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86화>
[동방삭,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무신의 물음에, 동방삭은 무릎을 꿇은 채 대답했다.
평소 여유로운 표정과는 달리, 냉막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그는.
만귀봉신의 변화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는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니 성장을 더 시키겠다.]
“그는 세 번째 종을 깨우지 못했습니다만. 그럼에도 거두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무신의 말에, 동방삭의 옆에 있던 롱기누스가 삐딱한 어조로 물었다.
저번에 처음 만귀봉신을 사용했을 때.
성지한이 세 번째를 깨우지 못한다면, 그를 직접 거둔다고 말한 걸 환기시킨 것이다.
[그래. 세 번째 업을 구현하는 것보다, 지금 보인 모습이 더 중요하다.]
하나, 무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이 예전에 한 말을 뒤집었다.
만귀봉신의 변형.
이것이 그에게는 세 번째의 멸신결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롱기누스, 저번에 저자를 교육시키고 싶다고 했지?]
“아, 예…… 교육…… 말이죠.”
물론 말이 ‘교육’이지, 본심은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을 뿐이지만.
롱기누스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해라.]
“해도…… 됩니까?”
[무인이 성장하기 위해선 적이 필요하지. 너희 정도면 꽤 격이 맞을 터.]
스으으윽.
무릎을 꿇은 두 종자 앞에, 지구의 형상이 떠올랐다.
[지구의 튜토리얼은 이제 곧 끝나 가니까. 너희도 금방 자유로이 개입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다만, 개입은 배틀넷 안에서 한정된다.]
“으음, 현실에서 패진…… 아니 교육하진 못하는 겁니까?”
“롱기누스. 그렇게까지 하다간 우리도 시스템의 규제를 받을 거네.”
“그거 참 아쉽군요.”
롱기누스는 입맛을 다셨다.
게임 속에서 패 봤자 뭐 의미 있나?
현실에서 쓴맛을 보여 줘야 하는데.
그런 그에게, 무신은 나지막이 한마디를 더했다.
[만약 너희 중 누군가가 그를 굴복시킨다면, 소원을 들어 주지.]
“……소원, 말씀이십니까?”
[그래, 롱기누스. 네 경우에는 죽음을.]
“……!”
[동방삭에게는, 만귀봉신을 넘겨주겠다.]
무신의 말에, 두 사람의 눈빛이 완전히 변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성지한이 꼴 보기 싫다고 해도, 그 어린 녀석 적당히 교육시키다 말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이 염원하는 소원을, 무신이 들어 준다고 했으니까.
“동방삭, 나 먼저 가겠소.”
“허허, 어딜 가나. 자네는 나랑 같이 종자 노릇 평생 해야지. 나야말로, 이번 기회에 무공이나 좀 배우겠네.”
“평생이라니. 끔찍한 소리 하는군……!”
진심이 되어 버린 두 종자는.
얼른 지구의 튜토리얼이 끝나기를 기원했다.
그래야 개입할 수 있을 테니까.
* * *
[성지한, 홀로 리허설을 제패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선물! 종족 전체에 주어지는 성장 보너스의 정체는?]
[세계 배틀넷 연맹, 성지한의 게임 클리어에 축하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부글부글 끓어.]
[인민회, 성지한의 선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며 분노의 성명 발표! 하나 공감대를 얻지는 못해.]
오랜 갈등 끝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극적으로 클리어된 리허설 게임을 두고 세간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많은 반응을 산 것은, 클리어한 방식.
-와…… 저렇게 쉽게 클리어가 가능했어?
-발목 잡는 애들 그대로 가둬 놓고 깼네 ㅋㅋㅋ
-인민회에서 플라이 마법 장비 가지고 유세떨더니 그딴 게 뭐 필요하냐고 바로 보여 주셨네요ㅎㅎ만귀봉신으로 플레이어를 가두고 깔끔하게 클리어한 성지한을 보고.
사람들은 저런 것도 가능했냐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근데 성지한 더 세진 거 같지 않아? 이종족들 도망치기 바쁘던데 ㅋㅋㅋ-ㄹㅇ 너무 격이 다른데…… 왜 저리 세냐?
-그간 레벨 업 했을 거 아녀. 애초에 처음 시작할 때 승급한 지 얼마 안 돼서 레벨 100 초반대였을걸?
-아직도 성장할 구간이 더 남아 있었구나…… ㄷㄷㄷ
골드 때도 국가대표 선수들을 압도했지만.
이제는 정말 지구상에서 적수가 없어 보이는 성지한.
그의 위상은 리허설 게임 클리어로 인해, 한 단계 더 높아져 있었다.
세계 배틀넷 연맹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성지한 선수를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합니까? 연맹과 완전히 척을 지는 행동을 했는데요!”
“이렇게 연맹의 중재를 무시하고 게임 클리어를 하다니…… 대표 선수 명단에서 제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임 클리어 이후, 긴급소집된 회의에서 인민회와 친한 연맹위원들은 성지한 선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지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인민회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은 없이 무조건 합의만 종용하지 않았습니까?”
