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97화>
“예언이 안 통한다고? 당신의 힘으로도?”
동방삭은 뜻밖이라는 듯, 눈썹을 꿈틀대었다.
예언자 피티아.
그녀가 예언을 한 것은, 고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스 델포이 신전의 4번째 여사제였던 그녀는, 신탁을 통해 소름 끼치는 예측력을 보여 주었고.
각국의 권력자는,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싶어 했다.
개인적인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 정도로, 권력자들의 마수가 뻗쳐올 때.
갑작스럽게 등장한 방랑하는 무신은, 그녀를 자신의 종자로 거두었다.
‘그녀가 무신에게 대신 빼앗긴 것은, 마지막 예언.’
그렇게 무신의 종자가 되어, 영생을 살게 된 이후.
어떨 때는 남성으로, 어떨 때는 여성으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여 활약했던 인류 최고의 예언자.
허나 그녀는 무신의 종자가 되면서, 단 하나의 예언만은 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마지막’.
인류의 마지막을 볼 권리를, 그녀는 무신에게 박탈당했다.
“이자…… ‘마지막’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 흠…… 이놈은 인류의 종말을 오히려 막고 있는데 말이야. 이번에도 배틀넷 순위 지켰고.”
“인류의 마지막과 네가 말하는 종말은 달라. 이번에 공허의 마녀가 주관할 종말은 배틀넷의 벌칙으로 행해지는 거고. 인류의 마지막은, 보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지.”
“어떤 건데?”
“그건 나도 모르지, 못 보는데. 내 능력 빼앗아 간 주인한테 물어봐.”
잘도 무신에게 그런 걸 물어보겠다.
롱기누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저놈 무혼 지녀서 안 보이는 거 아니야? 별의 능력을 지니고 있잖아.”
“무혼? 이 사람 무혼도 지니고 있어? 그럴 리가 없는데? 흐으음…….”
피티아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성지한을 주시했다.
“혹시나 무혼 때문이면, 직접 보면 예언이 통할지도 모르겠어.”
“직접 보는 건 안 될 거다. 아무리 튜토리얼이 끝났다 한들, 우리가 직접 지구에서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런가? 어떻게 방법이 없나? 아쉽네…….”
사진상으로는 예언이 안 통하니까 꼭 한 번 직접 해 보고 싶은 건지.
피티아는 미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동방삭이 말문을 열었다.
“방법은 있다.”
“어떤 건데?”
“성좌로서, 우리와 합일할 후원자를 찾으면 되지.”
“오…… 합일? 그런 게 가능해?”
“기프트의 특성이 우리와 잘 맞는 대상이 있으면 가능하다. 나는 대만에서 찾았고, 롱기누스는 러시아에서 찾았지.”
“버서커 블라드미르라고 했나? 이놈이랑 빨리 합쳐서, 저 자식 참교육을 시켜 주고 싶군.”
우드드득.
롱기누스가 주먹을 움켜쥐며 스산한 미소를 짓자, 피티아는 상황을 파악했다.
“아하, 배틀넷 국가대항전에서 보려고 하는 거구나. 흐으음…… 배틀넷을 통해서 보면, 예언 가능할 거 같은데? 나도 한 번 합일 대상 찾아 봐야겠다.”
그러면서 두 눈을 감는 피티아.
그러자, 그녀의 이마 쪽에서 새하얀 빛이 반짝이면서.
빛무리가 마치 제 3의 눈과 같은 형상으로 떠올랐다.
스으윽.
새하얀 빛의 눈동자가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그녀가 다시 눈을 떴다.
“동북아시아 리그에서 파장 맞는 애를 찾아야 하는 거지? 쟤 나라랑 만나려면.”
“그렇지.”
“나랑 맞는 애는 동쪽 섬나라에 있네.”
“아니, 벌써 찾았나…….”
“그럼. 신안神眼을 썼잖아.”
그러면서 피티아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럼, 누가 먼저 한 방 먹일지 내기할까?”
“……당신도 싸울 생각인가?”
“어. 예언이 안 통하다니 괘씸하잖아. 나도 교육시킬래.”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예언능력자인데, 전투도 잘 하려나?
‘잔 다르크로 활동한 경력이 있긴 하다만…….’
그때, 롱기누스가 참견해 왔다.
“근데 공허의 마녀 건은 어쩌고?”
“그건 이미 메시지 보냈어. 마녀 단속 잘 하라고.”
“……그게 끝이냐?”
“그쪽도 그러면 나름 대비할 걸? 나보단 지금 마녀가 다루기 쉬울 테니까.”
“하기야.”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산전수전 다 겪은 피티아보다야, 이용하기는 신규 공허의 마녀가 더 쉽겠지.
“그럼 그 문제는 그쪽에 맡기고, 교육이나 시키러 가세.”
“좋아~”
그렇게 세 무신의 종이, 본격적으로 동북아시아 리그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 * *
4번째 던전.
“드디어 마지막이군요…….”
크리스토프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지막 거대 던전의 던전핵을 찾았다.
“2번째에는 윤세아님, 3번째에는 검왕님 관련 환상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과연 뭐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지한이 나오려나요? 근데 지금까지 환상 보면 배드 엔딩 리스트 같은데. 안 나오는 게 나을지도…….”
