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23화>
천룡뇌화의 불꽃 안.
“……네놈.”
새하얀 불길에 잠긴 롱기누스는, 접근해 오는 성지한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엔키두가 나오며 신살의 창이 막히고, 불의의 반격을 당한 그였지만.
애초에 성지한과 힘의 차이가 커서 그런지, 사라졌던 피의 갑주는 서서히 복구하고 있었다.
‘빨리 소멸 코드를 써야겠군.’
성지한은 한층 더 속도를 내, 롱기누스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둘의 거리가 지척에 다다랐을 땐.
이미 롱기누스의 갑옷은 대부분 모습이 복구된 후였다.
그리고.
“이번엔 다를 것이다!”
스으으으……
불길 속에서도 사방에서 핏물이 피어오르며, 혈창이 만들어졌다.
창을 던졌다가 엔키두에게 유도되었던 것 때문인지.
롱기누스는 이번엔 투창을 하지 않고, 창을 꽉 쥐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혈창의 끝에 빠르게 연기가 피어오르며.
[타깃 코드, 일부 일치]
[소멸 코드 발현]
조금 전의 코드가 다시 떠올랐다.
“엔키두.”
허나 창을 보았을 때부터 이를 예상한 성지한은, 그의 옆쪽에 엔키두를 소환했다.
사슬이 서로 감기며 거대한 강철거인이 모습을 드러내고.
롱기누스가 들고 있는 창은, 엔키두 쪽을 향해 저절로 창 끝을 움직였다.
그가 손에 꽉 쥐고 있지 않았다면, 이미 혈창은 그리 날아갔겠지.
“이익……! 엔키두. 성가시구나!”
롱기누스는 애써 움직이는 창을 꽉 쥐며, 창끝을 다시 성지한에게 향했다.
확실히 그의 손아귀에 들어 있어서 그런지,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 혈창.
[성좌 도달 레벨이 772로 낮아집니다.]
그가 전열을 가다듬을 때, 성지한에게도 메시지가 떠올랐다.
‘10분 지났군.’
이제 772레벨만 되면, 성좌가 될 수 있는 성지한.
사실 이 도달 레벨 자체는, 아직까지 여유가 있었지만.
‘가면이 문제다.’
10분쯤 지나니, 반가면에서 밀려 들어오는 공허의 힘이 점점 부담스럽게 변해 갔다.
공허의 의지에 언제 귀속될 지는 정확하게 수치상으로 나온 게 없었지만.
성지한은 본능적으로, 이걸 여기서 10분 이상 더 쓰게 된다면 자신이 공허에 잠식될 거라고 깨달았다.
힘을 증폭시켜 주는 만큼, 그만큼 반작용도 심한 반가면.
‘메시지가 한 번 더 뜰 정도가 되면, 가면을 벗어야 한다.’
성지한은 자체적으로, 반가면의 유효시간을 15분으로 책정했다.
그렇게 따지면, 현재 남은 시간은 거의 없는 상황.
성지한은 롱기누스가 직접 창을 들고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제 발로 오는구나……!”
롱기누스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창끝을 겨누었지만.
[경고! 플레이어 ‘성지한’은 배틀넷의 집중관리대상입니다.]
[성좌 후보자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멈추십시오.]
파직. 파직……!
두 사람에게 모두 배틀넷의 경고 메시지가 떠오르면서.
공격자인 롱기누스의 몸에, 새하얀 전류가 번쩍이며 그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10분이 지나니, 배틀넷의 관리가 발동하는군.’
“큭……!”
새하얀 전류에 뒤덮인 와중에도, 초인적인 힘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드는 롱기누스.
하나.
“너의 업, 개조해 보라고 했지?”
스으윽.
그 전에 성지한이, 롱기누스에게 접근했다.
“봐라.”
화르르르!
성지한의 손가락 끝에,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겉보기에는 그냥 파이어와 큰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안에는 스탯 적의 힘을 포함하여, 성지한이 지닌 모든 능력이 혼합되어 있었다.
“이게 내가 개조한 것이다.”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치이이익……!
롱기누스의 혈갑주 위에.
[멸]
하나의 문자가 새겨졌다.
사아아아…….
그러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피의 갑옷.
“이…….”
롱기누스는 사라지는 혈기를 느끼며, 이에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소멸 코드는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아아…….
