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89화>
스페이스 아레나 5라운드.
라운드에서 매칭되는 플레이어들의 운명은, 그 전과 똑같았다.
[이런 종도…….]
“그 소리만 몇 번짼지 지겹군.”
이딴 하급 종도 5라운드에 오냐고, 거대 종족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성지한은 손가락에 불을 지폈다.
화르르륵!
그러자 단번에 소각되는 플레이어들.
[이놈!]
[용의 불인가.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물론 5라운드까지 올라온 실력자들이라 그런지, 전 단계의 상대보다는 오래 버티긴 했지만.
“좀 하네?”
성지한의 손가락 끝에, 불이 한 번 더 피어오르자.
거대한 화마가 또다시 경기장을 덮쳤다.
5라운드에 올 때까지, 화신의 잔재를 계속 흡수한 덕분에 8까지 오른 스탯 적.
스탯의 숫자 자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지닌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5라운드도 별거 없네.
-ㄴㄴ 일반 인류 플레이어였으면 1라운드에서 광탈할 듯
-성지한 기준에서 생각하면 안 됨 이제 ㅋㅋㅋ
-ㄹㅇ 조인족한테 진 게 이틀 전이야.
매번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플레이어들을 삭제시킨 성지한을 보고, 이거 가지고 상대를 폄하하면 안 된다고 시청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5라운드를 최단기간으로 클리어했습니다.]
펑! 펑!
하늘 위에서, 성지한의 라운드 종료를 축하하듯 거대한 폭죽이 끊임없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특수 업적, ‘스페이스 아레나 – 1관문 정복’을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2,000,000 얻습니다.]
[스페이스 아레나의 유망주로 주목을 받습니다.]
[종족 ‘인류’가 브론즈 리그에 속해 잠겨 있던, 커뮤니티 기능 일부가 해제됩니다.]
[승급전을 종료하시겠습니까?]
[종료하지 않을 시, 숨겨진 존재가 나타납니다.]
‘커뮤니티 기능?’
이건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군.
성지한은 메시지를 쭉 읽다가, 승급전을 종료하겠냐는 메시지에 아니오를 눌렀다.
그러자.
[숨겨진 존재 중, 플레이어와 맞는 상대를 매칭합니다…….]
[불의 힘으로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화신이었던 존재’가 소환됩니다.]
쿠르르르……!
경기장 바닥이 흔들리더니.
중앙의 땅바닥이 융기되며, 경기장을 부수기 시작했다.
펑! 펑!
그리고 여기저기서 치솟는 용암 줄기.
그것은 곧 한데 모이며, 거대한 불의 거인으로 변했다.
[하하! 정말 성공했구나! 이 몸으로, 출전할 수 있게 되다니……!]
“그게 네 본신인가.”
[그렇다. 참으로 잘해 주었다!]
화신의 본신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곧 거대한 손바닥을 하늘 위로 향했다.
쿠르르르……!
그러자 거대한 불줄기가 하늘 위로 치솟더니.
사방으로 불꽃이 퍼져 나갔다.
거대한 경기장의 끝, 관중석까지 침범한 불은.
파스스스…….
관중석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꺼졌다.
[역시 안 되는군.]
이를 예상했다는 듯, 손을 다시 움켜쥐는 불의 거인.
“이제 알려 주지?”
[아레나의 주인에 대해서 말인가.]
“어.”
[알겠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켜야겠지. 다만.]
불의 거인은 양팔을 넓게 뻗었다.
그러자 온몸이 샛노랗게 물들더니, 전신에 불꽃이 피어오르는 거인.
[네 안에 들어가, 이야기를 해 주지!]
화르르르……!
거인의 불은 한 곳에 집중되더니, 성지한을 향해 뻗어 나갔다.
지금까지 보고 겪어 왔던 불의 힘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화신의 일격.
이것은 명백히 성지한을 집어삼키려는 시도였다.
“성좌가 아니라고 할 때 반응이 이상하더니,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스스로 자신이 먹이라고 이야기했으니, 나로선 당연히 집어삼켜야지!]
“성좌가 아니면 먹이인가?”
[그래. 격이 낮은 존재는 신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지.]
“흠…….”
어느덧 눈앞까지 다가온 샛노란 불꽃.
성지한은 손을 뻗어 이를 흡수하려 했다.
전 라운드처럼, 불의 기운이 손을 통해 적의 문양으로 모이나 싶었지만.
[언제까지 그 수법이 통할 것 같나!]
화르르르!
화신의 잔재 때 흡수당했던 걸 보고 미리 대비라도 한 건지.
불의 기운은 밖으로 빠져나와, 성지한의 전신을 태웠다.
조금 전처럼 손쉽게 흡수할 수는 없는 상황.
‘역시 한 가닥 하는군.’
과연 잔재랑은 다르다고 생각하며, 성지한은 적의 권능을 계속 운용했다.
마지막 단계, 적의 문양까지 넣을 수는 없어도.
자신의 몸을 불태우려는 불길을 컨트롤하는 건 가능했으니.
