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270화 (270/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270화>

‘성좌급의 존재가 여기서 나오다니…… 역시 배틀넷. 밸런스 따위는 없군.’

배틀넷의 밸런스 파괴에 한몫한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저번 생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저번에는 저들이 이쪽을 무시하다가, 개척 끝나기 하루 전에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했지.’

2주간 진행되는 행성 개척.

인류는 행성 개척에서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가, 마지막 날 세계수 엘프의 기습을 받아 멸망했다.

거대한 나무 거인들을 이끌고 와서, 단숨에 인류의 베이스 캠프를 짓밟았던 엘프.

안 그래도 첫 경기 때 인류 플레이어들을 처형시켰던 세계수 엘프는.

행성 개척 때에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인류에게 공포로 자리매김했다.

‘하나 그때는 고엘프를 본 적이 없었는데…… 설마 나 때문에 온 건 아니겠지?’

세계수 엘프 집단의 장로급이자, 성좌와 비교할 만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고엘프.

개조된 생명의 씨앗을 배틀넷에 반납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에 넘겨주면 안 된다고 성지한을 협박했던 그는.

성지한이 기어이 생명의 씨앗을 반납하자, 대노하며 지구로 쳐들어오려 했다.

하지만 지구가 ‘이미 실험이 진행된 세계’여서 진입은 불가능했고, 씨앗 반납은 이미 끝난 일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굳이 성좌가 브론즈 리그의 리그 경쟁전에 참여했다고?

‘아니다. 성좌가 그렇게 한가하진 않을 것이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강림한 김에, 겸사겸사 내가 보이니 처리하려고 든 거 아닐까?’

사실 성지한을 죽이고 싶었다면, 저렇게 인류 플레이어들의 목을 날리지 않고 당장 쳐들어오면 될 터.

굳이 ‘지금의 여유를 즐기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뭔가 그도 할 일이 있는 건가.

성지한이 그리 고엘프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고엘프…… 그가 행성 개척에 참여했다니. 놀랍군.]

그의 팔에서 아리엘이 말을 걸어왔다.

“이에 대해 뭐 아는 거 있냐?”

[고엘프에 대해서는 나도 저번에 그림자여왕께서 알려 주신 것 이외의 정보가 없다. 하지만 행성 개척에 세계수 엘프가 깊은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여기서만 얻을 수 있는 자원 때문이겠지.]

“인류가 득을 본, 일곱 심장 같은 거 말인가?”

[그래. 비록 자원이 주는 혜택이야 미약하지만, 종족 전체에 단번에 적용된다는 게 중요하지. 이는 아무리 배틀넷이라고 해도, 기적 같은 일이니까.]

생명력이 강해진, 종족진화 자체보다는.

아이템 하나 획득하자마자, 전체에 적용되는 게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아리엘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세계수 엘프들이 자꾸 브론즈 리그에 참여하는 이유로, ‘행성 개척’ 맵의 자원이 주요 원인 아니냐고 추측할 정도였다. 근데, 아무래도 그 추측이 다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은 맞는 것 같군. 고엘프가 행성 개척에 참여할 정도면 말이야.]

“브론즈 리그 말고, 그 위에는 행성 개척 맵이 없나?”

[없다. 행성 개척 맵은 브론즈 리그에 들어온 초심자의 혜택이라 할 수 있지. 그림자여왕께서도 행성 개척 맵에서 더 많은 자원을 가져왔어야 했다고 후회하셨다.]

“오. 그래? 혹시 너희도 명예의 전당 들어갔냐?”

[명예의 전당…… 아마 우리, 100위로 들어갔을 거다.]

“100위로? 100등 아르트무던데. 너희 걔한테 밀렸나 보네.”

[뭐? 100위를 그가 차지했다고?]

성지한에게만 떴던 명예의 전당 순위표.

아리엘의 반응을 보니, 예전에는 그림자여왕 쪽이 100위였다가.

아르트무가 진입하며 순위가 밀린 것 같았다.

[우리도 이 개척 대륙을 6일째에 평정하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 자원만 얻어 갔는데…… 혼자서 게임을 운용하는 아르트무에게 밀리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흠. 그래도 100위에서 쫓겨나다니. 명예의 전당, 허들이 높네.”

[아무래도 전 우주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종족들이 도전하는 게임이니까. 100위권도 대단한 거다.]

“행성 개척에서, 너희 쪽엔 쓸 만한 팁 없냐?”

[특별한 팁이라…… 우리는 연구소 강화 루트로 갔다.]

“연구실?”

[건물을 건설하다 보면, 기본 건물 이외에도 여러 가지 파생되는 건물이 생긴다. 이 중 연구소는 채취하는 자원의 질을 높여 주지. 다만 우리랑 너희는 걸어야 할 길이 다를 거다.]

“왜?”

