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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292화 (292/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292화>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성지한에게 다가왔던 엘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가면의 엘프에게 머리를 숙였다.

‘본부장인가.’

저번에 저 가면을 썼던 고엘프는 성좌급의 무력 집행자였는데, 대출창구의 본부장이면 어느 정도 급이지?

‘자세히 파악하긴 힘들지만, 저번 고엘프에 비해 약해 보이진 않는군.’

인상 좋게 생글생글 미소 짓고 있는 본부장.

하지만 엄청난 공허의 힘이 담겨 있었던 가면을 저리 쓰고 있는 걸 보면.

저 상대도 만만한 자는 아닌 거 같았다.

하긴, 여기는 배틀넷을 주름잡는 강력한 플레이어들에게 대출 업무를 진행하는 곳인데.

이곳의 책임자가 약하진 않겠지.

“이쪽으로 오시죠. 고객님.”

지이이잉.

본부장이 손짓하자, 생겨나는 초록색의 포탈.

“저 포탈…… VIP룸인가?”

“저거 성좌는 돼야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저런 종족이 왜…….”

“거기에 본부장이 직접 상담에 나서는 건 처음 보는군.”

주변의 플레이어들은 본부장의 안내를 보고는, 성지한을 면밀히 살폈지만.

“도저히 모르겠어.”

“나보다 훨씬 약해 보이는데…….”

“성좌는 아니잖아?”

“그래도 우수 회원권을 지니고 있는 자다. 만만한 플레이어는 아닐 거야.”

기운을 숨긴 데다가, 우수 회원권까지 지닌 성지한의 힘에 대해선 파악할 수 없었다.

‘VIP룸이라…… 나름 기운을 갈무리했는데, 이자는 나에게서 뭘 파악한 건가.’

일단은 가 볼까.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포탈 안에 들어섰다.

그러자 드러난 건, 사방이 갈색의 벽으로 막혀 있는 거대한 공간.

“방금 전 상담받으셨던 고객님이 나무 거인족이셔서, 공간이 준비가 되지 않았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짝. 짝.

본부장이 박수를 두 번 치자.

[종족에 맞게, VIP룸의 환경이 변경됩니다.]

성지한의 눈앞에 이러한 메시지가 떴다.

그러자.

지이이잉…….

내부 공간이 변형되며, 현대식의 고급진 분위기의 응접실로 전환되었다.

“그러면…… 대출상담에 들어가기 앞서, 대출 심사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제출해 주십시오.”

자리에 앉은 본부장이 씩 웃으며 손을 펼치자.

성지한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녹색의 관리자가 운영하는 ‘세계수 연합 – 대출창구’에서 대출 심사에 필요한 플레이어의 기본 인적사항을 요구합니다.]

[기본 인적사항을 제출하시겠습니까?]

세계수 연합에게 인적사항을 주라고?

이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지.

성지한은 바로 아니오를 누르며 대답했다.

“주기 싫은데.”

“이런, 걱정 마십시오. 비록 고객님께서 세계수 연합의 타깃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대출창구에서는 결코 정보를 유출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타깃이라고?”

“예, 꽤 유명하십니다.”

탁. 탁.

본부장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면을 두들겼다.

“선배가 죽은 덕에, 제가 이 공허처리장을 이었으니까요.”

“선배…….”

“평소 잘난 척은 그렇게 하더니, 행성 개척 맵에서 당신에게 터져 버린. 그 모자란 선배 말이죠.”

선배는 뇌신과 함께 폭사했던 고엘프를 말함인가.

이미 다 알고서, 나를 초대한 거군.

성지한은 역시 본부장이 직접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그 반가면을 바라보았다.

본부장이 공허처리장이라고 일컫는 가면.

고엘프가 죽었을 때도, 엄청난 공허를 토해 냈지.

“그 가면을 공허처리장이라고 하나? 그건 부서졌는데.”

“이건 쓰레기통입니다. 쓰레기통이야 하나 더 만들면 그만이지요.”

“흠…….”

“어쨌든, 저는 배틀넷에서 가장 중립적이야 할 대출창구의 담당자. 고객님의 인적사항은 결코 유출되지 않을 테니 염려 마십시오.”

유출이 안 되긴.

세계수 엘프를 어떻게 믿나.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대출받으러 온 게 아니라, 니들 광고에 끌려온 거라 괜찮다. 사은품만 줘.”

“아…… 그렇습니까? 원래는 인적사항을 적어야 사은품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만.”

짝. 짝.

본부장이 박수를 두 번 치자, 책상 위에는 화려하게 포장된 과일바구니가 떠올랐다.

