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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209화 (209/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209화>

전사 전용 맵 발할라.

벽은 황금의 방패로 만들어져 있고.

거대한 창대가 대들보를 이루는 이 전사의 궁전은.

각 팀 당 50명의 전사가 선발되어, 발할라의 거대한 홀에서 승부를 내는 맵이었다.

=아, 시청률이 역대 최고 기록을 돌파했군요!

=2018년, 챔피언스 리그 8강전 때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배틀넷 본 게임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국가 대표 경기라 그런지. 외국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지켜보고 있어요!

=블라디미르 선수의 변화도 이러한 흥행에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예, 정말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었죠! 2,3경기는 모두 밴 당했습니다만…… 4경기에는 출전합니다!

=아. 50퍼센트 확률이 빗나갔군요! 노영준 감독의 밴, 통하지 않았어요!

번쩍! 번쩍!

서쪽 지역에서 소환되는 러시아 전사들.

맨 앞에는, 얼굴이 흉터로 가득한 블라디미르가 서 있었다.

-?? 얼굴 왜 저래?

-1경기 때는 안 그랬잖아?

-완전 괴물 됐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말끔한 얼굴이었는데, 얼굴이 완전히 흉터로 뒤덮힌 블라디미르.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동쪽에 소환된 성지한을 노려보더니.

쿵!

땅바닥에 발을 찍었다.

“수혈.”

그러자.

펑! 펑!

그의 뒤편에 있던 전사들이, 일제히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1경기 때와 동일하게, 아군을 터뜨리는 블라디미르.

뼈와 살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허공에는 핏방울만 남아,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특히, 얼굴을 향해 몰리는 핏물.

물컹. 물컹…….

그것은 블라디미르의 흉터를 메우듯 얼굴에 달라붙어서.

얼굴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아까 보다 기세가 더 강하군.’

1경기 때보다 터뜨린 선수 숫자는 반밖에 되질 않았는데.

내뿜는 혈기는 저번보다 강력하다.

성지한은 뒤편의 전사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검왕이 없는 한국 전사진.

동북아시아 리그에 참전하는 나라 중엔, 최약체였지.

‘얘들도 냅뒀다간 저들처럼 터지겠지.’

블라디미르와 싸울 때 도움을 주기는커녕, 적의 에너지원이 될 거 같은 아군.

빨리 치워 버리는 게 상책이었다.

무명신공無名神功

멸신결滅神訣

만귀봉신萬鬼封神

성지한은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땅에 꽂았다.

그러자 바닥에서 순식간에 생기는 기이한 문양.

어느덧 쓸모없는 아군 처리용이 되어 버린 만귀봉신이었다.

“어…… 잠깐…….”

“빠, 빨려 들어간다……!”

슈우우우욱!

순식간에 49명의 한국 전사가 사라지자.

=아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100명이었던 전사가 모조리 사라졌어요! 둘밖에 안 남았습니다!

=성지한 선수. 아마 아군이 블라디미르의 ‘수혈’에 당할까 봐 결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확실히, 적에게 전력을 추가해 줄 필요는 없죠!

얼굴로 피를 받은 블라디미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를 바라보더니, 손을 들었다.

그러자.

파아아악!

허공에 피가 폭발하며.

=어……!

=화면이, 피로 가려집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죠!?

=중계 화면을 가리다니. 이런 게 가능한 일입니까……!?

중계 화면이 핏빛으로 물들였다.

그렇게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방삭의 업을 그딴 방식으로 사용하다니. 그가 보면 통탄하겠군.”

“동방삭의 업? 만귀봉신이?”

성지한은 만귀봉신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이게 동방삭의 업이라고?

“업이라…… 그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거지?”

“이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업을 갈취했지…… 너, 무신께 무공을 따로 전수받은 건가?”

업도 모르면서, 그걸 선보일 수가 있지?

블라디미르의 몸을 차지한 롱기누스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성지한에게 추궁했지만.

“글세, 그냥 알았지.”

성지한은 가볍게 그리 대답했다.

