서 따라오진 않겠지.
그렇게 몰릴 대로 몰린 시즈루는, 텔레포트 목걸이로 태평양을 건너려고 했지만.
‘이 정도 거리로 개조하는 건…… 역시 무리인가?’
태평양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지금 가진 것을 모조리 다 투자해도, 목걸이가 그렇게 개조는 되지 않았다.
애초에 목걸이가 지닌 거리 한계가 짧은 터라.
투여하는 자원에 비해서, 효과가 영 좋게 나오질 않았다.
다만.
‘일단 괌까지는…… 가능할 거 같은데.’
미국령 괌까지는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괌을 찍고, 그다음에는 거기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 되겠지.
“편집.”
시즈루가 그리 결심하고, 한참 목걸이를 편집하고 있을 때.
쨍그랑!
호텔 창가에서, 백검이 기습적으로 날아왔다.
이제는 점점 추격 속도가 빨라지는 검왕 일행.
“아 진짜……! 텔레포트!”
시즈루는 황급히 편집된 목걸이로 텔레포트를 감행했지만.
풍덩!
그녀가 텔레포트한 지점은, 괌이 아니라 물 속이었다.
“으, 으으…… 절대로…… 죽을 수 없어……!”
너무 급하게 편집하느라, 제대로 된 착지 지점을 설정하지 못한 걸까.
시즈루는 입가에 들어오는 짠 물맛을 맛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이렇게 바닷속에서 비참하게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살아 주겠어……!’
시즈루는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파도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죽지 않고자, 인벤토리에 마련해 둔 아이템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일단, 이 물속에서 나오기만 한다면, 살길이 있을 터.
“허억…… 허억…….”
그렇게 그녀는 혼신의 힘을 발휘해서 기적적으로 땅에 상륙했다.
텔레포트 지점이 바다로 어긋나 휘말렸음에도, 필사적인 노력에 말미암아.
어떻게든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흐, 흐흐…….”
됐다.
물 속에서 나왔으니, 이제는 살 수 있다.
편집의 권능이 회복되는 대로 다시 사용해서.
어떻게든 미국으로 간다.
그녀는 그렇게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여기 있었군.”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