“우리 연합의 타깃도 만난 걸 기념해서, 본부장 직권으로 직접 드리지요.”

“타깃인데 잘해 주는군.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후후. 아바타를 잡아 봤자 뭐 하겠습니까. 거기에, 저 개인적인 입장에서 당신은 공허처리장을 이어받게 해 준 은인이니까요.”

“쓰레기통이라며?”

“예. 하지만 이 쓰레기통 담당자는 저희 연합에서 꽤 큰 직책이거든요.”

그러며 웃는 인상을 지우지 않는 본부장.

하나 성지한은 그의 말을 일단 믿지 않았다.

그가 준 저 과일바구니에도, 예전에 관리자가 준 열매처럼 무슨 장치가 있을지 모르지.

‘어디.’

찌익!

성지한은 과일바구니의 포장을 뜯었다.

그러자 생명의 기운이 그 안에서 물씬 풍겨 나왔다.

“여기서 드시겠습니까? 이렇게 뵌 것도 인연인데, 저랑 가볍게 티타임이나 하시죠.”

“너랑 차를 마시자고? 할 이야기 없는데.”

“후후. 그러지 말고 한번 들어 보시죠. 그쪽 세계에 대해 제가 나름 알아본 게 있습니다만…….”

“그쪽 세계라면, 지구를 말하는 건가.”

스윽.

책상 위에 찻잔 두 개가 올라오고, 금세 거기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맞습니다. 어차피 제 말, 대부분 믿지는 않으실 테지만 말이죠. 고객님에서 적절히 취할 건 취하고, 거를 건 거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과일. 원래의 행성에서 드시기엔 좀 꺼림칙하기도 할 테구요.”

“왜 그렇지?”

“과일은 결국 씨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있는 것. 당신의 행성에서 그걸 섭취하시면, 우리의 씨앗이 그쪽으로 퍼져 나갈 수 있거든요.”

본부장이 이야기하는 현상.

이건 성지한도 녹색의 관리자가 보상품으로 주었던 생명의 씨앗을 섭취하며 경험한 것이었다.

‘그걸 저쪽에서 이야길 꺼내다니…… 특이하군.’

어차피 성지한의 입안에 들어가면 퍼지지 않을 걸 알고.

그의 신뢰를 사기 위해 먼저 이야기를 한 건가?

어디, 이야기나 들어 봐야겠어.

성지한은 과일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들어는 보지.”

“감사합니다. 그럼, 바쁘실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탁.

본부장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지구의 형상이 떠올랐다.

*   *   *

“행성 지구…… 이곳은 제가 알아보니, 저희 연합에서 예전에 실험을 진행한 장소였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그래서 고엘프가 직접 현신하려다가, 못 왔지.”

“예. 사실, 이런 케이스는 매우 드뭅니다. 실험을 진행한 장소는 모두 기록에 남거든요. 아무리 선배가 무식하고 막살았다고 해도, 그 정도는 저희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파악합니다.”

고엘프 ‘선배’에 대해 감정이 안 좋아 보이는 본부장.

그는 가볍게 선배를 디스하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한데 지구로 진입하기 전까지 몰랐다는 건, 저희 시스템에 지구에서 실험한 사실이 등록되지 않았다는 뜻……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창피를 당한 선배는 돌아와서 불호령을 내렸죠.”

“그때 지구로 잘난 듯이 강림하려다가 물러나긴 했지.”

“예. 후배인 저보고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라며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참나. 지가 알아볼 것이지 말이에요. 본부장도 됐는데, 언제까지 내가 후밴 줄 아나.”

가만히 놔두면 죽은 고엘프 디스를 끝내지 않을 거 같은 본부장.

“죽은 놈은 됐고. 그래서 알아본 게 뭐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선배랑 쌓인 게 많아서…… 후후. 어쨌든 선배의 지시로 알아보았는데. 지구 이곳…… 꽤 재미있는 실험을 한 동네더군요.”

“어떤 실험이지?”

와그작.

성지한은 과일을 먹으면서, 심드렁하게 물어보았다.

엘프에 대한 신뢰가 0이었던 그로서는, 또 무슨 거짓말을 하려나 싶어서.

무슨 말을 하든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지구의 실험소장은 세계수와 자신을 융합시켰습니다. 거기에 강력한 종족들의 데이터까지 섞었지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안 와닿는군.”

“하긴, 이쪽 사정을 모르실 테니까요. 저희는 우주 각지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만,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배정받은 세계수죠. 근데 실험소장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걸 건드렸습니다. 자신과 융합시켰죠.”

“그래서?”

