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98화>
[‘공허의 마녀’가 당신에게 흥미를 보입니다.]
[그녀가 당신을 후원하는 성좌가 되고 싶어 합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배틀넷 시스템에 정식으로 등록된 성좌가 아닙니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공허의 마녀.
윤세아는 저번의 환상을 통해, 그게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서, 설마 엄마…….”
“왜, 무슨 일인데?”
“나, 성좌 후원이 들어왔어! 공허의 마녀에게서!”
“뭐?”
환상 속에서는 성지아였던 공허의 마녀.
그녀가 ‘성좌’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 이런 메시지가 뜨긴 했지만 말이야.”
그러면서 마지막 경고 메시지를 읊어 주자,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식 성좌가 아니라니.
“좀 찝찝하긴 하네.”
“그래도 나, 할래. 어차피 클래스도 보이드 아처고. 혹여 공허의 마녀가 엄마가 아니더라도, 큰 도움이 되겠지.”
“그럼 너무 공허랑 엮이는데. 그쪽이랑 너무 연관되면,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래. 세아야. 지아는 내가 그랜드마스터 리그에 들어가서 찾아도 되니까…….”
하나 윤세아는 두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헤헤…… 나, 이미 예 눌렀어.”
이미 예를 누르고는 뺨을 긁적였다.
“야!”
“괜찮아. 그리고…… 그랜드마스터까지 언제 기다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으으으…….
윤세아의 몸에서, 보랏빛의 연기가 자욱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나는 협력하기로 했는데. 왜 이런 환상을 보여 주지? 공허의 의지여. 나를 조롱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연기에서 튀어나오는 음성은 성지아의 것이었다.
윤세아의 후원자로 신청을 한 게 맞긴 한 건지, 짜증섞인 음성으로 공허를 타박하는 그녀.
윤세아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엄마! 어디 있어 대체? 우리가 찾으러 왔어. 빨리 나와!”
[감히 내 딸을 흉내 내다니……! 세아의 죽음은 확정적. 수만 경우의 수 가운데에서도, 바뀐 적은 없었다. 공허여. 나에게 그런 능력을 부여해 놓고는, 이게 무슨 장난질인가?]
“뭔 소리야 진짜! 잘만 살아 있구만. 왜 자꾸 딸 죽여?”
[계속해서 이렇게 나를 우롱한다면, 마녀의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아, 종말을 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저기요. 어머니? 자식 말 좀 들어 보세요.”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는 모녀.
정확히는, 성지아가 윤세아 보고 환상이라면서 완전히 무시하는 것에 가까웠다.
‘……자기가 성좌 후원한 게 아니었나? 왜 저래?’
성지한은 둘의 말다툼을 지켜보다가, 한마디 끼어들었다.
“누나. 누나가 세아한테 성좌 후원한 거 아니었어?”
[흥……! 지한이의 환상까지 추가하다니. 공허여, 이러니까 내가 믿질 않는 것이다!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제대로 짰어야지. 지한이가 세아도 살아 있는데, 정신을 차릴 리가 없잖아!]
“……거참.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다, 누나.”
“헤헤. 엄마가 보긴 그런 이미지였잖아, 삼촌.”
“지한. 진짜 그랬어요?”
성지아에게는 언제나 철없고 게으른 동생이었던 성지한.
그녀는 성지한이 이 자리에 있자, 오히려 이게 환상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몇몇 미래에서 보인 올케까지 환상으로 만들어 내고……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엥? 진짜? 소피아가?”
“……올케가 뭐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어느 정도 구사는 할 수 있었지만, 올케라는 용어는 생소해하던 소피아는.
“동생의 부인을 그렇게 말하는데…….”
“어?? 진짜??”
윤세아의 단어 풀이를 듣고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언니!! 그 미래, 어떻게 진행된 거죠? 제가 어떻게 지한을 꼬드겼어요? 알려 주세요!”
겁도 없이 윤세아에게 다가가서, 연기를 움켜쥐는 소피아.
어느새 성지아를 부르는 호칭도 언니로 변해 있었다.
그러자 순간, 꿈틀하는 보랏빛 연기.
“소, 소피…… 아, 진짜 좀…… 가만히 있어!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다니!”
“아냐! 내 가정사일 수도 있잖아!”
“어. 아휴 진짜…… 성지한 플레이어. 죄송합니다. 다음엔 절대 안 데려올게요.”
크리스토프와 치고받고 하는 소피아를 보자, 연기 속에서 어이없다는 듯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상하군. 공허의 의지가 만들어 낸 환상이라기에는, 뭔가 난잡하구나.]
“아, 엄마 나 진짜라니까? 삼촌이 미친 듯이 세져 가지고 말이야~ 맨날 1등하고~ 골드로 국가대표 돼서 아빠도 이겼다구!”
“으음…… 세아야. 나, 처남한테 지진 않았다.”