[우리는 ‘토착종의 일곱 심장’을 얻는다고, 생명력이 늘지는 않지만, 너희는 효과가 있지 않나.]

성지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하급 종과 중상급 종 간의 자원 효율 차이가 있는 건가?”

[그래. 너희 종에게는, 질보다는 양이 더 중요할 테지. 자원 관리 쪽 루트가 나을 거야.]

“팁 고맙군. 근데 이런 것까지 알다니…… 너 진짜 여왕 아냐?”

[또 그 이야기냐? 여왕께서 얼마나 바쁘신데, 팔 안에 이렇게 있겠나? 옆에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으니 알 뿐이다.]

그러면서, 다시 기운을 거둬들인 채 팔 안으로 들어간 아리엘.

성지한은 그걸 잠시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도자 권한.”

띠링!

그러자 성지한의 눈앞에 뜨는 창.

베이스 캠프 건설 이후에 지도자에게 주어진 이 ‘지도자 권한’은, 플래닛 포인트를 통해 건물을 건설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종류가 워낙 많아서 뭘 지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아리엘의 팁 덕에 방향이 보이는군.’

지도자 권한 창 속에는 방어나 공격, 정찰에 특화된 건물부터.

연구소와 자원 관리소, 부활의 성소 등 수많은 종류의 건물이 있었다.

성지한은 이 중에, 자원 관리소 쪽으로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자원 관리소에 조인족의 ‘천공’ 능력을 추가로 활용하시겠습니까?]

[1만 플래닛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추가한다.”

쿠르르르……!

그러자 땅바닥이 갈라지며, 현대식 건물이 올라오더니.

그 건물이 통째로 하늘 위로 둥둥 떠올랐다.

자원 관리소뿐만이 아니라, 성지한은 짓고 있는 건물 모두에 천공 능력을 추가한 상태였다.

플래닛 포인트를 적잖이 소모하기는 했지만.

‘부가 효과가 쓸 만하단 말이지.’

[종족 ‘인류’의 영역이 천공 특성에 의해 더욱 넓어집니다.]

영역 확장은 기본이고.

[자원 채취자, ‘22차 진화형 생체로봇 드워프’에 비행 능력이 추가됩니다.]

[자원 채취 능력이 100퍼센트 올라가며, 플레이어 전원의 이동 속도가 빨라집니다.]

건물에 따라, 추가 특성까지 주어졌으니까.

그렇게 한참 자원 관리소 쪽으로 건물을 발전시킨 성지한은.

‘플래닛 포인트가 다 떨어졌군. 다시 벌러 가야겠어.’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갈헌과 인민회 플레이어들이 목만 남아 사망한 이후, 모든 인류 플레이어들은 일단 거기서 후퇴한 상태였다.

‘고엘프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일반 세계수 엘프야 잡을 만하니까. 내가 가야겠군. 엘프 정찰도 할 겸.’

그러다가 고엘프가 튀어나와서 성지한을 제압하려 들면 게임은 이대로 끝나는 거였지만.

‘나 잡으려고 지구까지 쳐들어오려던 놈이다. 죽일 거면 진작 쳐들어왔겠지.’

성지한은 그가 협박만 할 뿐, 행동에 나서지 않는 점에 착안하여.

역으로 자신이 직접 남쪽에 가기로 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동, 서, 북쪽 위주로만 정찰해 주십시오.”

“성지한님…… 남쪽에 가실 예정이십니까?”

“로그아웃된 제갈헌님이 세계수 엘프들이 괴물 같다고, 절대 남쪽은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만…….”

“그 괴물들 처리할 사람도 있어야죠.”

“저…… 굳이 위험을 무릅쓰느니, 자원 채취할 때까지 안전한 곳에 계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만에 하나 성지한님이 전사하시면, 행성 개척은 이대로 끝이 납니다.”

“드워프 생체로봇 구매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아메리칸 퍼스트 플레이어와, 인민회 플레이어 가 합심해서 성지한의 남하를 염려하는 상황.

성지한은 이들이 왜 이러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

‘생명력 맛보더니, 흥분했나 보군.’

이룰 만큼 이룬 부자들에게 가장 관심사는 건강.

그들 입장에서는, 남쪽의 상황 정찰보다 자원 채취가 중요하겠지.

하지만.

“아르트무한테 아직 연락이 안 와서 말이죠. 금방 갔다 오죠.”

성지한에게는, 자원보다는 ‘명예의 전당’ 입성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에 가장 큰 걸림돌은, 남쪽에 자리 잡은 세계수 엘프.

그는 사람들의 걱정을 무릅쓰고, 남쪽으로 향하려 했지만.

-고객님. 큰일. 큰일이네!

그때, 아르트무에게서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다.

*   *   *

대장간이 흔들렸다면서, 보고 온다고 했던 아르트무.

그는 성지한에게 메시지를 연속해서 보내왔다.