순식간에 사라지는 육신.
처음에는 가슴 쪽이 사라지고.
그다음에는, 창을 쥔 양팔과 다리가.
더 나아가서는.
“창이……!”
롱기누스의 혈창이, 순식간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머리뿐.
롱기누스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몸뚱어리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이게, 나의 업을 개조한 것인가.”
“그래.”
“확실히 효과가 있군. 나를 계속 살리던 근간, 혈기가 사라진다……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없어지다니. 드디어…… 죽는 건가?”
분함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이 느껴지는 롱기누스의 목소리.
성지한은 그걸 듣고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죽고 싶었나?”
“그래. 이렇게 빨리 죽을 줄은 몰랐지만…… 개조된 신살의 권능으로, 죽는 것도 의미가 있군.”
성지한을 소멸시키는 건, 무신의 종으로서 당연한 일.
하나 그에게 패배해서 자신이 소멸한다면, 그건 롱기누스의 원래 소원인 ‘스스로의 죽음’을 이룬 것이 된다.
‘이제…… 되었다.’
롱기누스는, 혈창이 사라지는 걸 본 후부터 성지한과 더 이상 싸울 생각을 버렸다.
성좌로서 성지한에게 너무 빠르게 진 건, 체면이 살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토록 원하던 죽음이 찾아오자, 이제 모든 게 부질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스으으으…….
목과, 턱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롱기누스는 힘없이 웃음 지었다.
“……졌다.”
그 말을 끝으로.
롱기누스의 머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 * *
[……죽었어? 이 정도 성좌가, 벌써? 성좌 후보자한테 졌다고?]
그림자여왕은 눈앞의 상대가 사라진 걸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아무리 상대의 핵심 공격이 강철거인에 막히고, 배틀넷의 경고 메시지에 움직임이 멈추긴 했지만.
그럼에도 승부가 갈린 시점이 너무 빨랐다.
특히.
상대 롱기누스는, 갓 성좌가 된 신참자 수준이 아니었다.
[적어도 상대 성좌 정도면, 독존 레벨 3~4는 될 텐데…….]
“그 정도면 어느 수준이지?”
[성좌 중에서 중하위권은 한다.]
그가 보여 준 힘은, 성좌로서 어느 정도 활동을 해야 지닐 수 있을 정도였다.
한데 그 정도 상대가, 이렇게 빨리 사라지다니.
[뭘…… 한 건가?]
“저놈 권능을 잘 써먹었지.”
[다른 이의 권능, 잘 가져다 쓰는구나.]
성지한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림자여왕의 말에 딱 해당하는 건, 방랑하는 무신이지.
‘일단 이거부터 벗자.’
스으윽.
성지한은 재빨리 반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몸에서 소용돌이치는 공허의 기운이, 금방 잠잠해졌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끌었다면, 공허의 의지에 귀속되었겠어.’
자체적으로 15분으로 측정했던, 반가면의 유효 시간.
확실히 그 시간대가 다가오자, 체내에서 움직이는 공허가 심상치 않았다.
롱기누스가 소멸 코드에 오래 못 견디고 사라져 줬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시간이 더 끌렸다면, 지는 건 이쪽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스탯 공허가 5 오릅니다.]
‘공허가 올라 버렸군.’
가면의 공허를 활용한 여파는 아직도 성지한의 체내에 남아서.
공허 능력이 5나 올라 있었다.
이렇게 공허 능력 올리기 쉬울 줄 알면, 예전에 스탯 포인트로 찍지 말걸.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추가 메시지들도 확인했다.
[특수 업적, ‘성좌를 떨어뜨리다(2).’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성좌 명성을 10,000 획득합니다.]
예전에 고엘프를 뇌신과 함께 폭사시켰을 때 달성했던 특수 업적.
그때는 업적 포인트를 주었는데, 이번엔 보상이 성좌 명성으로 대체된 상태였다.
‘메시지까지 떴으니 확실히 죽었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아래의 보상도 보았다.
[레벨이 30 오릅니다.]
[성좌 후보자 상태로 성좌를 죽여, 성좌에 오를 수 있습니다. 성좌에 올라 상대 성좌의 특성 레벨을 계승하시겠습니까? 상대의 특성 레벨은 독존 LV.4입니다.]
‘30 레벨 업에, 특성 계승이라.’