화신의 불꽃과 성지한은, 그렇게 서로를 집어삼키려 들면서 대치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놈, 끈질기게 버티는군……! 정말로 관리자의 후계자인가!]
먼저 초조해진 건, 화신 쪽이었다.
[좋아. 몸은 후계자의 것으로 갈아타면 된다…… 전력을 다하겠다!]
푸스스스…….
불꽃 거인의 육신이 허물어지고.
성지한을 향해 뻗어 오는 불길의 힘이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화신이었던 존재가, 자신의 몸을 허물어뜨리면서까지 성지한을 잡아 삼키려고 들자.
화르르륵!
적의 권능이 서서히 밀리면서, 성지한의 몸 여기저기가 불타올랐다.
일반 플레이어였다면, 바로 치명상에 이를 강력한 공격.
‘적만으로는 집어삼킬 수 없겠군.’
원래는 스탯 적에 저놈을 싹 다 집어삼키려고 했는데.
상대도 한때 신이었던 존재라 그런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이러면 다른 권능도 사용을 해야 할 때.
성지한은 대치 와중, 새로이 무공을 펼쳤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천수강신天樹降神
타오른 육신이 순식간에 재생하고.
드르르륵!
성지한의 몸 안에서, 사슬이 튀어나왔다.
[아니, 잠깐. 그건 설마…….]
성지한의 사슬을 보고 불꽃이 잠시 공격을 멈췄을 때.
스으으윽!
보랏빛의 사슬은, 순식간에 불길에 감겨 이를 구속했다.
[네, 네가 이걸 어떻게…… 넌 적색의 관리자 후계 아니었나? 공허의 구속구를 어떻게 쓰지?]
“이거 공허 거였냐?”
[네, 네놈…… 날 놀리느냐? 그걸 왜 나에게 물어봐?]
“아니. 진짜 몰라서.”
목속성의 천수강신.
엘프처럼 몸도 재생시키고, 사슬도 내뿜으며.
이걸 뭉쳐 강철거인 엔키두도 만드는 길가메시의 권능은.
성지한에게 아직 완벽히 분석되지 않는 힘이었다.
하나 생명의 기운을 통해 운용되는 권능이라, 오히려 엘프랑 연관된 힘인가 생각했는데.
‘뜻밖의 곳에서 천수강신에 대해 알아가는군.’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사슬을 더 강하게 조였다.
치이이익!
현실 세계라면 불꽃에 사슬이 감길 리가 없겠지만.
천수강신의 사슬은 겉모습만 금속일 뿐, 모든 것을 구속할 수 있었다.
‘화신이었던 자’는 그렇게 천수강신에 본격적으로 감기자, 평정을 잃은 듯 발악했다.
[아레나에서 나를 이것으로 잡아 왔으면서……! 그, 그래. 너. 이제 보니 아레나의 주인인가? 아니면 그의 끄나풀이겠구나. 날 가둔 것도 모자라, 배신할지 실험한 거야!]
“호오. 아레나의 주인도 사슬을 써?”
[이 자식이 어디까지 연기를……!]
성지한이 아레나의 주인과 연계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듯한 화신.
‘반항이 줄었군.’
성지한은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자기 멋대로 성지한을 아레나의 주인 쪽이라고 착각한 ‘화신이었던 자’는.
전의를 잃었는지, 조금 전보다 기세가 급격히 약해져 있었다.
그러자 화신의 기운도 성지한의 운용에 더 쉽게 지배당하여.
적의 문양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신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스탯 ‘적’이 1 오릅니다.]
전 라운드에선 화신의 잔재를 모조리 흡수해도 오를까 말까 했던 적의 기운이 금방 1이 오르는 걸 보며.
성지한은 입꼬리를 올린 채, 말문을 열었다.
“눈치가 빠르구나. 화신.”
* * *
[역시…… 네놈. 아레나의 주인이었는가?]
“그럴 리가.”
[그럼 그의 부하겠군. 부하가 이 정도라니. 그 괴물도 후계자를 양성하는 건가…… 어떻게 적의 언어까지 알아차린 거지?]
“후후. 글쎄.”
[……거기까진 알려 주지 않겠다는 건가.]
성지한이 그냥 추임새만 넣어도, 혼자서 예측하고 납득하는 ‘화신이었던 자’.
아레나 측에 당했다고 생각한 건지, 그의 전의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화신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스탯 ‘적’이 1 오릅니다.]
‘자기 혼자 지레짐작해서, 흡수가 쉬워졌군.’
벌써 2가 올라, 10이 된 스탯 ‘적’.
숫자가 두 자리가 되자, 확실히 불의 기운을 운용하는 게 더 수월해졌다.
화신이 기운이 조금 전보다 훨씬 빨리 흡수되자.
불꽃은 정신을 차린 듯, 이리저리 일렁이며 발악했다.
[나, 날 본격적으로 집어삼키려 드는가……! 아레나의 주인. 네놈도 적색의 관리자 자리를 노리는 거군! 불의 힘을 집어삼켜, 관리자 경쟁에 뛰어들려고……!]