“흠, 한 번 보죠. 세아야.”
“응.”
무슨 장면이 나올까.
윤세아는 긴장한 얼굴로 보이드 애로우를 소환했다.
그러자, 여태 그랬던 것처럼 퍼져 나가는 보랏빛.
모두에게 마지막 환상이 나타났다.
‘여긴…….’
어둠에 잠식된, 황량한 대지.
이것은, 성지한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더 이상의 하위 리그가 없습니다.]
[스페이스 리그에서 퇴출되었습니다.]
[NO.4212. 인류는 가치 없는 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삭제를 시작합니다.]
강등전에서 패배하고, 삭제당하는 인류.
“사, 살려 줘…….”
아메리칸 퍼스트의 동료들이 순식간에 어둠에 잠식되고.
[모든 인류가 삭제되었습니다.]
[최후의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최후의 순간.
사지가 어둠에 잠식된 성지한이, 홀로 땅바닥에 누워 있을 때.
[끝났군.]
번쩍!
그의 앞에, 찬란한 존재가 나타났다.
오색찬란한 빛이 가득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대.
하지만 성지한은 그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자가 무신…… 인가?’
보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적의.
성지한은 빛무리의 존재를 보면서 살의를 느꼈다.
이는 이번 생에 그를 고생시켰던 시즈루를 볼 때보다도 훨씬 더 강렬해서.
내가 왜 이럴까,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이번에는, 이 정도인가.]
스으윽.
성지한을 내려다보는, 빛의 존재.
그는 서서히 손을 펼쳤다.
[종자여. 나의 몸으로 들어오라.]
그러자.
슈우우우……!
성지한의 몸뚱어리가 순식간에 빛으로 변하며,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방랑하는 무신은 빛으로 이루어진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피더니.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한 번 그었다.
그러자.
어둠에 잠식된 지구의 하늘이 완전히 갈라지면서.
가려졌던 태양빛이 폭발하듯이,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세상을 밝힌, 한 번의 움직임.
성지한은 그가 펼친 힘을 보면서, 하나의 초식을 떠올렸다.
‘……이건 설마, 횡소천군?’
무명신공의 기본공, 삼재무극의 횡소천군橫掃千軍.
가로베기의 극의인 그 무공을, 무신이 손가락 하나 움직여 펼치니.
닫혀 있던 하늘이 완전히 열렸다.
‘정말…… 저런 상대를 이기라는 건가.’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그와의 차이는 하늘과 땅, 그 이상이었다.
성지한이 무신의 힘에 전율하고 있을 때.
[……아직 부족하군.]
그는 완전히 열린 하늘을 보면서 불만족스럽게 말하더니.
[그래도…… 끝이 보인다.]
번쩍!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끝나는 환상.
‘누나가 괴물이라고 이야기한 이유가 있었군…….’
하늘을 다시 연 무신의 힘.
그것은 지금까지 본 상대 중, 단연코 압도적이었다.
저런 상대와, 무혼을 두고 싸운다고?
그저 자살행위에 불과할 거 같은 경쟁이었지만.
‘……이상하군. 살의가 식지 않아.’
성지한은 다시금 스스로의 감정에 놀랐다.
모든 걸 포기할 법도 한, 힘의 차이이건만.
왠지.
그와는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기자.’
성지한은 그렇게 마음을 다지면서.
이번 환상에서 저번 생과 다른 점을 정리했다.
‘……이번엔 투표가 없었어.’
그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 투표.
찬성 3, 반대 1표로 과거 회귀를 하게 된 그 이벤트가 이번엔 나타나질 않았다.
그때와 저 환상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성지한이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으…… 이번 건 인류 멸망인가.”
“지한이 최후의 생존자였으면, 나도 죽었나 봐요.”
“아니…… 근데 진짜 스페이스 리그에서 퇴출당하면 인류 멸망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오빠, 배틀넷…… 그렇게 위험한 거였어?”
“이 환상…… 그냥 환상이었으면 좋겠네.”
같이 환상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인류 멸망이라는 미래를 봐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까지 중 가장 심각했다.
한데.
“마지막엔 빛만 번쩍이다 끝났는데…… 뭔 일이 있었던 걸까?”
“삼촌, 뭐 더 본 거 있어?”
성지한을 제외하고는 무신의 행동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다.
“글쎄다.”
“근데 환상 보니까 진짜 배드 엔딩 리스트 같네. 참나…… 엄마는 이런 거만 보면서 갇혀 있는 건가? 이럼 멘탈에 안 좋을 거 같은데.”
자신의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인류도 멸망하는 환상.
이런 걸 보고 있으면 멀쩡하던 사람도 미쳐 돌아갈 거다.
“지아에 대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거대 던전을 모두 없앴으니, 이제 어비스로 진입할 수 있겠군.”
“맞어. 빨리 빼 오자. 거기엔 엄마 있겠지?”
“그 전에 잠깐, 아리엘.”
스으으윽…….
성지한이 아리엘을 부르자, 그림자검이 사라지더니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비스에 대해 좀 알려 줘.”