“처벌이라뇨. 제대로 했지요! 인민회에서 개인의 일탈로 자살한 플레이어들을 2군으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2군 보내는 게 무슨 처벌이라고…….”
“지금 스페이스 리그 개막전이 눈앞인데, 성지한 선수를 자격 박탈하자고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입니까?”
“애초에 한 길드에 편파적인 운영이 문제였습니다. 연맹은 게임 클리어를 축하하고, 이 일을 다시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배틀넷 연맹위원들은 성지한을 적극적으로 감쌌다.
일주일 후면 치루는 스페이스 리그.
그때 가장 큰 전력이 될 성지한을, 이런 문제 때문에 배제한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으니까.
“그럼 국가대표 자격만 박탈하는 건…….”
“저번에 못 봤습니까! 그럼 스페이스 리그도 안 한다고 할 사람입니다, 그는!”
“하이고. 지금 스페이스 리그가 중요하지, 거참……!”
“그러니까요. 자기들이 문제만 안 일으켰으면 깔끔하게 끝났을 것을. 쯧쯧.”
“스탯 +7을 준다는데도 거절하고 말이에요.”
“리허설 맵 개최 권한도 애초에 성지한 선수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알아서 클리어한 게 뭐가 문제죠?”
성지한이 이브 날 챙겨 준 길드 쪽의 연맹위원들은, 적극적으로 그를 보호해 주었다.
‘이번 리허설처럼, 그만 얻을 수 있는 보너스가 또 있을지도 모르는데…….’
‘성지한이랑은 굳이 척을 질 필요가 없어. 친해져야지.’
그렇게 연맹의 처벌은 위원들의 반대로 무위로 돌아가고 있을 때.
‘이건…….’
성지한은 리허설 MVP 보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 * *
[MVP 보상, ‘스페이스 리그 우수 회원권’이 주어집니다.]
[스페이스 리그 우수 회원권]
등급 : SSS
-6개월 기한의 스페이스 리그 우수 회원권입니다.
-회원권 소지 기한 동안 경험치 및 GP 획득량이 100퍼센트 증가합니다.
-6개월 동안, ‘스포트라이트’와 ‘하이드아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회원권을 소지하고 있을 시, 30퍼센트 확률로 상대 팀의 밴 리스트에서 제외됩니다.
[스포트라이트]
-플레이어가 우수 회원임을 배틀넷 전역에 광고합니다. 보다 많은 성좌의 관심을 얻을 수 있으며, 우주 전역에서 후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이드아웃]
-우수 회원의 자격으로, 자신의 정보를 숨깁니다. 성좌의 관심을 받지 못하며, 상대하는 팀에서 회원의 정보를 입수하기 힘들어집니다. 배틀넷에서 명성을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스페이스 리그 우수 회원권.
능력치를 직접적으로 올려 주는 아이템도 아니고, 기한도 6개월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효과가 상당했다.
특히 성지한의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스포트라이트나 하이드아웃 같은 기능보다는.
마지막 줄에 있었던 밴 리스트 제외였다.
‘30퍼센트 확률로 밴을 안 당하다니. 엄청난 효과군.’ 스페이스 리그가 정식 개막하면, 생기는 옵션 중 하나인 밴.
이것은 상대 팀 선수나, 특정 맵을 차단하는 기능이었다.
밴을 사용하는 건, 이런저런 제약이 있어서.
5전 3선승제의 게임에서, 특정 대상에게는 2번 정도 쓰는 게 한계였지만.
성지한처럼 독보적인 플레이어한테는 또 몰랐다.
강력한 페널티를 감수하고, 밴카드를 집중시킬 수도 있었다.
‘그럴 때 30퍼센트 확률로 피할 수 있으면, 엄청난 효과지.’
예전 무성 성지한 시절 때도 종종 밴 당했는데.
그때보다 강력한 지금은, 밴 카드가 자신에게 집중될 게 뻔했으니까.
그걸 회피할 수 있다면, 이건 SSS등급 이상의 가치를 지닌 아이템이었다.
아무래도 6개월 기한이 있어서, 등급 측정이 SSS로 된 거겠지.
‘스포트라이트와 하이드아웃 중에선, 후자를 선택해야겠군.’
성좌의 관심이나 우주 전역의 후원 따위야.
지금 상황에서는 큰 가치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같은 스페이스 리그 소속의 종족들에게, 자신을 최대한 숨겨야 했다.
[하이드아웃 기능을 설정하시겠습니까?]
[한 번 설정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설정한다.”
[하이드아웃 기능이 적용됩니다.]
[사용자의 정보가 외부 행성에 드러나지 않으며, 성좌의 지원 리스트에서 제외됩니다.]
그는 하이드아웃 기능을 바로 사용하고, 회원권을 인벤토리에 놔두었다.
똑똑.
“삼촌~! 아빠 왔대! 지금 1층이라네.”
“그래? 빨리 오셨네.”
세계 배틀넷 연맹의 조직과 공조하여, 던전 철거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검왕 윤세진.
