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25화>
세 번째 멸신결.
화속성을 띈 이 무공은, 성지한이 저번 생에서 터득하지 못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생생하게 기억이 났으나, 언제부턴가 갑작스레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던 세 번째 멸신결이.
푸른 불을 만지자, 대번에 기억이 났다.
‘세 번째의 이름은…… 회광반조回光返照.’
회광반조.
흔히 이것은 사람이 죽기 직전, 잠시 원기를 되찾는 상태를 일렀다.
멸신결에 들어가기엔 너무 뜻밖인 이름.
‘소피아의 성좌, 피티아는 성화가 세 번째 권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이름을 알고 나니, 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군.’
백색의 화염, 성화.
네 번째 무신의 종인 피티아는 성화를 소피아에게 전달하면서, 종말구현이 세 번째 권능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정작 성지한이 기억해 낸 세 번째 권능은, 종말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었다.
[멸신결? 이름 참 거창하군. 그게 뭐지?]
“그런 게 있어.”
성지한은 자신의 말에 반응하는 그림자여왕에게 가볍게 대답하고는.
멸신결 회광반조의 사용방식에 대해 떠올렸다.
‘무신이 부여한 힘, 무력을 불의 힘으로 발화한 후 힘의 흐름을 거꾸로 한다. 지금의 나는, 무력 대신 무혼으로 운용하면 되겠지…….’
저번 생에선 무력을 모두 불로 발화할 수가 없어서, 사용하지 못했던 회광반조.
하지만 지금의 성지한은, 무력의 상위호환인 무혼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스탯 적까지 있었으니, 방식만 알면 얼마든지 회광반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써도, 그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 지는 몰랐지만.
‘써 보자.’
푸른 불을 접하고 떠오른 이상.
분명 회광반조와 이건 연관이 있을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회광반조回光返照
스으으으…….
성지한의 피부가 잠시 붉게 물들더니, 불의 기운이 평소의 흐름과는 반대로 흘렀다.
방법적으로는, 단번에 성공한 회광반조.
마지막 멸신결이었던 천수강신까지 응용 단계에 들어선 성지한에게, 세 번째야 행하는 건 손쉬웠다.
다만.
‘무슨 효과야?’
죽을 위기에 처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성지한에게는 전혀 체감되는 효과가 없었다.
그저 불의 기운 한 바퀴 돌려 본 것에 불과할 뿐.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이 잘못된 건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슈우우우…….
[어? 불이 꺼지는군…….]
영구보존 데이터라면서, 소멸 코드를 작성했음에도 저항하던 푸른 불길이.
성지한이 회광반조를 사용하자마자, 급격하게 힘이 약해졌다.
그러더니.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데이터 열람 후 삭제가 가능합니다.]
푸른 불꽃 위로, 특수한 글자가 떠올랐다.
삭제를 하려면, 일단 열람부터 하라는 건가.
[데이터를 열람하시겠습니까?]
“그래.”
성지한이 그리 대답하자.
슈우우욱!
불꽃이 순식간에 커지더니, 그의 몸을 빨아들였다.
* * *
둥! 둥! 둥!
‘북소리?’
불꽃에 빨려 들어갔던 성지한에게,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커다란 북소리였다.
그와 함께, 시야가 서서히 밝아졌다.
성지한의 눈앞에 들어온 건, 빼곡하게 박혀 있는 커다란 십자가.
거기에는 인간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들이, 손과 발이 결박당한 채 매달려 있었다.
‘여기가 열람한 데이터 속인가.’
휙!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몸이 뒤를 돌자, 보이는 것은 층층이 쌓인 단상과.
그 아래에서 이쪽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옷차림은 현대의 것이라기보다는, 고대 시대에 어울렸다.
“와아아아아!”
“죽여! 죽여!”
“포악한 신을 죽여라!”
성지한을 보자, 환호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군중.
그들은 창과 칼 등, 병장기를 하늘 높이 들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포악한 신을 죽이라고 소리쳤다.
정황상, 그들이 가리키는 ‘신’은 십자가에 매달린 거인인 것 같았다.
스윽.
그런 군중의 환호에 응답하듯, 손을 번쩍 드는 성지한의 몸.
확실히 이 몸은 성지한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전혀 힘을 쓸 수가 없군.]
‘글쎄다.’
[빙의라도 한 건가?]
‘아직은 확실히 모르겠어. 상황을 더 지켜봐야지.’
[그대…… 참 태평하군.]