“어비스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공허가 다루는 영역이라, 워낙 변화가 다양하거든.”
“흠. 그래? 딱히 준비할 건 없나?”
“주변 던전 정리했으니까, 진입은 가능하겠지. 한 번 정찰이라도 가보는 게 어떤가? 너와 저 검왕 정도면, 어떤 적이 나와도 빠져나올 수는 있으니까.”
“그래. 좋은 생각이군. 어비스에 뭐가 튀어나올 지 모르니, 처남과 내가 먼저 가서 전력을 파악하지.”
아무리 어비스에서 강한 적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성지한이랑 검왕 정도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했으니.
조사단은 거대 던전을 처음 탐사할 때처럼, 성지한과 검왕이 먼저 진입하기로 했다.
“나는…….”
“넌 대기하고 있어.”
“쳇, 빨리 다이아가 되야지 원.”
그렇게 윤세아도 멀리서 대기시키고 일단 어비스 정찰을 오게 된 성지한과 검왕.
던전 포탈과는 달리, 어비스는 갈라진 땅 속에 있었다.
검붉은 균열의 틈새에, 강력한 몬스터들이 튀어나왔지만.
“귀찮게 하네.”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성지한은 조금 전 환상에서 본 무신의 횡소천군을 따라 하면서.
몬스터들을 추풍낙엽처럼 베어 나갔다.
‘역시 그 처럼은 아직 안 되는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른 무신과는 달리.
전력을 다해도 수백 수천이 베이는 게 전부인 성지한.
물론 수백 수천도 남들이 보기에는 엄청난 힘이기는 했지만.
비교 상대가 무신인 만큼, 성지한은 자신의 무공이 어느 때보다 부족해 보였다.
‘기본공도 다시 단련해야겠어.’
그렇게 성지한이 앞서 나가며, 몬스터를 마구 쓸어버리면서 도착한 어비스의 입구.
성지한은 땅 아래,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균열을 바라보았다.
“진입하죠. 매형.”
“그래.”
슈욱!
그렇게 성지한과 검왕이 동시에 뛰어올라, 균열에 들어갔지만.
[어비스의 주인이 어비스의 진입 조건을 변경했습니다.]
[그랜드 마스터 리그에 소속된 플레이어만이, 어비스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플레티넘 리그 소속입니다.]
[어비스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퉁!
두 사람은 모두 검붉은 막에 가로막혀, 몸이 튕겨 나갔다.
“……뭐? 그랜드 마스터 리그?”
배틀넷이 본 게임에 오면서 추가된 마스터 리그와 그랜드 마스터 리그.
어비스는 그랜드 마스터는 되어야 올 수 있다면서, 둘을 아예 진입조차 못하게 막아섰다.
“이것들이…… 장난하나!”
열이 뻗친 검왕이 전력을 다해서 백검을 균열에 쏟아 냈지만.
팅! 팅!
균열을 가로막는 보호막은 검을 모조리 튕겨 내었다.
[갑작스러운 조건 변경으로, 어비스의 활동 범위가 급감합니다.]
[어비스의 등장 몬스터가 약화됩니다.]
갑작스런 조건 변경 때문에, 나름의 페널티를 얻게 된 어비스.
한국 입장에서야, 북한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확 줄어든 거나 마찬가지니 좋았지만.
성지아를 구출하려고 했던 성지한 일행 입장에서는, 황당한 변화였다.
“처남…… 저거 한번 같이 부술 수 있겠나?”
“좋습니다. 부숴 보죠.”
둘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력을 쏟아부어 균열을 두들겼지만.
배리어는 꿈쩍도 하질 않았다.
그렇게 두들긴 지 3시간이 지나자.
“뭐, 뭐야. 이거. 진입 안 돼?”
상황을 듣고 온 윤세아 일행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균열을 바라보았다.
그랜드 마스터 리거만 입장이라니.
뭐 그딴 조건이 다 있나.
“아, 진짜…… 엄마! 나 왔어! 문 열어! 보이드 애로우!”
성지한과 검왕의 광폭 공격에.
윤세아도 한몫 보탠다고, 화살을 쏘아냈다.
둘에 비하면 훨씬 위력이 딸리긴 했지만.
스으으…….
공허 속성이라서 그런지, 다른 공격처럼 마구 튕겨 나지는 않았다.
“오…… 되나?”
윤세아는 그걸 보고 계속 보이드 애로우를 날렸지만.
“……안 되네.”
공허의 화살은 흡수만 계속될 뿐, 배리어를 뚫지는 못했다.
그렇게 며칠을 투자한 성지한 일행이었지만.
결국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안 되겠습니다. 일단은 물러서죠.”
“……그래.”
그렇게 눈앞에서 어비스의 진입 조건에 가로막혀 후퇴하게 된 성지한 일행.
“레벨 업을 해야겠습니다.”
“하아…… 그러게 말이야. 그랜드 마스터 리그라…….”
모두가 허탈해 하면서, 진입 조건을 맞추려고 하고 있을 때.
“……어. 자, 잠깐. 나, 성좌가…….”
옆에서 같이 침울해 있던 윤세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