“아, 어쨌든! 그래서 정신 차린 아빠랑 일본 여자 없앤 후 한국으로 돌아왔단 말이야~ 아까 같은 배드 엔딩 상황이 아니라구요!”
[하…… 말이 되는 소리를! 지한이가 그랬을 리가 없어! 그 괴물에게 선택받기 전에는, 그냥 도박 중독자였다고!]
성지한은 자신을 도박 중독자에, 게으름뱅이 취급하는 누나를 보며 확실히 깨달았다.
성지아가 저번 세상의 미래는 볼지 몰라도, 지금 현재를 보지는 못하는구나.
“지아야.”
[즐거운 환상에 끼어들지 마라. 윤세진.]
“……그, 그래.”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윤세진이 한마디를 꺼냈다가 바로 묵살당하는 걸 보자.
성지한은 그래도 이게 누나에겐 ‘즐거운 환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누나 말대로 즐거운 환상이니까. 계속 상상해 보자. 거기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후후.]
성지아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공허의 의지여. 잘 알면서 물어보는구나. 공허의 마녀는 종말을 주관하는 존재. 인류가 종말의 위기에서 벗어난다면, 마녀의 힘도 약해지겠지…….]
“지금 우리 순위 높은데?”
[인류가? 그럴 리가…… 역시 부질없는 환상이로구나. 거기에 순위 평가는 시즌 중반은 되어야 가능한 것. 반짝 승리는 평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
시즌 중반은 가야지 인류가 살아남을 거 같으니까.
종말을 주관하는 마녀의 힘이 약화되는 건가.
“그랜드 마스터 리그를 가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어비스에 바로 진입하는 게 빠르겠어.”
[후후, 어비스에 함부로 진입했다가 잘못 건드리면 한반도가 폭발할 텐데…… 공허의 의지여. 이런 당연한 상식도 모르는 척을 하다니, 이번 환상은 정교했구나.]
“아하…… 그래요? 그럼 다른 방법 없어요?”
[……공허의 힘을 얻은, 환상 속의 세아가 더 성장하면 모르겠지만. 그러긴 쉽지 않겠지.]
환상 타령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포인트를 짚어 주던 성지아.
하나 그렇게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되자, 윤세아의 몸에 자욱하던 보랏빛 연기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끝인가…… 이번 환상은 나름 즐거웠다.]
그렇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는 사라지는 연기.
성지한 일행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누나가, 우리 환상 취급하는 거치고는 설명이 많던데.”
“엄마…… 사실은 이게 진짜란 걸 아는 거 아닐까?”
“입장상, 이야기를 막 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공허의 마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지아가 눈치는 빨랐거든.”
그들이 그렇게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윤세아가 문득 의문을 표했다.
“근데 성좌 후원한 거…… 막상 주관하는 엄마도 모르는 기색이던데, 누가 한 걸까?”
“글쎄다.”
성지아가 중간에 눈치채고 이런저런 팁을 줬다고 해도.
일단 일의 시초, 성좌 후원 자체는 그녀가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럼 대체 누가 연결을 시켜 준 거지?
‘짐작 가는 대상이 지금으로선 전혀 없군…….’
성지한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단서가 너무 없었다.
성지아와 윤세아를 연결시켜 준 존재에 대해서는, 계속 염두에 두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단…… 돌아가죠.”
던전 탐사 일정을 여기서 마무리했다.
* * *
[대거 사라진 던전 포탈. 북한 땅, 평화를 되찾다!]
[숨어 있던 주민들, 속속들이 구출돼.]
[문이 닫힌 어비스, 입장 조건은 그랜드마스터 리거 이상?]
[북한 탐사의 숨은 공로자. 크리스토프 해설. 세계 최초의 S급 탐색 능력자로 밝혀져.]
[배틀넷 연맹, 윤세진의 공로를 인정하여 국가대표 경기 출전을 허용.]
성지한과 검왕이 나선 북한의 던전 포탈 철거.
원래 그들의 목적은 성지아의 흔적을 찾는 거였지만, 사람들은 북한에 던전이 사라진 현상 자체에 주목했다.
-와……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혹시나 또 던전 브레이크 터지는 줄 알았더니. 평화롭게 끝났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에도 조심조심 하지 아쉽다.
-그땐 탐색 능력자가 던전 포탈 없애는 지 몰랐잖아.
-근데 크리스토프 해설자 S급 실화냐??
-해설 때려치우겠네 ㅋㅋㅋㅋ
북한의 던전 조사단이 이번 일로 얻은 성과는 상당했다.
인류를 위협하는 던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많이 구축했고.
처리하기 힘들 거라고 여겼던 거대 던전 포탈도, 크리스토프의 합류로 인해서 토벌이 가능하다는 게 밝혀졌으니까.
그래서일까.
세계 배틀넷 연맹은 대대적으로 조사단의 일원을 뉴욕으로 불러 치하했고.