“지구 쪽과는 연락이 끊겼고, 나중에 연합의 조사단이 그쪽에 파견되었습니다만…… ‘특급 에러 발생’이란 메시지만 보내고 실종되었죠.”

“특급 에러라…….”

지구에 세계수 연합 쪽에서 행한 실험.

거기서 뭔 에러가 발생했던 건가.

“특급 에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나?”

“예. 제가 찾은 보고서엔 내용이 삭제되어 있더군요. 그런 경우는 드문데 말입니다.”

“흠…….”

성지한은 생글생글 웃고 있는 본부장을 바라보았다.

왠지 삭제되어서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거기까지는 안 알려 주는 느낌인데.

성지한의 시선에도 본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보고서의 막바지에는 결국 ‘공허와 협력하여 에러 해결. 데이터 회수 실패.’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해결되었는데 왜 데이터 회수는 실패했지?”

“공허 측에서 삭제했겠죠.”

“흠…….”

공허가 개입했다라.

성지한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길가메시를 떠올렸다.

공허를 배신한 길가메시.

배신을 했다는 건, 그 전까지는 협력하거나 거기 속했단 뜻이겠지.

이 일과 혹시 관련이 있나?

“그래서, 그 에러 해결은 언제 된 거지?”

“자세한 시기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꽤 오래전 일일 겁니다.”

“그런가.”

엘프가 오래전 일이라고 할 정도면, 꽤 고대의 일이겠군.

성지한은 그의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지구에 정착한 세계수 엘프의 특이 실험으로 인해 나타난 ‘특급 에러’.

그것은 결국 세계수 연합과 공허의 협력으로 인해 해결되었다.

‘세계수 연합이나 공허,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는데 이들이 협력할 정도면…… 특급이라 칭할 만한 에러였겠군.’

성지한은 본부장의 가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부장이 공허처리장, 쓰레기통이라고 일컫는 저 가면은.

막대한 공허를 응축하여 저장하고 있었다.

저런 이들이 일시적으로 공허와 손을 잡을 정도면, 특급 에러란 건 그만큼 엄청난 문제였겠지.

“어쨌든 특급 에러와 관련된 문제여서 그런지. 상부에서는 저희의 시스템에 지구와 관련된 문제를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배는 기세 좋게 지구로 강림한다고 했다가 창피를 당한 거죠.”

“그렇군.”

사각.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과일을 다 먹어 치웠다.

차곡차곡 몸에 쌓이는 생명의 기운.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테이블 위의 차까지 마셨다.

그러자 체내에 쌓이는 생명의 기운 중, 특이한 것이 꿈틀거렸지만.

지지지직…….

그는 손가락 끝에서, 적뢰를 피워 내 이를 배출했다.

적의 기운을 드러내는 대신, 일부러 예전의 적뢰를 쓴 성지한.

“차랑 먹어야 반응하는 기운이라. 재밌군.”

“아닛……! 그런 게 있었습니까?!”

본부장이 성지한의 손가락에서 피어오르는 녹색의 연기를 보고 호들갑을 떨자.

그걸 본 성지한은 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모르는 척 연기는 잘한다.

“그래서 이런 정보를 나에게 건네준 이유는 뭐지?”

“저는 그저 선배의 죽음에 따른…….”

“그래. 그 선배 죽인 나한테 이걸 알려 줄 이유는 없잖아?”

씨익.

성지한의 물음에 본부장은 웃음만 지을 뿐, 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대출 진행하시겠습니까? 타깃님.”

“아니, 잘 먹고 간다.”

“다음에 또 놀러 오십시오. 그때는 더 좋은 사은품을 준비하겠습니다.”

“몸속에 또 벌레를 넣을 생각인가?”

스윽.

성지한이 그러며 자리에 일어나자, 본부장의 미소가 짙어졌다.

“벌레라뇨. 그건 타깃님과 저희가 서로 친해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랍니다.”

“사양하지.”

번쩍!

성지한은 그 자리에서 바로 로그아웃했고.

“정말. 깨끗하게 지워 버렸군요…….”

본부장은 성지한이 체내에서 배출한 녹색의 기운을 보며 감탄했다.

성좌마저도 여럿 지배를 받게 되었던 ‘세계수의 지배’.

그것은 과일과 차의 조합으로 완성되었다.

한데 최하급 종족이 은밀하게 깃든 기운을 정제해서 토해 내다니.

역시 타깃이라 할 만하다.

“이러면 상부의 뜻대로, 더 기대할 만하겠어요.”

세계수의 지배를 당하지 않고, 깔끔하게 기운을 토해 낸 성지한을 보면서.

가면 속, 본부장의 미소가 오히려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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