“후. 벌써 거기까지 깨달았는가…….”
상대의 착각.
굳이 교정해 줄 필요 없겠지.
성지한은 그냥 입으로는 가볍게 대꾸만 해 주면서, 화신을 쭉쭉 흡수해 나갔다.
[허. 공허가 관리자 자리까지 욕심부리다니. 부여받은 소명, 청소부 역할을 저버릴 셈인가……!]
“난 주인의 뜻에 따를 뿐.”
[큭…… 이, 이렇게 끝이 나다니! 왜 함정임을, 인지하지 못했던가…….]
천수강신에 감기자마자 전의를 잃었던 화신은.
그렇게 혼자 착각에 빠져, 힘 빠진 반항을 하다가 성지한의 문양에 모조리 흡수가 되었다.
[화신의 기운을 모두 흡수했습니다.]
[스탯 ‘적’이 2 오릅니다.]
‘승급전의 진정한 보상은 스탯이었군.’
화신을 잔재부터 본신까지, 뼈까지 다 발라먹은 성지한.
진입할 때만 해도 5였던 적 스탯은 12가 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화신 같은 강대한 존재를 삼킨 거치고는 스탯이 많이 안 오른 편에 속했지만.
‘저건 신이라기엔 불완전한 존재. 화신의 편린에 불과하니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지.’
성지한은 일단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때.
성지한의 눈앞에.
그 어떤 기척도 없이, 한 존재가 스르륵 떠올랐다.
인간형의, 성지한과 비슷한 눈높이를 지니고 있는 그 존재는.
단정한 양복을 입은 채, 검은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다만.
‘얼굴이…… 우주야?’
사지는 멀쩡하게 다 있는데.
모자 아래, 얼굴은 별이 가득한 우주의 형상을 하고 있는 상대.
짝. 짝. 짝.
그는 성지한을 보더니, 크게 세 번 박수를 쳤다.
그러자.
스으으윽.
빛이 가득하던 경기장 사방이 어둠에 잠기면서.
이 공간에는 성지한과 우주 얼굴 둘만 남았다.
“놀랍군요. 제가 당신 주인이었다니.”
“당신이 아레나의 주인인가?”
“그렇습니다. 다음 시즌에 기대되는 스페이스 아레나의 루키로 누굴 선정할까 했는데…… 대형 유망주가 나왔군요.”
“신세를 졌군. 아까 잠깐 이름 좀 빌렸다.”
“후후. 괜찮습니다. 입으로 상대를 동요시키는 것도 루키에게 꼭 필요한 재능. 당한 화신이 등신이지요.”
아레나의 주인은 화신이 있던 곳을 바라보더니, 다시 성지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 그럼 루키 선정을 위한 기본 인적사항을 살펴볼까요.”
우주 배경의 별 중 푸른 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지이이잉…….
그 빛은 성지한의 몸을, 위아래로 쭉 스캔했다.
“NO.4212. ‘인류’ 출신이라…… 배신자 길가메시. 그가 속한 종족이군요.”
“배신자?”
“그렇습니다.”
스윽.
아레나의 주인이 얼굴을 손으로 쓸자.
우주 배경 얼굴이, 길가메시의 것으로 변했다.
“그는 공허의 소명을 저버린 배신자. 그의 원죄는 NO.4212 인류 모두가 갚아야 합니다.”
“그가 공허의 뭘 배신한 거지?”
“임무를 다 끝마친 그는, 주어진 수명을 누리고 죽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파악!
길가메시의 얼굴이 부서지며, 다시 우주 배경이 드러났다.
“그는 죽지 않았죠. 그게, 배신입니다.”
“그거 가지고 배신이라니…….”
“이 이상은. 말씀드리기가 그렇군요.”
스윽.
아레나의 주인이 손을 펼치자.
[스페이스 아레나의 주인을 만났습니다.]
[에픽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스페이스 아레나의 루키로 선정됩니다.]
[성좌 후보자 기간이 100일 단축됩니다.]
에픽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보상이 주르륵 떠올랐다.
‘실제로 강해지는 건 없군.’
오히려 화신을 집어삼키고 스탯 적 7을 얻은 게 더 큰 것 같은 에픽 퀘스트 보상.
성지한이 그렇게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을 때.
“우리 루키께서는, 배틀넷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레나의 주인이 성지한에게 물음을 던졌다.
“빠져나와야지.”
“NO.4212를 위해서요?”
“그래. 인류는 배틀넷에 적합한 종족이 아니야. 나 때문에 순항하는 거지.”
제3자가 보기엔 거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지만.
실제로, 인류의 상황은 성지한의 말 그대로였다.
“후후. 현실 파악이 잘되어 있으시군요.”
“…….”
“하나 길가메시가 살아 있는 한, 배틀넷의 초대장은 계속 날아들 겁니다. 배틀넷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스윽.
아레나의 주인의 얼굴이 길가메시로 다시 변하더니.
완전히 금이 가며, 파드득 깨졌다.
“길가메시를 죽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