성지한과 같이 불길에 잡아먹혔던 그림자여왕은.
‘데이터 열람’이라는 글자를 못 읽어서 그런지, 성지한과는 달리 현 상황에 크게 경각심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보겠다.]
그림자여왕이 그렇게 홀로 고심에 빠져 있을 동안.
성지한은 자신이 빙의한 대상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군중의 환호에 보답하던 그는.
쿵! 쿵! 쿵!
땅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하자, 군중 너머를 지켜보았다.
거기에선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저거 그대가 소환했던 강철 거인 아닌가? 크기가 엄청나게 크군.]
단상 쪽으로 온 것은, 거대화한 강철 거인, 엔키두.
그리고 거인의 어깨 쪽에는, 한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성.
그는 성지한도, 피티아 덕에 아는 얼굴.
길가메시였다.
“왕!”
“왕께서 오셨다!”
그가 오자,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서 예를 표하는 사람들.
길가메시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엔, 경외와 공포가 섞여 있었다.
“이번에 잡아 온 ‘신’은 일곱.”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어깨에서 일어나더니, 앞으로 손을 뻗었다.
“사형수여. 창을 내리겠다.”
스으으으…….
그러자, 길가메시의 뒤로 어둠이 피어오르더니.
배후로 거대한 그림자가 올라왔다.
거대한 거인 엔키두의 머리만 한 크기의 그림자.
‘저건…….’
성지한은 눈을 크게 떴다.
길가메시만의 그림자라기엔 너무나도 큰 존재.
저것은, 길가메시에 소속된 것이 아닌, 완전히 별개의 개체였으며.
또한, 그에게선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났다.
‘……’
어디서 그 ‘익숙함’을 마주했는지 성지한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을 때.
슉! 슉!
그림자 안에서 일곱 개의 창이 날아오더니, 일제히 빙의체의 앞에 꽂혔다.
“피의 일족이여. 창을 들어, 준비하라.”
그 말에 빙의한 육신은 길가메시를 향해 엎드려 절하더니.
땅에 꽂힌 창을 하나 뽑아 들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창.
하지만.
그가 창을 들자.
창대 위에는 핏물이 일렁이며, 글자가 올라왔다.
[소멸 코드 발동]
창과, 빙의한 육신이 서로 상호 작용을 일으켜서 띄운 소멸 코드.
성지한은 빙의체가 힘을 쓰는 것을 보고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보다 훨씬 수월하게 코드를 작동시켰어.’
빙의한 상태라 알 수 있는 경험.
성지한은 길가메시나, 그 뒤의 그림자는 일단 신경 끄고 여기에만 집중했다.
‘사형수’이자, ‘피의 일족’이라 불린 이 대상은.
성지한과 비슷하지만, 더 효율적으로 창에 코드를 써 내려 가고 있었다.
거기에.
‘창에 쓰인 소멸 코드는, 창 자체엔 발동을 안 하네.’
성지한이 쓰는 소멸 코드는, 쓰는 즉시 바탕이 되는 대상을 지워 버렸지만.
빙의체가 쓰는 소멸 코드는, 창을 매개체로써 온전하게 놔두고 있었다.
자신의 것과 어떤 방식에서 차이가 나는 건지.
성지한은 온 신경을 이쪽에 집중했다.
‘그림자가 준 창 자체도 특수하지만…… 쓰는 법도 확실히 차이가 난다. 자신의 피를 매개로 하는군.’
성지한이 그렇게 빙의체의 코드 입력에 대해 배우고 있을 때.
[인간 따위가 코드를 사용하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
[네놈…… 동족을 배신했구나.]
사형수가 소멸 코드를 보고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거인들의 눈에서 일제히 붉은빛이 반짝였다.
그 빛이 모두 바라보는 곳은, 길가메시.
아니, 정확히는 그보다는 그의 뒤에 있는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치이이익…….
길가메시의 배후 그림자에서.
불꽃이 번뜩이더니, 반원이 그려졌다.
처음엔 저게 뭔가 싶었지만.
[감히 네놈이 우리를…… 비웃어?!]
[완성되지 못한 열등품이 감히!]
[끝까지 하극상인가……!]
성지한은 십자가의 거인들이 날뛰는 걸 보면서, 저게 비웃는 모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거인이 날뛰는 꼴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길가메시는.
“처형을 거행해라.”
손을 휙 내렸다.
그러자.