그와 팀원은 크리스마스를 맞아서, 연말까지 휴가에 들어간 상태였다.
“응, 거기에 아빠도 스페이스 리그 개막전 참여해야 하니까.”
일주일 후에 열리는 개막전.
이에 대한 정보는 아예 공개된 게 없어서, 세계 배틀넷 연맹도 선수들을 모아 놓고 연습을 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대신 개막전 참여가 유력한 선수들에게, 일주일 전부터 대기타달라고 부탁할 뿐이었다.
“7층 예약했지?”
“응, 하연 언니도 같이 부르라고 했지? 그래서 레스토랑 전체 예약할까 하다가, 룸 하나만 예약했는데.”
소드 팰리스 7층의 고급 레스토랑.
윤세진의 단골 식당인 그곳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가족 전체가 연례행사처럼 들리곤 했다.
그리고 항상 방해받지 않기 위해, 레스토랑 전체를 예약했었는데…….
“왜 다 안 빌렸어?”
“사진 찍혀야 하잖아. 히히, 요즘 삼촌이랑 언니 사귀는 거 맞냐는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야.”
“뭐 주변에서 이야기 나와 봤자지.”
“이성에서 자꾸 돌아오라고, 귀찮게 군다고 저번에 한숨 쉬더라.”
성지한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성 길드, 아직도 이하연한테 미련을 가지고 있었나?
“그럼 오늘 그림은 연출하고, 이성에 직접 연락을 해야겠네.”
“맞아. 우리 하연 언니 지켜야 한다구. 성장 버프 미쳤어 진짜.”
“너 레벨 몇이냐?”
“177. 다음 달엔 다이아 갈 거 같아!”
“진짜 성장 빠르네.”
성지한은 윤세아의 폭풍 성장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혼돈의 전장에서 이종족 때려잡던 자신도, 오늘 클리어해서 딱 190에 도달했는데.
‘하여간 하루에 두 판 게임 하는 게 사기라니까.’
이대로면 진짜 레벨은 추월당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성지한은 레스토랑에 내려갈 준비를 했다.
* * *
소드 팰리스 7층의 레스토랑 ‘피에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언제나 검왕이 전세를 내서, 누구도 예약할 수 없었던 이곳은.
올해 이브에는 예약이 풀려 있었다.
“역시 올해는 안 오시려나 봐.”
“아니야. 내 친척이 여기 매니저인데 귀띔해 줬다니까! 예약했다고!”
“에이, 검왕님이 예약하셨으면 전체를 다 빌렸겠지. 룸 하나만 했겠어?”
레스토랑의 화장실 근처.
중년의 여성 무리가 서성이면서, 카운터 쪽을 바라보고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검왕가가 전국민적인 비난을 받았을 때도, 핵심 팬이었던 그들은.
검왕이 피에르를 예약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어떻게든 자리를 예약해 검왕을 실물 영접하려고 했다.
“저…… 손님. 이제 들어가셔야…….”
“잠깐만 기다려 봐요!”
모든 방이 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화장실 앞에서 카운터 쪽을 바라보면서 검왕이 언제 오냐만 오매불망 기다리던 검왕가 무리는.
“서, 성지한!”
“이하연 길드 마스터도 있어……!”
“엇…… 그리고 뒤에 검, 검왕님이다!”
성지한 일행이 들어오자, 두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검왕님!!”
“성지한 님! 팬이에요! 사인해 주세요!!”
검왕가는 검왕 뿐만이 아니라, 성지한에게도 매우 우호적인 얼굴로 다가가 사인을 요청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수처럼 그를 대했지만.
그가 검왕을 정신 차리게 하자, 성지한이 거의 검왕가에서 세컨드 팬 비슷하게 된 것이다.
‘검왕가가 이렇게 날 좋아할 줄은 몰랐군.’
성지한은 꺅꺅거리며 사인을 요청하는 아줌마들을 보며,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전생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검왕가였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이상,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휙휙.
그래도 도저히 저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잘해 줄 마음은 들지 않아서.
사인만 대충해 주고, 성지한은 일행을 데리고 얼른 준비된 룸으로 들어갔다.
“미안하군. 나 때문에.”
“아닙니다, 매형. 레스토랑 전체를 안 빌렸으니, 감수해야죠.”
“그래…… 맞아. 그 원하던 사진은 찍혔나?”
“응, 아빠. 직원들도 찍더라. 하연 언니도 꼭 붙어 있었고.”
“잘 됐군.”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략적인 사정을 들은 검왕.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일은 잘되셨습니까?”
“던전 탐사 말인가? 많은 일이 있었지…… 던전을 4군데 클리어하면서, 놀라운 사건이 많기는 했지만.”
에피타이저가 나오기 전.
검왕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품속에서 반지를 꺼냈다.
“반지가 반응한 것만큼, 날 놀라게 하는 일은 없었어.”
“반지가…… 반응했다고요?”
성지한 일행은 화들짝 놀랐다.
반지가 반응했다는 건, 설마…….
“그래…… 정말로 지아가, 북한 땅에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