특히 검왕에게는 국가 대표 출전 금지를 풀어 주고 큰 포상을 내렸다.
“삼촌 안 아쉬워?”
윤세아는 TV에서 아빠가 배틀넷 연맹 회장에게 상을 받는 걸 보더니, 성지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회장한테 상 받는 거?”
“응. 삼촌도 상 준다고 불렀잖아.”
“뉴욕 멀어. 가기 귀찮다.”
“그래도 나름 기념이 되는데…….”
“지가 한국을 와야지. 어딜 불러. 솔직히 매형도 출전 금지 풀어 주는 거 아니었으면 안 갔을 걸?”
“하기야.”
그랜드 마스터 리그에 올라서겠다고, 요즘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윤세진.
다이아리그 -강남 1 에어리어에서는 괴물이 다시 게임을 시작한다면서, 플레이어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윤세진 대기 길드 가입했더라?
-검왕이야 뭐 스탯 보너스 필요 없잖아. 성장이 중요하지.
-검왕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잘 나가던 랭커들 다 대기 길드 문 두드려 보고 있다는데?
-레벨 확장되니까 고인물들이 다시 성장 스타트를 시작하는구만 ㄷㄷ검왕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랭커들도 대기 길드에 웃돈 줄 테니 넣어 달라면서 줄을 서고 있는 상황.
이러다가 대기 길드는 유망주 길드가 아니라, 랭커 집합소가 될 판국이었다.
“삼촌…… 랭커들 줄 선다며. 나 안 쫓아낼 거지?”
“하는 거 봐서? 일단 랭커가 돼라, 너도.”
“안 그래도 요즘 열심히 게임 돌리고 있어. 1월에는 승급전 같이 못할 거 같긴 하다만…… 다음 달에 따라잡는다!”
“그래. 근데 누나한테는 더 이상 연락 없디?”
“어. 그 후론 조용한데…… 딱 한 번. 나 지적해 줄 때가 있었어.”
“뭐?”
“클래스 진화하려고 했을 때였는데…….”
특수 클래스, 보이드 아처인 윤세아.
플레티넘인 지금은, 이 클래스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다.
보이드 아처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보이드 슈터와.
새로 나타난, ‘공허 분석가’ 중에서 하나로.
“클래스 추가 효과를 보니 보이드 슈터가 훨씬 좋았거든? 공허 분석가는 공허 능력을 더 분석합니다라는 추상적인 설명만 나와있고. 그래서 당연히 보이드 슈터를 고르려고 했는데…….”
“근데?”
“갑자기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내 딸은 이렇게 어리석지 않았는데. 언제나 전교 1등을 하는 아이였는데. 환상이라 그런지, 역시 제대로 구현하질 못했구나…… 우리 딸의 현명함을.]
그간 조용하다가, 클래스 진화할 때 딴지를 건 성지아.
“아, 왜? 뭐가 문젠데, 엄마. 슈터가 훨씬 좋던데.”
[……하아. 정말 아무리 환상이라지만, 바보니? 자. 봐봐! 아, 힘이…… ]
그러면서 무언가를 설명하려던 성지아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대신, 윤세아의 클래스 선택 창에는 공허 분석가만 보랏빛으로 강렬하게 반짝였다.
누가 보더라도, 이걸 선택하라는 뜻.
“그래서 어떻게 했냐?”
“엄마 말 들어야지. 공허 분석가 했어. 쩝…… 슈터가 훨씬 좋은 거 같은데.”
“뭐 깊은 뜻이 있겠지. 공허의 마녀면 공허에 대해 잘 알 거 아냐.”
“그치…… 근데 저 어드바이스 빼곤, 별 지원이 없긴 해. 다른 성좌들은 능력치도 준다는데 말이야.”
엄마가 성좌인 거치고는 너무 지원이 없다면서 아쉬워하는 윤세아.
“삼촌은 성좌한테 뭐 많이 받았지?”
“글쎄? 딱히? 나도 의뢰받은 걸 완료해야 보상을 주기로 해서 말이야.”
적뢰를 완성하면 EX급의 보상을 주기로 약속한 성좌 뇌신.
하지만 아직은 완성하기까지, 몇 가지 단계가 남아 있었다.
‘성좌 슬롯 하나가 비어 있긴 한데…… 하이드아웃 때문인지 이목을 끌진 못하고 있군.’
스페이스 리그에서 자신을 숨기기 위해 택한 하이드아웃.
그로 인해, 성지한은 뛰어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성좌들의 눈에 띄질 않았다.
그냥 그림자여왕의 후원이나 받을까?
성좌 이야기가 나오니, 슬롯을 남겨 두기가 아쉬워서 그가 그리 판단하고 있을 때.
[‘죽은 별의 성좌’가 드디어 찾았다면서, 당신에게 흥미를 보입니다.]
[그가 당신을 후원하는 성좌가 되고 싶어 합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반갑지 않은 이름이 갑자기 시스템 창을 통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