-대장간이 이상하다 싶더니…… 붉은 사자가 있더군!

-몸이 어째, 많이 보던 거였어. 자네가 사용하던 붉은 뇌전. 그거로 만들어져 있는 거야!

-그래서 물어봤지. 당신 누구냐고. 그러니까 뭐라고 대답한 줄 아나?

-자기가 뇌신이래! 뇌신! 신 중에서도, 강력하기로 유명한 뇌신!

‘붉은 사자라면…… 적뢰를 흡수한 뇌신의 우두머리군. 그가 거기 있다고?’

성지한은 아르트무의 메시지를 보면서 눈을 빛냈다.

무신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채, 와해되었던 뇌신.

얼마 전, 성지한의 성좌 슬롯에 ‘뇌신’의 이름도 사라져서 무신에게 진짜 끝장났구나 싶었는데.

뇌신의 우두머리는 어떻게든 살아남은 거 같았다.

-근데 말이지. 자꾸 나보고 성지한 어디 있냐고 하면서 으르릉거리던데…… 자네, 뇌신께 무슨 불경을 저질렀나?

-불경은 무슨. 거래 관계였다.

-음. 자네…… 지금 혹시 나한테로 와 줄 수 있겠나?

-왜? 나 행성 개척 중이라서 바쁜데. 시간 뺄 여유가 없다.

-잠깐이면 되네. 잠깐이면! 생체로봇도 내가 신형으로 10개 더 주겠네!

-신형을?

신형을 10개나 그냥 줄 놈이 아닌데.

성지한은 아르트무의 다급한 메시지를 보며, 오히려 의심이 깊어졌다.

-뇌신이 나 데려오라고 협박이라도 하나?

-으, 음. 아니 협박이랄 거까지야…… 꼭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대화할 게 있다고 하시네.

-할 말 있으면 메시지로 하라고 그래. 바쁜 몸 부르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지. 성지한 안 부르면, 내 대장간 폭파시켜 버린다고 협박 중이네.

-폭파라…… 안됐구만 그래.

-그치? 그러니 와 줄 텐가?

-아니. 거기서 문제 생기면 나 지구로 못 돌아가잖아.

게임 속이었으면 모를까.

현실에서 거기 갔다가, 괜히 분쟁이 일어나서 아르트무의 대장간이 폭발이라도 한다면 우주 미아가 될 게 뻔했다.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귀환은 내가 당연히 시켜 주지 그걸 왜 걱정하는가!

-됐고. 난 안 간다. 생체로봇 패키징 끝나면 연락해.

-잠깐……! 그래. 이렇게 나오면 로봇 안 팔겠네!

-그러든가. 고물 비싸게 사 준다는데 안 팔면 그쪽 손해지.

-아 제발……!

그 뒤로도 아르트무는 성지한에게 계속 나 좀 살려 달라면서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성지한은 이를 싹 다 무시했다.

괜히 거기 갔다가, 귀환 못 하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인류가 끝장나니까.

‘생체로봇 추가는 물 건너간 거 같고. 엘프나 잡아야겠군.’

그렇게 메시지를 못 본 체 하며, 남쪽으로 쭉 나아가던 성지한은.

“왜, 왜 로그아웃이 안 되는 거지? 목만 남았는데……!”

“으아아악……!”

“주, 죽여 줘…….”

지구인 플레이어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는 그리로 나아갔다.

거기에는 앞머리 한 가닥까지 녹색으로, 완전히 똑같이 생긴 엘프 셋이.

인류 플레이어 10명의 목을 베고, 잘린 단면에 무언가를 바르고 있었다.

“이런 놈들에게 세계수의 수액을 쓰다니…… 아깝네.”

“그래도 해라. 선조께서 필요하다고 하시니.”

“이런 쓰레기 종족에게도 쓰임새를 발견하시다니. 역시 선조께서는 대단하시군.”

“그러게 말이다. 약하기 짝이 없어. 어떻게 4위를 하고 있지, 이런 놈들이?”

녹색의 머리칼을 지닌 하이 엘프.

그들은 인류의 탑 플레이어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지한이 등장하자, 시선이 금방 이쪽으로 몰렸다.

처음에는 침착한 눈빛이었지만.

“이, 이 기운은…….”

“저자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감지된다!”

성지한이 그간 흡수했던 생명의 기운 때문인지, 동요하는 하이 엘프.

[저건 가짜다. 죽여서 목만 남겨라.]

하나 하늘 위에서 고엘프의 음성이 들려오자.

“서, 선조께서 말씀하셨다. 현혹되지 마라!”

“명을 따라! 목만 남겨!”

셋은 일제히 목검을 들고, 성지한에게 날아왔다.

인류의 플레이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른 움직임.

하지만 성지한은.

‘하이 엘프라…… 포인트 좀 주겠군.’

여유롭게 웃으며, 검을 꺼냈다.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