레벨 업도 레벨 업이지만.
성지한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역시 특성 계승이었다.
성좌가 된다면, 상대의 특성 레벨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시스템 메시지.
“원래 성좌가 죽으면, 죽은 이의 힘을 계승할 수 있나?”
[아니. 계승이라니? 그런 건 없는데.]
그림자여왕은 특성 계승에 대해 금시초문인 것 같았다.
‘이거…… 성좌 후보자만 가능한 기능인가 보네.’
그러면, 이렇게 특성을 계승할 기회는 후보자 시절에만 찾아오겠지.
성지한은 곰곰이 생각했다.
‘독존 레벨 4는 탐나긴 하지만, 바로 성좌로 오르는 건 리스크가 있어.’
이번에 성좌 롱기누스와의 격돌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사실 이건 운이 많이 따른 결과였다.
아직 성좌급에 비해선, 힘을 몇 번 증폭시켜도 부족한 성지한.
‘거기에 롱기누스의 창은 여러 대응 방법이 있었지만, 다른 무신의 종이 온다면…….’
만약 이번에 찾아온 게, 롱기누스가 아니라 동방삭이었다면.
성지한은 진작에 패배했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은 힘의 격차가 컸으니.
독존 LV.4에 눈이 멀어서 계승을 받는 것보다는, 성좌 후보자로 좀 더 있는 게 나았다.
성지한이 그런 판단하에, 계승을 거부하자.
[특수 업적, ‘계승을 거부하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성좌 명성을 10,000 획득합니다.]
이것도 업적에 포함되는지, 1만 포인트나 되는 성좌 명성이 들어왔다.
‘뜻밖의 수확이군.’
성지한이 늘어나는 명성치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때.
[성좌 도달 레벨이 772로 낮아집니다.]
어느덧 5분이 더 지났는지, 레벨 한계가 1 떨어졌다.
‘롱기누스도 확실히 죽었으니, 특성은 OFF로 바꾸자.’
시스템 메시지가 성좌 명성까지 안겨 주며 공언한 롱기누스의 죽음.
이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성좌 특성을 ON 시킬 필요는 없었다.
성지한이 그렇게 전투를 마무리 짓고 있을 때.
화르륵…….
“……?”
롱기누스가 소멸한 장소에서, 갑자기 미약한 불길이 피어올랐다.
성지한이 롱기누스와 전투를 벌였을 때와는, 연관이 없는 푸른색의 불꽃.
그것은 곧 여러 색깔로 변하면서, 점차 크기를 키워나갔다.
‘이건 뭐지?’
시스템도 사망이라고 판정했던 롱기누스.
그가 다시 살아남아서 불을 피워 올렸을 리는 없는데.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 기이한 불꽃을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스으윽.
성지한이 손을 대도, 실체가 없이 그대로 허공을 통과하는 불꽃.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앞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대여. 안 돌아가나? 이제 성좌는 죽었을 텐데.]
그림자여왕은 태평한 목소리로 성지한에게 말을 걸었다.
[빨리 가서 후원할 플레이어들 좀 구경해 보자. 이번에 뿌리가 꽤 사라진 덕에, 더 많은 이에게 후원을 할 수 있게 되었거든.]
‘야, 푸른 불꽃 안 보여?’
[푸른 불꽃? 그게 뭔데?]
‘흠…….’
팔 안에서 롱기누스의 공격도 즉각 파악해서 알려 주었던 그림자여왕.
그런 그녀도, 저 불꽃은 보질 못한다고?
성지한이 얼굴을 더욱 찌푸리고 있을 때.
화아아아…….
푸른 불꽃 위에서, 특이한 형태의 글자가 드러났다.
[처형장, 복구.]
‘처형장?’
그리고 글자가 사라지자마자.
스으으윽!
불꽃이 멎고, 붉은빛의 거대한 바위가 만들어지더니, 그대로 하늘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여기 아래, 강남 한복판이다.’
시가지에 저 크기의 바위가 충돌하면 적잖은 참사가 일어날 상황.
성지한은 얼른, 공간을 장악하여 낙하를 막으려고 했지만.
‘……무혼이 통하지 않아?!’
바위는 성지한의 공간 장악력을 비웃듯.
그대로 땅 아래로 떨어졌다.
“칫……!”
성지한은 혀를 차며, 얼른 바위를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