상대에게 전생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 그냥 알게 되었다? 건방지구나. 무신께 곧 짓밟힐 놈이 날뛰고 있어.”

“야, 철혈십자가 네 업이냐 그럼? 그게 제일 쉽던데?”

“이 자식이……!”

되로 주었다가 말로 받은 블라디미르.

그는 철혈십자를 깎아 내리는 성지한의 말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신살의 업을, 그렇게 폄훼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스으으으……!

화면을 가리던 혈기가 한군데로 모여들고.

블라디미르의 혈십자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경기 때보다 더 강렬한 기세를 내뿜는 블라디미르.

혈기가 주변에서 타오르면서, 핏빛 운무를 내뿜자.

블라디미르는 이제 인간이라기보다는, 괴물 같은 모습을 띄고 있었다.

하나 성지한은 그의 강화된 모습보다,

‘신살? 철혈십자가 신살이라고? 호오…….’

블라디미르의 말에서, 철혈십자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피와 강철의 십자를 그리고.

창을 내리꽂아 그 위에 있는 인간에게 즉사 판정을 내리던 무공, 철혈십자.

성지한은 이를 나름 개조해서, 강력한 방어수단으로 활용했지만.

‘역시 십자를 마무리 짓는 창 공격이 주 포인트였어.’

저 날뛰는 무신 관련자를 보면서, 지금까지는 어렴풋이 예측하던 철혈십자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쉽게 죽여 주진 않겠다!”

휙!

분노한 블라디미르가 돌진해 오고.

쾅! 쾅!

순식간에 수십 합이 교환되었다.

1경기 때와는 달리, 터지지 않는 혈십자검.

=어…….

=블라디미르 선수. 너무 강합니다!

=성지한 선수, 방어하기가 벅차요!

=1경기와는 전투 양상이 확실히 다릅니다……!

다시 나타난 전투 화면.

제 3자인 해설진이 보기에는, 성지한이 완벽하게 밀리고 있었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혈십자검.

그리고 사방에서 들이치는 송곳 같은 혈기.

1경기 때와는 배 이상 빨라진 블라디미르의 신체 능력.

-와…… 저거 너무 사기 아니야?

-1경기 때보다 뭐 저렇게 강해져?

-아니, 시바 저렇게 강했으면 스페이스 리그 때나 그 힘을 보여 주지. 왜 여기서 저 ㅈㄹ임?

-ㄹㅇㅋㅋ 저 정도면 하이 엘프도 이겼겠다, 야.

성지한이 버티는 게 신기할 정도로.

블라디미르는 완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놈……!’

블라디미르의 안에 있는 롱기누스는 현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제 신체 능력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성지한이 아무리 공허의 힘을 같이 받아 쓰고 있다고 해도.

아바타를 자신에게 맞게 개조한 롱기누스의 능력치를 아직 따라올 수는 없었다.

한데.

‘괜히…… 무혼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니었나?’

힘이 완전히 밀리는 와중에서도.

성지한은 공격을 한 치도 허용하지 않았다.

한 번만 살갗을 그으면, 그의 혈기를 모두 빨아들이려고 했는데.

요리조리 피하고 방어하는 솜씨가, 적인 자신이 보기에도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젠…… 끝이다!”

어느덧 발할라의 코너까지 오게 된 두 전사.

혈기가 가득 모인 혈십자검이 거대해지며.

성지한의 퇴로를 모조리 차단한 채, 찍어 누르려 했다.

하지만 그때.

무명신공無名神功

멸신결滅神訣

철혈십자鐵血十字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순백의 십자가가 성지한의 앞에 떠오르고.

그 안에 생명의 기운까지 깃들자.

초록색의 보호막이 그의 몸을 감쌌다.

성지한 식으로 개조된, 방어용 철혈십자.

“이, 이, 이……!”

그걸 본 롱기누스가 검을 든 상태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 개조된 철혈십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걸 보면 감히 무신도 아닌 존재가, 개조를 감행하다니 하면서 분노가 치솟을 줄 알았는데.

“…….”

오히려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화는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왔다.

