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88화>
[에픽 퀘스트]
-숨겨진 존재들을 꺾어, ‘스페이스 아레나’의 주인을 만나세요.
-보상 : 다음 시즌 ‘스페이스 아레나의 루키’로 플레이어 선정.
-성좌 후보자 기간 단축.
‘루키라…… 뭔가 애매하군.’
성지한은 에픽 퀘스트의 보상 내용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실질적인 능력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아레나의 루키가 되면 뭐가 좋은 거지?
‘그래도 성좌 후보자 기간 단축은 쓸 만하네.’
별을 쫓는 자 특성으로, 1위를 300일간 지키면 오를 수 있는 성좌 후보자.
이 조건 때문에 내년은 되어야 성좌 후보자가 될 줄 알았는데, 이번 에픽 퀘스트를 깨면 올해에 성좌 후보자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조건이 까다롭지도 않으니까, 숨겨진 존재들과 싸우면서 겸사겸사 퀘스트 진행해야겠다.’
그래서 숨겨진 존재는 언제 나오는 거지?
성지한은 팔짱을 낀 채, 주변을 살펴보았다.
상대 플레이어들이 드래곤 브레스라고 착각할 만큼, 강렬한 불길에 의해 깨끗이 정리된 경기장.
바닥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지만.
경기장 너머, 하늘 끝까지 뻗어 있는 관중석 쪽은 그대로였다.
‘이쪽 아레나의 관중들은 빛밖에 안 보이는군.’
거대한 관중석에는 생명체의 모습은 없고, 원형의 빛무리만 둥둥 떠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세상 모든 색을 모은 듯, 여러 가지로 빛나던 빛무리들은.
번쩍……!
한차례 빛을 강렬히 발하더니, 모두가 붉은색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겨진 존재 중, 플레이어와 맞는 상대를 매칭합니다…….]
[‘화신의 잔재’가 소환됩니다.]
성지한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며.
화르르륵!
성지한의 눈앞에,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email protected]$…… @$!…… ]
경기장 중앙에 자리한 화염.
그 안에서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언어임은 분명한 소리.
‘배틀넷으로도 번역이 안 되네.’
지금까지 배틀넷에선 외계의 언어도 다 번역을 해 주었는데.
이번 것은, 그저 외계어로 들리기만 했다.
성지한은 불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자신이 있는 쪽까지 번져 오는 불길을 잡아챘다.
‘화신의 잔재라 그런가. 상당한 화력이군.’
이 정도면, 드래곤 하트의 힘을 흡수할 때 맞았던 최초의 브레스 정도는 되겠네.
불길은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몸이 타오를 정도로 강렬했지만.
‘적에겐 안 되는군.’
무등급 스탯, 적을 얻은 성지한은 불을 쉽게 컨트롤했다.
가슴팍에 숨겨진 적의 문양으로, 순식간에 흡수되는 화신의 불길.
[……[email protected]$!]
화르르륵!
성지한이 불을 흡수하자, 중앙에서 치솟던 화염이 샛노랗게 변하며 사방으로 퍼지던 불길의 그를 향해 모여들었지만.
‘알아서 와 주니 좋네.’
스으윽.
성지한은 가볍게 손을 움직이며, 불을 계속 흡수했다.
-성지한 갑자기 불을 다루네. 이번에 수련하면서 불의 능력을 깨우친 거임?
-예전에도 적색 뇌전 쓸 때 사용했잖아?
-그땐 번개 능력이 주였잖아.
한편, 배틀튜브를 통해 성지한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가 새로운 힘을 얻은 거 아니냐고 토론하는 시청자들.
슈우우욱!
경기장 전체를 불태울 듯한 불길이 빠르게 성지한에게로 흡수되자.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꼈다.
-이틀 전만 해도 고만고만한 플레이어끼리 싸우는 거 보다가 성지한 경기 보니 속이 시원하네 ㅋㅋㅋ
-근데 이틀 전 경기가 솔직히 스릴은 있긴 했음 보는 재미로 따지면…….
-그딴 스릴 필요 없음여 ㅡㅡ 이기는 게 장땡임.
-ㄹㅇ 게임이 이래야지.
슈우우우…….
한편, 적에 의해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화신의 잔재.
성지한을 위협하는 불길은 어디 가고.
경기장을 모두 불태울 것 같았던 화신의 잔재는, 이제 중앙에서 불꽃만 지핀 채.
천천히 걸어오는 성지한을 향해, 애처롭게 불만 쏘아내고 있었다.
하나.
“오래도 버티는군.”
팍!
날아오는 불길을, 그대로 낚아채는 성지한.
그가 불을 쥐자마자, 화염은 단번에 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적의 문양에 쌓이는 불의 기운.
‘이거…… 꽤 양이 되는데?’
