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234화 (234/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234화>

길가메시.

그 이름을 들은 성지한은, 피티아가 저번에 보여 주었던 사람을 떠올렸다.

갈색 곱슬머리에, 긴 수염을 지닌 그을린 피부의 남자.

중동인이냐고 이야기하니까, 그녀는 이를 바로 긍정했었지.

“그때의 중동인이 길가메시였나?”

“네. 길가메시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길가메시의 서사시는 들어 본 것 같군. 죽음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죽은 인물로.”

“맞아요. 각고의 노력 끝에 불로초를 먹었지만, 뱀이 훔쳐 먹고 말죠. 이 이야기는 결국 인간은 죽음을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려 주는 내용이지만…….”

“정작 그 본인은 불노불사했군. 동방삭처럼, 오래 살기 위해 무신의 종이 된 건가.”

피티아는 성지한의 추측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가 무신의 종이 된 건, 수명 때문이 아니에요.”

“그래?”

“네. 그는 불로초를 먹었거든요. 본인한테 직접 들었어요.”

“이야기 속의 불로초를? 그럼 왜 종이 된 거지?”

“그건 저도 몰라요. 그것에 대해선 이야기를 안 해 주더군요.”

확실히 본인이 입을 닫고 있으면, 무신이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겠지.

성지한은 이에 대한 의문은 접어 두고 피티아에게 물었다.

“근데 왜 그의 권능을 먼저 완성하라는 거지?”

“……그는 무신께서 깨어 계시면 항상 잠을 자고. 반대로 무신께서 부재중일 땐 활동을 해요.”

“길가메시가?”

“네. 저는…… 무신과 길가메시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피티아는 그러면서,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거기에 제가 지금껏 제 권능이라고 착각했던…… 지옥소환, 종말구현도. 무신께서 알려 주시고 길가메시의 조언으로 살을 덧붙인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길가메시와 무신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어요. 혹시나, 둘이 동일 인물은 아닐까 하는…….”

같이 활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신과 똑같이, 원래의 권능과는 다른 조언을 했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무신과 길가메시가 동일 인물이라니.

“자세한 사정은 내부자만 알겠지만, 너무 나간 거 아닌가? 근거가 너무 빈약한데.”

“……그건 그래요. 하지만 예언자의 감이, 당신이 빙천검우를 사용한 이후부터 이상하다고 속삭이고 있어요.”

“흠. 거기에, 무공 이름 ‘혼원신공’을 맞힐 때. 네가 길가메시와 무신이 싸운다고 예언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명신공의 이름을 밝혔을 때.

[무신…… 역시 당신에게는 이길 수가 없구나. 인류의 정보를 집합한, 혼원混元의 무공…… 나도 결국 인간이니, 이를 뛰어넘을 순 없는 것인가.]

피티아는 예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혼원신공의 이름도 맞췄으니, 이 예언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겠지.

예언자가 자신이 예언한 걸 송두리째 뒤집다니.

피티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제가 그렇게 예언했죠. 하지만…… 뭔가 미심쩍어요.”

“근거는 빈약하지만. 느낌이 왔다?”

“……그래요. 둘이 만약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특수한 연관성은 있을 거예요.”

“흠…… 그런데 말이야. 다섯 번째를 먼저 완성하면, 나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지?”

“이득…… 이요?”

성지한의 말에 피티아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 내 입장에서는, 세 번째부터 완성하는 게 순서상으로 맞거든. 다섯 번째는 아직 감도 안 오는 무공이고.”

“그건…….”

“무신과 길가메시가 동일 인물이든 아니든. 그걸 알아내는 게 나에게 확실한 이득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보장되지 않으면, 무공을 순서대로 완성시키는 게 더 나아.”

피티아야 무신과 길가메시가 동일 인물이다 아니다 가지고 심각했지만.

막상 성지한 입장에선, ‘그래서 그게 뭐가 중요한데?’란 심정이었다.

“아니…… 그래도 이거 중요한데……!”

“그래. 너한텐 중요하겠지. 하지만 나한테는 그 둘의 관계보다, 내 무공 완성이 더 중요하다.”

