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72화>
“신기하군. 게임 안에서, 또다시 로그인할 수가 있다니…….”
뇌신이 임시로 마련한 공간.
성지한은 아르트무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곳으로 진입했다.
행성 개척으로 바쁜 몸이긴 했지만.
-제발…… 이대로라면 대장간 다 부서지네! 재기할 수가 없게 된다고! 드워프족의 영광도 물거품이 될 거야!
-그거 참 안타깝네.
-그, 그래. 행성 개척…… 하고 있다고 했지? 이번에 빠릿빠릿한 신형 생체 로봇도 제공하겠네. 물론 무상으로 말이야! 거기에 대장간 이용권, 3장 더 주지!
-글쎄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도와주게. 제발!
아르트무가 여러 당근을 제시하면서, 잠깐만 와 달라고 하자 성지한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리그 경쟁전, ‘행성 개척’에서 ‘지도자’로 참여 중입니다. 2시간 내로 다시 로그인하지 않으면, 인류가 실격패 처리됩니다.]
리그 경쟁전의 인게임 내에서, 바로 다른 공간으로 소환되자.
빨리 재로그인하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도자가 아닌 플레이어야 로그아웃이 자유로웠지만.
지도자는 행성 개척의 핵심이었기에, 2시간 제약이 있었다.
‘이야기만 듣고 나가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뇌신의 신왕좌가 있는 곳과, 비슷한 공간.
하나 풍경은 비슷해도, 가장 중요한 신왕좌는 부재한 상태였다.
그때.
지지지직……!
[왔군. 왔어……!]
소환된 공간의 중심에서, 붉은 전류가 흐르더니.
붉은 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 자체는 거대했지만,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린 뇌신의 우두머리.
성지한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문을 열었다.
“몸이 만신창이군. 뇌신의 우두머리.”
[무신은 종에게 맹렬한 추격을 받았으니까. 특히 우주 천마는 강력하기 짝이 없더군…… ]
“무신의 종이 왜 널 추격 중이지?”
[……아마도, 적뢰 때문인 것 같다. 무신은 적뢰를 제외한, 뇌신의 모든 권능을 흡수했으니까.]
“적뢰를 아직도 흡수 못 했어?”
[그러니 이렇게 미친 듯이 추격을 해 오겠지…….]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번에도 무신이 적뢰를 흡수하지 못하는 걸 보고 특이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뇌신의 신왕좌를 점거하고 결판이 난 이후에도, 적뢰를 흡수하지 못했을 줄이야.
‘그럼, 동방삭이 전수해 준 자하신공도 터득하지 못했으려나.’
자하신공까지 못 가져간다면.
무신은 성지한과 연관된 능력을 복제하지 못한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래서, 네 용건이 뭐지? 나, 2시간밖에 없으니 빨리 말해라.”
[네가 넘긴 적뢰…… 다시 가져가라.]
“그걸 넘기겠다고? 적뢰를 얻기 위해, 나한테 EX급 스킬까지 줘 놓고는?”
[그래…… 다 필요 없다.]
뇌신의 우두머리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적뢰보다는, 생존이 먼저야. 무신의 종에게는, 결국 언젠가 따라잡힌다. 차라리 그들이 목표로 하는 적뢰가 내게 없는 게 낫다.]
“나야 상관없다만. 그럼 네가 소멸하는 거 아닌가?”
애초에 무신과의 싸움에서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적뢰를 받아들여 독립된 개념으로 있으려 했던 뇌신의 우두머리.
근데 그가 적뢰를 포기하면, 지금까지 해 온 일은 뭐가 되겠는가.
하지만 뇌신의 우두머리는 그러한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일단 탈출했지 않는가. 1차 목표는 어쨌거나 성공했다. 뇌신의 우두머리로서, 신왕좌에 죽을 때까지 묶이진 않았으니까.]
“그럼 그냥 네가 적뢰를 포기하면 되지, 굳이 나한테 넘길 필요 있나?”
[적뢰와 한 몸이 된지라, 나로서는 그렇게 떼어 낼 수가 없다. 원류인 네가 직접 가져가야 해.]
“흠…….”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했다.
상처투성이인 뇌신의 우두머리라고 해도, 그가 지닌 적뢰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
저걸 성공적으로 가져가서 흡수하면, 뇌전의 힘이 크게 강화되겠지.
하지만.
‘속내가 있을 수도 있다. 대비는 해야지.’
성지한은 뇌신의 우두머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성지한에게만 좋은 제안이면, 아르트무의 우주선에서 협박을 하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옆에서 조용히 이를 듣고 있던 아르트무도, 이런 제안에 한마디를 거들었다.
[적뢰를 가져가라니. 좋긴 한데…… 고객님이 감당 가능하겠나? 뇌신의 힘을 흡수하는 건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가 원류이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치만…….]