어떻게 그 완벽한 철혈십자를…… 바꿀 생각을 할 수 있지?

“완성된 업의 발현을, 왜 네 식대로 바꾸었지?”

롱기누스의 물음에.

“철혈십자가 완성되었다고? 그게?”

성지한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십자가 만들고 가운데를 창으로 꿰뚫는 게 완성이냐? 그냥 찌를 거면 찌르고. 십자가로 방어하려면 방어하면 되지. 얼마나 번거롭냐, 이게.”

“번거…… 롭다?”

“어.”

그 말에 롱기누스의 눈이 바르르 떨렸다.

무신의 무공이…… 번거롭다니?

무신의 종으로 살아온 그로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근데 넌, 십자가 그리는 거 말고 찌르는 거 없어?”

“……뭐?”

“나중에 참고 좀 하게 써 봐라. 여기다.”

퉁. 퉁.

그러며 성지한이 자신의 철혈십자를 손으로 두드리자.

롱기누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신살을 따로 빼내겠다고?”

“그래, 뭐 별거 있냐?”

무신의 무공을 자신에게 맞게 개조하겠다니…….

‘무지해서 그런 건가?’

그렇지만.

저런 발상을 한다는 거 자체가 롱기누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하…….”

스으으으…….

블라디미르에게서 모였던 혈기가 흩어지고.

피로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얼굴은.

혼이 나간 듯, 망연자실했다.

“나는…….”

꿈틀.

그의 손에 있던 혈십자검이 움직이며, 변화하려 했다.

처음에는 날이 한쪽만 서 있는 도로 변했으며.

그다음에는 망치로, 그다음에는 몽둥이로.

자유롭게 피가 뭉쳤다가 흩어지며, 혈십자검은 여러 가지의 무기 형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단 하나.

‘창’은, 형상화하지 못했다.

“……나 롱기누스는, 할 수가 없다.”

롱기누스는 끝까지 창으로 변하지 않는 혈기를 바라보며.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

‘롱기누스라고?’

예수를 창으로 찌른 것으로 유명한, 롱기누스.

믿는 종교는 없는 성지한이었지만, 그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신화 속의 무기 가운데서, 성창 롱기누스는 상당히 유명한 축에 속했으니까.

‘한데 그가 창을 못 쓴다니…….’

무신과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데 후대에는 왜 롱기누스가 창으로 찌른 걸로 알려졌지?

성지한이 그 이름을 듣고 의아해할 때쯤.

“아, 아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던 롱기누스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떴다.

[롱기누스.]

방랑하는 무신의 음성이, 귓가에 들린 것이다.

[창을 사용하라.]

“주인……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그렇다.]

그렇게 무신의 승인이 떨어지자.

스르르르르…….

몇 번을 변형하려고 해도, 되지가 않던 창의 형상이.

순식간에 롱기누스의 손에서 구현되었다.

“……하.”

롱기누스는 만들어진 혈창을 보면서 허탈한 듯 혀를 찼다.

이렇게 쉬운 게.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서 안 됐다니.

“되네?”

“주인께서…… 허락해 주셨다.”

“창 만드는 것도 하나하나 허락받아야 하냐?”

“그래. 그게 종의 운명이다.”

성지한의 말에 긍정한 롱기누스는.

자신이 만든 혈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주인이 창을 허락한 건, 손에 꼽는다.’

강력한 성좌.

혹은 대신과의 일전을 앞두었을 때나 한시적으로 허용되던, 신살의 창.

그만큼 무신은 창을 허락하는 데 인색했다.

한데 성지한을 상대로, 이런 배틀넷 게임에서 허용을 해 주다니…….

‘……성지한이 하려는 무공 개조를, 주인도 원하시는가?’

그렇다면, 종으로서 그 뜻에 따라야겠지.

스으으윽.

롱기누스는 창을 들었다.

“성지한. 참고하고 싶다 했나? 찌르기를.”

“어.”

“그렇다면…… 보여 주지.”

창끝이 백색의 십자가를 가리키고.

“신살의 창을.”

롱기누스의 혈기가, 한 점으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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