“……알았어요. 제가 투성의 정보를 알려 드리죠.”

“투성의 정보, 알면 무신과 대항할 수 있나?”

“그건 좀…….”

“그렇지 않다면 더 받아 내야겠는데.”

성지한은 태연한 얼굴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궁금하면, 대가를 더 지불하라는 제스처.

피티아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길가메시를 알려 준 것만 해도 고급 정보 아닌가요? 너무하네요.”

“그럼 마음 넓게 써서 세 번째도 알려 주고.”

“됐어요. 그분은 안 알려 줄 거예요. 그리고 대가…… 좋아요. 당신 누나. 공허의 마녀가 짊어진 짐을 제가 나눠 가지죠.”

“짊어진 짐? 그게 무슨 소리지?”

“공허의 마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 속에 파묻힙니다. 특히 종말을 주관하고 나면, 자아 유지 자체가 힘들어지죠.”

“……그래?”

“네. 당신 누나, 이대로면 오래 못 살아요. 몸뚱어리는 남을지 모르지만, 영혼과 자아는 사라질 거예요.”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곧, 누나가 시한부란 이야기 아닌가?

그는 성지아를 묶고 있던 자물쇠를 떠올렸다.

엄청난 공허의 힘을 품고 있는, 5개의 자물쇠.

그런 걸 주렁주렁 감고 있으니까, 언제 먹혀도 이상하지 않지.

“이거……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군.”

“좋아요. 그럼 5번째 권능을 각성하면, 마녀의 짐을 바로 떠안죠.”

“누나의 짐을 모두 다?”

“와 너무하네. 어딜 다 떠넘기려고 그래요? 반으로 나눠 가질 거예요. 그 이상 받으면 저도 오래 못 산다구요.”

“음…… 그리스 시대부터 살았으면 2천 년은 산 거 아닌가?”

“뭐, 뭐요. 오래 살았으니 이제 죽어도 된다는 소리예요? 늙은이는 이제 가란 소리예요?”

성지한의 말에 뭐가 찔린 건지, 발끈하며 목소리가 높아지는 피티아.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그냥. 오래 살았다고. 누가 늙은이래?”

“으. 뉘앙스가 그거잖아요……!”

피티아는 성지한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앗…….”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   *

“이거…… 너무 오랫동안 성역 속에 숨어 있었군요. 오늘은 이만 해산해야겠어요.”

“알겠다. 그럼 경기에 복귀할 건가? 일본 대표로?”

“일본? 아. 제 아바타 나라요? 아뇨. 당신이랑 싸울 것도 아닌데요 뭘. 원래는 저도 당신 교육 좀 시켜 주고 싶었지만…….”

피티아는 그러며 씨익 웃었다.

“당신 참교육은, 동방삭이 시켜 줄 거예요.”

“동방삭. 그도 왔나?”

“네. 대만에 있죠. 저번에는 당신이 안 나와서 아쉬워하던데…… 다음 경기엔 피하지 말아요.”

성지한은 그 말에 한국과의 경기에서 1세트를 휩쓸어버렸다던, 대만의 노인 플레이어를 떠올렸다.

2경기부터는 탈진해서 안 나왔다고 했던가.

그때도 기억 속에 없던 플레이어라 수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동방삭이었군.

“피하긴. 수련 때문에 못 만났을 뿐이다. 그도 이겨 내야지.”

“하하하! 이겨요? 동방삭을?”

피티아는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방랑하는 무신을 제외하고는, 가장 무의 신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이기는 건 고사하고, 그의 검 앞에 1분도 버티기 힘들 거예요.”

“흠. 그래?”

“내기할까요? 그한테서 1분을 버티면, 제가 예언 하나 공짜로 해 주죠. 대신 지면, 무공 이름 다 알려 주는 걸로.”

1분?

아무리 동방삭이 강하다고 해도, 이건 너무 내려치기가 심하군.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기 받아 주지.”

“좋아요! 그럼, 저 먼저 갈게요.”

휙!

피티아가 사라지자, 얼음 의자와 탁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금세 불길이 메우기 시작했다.

피티아의 냉기가 사라지자, 아까 전처럼 불지옥이 펼쳐지는 아폴론의 성역.