[제3자는 빠져라.]
지지지직.
뇌신의 우두머리가 아르트무를 보며 전류를 방출하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하겠는가. 가져가겠는가? 이번에 가져가면, 내가 다시 뇌신이 되었을 때 크게 보답하지.]
“뇌신 사라졌는데, 어떻게 또 되냐?”
[뇌신은 비록 지금 소멸했지만, 언젠가는 다시 생길 것이다. 하늘의 번개를 신의 권능으로 경외시하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동안, 나는 뇌전의 정령으로 있으며 때를 기다리겠다. 살아남으면 기회는 언젠가 오겠지…….]
신왕좌를 빼앗기고, 뇌신의 집합체가 전멸해도.
결국 뇌신이라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또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건가.
성지한은 그 말을 물끄러미 듣다가 반문했다.
“그 언젠가가, 언젠데.”
[그건…….]
“난 지금 당장 받을 수 있는 걸 원하는데.”
[적뢰를 다시 주지 않느냐!]
“아, 그건 나도 위험부담을 무릅쓴 채 받는 거고. 어떻게 일개 인간인 내가 신의 번개를 재흡수하는 데 무사할 수 있겠어? 이런 위험에 대한 대가는 있어야지.”
[정말…… 이 지긋지긋한 놈! 뭐 이렇게 요구하는 게 많으냐! 지금 내 꼬라지를 보고도, 더 뜯어 가고 싶으냐!]
“이쪽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라서 말이지.”
무신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강해져야 하는 성지한.
아무리 피난 중인 뇌신의 우두머리라 해도, 사정을 봐줄 만큼 그는 여유롭진 않았다.
[큭…… 1조 주지.]
“1조 GP?”
[그래……! 이 정도에서 만족해라. 이 이상은, 나도 못 준다. 적뢰를 넘기고 나도 재기해야 하니까!]
“흠. GP 말고 딴 거 없냐? 스킬이나 아이템 같은 거.”
[없다. 없어!]
GP 받아 봤자 딱히 쓸 데도 없는데.
‘이렇게 돈만 쌓여 가는군.’
성지한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GP 받고, 적뢰 회수해 주지.”
[하. 참 고맙구나.]
그렇게 알뜰살뜰하게 GP까지 뜯어낸 그는.
“그럼 가져간다.”
뇌신의 우두머리에게서, 적뢰를 흡수했다.
2시간의 제한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왔다 갔다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지지직……!
몸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린 붉은 사자의 몸이 급속도로 줄어들며.
성지한에게, 적뢰가 순식간에 흡수되었다.
[레어 스탯, ‘뇌인’이 유니크 스탯 ‘적뢰’로 대체됩니다.]
[적뢰 스탯의 수치가 200이 되어, 플레이어의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남은 적뢰는 체내에 잔존하다가, 스탯 한계치가 늘어날 시 다시 재흡수됩니다.]
‘적뢰가 스탯으로 분리되다니…… 거기에, 200이 한계라고?’
원래는 무혼에 귀속된 거나 다름없었던 적뢰.
한데, 뇌신의 우두머리가 넘겨준 적뢰 때문에 성지한의 손등에 새겨져 있던 뇌인의 인장이 사라지고.
그의 체내에는 적뢰가 전격의 힘을 대체했다.
그리고.
슈우우우……!
거대한 존재감을 보였던 붉은 사자는, 풍선 바람 빠지듯 쭈그러들더니.
성지한과 비슷한 크기로, 작아졌다.
[……끝났군. 그럼 난 다시 피신을 가겠다.]
번쩍!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뇌신의 우두머리.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1분 후, 세계가 폐쇄됩니다. 로그아웃을 준비하세요.]
2시간 안에 깔끔하게 끝난, 뇌신의 적뢰 전수.
결과만 보면, 성지한에겐 이득뿐인 거래였다.
뇌신에게서 적뢰에 돈을 받은 것에 모자라.
[자, 자네. 1조 GP도 받았는데…… 우리 대장간에 투자 좀 할 수 없겠나? 뇌신 놈이 있으면서, 더 망가뜨렸어…….]
“신형 생체로봇이나 더 보내 봐 그럼. 가격 적절히 쳐주지.”
[물론이지! 바로 패키징하러 가겠네!]
“나중에 드래곤 하트도 공짜로 봐 주고.”
[당연하네!]
아르트무에게서도, 자원 채취 로봇을 더 얻어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로그아웃 직전.
‘흠…….’
체내에서 흐르는 적뢰를 살펴본 성지한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스탯으로 흡수되지 않은 붉은 전류는, 그래도 성지한의 컨트롤 하에 있긴 했지만.
‘움직임이 미묘하군.’
그의 신경을, 묘하게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 * *
=행성 개척이 벌써 13일 차입니다!