처음엔 그냥 스탯 적을 다뤄볼 겸, 불의 기운을 흡수했던 성지한이었지만.
막상 화신의 잔재가 뿜어낸 불길이 생각 외로 많자, 눈을 빛냈다.
‘이거 어쩌면…….’
저벅. 저벅.
성지한은 빠르게 화신의 잔재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불은 더욱 강렬히 피어오르며 그의 행로를 막아서려 들었지만.
슈우우욱!
성지한은 손바닥으로 불을 그대로 빨아들이며, 중앙부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노란 불길의 앞에서 우뚝 선 그는.
“야. 더 해 봐.”
까닥. 까닥.
손가락을 움직이며, 화신의 잔재를 도발했다.
화르르륵!
그러자 분노한 듯, 하늘 위까지 치솟는 불기둥.
화신의 잔재는 힘을 최대한 내뿜으며, 성지한에게 대항했지만.
‘좋네.’
성지한은 오히려 기뻐하며, 그 불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그러자 적의 문양에, 급격히 쌓이는 불의 기운.
그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는 채로, 그 불을 계속해서 흡수했다.
-똑같은 화면 계속 리플레이 돌리는 거 같네 ㅋㅋㅋ
-왜 가만히 있는 거임? 끝장을 보지.
-불을 흡수하고 있는 거 아닌가?
-확실히 수련의 성과가 불은 맞는 듯.
수십 분 동안, 손바닥을 뻗어서 불길을 회수하는 성지한을 보며 시청자들이 그리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화신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스탯 ‘적’이 1 오릅니다.]
‘호오…… 드디어.’
성지한은 떠오르는 메시지에 눈을 반짝였다.
혹시나 해서, 화신의 잔재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었는데도 기다려 보았는데.
뜻밖의 곳에서, 스탯을 공짜로 올릴 수 있게 되었군.
‘이제 더 이상은 문양에 흡수가 안 되네.’
스탯이 1 오르고 나니까, 문양에 빨려 들어가도 축적되지 않는 불의 기운.
이미 먹어치웠다 이건가.
성지한은 더 이상 스탯을 올리지 못하게 된 걸, 아쉬워하면서.
‘슬슬 끝내볼까.’
게임을 끝장내려 했다.
그때.
[너…… 는. 관리자의 후계자인가?]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화신의 잔재의 말이 번역되어 들렸다.
* * *
스윽.
손을 뻗어 화신의 잔재를 끝내려던 성지한은, 그 말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안 들리던 말이 들리다니.
스탯이 오를 정도로, 그의 불을 완벽히 흡수해서 그런 건가.
[내 말이 들리나……!?]
성지한이 잠시 손을 멈추자, 불길이 일렁이며 황급히 말을 걸었다.
“그래.”
[정말로 관리자의 후계자가 맞단 말인가! 제, 제발 나를 여기서 소멸시켜다오……!]
그가 말을 알아듣자마자, 자신을 죽여 달라는 화신의 잔재.
“안 그래도 없애려 했어.”
[아니, 이 불을 없앤다 한들…… 난 죽지 않는다. 본신을 끌어내야 한다.]
“본신을 어떻게 끌어내는데?”
[아까 나를 소환했을 때처럼. 강렬한 불을 피워 올려라. 그럼 내 잔재가 계속 소환될 테니. 그걸 제압하다 보면, 마지막엔 널 불로써 누르기 위해 아레나에서 본신을 소환할 것이다.]
“흠.”
스페이스 아레나에 소환되자마자, 적의 능력으로 상대를 모두 쓸어버렸던 성지한.
그때 작용했던 힘은 오롯이 불의 기운이었다.
그게, 바로 숨겨진 존재인 화신의 잔재를 소환하는 조건이었나?
“불 말고 다른 거 쓰면 어떻게 되는데?”
[그럼, 다른 신의 잔재가 소환되겠지…… 나처럼 아레나에 귀속된, 죽은 신의 파편들이 말이다.]
“그게 소환 조건이었군.”
[그렇다. 그러니, 제발 불의 힘을 이끌어 내서, 나를 소멸시켜다오……!]
성지한은 죽고 싶어서 안달인 화신의 잔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죽고 싶은데?”
[……나는 스페이스 아레나에 영원히 구속된 상태.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 수단은, 죽음밖에 없기 때문이다.]
“흠.”
스페이스 아레나에서 해방되기 위해, 죽겠다는 건가.
성지한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이를 액면 그대로 다 믿지는 않았다.
스페이스 리그에서 만난, 외계의 존재들은.
신이고 뭐고, 죄다 믿을 수 없는 이들투성이였으니까.
