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23화>
“태양을 삼키다니, 그게 뭔 소리냐.”
성지한은 이클립스와 여왕의 손가락을 건네며, 아르트무에게 의문을 표했다.
이클립스 강화하는 거 가지고, 뭐 저렇게 거창하게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직 이클립스가 왜 생겼는지 모르나 보군.]
이클립스와 여왕의 손가락이 허공에 떠오르고.
깡! 깡!
20개의 팔이 일제히 망치를 들어 이를 두들겼다.
검과 손가락을 융합시켜 한 단계 올라가는 게 아니라, 그냥 부숴 버릴 거 같은 재련 방식.
하나 이클립스고, 여왕의 손가락이고.
망치가 수없이 두들기는데도, 모습이 전혀 뭉개지질 않았다.
성지한은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질문을 계속했다.
“이클립스가 왜 생겼다니?”
[나는 예전에 그림자여왕에게 이번과 비슷한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검을 이클립스라고 명명하며, ‘이 검으로 태양을 집어삼키겠다’라고 말했지.]
성지한은 그 말에 이클립스의 의미를 떠올렸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 현상 때, 식蝕을 뜻하는 이클립스.
검의 이름도 그냥 허투루 지어진 게 아니라, 저런 목표가 있었던 건가.
“근데 왜 태양을 삼키려 드는 거지?”
[쉐도우 엘프의 적은 세계수지 않나. 세계수 연합 입장에선 미약한 반란군 취급이긴 하지만.]
[미약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해방한 행성이 몇 갠데.]
[호오? 이 검, 입을 나불거릴 여유가 있나 보군? 더 세게 간다!]
캉! 캉! 캉!
미약한 반란군 취급에 발끈한 아리엘을 보고는.
더욱 신나게 검을 두들기는 아르트무.
[이 야만적인……!]
[허허. 입 다물고 있어라. 괜히 그러면, 융합하는 데 시간 오래 걸리니까.]
[…….]
아리엘이 입을 다물고 있자, 성지한은 질문을 계속했다.
“세계수랑 태양은 뭔 관곈데?”
[세계수 연합에 관해, 배틀넷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소문이 있다. 우주수 이그드라실을 아는가?]
“안다. 저번에 하이드아웃을 해제하는 대신, 후원하려고 들더군. 100조 GP를 준다고 했지.”
[뭐, 뭣? 100조?? 뭐 했냐. 당장 해제 안 하고!]
망치질을 멈추는 아르트무.
합체로봇의 눈이 성지한을 꿰뚫을 듯 강렬하게 번쩍였다.
“그런 위험한 놈한테 정보를 풀 순 없지.”
[……그거야 그렇다만. 하. 널 직접 만났는데도 네가 하이드아웃 상태인 게 아쉽군. 그 얼굴의 암막, 좀 치우면 안 되냐?]
“왜, 네가 이그드라실에게 정보 팔려고?”
[응.]
“하겠냐?”
[뭐…… 안 하겠지.]
캉! 캉!
아르트무는 다시 망치질을 하면서, 성지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주수 이그드라실은 벌써 자신의 행성계를 구축했다.]
“행성계?”
[이그드라실이 인공 태양이 되었다는 소리다.]
“……뭐? 태양? 나무가?”
우주수 이그드라실.
이름은 분명 나무였는데, 이게 사실 인공 태양이었다고?
성지한은 갑자기 스케일이 자신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그래. 나무가 태양이 되다니, 아무리 배틀넷이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이지. 하지만 뭐…… 인공 태양이 완전치는 않다고 하더군.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브론즈 리그에 세계수 연합 행성을 편입시킨다고 들었다.]
캉! 캉!
배틀넷 커뮤니티에서 대체 정보가 얼마나 돌아다니는 건지.
세계수 연합의 사정에 대해 대강 알고 있는 아르트무.
그는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래도 세계수 연합의 행성 숫자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들과 같이 브론즈 리그에 편입될 일은 확률적으로 극히 희박하니까.]
“우린 있더라. 세계수 연합 엘프.”
[……그래? 재수 정말 없군 그래. 답 안 나오면 종족 버리고 빨리 튀어라. 내 대장간 이용권 사용하면 쓸 만한 우주선 하나 정돈 만들어 줄 수 있어.]
엘프랑 같은 리그에 포함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종족 버리라고 권유하는 아르트무.
그 한마디만으로, 세계수 연합의 악명이 우주적으로 얼마나 퍼졌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지한은 도망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그놈들 싹다 조질 건데?”
[무식하니 용감하군그래…… 허나 미래야 뻔하니, 우주선 재료나 미리 사 놔야겠다.]