“음…….”

한데, 조금 전과는 달리 그 불길은 성지한의 피부를 벌겋게 달구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피해를 주는 건지, 성지한이 의아해할 때쯤.

[아. 근데~ 할머니 취급, 상당히 기분 나빴어요. 그러니 성역에선 능력껏 나와보세요! 참고로 아까 성역을 펼쳐서, 당신네 나라 대표팀 반은 전멸했어요~]

사라진 피티아의 음성이 귓가에 흘려 들어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쪼잔하긴.”

[뭐. 뭐요!? 앗. 무, 무신님…… 가, 가 보겠습니다아…….]

한바탕 더 역정을 내려다가, 무신에게 호출되었는지 음성이 끊긴 피티아.

성지한은 불지옥을 둘러보며,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휙!

단 한 차례의 검풍에 불길이 대번에 사그라졌지만, 금세 다시 활활 타오르는 불꽃.

성지한은 여러 무공을 사용해 보았지만, 불은 사그라드는 듯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활활 타올랐다.

‘이거, 그냥 다 때려 부순다고 될 일이 아니군…….’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까.

성지한은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클립스를 얼려 하늘 위로 던졌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빙천검우氷天劍雨

드드드득!

순식간에 얼어붙는 하늘.

거기서 불멸자의 근원을 추적하는 검우는, 튀어나오질 않았지만.

‘빙천에서, 물이 꿈틀거리고 있어.’

조금 전, 피티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빙천검우의 진면목을 알게 된 성지한은.

이 무공을 예전보다, 조금 더 응용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검우의 추적 기준을 낮춘다.’

불멸의 존재만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 꺼지지 않는 성역의 핵을 찾을 수 있도록.

그는 검우의 탐색 기준을 낮춰보기로 했다.

스으으윽……!

그러자, 거대한 물의 검 대신.

정말 비처럼, 내리기 시작하는 검 모양의 물방울.

‘이거…… 기준을 너무 낮췄나?’

뭐가 문제인지 추적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검우는 사방에 짜잘하게 내려왔지만.

‘아니, 그래도 한군데 모이는 곳이 있어…….’

검우는 성지한의 바로 앞쪽.

조금 전까지 얼음 테이블이 있던 자리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둑……!

불을 끄고, 대지를 식히는 검 모양의 빗줄기.

그것이 계속 땅을 때리자.

[으아아아……!]

땅바닥에서, 거대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불로 이루어진 얼굴은, 중성적인 미를 품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서, 섬뜩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여기서 이 불의 힘이 나왔군.’

성역 이름이 떨어진 아폴론의 성역이었으니.

저 얼굴이 설마 아폴론인가?

성지한이 그런 의문을 잠시 품고 있을 때.

[아…… 아아…….]

불의 얼굴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우를 계속 후드려 맞다가, 서서히 꺼져 갔다.

그리고.

이렇게 성역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1경기 사우스게이트 맵이 떠오르고 있었다.

50 : 100.

전력 차이가 두 배, 성지한의 가치를 따지면 그 이상 발생했으니.

한국 대표팀도 힘든 상황에 놓였겠지.

‘빨리 도와줘야겠군.’

성지한은 맵에 완전히 복귀하자, 두 무기를 꺼내 들었다.

피티아도 굳이 방해한다고 하질 않았으니, 적들을 쓸어버리는 건 쉬울 터.

“어…….”

“삼촌! 왔어?”

게임에서 복귀하자마자, 윤세아는 뒤편에서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50:100의 게임이라, 혹시나 데뷔전에서 전사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잘됐군.

“살았네? 늦지는 않았네.”

성지한은 그녀가 팔팔한 걸 보고,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아니. 늦었는데?”

“늦었어?”

“응. 뒤쪽 봐 봐.”

성지한은 뒤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일본 플레이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접근조차 못하고, 꿰뚫린 선수들.

남은 생존자들도, 모두 질린 눈으로 성지한이 아닌 윤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1경기 MVP…… 내가 가져갈게 삼촌.”

팅!

윤세아가 활시위를 한 번 더 튕기며, 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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