뇌신도 뒤통수를 치려다가 역으로 자기가 제압당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다른 화신의 잔재를 흡수해서 스탯을 올릴 수 있다면. 그건 짭잘할 거 같단 말이지.’
이제 6이 된 스탯 적.
이 스탯은 수치 하나하나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번 화신의 잔재야 스탯 더 안 오를 만큼 흡수했지만.
새로운 화신의 잔재를 소환하게 되면, 스탯을 하나 더 공짜로 올릴지도 모르는 일.
성지한은 일단 한 개 더 소환해 보자고 결심하면서도.
“뭐 해 줄 건데?”
[뭐…….]
“설마 공짜로 일을 의뢰할 생각은 아니겠지?”
화신의 잔재에게 보상을 요구했다.
[내, 내 힘을 흡수하지 않았나. 관리자의 후계여.]
“그건 내 능력이고. 네가 따로 주는 게 있어야지.”
[줄 거라니…… 나는 아레나에 구속된 신의 잔재다. 내가 줄 것이라곤, 이 불밖에 없어.]
“GP도, 아이템도 없어?”
[그딴 게 있을 리가……! 혹여나 그런 걸 얻어도, 아레나의 주인이 모두 회수해 간다!]
성지한은 입맛을 다셨다.
스페이스 아레나에 구속되어 있다고 말할 때부터 감이 오긴 했지만.
진짜 빈털터리인가 보군.
하지만.
‘얻을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성지한은 그런 노예 상태의 화신의 잔재에게서도.
보상거리를 찾아내었다.
“좋아. 그럼 ‘아레나의 주인’. 그리고 이 스페이스 아레나에 대한 정보를 줘라. 그거로 네 소원을 이뤄주지.”
[정보를 달라고…… 모, 모르고 온 거냐 여기에?]
“어. 승급전 치르러 왔는데.”
[승급전…… 성좌가 아니야?]
화르르륵!
화신의 잔재에게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더 다급해졌다.
[성좌가 아닌데도 이 정도라니…… 조, 좋아. 알려 주지. 꼭 알려 주겠다. 그러니 날 소환해 다오.]
“정보는 선불로 주지?”
[……아레나의 주인에 대해 언급하면, 그의 주목을 사게 된다. 네가 본신을 소환했을 때 이야기해 주지.]
“흠.”
성지한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성좌가 아닌 걸 알자마자, 흥분한 기색을 드러내는 화신의 잔재.
이 녀석.
뇌신처럼, 딴생각을 품고 있는 거 같은데.
하나.
‘스탯 올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화신의 잔재의 꿍꿍이가 무엇이든 간에.
성지한은 이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알았다. 불만 써서 올라가지.”
[좋아……! 그럼 일단 이 잔재, 죽여다오.]
“어.”
슈우우우…….
성지한이 손을 뻗자, 오랫동안 버티고 있던 화신의 잔재가 단번에 사라졌다.
[숨겨진 존재 ‘화신의 잔재’를 제압했습니다.]
[승급 후, 레벨이 3 오릅니다.]
[성좌 후보자 기간이 3일 단축됩니다.]
‘3일은 너무 짜군.’
숨겨진 존재를 제압하기만 해도 주어지는 보상.
레벨 3업은 좋지만, 뒤의 보상은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나, 계속 숨겨진 존재를 제압하면 일정을 확 단축시킬 수 있겠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합니다.]
그리고, 시작된 2 라운드.
[저런 종도 진출을 했나?]
[대진운이 좋았군. 저런 하찮은 종이 2라운드에 올라서다니…….]
[저놈은 내 먹이다. 건드리지 마라.]
새로이 경기장에 소환된 성지한은.
거대한 존재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걸 느꼈다.
모두 전 경기에서 살아남아 올라와서 그런 건지.
1라운드 때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플레이어들.
-드래곤 급 괴물 종이 대체 몇 개야…….
-인간종 배틀넷에서 어떻게 경쟁하라고 저런 애들이랑 매칭함?
-진짜 괴수대전이네 갈수록 ㅡㅡ;
시청자들은 그런 거대괴수들을 보면서, 잠시 주눅이 들었지만.
“시간 없다.”
성지한의 손가락 끝에 불꽃이 피어오르고.
화르르륵!
화마가 경기장을 순식간에 덮쳐 나가자.
-편-안.
-한큐에 쓸리네 ㅋㅋㅋㅋ
-성지한이랑 왜 매칭됨 쟤들?
덩치에 위협당한 것도 잠시.
다시금 성지한 채널의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화신의 잔재’가 소환됩니다.]
조금 전처럼 소환되는 화신의 잔재.
그는 아까처럼, 성지한에게 흡수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경기가 비슷하게 진행되고.
[5라운드에 진출합니다.]
[마지막 라운드입니다.]
마지막 라운드에 들어서자.
드디어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