=아. 이제 끝이 다가오는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간 많은 득을 보았는데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성지한 선수가 생체 로봇을 몇 배로 충원했을 땐, 전 지구가 환호했죠!
행성 개척이 거의 끝나는 지금.
인류는 축제 분위기였다.
성지한이 아르트무와의 거래를 통해 충원한 생체 로봇이, 인류에게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주었으니까.
-벌써 끝이야? 아쉽다…….
-ㄹㅇ 몇 년을 운동한 거보다, 요 며칠 혜택받는 게 더 체감 큰 듯.
-그래도 나중엔 생명력 증가가 많이 안 나오더라. 그거보다는 플레이어 능력에 집중된 게 많이 나온 듯?
-ㅇㅇ 요 며칠간은 기프트 등장확률 증가만 엄청나게 나왔지.
생명력 증가 자원은, 어느 시점 이상부터는 잘 나오지 않고.
대신 기프트 등장 확률 증가나, GP 교환비 증가, 경험치 증가 같은 자원이 더 들어오고 있었다.
배틀넷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자원들.
일반인들은 그런 자원이 주로 나오는 걸 아쉬워했지만.
-다른 종족과 비교하면 인류 수준이 너무 낮아.
-아무리 성지한만 믿고 가자고 해도, 한 명한테 몰빵하는 건 안 좋지.
-결국 기프트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플레이어 수준도 높아지지 않겠어? 이건 환영해야 할 일이지.
배틀넷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게 결국 인류 전체의 전력을 강화시키는 길이 될 거라며 이를 환영했다.
한편, 인류의 베이스 캠프.
“으아아…… 쉬고 싶어. 자고 싶어. 씻고 싶어.”
윤세아는 잔뜩 지친 얼굴로 한탄했다.
행성 개척 13일 차.
윤세아는 한 번도 로그아웃하지 않은 채, 잠도 게임 안에서 쪽잠 자며.
계속 토착종 사냥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깨끗한데?”
“소피아가 클린 마법 써 줘서 그래…… 신성력 번쩍 하면 몸이 씻기거든. 고맙긴 한데, 그런 거 말고 욕조에 들어가서 몸 담그고 싶다.”
“그냥 로그아웃하지 그래. 잠깐 쉬다 오면 되잖아.”
“그럴 순 없어. 50위 안에 들어야 해.”
“왜?”
“배틀넷 협회에서, 거대 길드의 후원을 받아서 상위 50위에 든 플레이어들에게 거액의 상금을 수여한다고 했거든.”
“건물주가 뭐 상금에 욕심내냐.”
“돈도 돈이지만, 명예지 명예! 거기에 아이템도 준다고 했어!”
생체 로봇 드워프가 일하려면 기본적으로 토착 생명체를 잡아야 하는데.
이건 인류의 플레이어들이 그들을 제거해야만 가능했다.
그래서 지구의 지도자들은, 행성 개척에 참가한 인류 플레이어들의 사냥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거액의 상금과 함께, SS급의 아이템도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몇 위인데 너?”
“나? 25위. 후…… 후후. 더 달려서, 10위권까지 갈 거야. 삼촌. 근데 엘프는 괜찮을까? 10일 차부터 아예 안 보이네.”
“그러게. 아예 종적을 감춰 버렸어.”
“포인트 올라가는 걸 보면 망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바다에 있는 거 아니야?”
10일 차부터 완전히 사라진 엘프 잔당.
하나 그들은 멸망하지는 않은 채, 경쟁 순위에서 매일 포인트를 벌고 있었다.
개척 대륙을 장악한 인류에 비해서는, 그 수치가 딸릴지라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점수를 벌어가고 있는 엘프.
“근해는 뒤져 보긴 했는데, 전혀 모르겠더라.”
“진짜 어디 갔을까? 이러다 마지막 날 사고 치는 거 아니야?”
“글쎄다.”
성지한이 그렇게 윤세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서, 성지한 님! 여기 동쪽의 해안가인데……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바닷물이 일제히 하늘 위로 치솟고 있어요!
토착종 사냥을 위해 사방으로 퍼졌던 플레이어 중 한 명에게서.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다.
“마지막 날이 아니라, 전날 사고를 치는군.”
스으윽.
성지한은 몸을 일으켰다.
“갔다 올게.”
“어…… 무슨 일 있어?”
“엘프 나온 거 같다.”
지지지직!
그러며 적뢰를 모두 끌어올린 성지한.
200 스탯에 포함된 힘은, 완전히 그의 것으로 운용이 되었지만.
체내에 남아 있는 나머지는, 여전히 약간 버퍼링이 걸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컨트롤이 되지 않는 힘.
무혼을 지닌 그의 제어력에 버티는 걸 보면, 확실히 꺼림칙했다.
‘뇌신이 그냥 힘을 줄 리는 없지. 그래도…… 다 써먹을 곳이 있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동쪽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