성지한의 빙의체가 기다렸다는 듯이, 창을 훅 던졌다.
소멸 코드가 입력된 채, 날아가는 창.
그것은 금방 거인의 몸을 꿰뚫었고.
[정말로 소멸이 작동하다니…….]
창에 가슴이 꿰뚫린 이들은, 사방으로 피를 흩뿌렸다.
그러면서 하나둘씩 소멸하는 거인.
“우와아아아아!”
“포악한 신이 드디어 죽는다!”
사람들은 거인의 죽음에 포악한 신이 죽었다며 환호했지만.
흩뿌린 피가 바닥에 닿고.
치이이익……!
사방에 불꽃이 치솟자, 환호하다가도 몸을 움츠렸다.
“역시 신혈…….”
“조, 조심해라. 신의 피에 닿으면 안 돼!”
“저, 저 사람은 괜찮은데요?”
“저분은 사형수잖니! 피에 닿아도 괜찮으니까 사형을 집행하는 거야!”
사람들의 말대로.
빙의체의 몸에도, 피가 마구 튀어 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지만.
슈우우우…….
그의 몸에서 붉은 운무가 피어오르더니, 이를 금세 모두 꺼버렸다.
마치 롱기누스가 펼쳤던 혈기와 비슷한 붉은 연기.
‘이건 못 따라 하겠군.’
성지한은 이 빙의체에게서 코드 쓰는 법을 참고했을 때와는 달리.
혈기의 운용법은 체험하자마자 자신에겐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이건, 확실히 이 존재만이 가능한 방법이었으니까.
[배신자여. 관리자께서, 너를 심판하실 것이다!]
일곱 번째 거인이 그리 일갈하면서 소멸하자.
길가메시는 코웃음을 쳤다.
“훗. 신으로 군림하던 존재들치고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저들이 부르짖는 관리자가 우리의 편인 것을. 그렇지 않으냐?”
스으윽…….
길가메시의 물음에, 그의 배후 그림자는 크게 떠오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렇지.]
먼 거리에서도, 확실하게 들려온 목소리.
성지한은 이를 듣고는 조금 전 ‘익숙함’의 정체를 파악했다.
‘……설마, 저 그림자. 무신이었나?’
투성의 주인, 방랑하는 무신.
그의 음성과, 그림자 속의 목소리가 완전히 일치했던 것이다.
‘무신. 길가메시와 확실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군…….’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데이터 열람이 끝났습니다.]
[영구 데이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영구 데이터.
이 안에 담긴 정보는 성지한에게 상당히 유효했지만.
‘남겨 두면 또다시 운석이 되어 대지를 강타할지 모른다.’
일단은 아까의 열람에서, 얻어 갈 만한 건 많이 얻어 갔으니까.
성지한은 일단 데이터를 삭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삭제한다.”
그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영구 데이터를 정말로 삭제하시겠습니까?]
또 한 번 확인하는 메시지.
“어.”
성지한의 대답에, 메시지는 사라지고 ……만이 길게 떠올랐다.
그렇게 검은 세상에서 새하얀 점만 뜨는 게 몇 분이 지났을까.
[데이터가 삭제되었습니다.]
[혈족의 마지막 생존자, ‘롱기누스’의 데이터가 삭제됩니다.]
[‘혈족의 창’이 계승됩니다.]
스윽.
성지한의 눈앞에, 길쭉한 나무 창대가 떠올랐다.
* * *
무신의 별 투성.
치이이익!
별의 한편에 있던 거대탑이 일제히 반으로 갈라졌다.
“길가메시.”
탑의 위쪽 허공에는.
검을 손에 쥔 노인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갈라진 탑을 내려다보았다.
갈라진 최상층의 틈새에는.
길가메시가 동방삭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방삭. 이게 무슨 짓이지? 힘자랑하러 왔나?”
“네놈, 무슨 생각이지? 무신께 반역을 하는 건가?”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겠군.”
“롱기누스가 죽었다. 네 엔키두가 결정적으로 작용해서.”
“그런가…… 안타깝군. 하지만 다시 살아날 것 아닌가.”
“아니, 성지한은 그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그 말에 길가메시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성지한.
예상보다 잘해 주는군.
하지만 그도 잠시.
“정말인가?? 롱기누스, 확실히 죽은 게 맞나?”
“그래…… 성지한은 불을 껐고. 롱기누스의 창마저 계승했다.”
“뭐?”
동방삭의 마지막 말에.
웃는 낯이던 길가메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