“그거야 다른 애들한테 팔고. 그럼 이클립스는, 인공태양 이그드라실을 목표로 하는 검인가.”
[맞다. 그림자여왕은 검으로 태양을 집어삼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 허무맹랑한 소리긴 했지만.]
캉! 캉!
수도 없이 망치로 두들기자, 이제야 서서히 이클립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손가락.
[나도 대장장이로서, 그녀의 검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더군. 그래서 그녀를 예전에 도왔고, 실패했다. 무슨 수를 써도, 그림자검은 EX급으로 올라가질 않았어. 한데 이번 검은…….]
하이드아웃 상태인 성지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아르트무는.
시선을 드디어 검으로 돌렸다.
[……그때와는 다른 가능성을 지녔군.]
치이이익……!
오랜 두드림 끝에.
이클립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손가락과 검이 완전히 융합되었다.
[주인인 네가 쥐어 보고, 마지막 보완점을 찾아보아라.]
성지한을 향해 두둥실 뜬 채로 다가오는 그림자검.
성지한은 이클립스를 쥐어 보았다.
‘그림자힘이 대폭 강화되었군.’
여왕의 손가락이 융합되며, 예전보다 확실히 강해진 이클립스.
하지만 성지한은 뭔가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더 개선점이 있을 거 같은데…….’
슈우우우.
검을 운용하던 성지한은 이클립스의 중간 부분에서.
그림자기운의 농도가 다른 부위와는 차이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왜 이쪽이 비어 있지…… 주인. 채워 줄 수 있겠나? 여기만 메우면, 검이 확실히 강해질 것 같다.]
아리엘은 비어 있는 부분을 메워달라고 성지한에게 요청했지만.
“흠…….”
성지한은 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그림자기운만 강화하는 게, 맞는 걸까.
‘태양을 집어삼킨다는 그림자여왕의 목표가 이클립스의 지향점이라면. 그림자기운의 힘을 증폭시키는 방향이 맞겠지만…….’
그거야 여왕 사정이고.
성지한이 사용할 이클립스는, 그의 손에 알맞게 설계되어야 했다.
‘천뢰신결에 불의 속성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암영신결에도 생명의 기운을 넣으니 의외의 시너지 효과가 났지.’
엘프측이 지닌 생명의 기운.
그림자기운과 둘이 상극일 거라고 생각되었던 것과는 달리, 합해서 운용해 보니 의외로 쓸 만했다.
‘천뢰신결을 발전시킨 것처럼, 암영신결도 한 번, 이쪽 방향으로 시험해 봐야겠어.’
성지한은 그렇게 판단하고.
검의 중앙 부분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주인…… 지, 지금 뭐 하는 건가. 장난이지?]
“너도 저번에 느꼈잖아. 생명의 기운이랑 섞이니까 효과 좋았다는 걸.”
[아, 안 좋아 그거. 기분이 이상하다고. 쉐도우 엘프가 아닌 거 같다니까!]
“적응해 봐.”
[야!!]
아리엘이 이성을 잃고 빽 소리를 질렀지만.
슈우우우……!
성지한은 가차 없이 생명의 기운을 검 중앙 부위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흑색의 검신 가운데에, 초록색의 빛이 번쩍이며.
검의 내부에서 생명의 기운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호오.’
마치 이러길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하는 이클립스.
이클립스에서 터져 나오던 녹색 빛은 중심부에 모이더니.
흑색의 검신 가운데에, 동그란 보석처럼 박혔다.
[검 중앙부에 이질적인 것을 끼워넣었군. 엘프와 비슷한 생명력…… 그게 너의 선택인가.]
“그래.”
[그림자기운으로 꽉 채우는 게 당장은 더 쓸만했을 텐데…… 특이한 짓거리를 하는군. 그림자여왕이 선선히 손가락을 넘겨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검의 중앙부가 빈 게, 여왕의 안배였나?”
[그렇다. 융합할 때, 손가락의 힘이 그쪽만 비워 두더군.]
그림자여왕도 두 기운을 합쳐 운용하는 걸 보고 싶었던 건가.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태양의 그림자’의 이름이 ‘생명의 그림자’로 변경되었습니다.]
[등급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이클립스의 원래 아이템 명인 ‘태양의 그림자’의 이름과 등급이 바뀌었다.
[생명의 그림자]
-등급 : ??
-성좌 ‘그림자여왕’의 단말이었던 것.
-그림자검, ‘이클립스’의 형태로 변환 가능합니다.
-이클립스에 생명의 힘이 혼합되어 있어서, 그림자힘의 운용에 제약을 받습니다.
-하지만 힘의 운용에 따라, 검의 등급이 최대 EX까지 갈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처음에 SS급으로 시작했던 태양의 그림자.
이것이 오히려 생명의 그림자로 변하면서, 등급이 ?로 바뀌고 성능이 떨어져 보였지만.
‘EX급으로 갈 가능성……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성지한은 설명 마지막에 주목했다.
조금 전 이클립스에 그림자기운을 더 채웠다면, 최대 SSS+급에서 끝났겠지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은 덕에, 지금 당장은 성능이 달리더라도.
더 먼 미래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뒤바뀐 검에, 만족하고 있을 때.
지지지직…….
아르트무가 소환했던 20개의 팔 중 하나에 전류가 파지직 흐르더니.
펑!
팔 하나가 통째로 터져 나갔다.
[그림자검은 역시, 쉽지 않았군. 팔 하나를 소모했어.]
자신의 팔이 날아갔음에도, 익숙한 것 같은 아르트무.
그는 성지한을 보면서, 질문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가. 대장간 이용권 3장, 지금 사용할 것인가?]
성지한은 그 물음에, 윤세아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기회가 되면 활도 하나 맞출까 했지.
“활 좋은 거 없냐?”
[이용권을 쓸 생각인가. 아니면 GP로 구매할 생각인가?]
“오, 팔고 있는 게 있어?”
[그래. 마침 예전에 약소종족의 성좌에게 의뢰를 받은 게 있지. 자기 딸한테 줄 거니까, 성장에 초점을 맞춰서 만들어 달라고 했던가…… 나름 열심히 만들었는데.]
아르트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벤토리를 열어 뒤적거렸다.
“근데 왜 안 사 갔지?”
[방랑하는 무신이 그 행성을 침공했거든. 그 후론 소식이 없지.]
“열심히도 활동하는군. 그 무신.”
[그놈이 해치운 내 고객만 해도 수백은 될 거다. 그래도 요즘은 움직임이 좀 뜸한 편이지…… 아, 여기 있군.]
아르트무는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냈다.
[지금 등급은 SS급이지만, 주인과 같이 성장하는 무기다. SSS급까지는 금방 성장하겠지. 그 이상도 올라갈 수 있고. 어때. 사겠나?]
“괜찮아 보이는데. 얼마냐?”
[음…… 200억 GP밖에 안 한다.]
200억 GP?
뭔 활이 이렇게 비싸?
‘아이템 자체는 괜찮아 보이는데…….’
성지한이 잠시 고민하자.
[음…… 할부도 된다. 5년. 가격이 비싼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 주인과 같이 성장한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거든. 진짜 만들기 힘들었다. 재료값이 더 들었어.]
아르트무는 그 어느 때보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졌다.
“흠, 협상할까?”
[까, 깎겠다고?? 이 물건은 나의 역작 중 하나다! 우주 제일의 장인에게 가격 협상이라니…… 이건 내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야!]
“아. 돈 말고. 네 빛의 기운 좀 특이하던데. 좀 얻어가도 되냐?”
[빛의 기운…… 아, 좋다. 빛의 기운이 가득 담긴, 태양석을 주지. 대신 가격은 그대로 가는 거다?]
“그래. 할부도 필요 없다. 일시불로 주지.”
[오오, 고객님……!]
성지한의 일시불 선언에. 아르트무는 저절로 허리를 굽혔다.
[그럼,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예의 바른 태도였다.
* * *
3월 1일, 뉴욕의 세계 배틀넷 연맹 회의실.
이날은 세계 배틀넷 연맹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안건은, ‘올해의 길드’ 선정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배틀넷 연맹에서 1년에 한 번 뽑는 올해의 길드를 선정하는 날이었으니까.
‘올해는 그냥 인민회 차례인데…….’
‘왜 인민회에서 회의를 열자고 했지?’
각국의 유력 길드 대표들은, 오늘 회의를 주최한 인민회 대표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민회가 끼고 싶으면, 올해의 길드를 내놓으라고 선언한 성지한.
배틀넷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인민회 측에서 이를 거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올해의 길드에 선정되면 얻는 혜택이 대단했으니까.
근데, 인민회가 나서서 회의를 주관하다니.
‘설마…….’
그 콧대 높은 길드가.
성지한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받을 리가 없는데.
그리 생각한 각국의 대표들은, 인민회 대표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저희 인민회는, 올해의 길드 후보로 대기 길드를 추천합니다.”
인민회 대표가 이를 꽉 물며, 말문을 열자.
회의장이 금방 술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