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26화>
“롱기누스가 죽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둘의 전투, 나에게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성지한에게 엔키두를 알려 준 이유부터 설명해라.”
치이이익……!
동방삭의 검에서, 흰색과 검은색의 검기가 동시에 빛을 발했다.
일검에 바벨탑을 쪼개 버린 후에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모습.
길가메시는 이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역시 동방삭…… 그가 가장 강한가.’
총 다섯 명인 무신의 종.
이 중 최강의 힘을 지닌 자는 단연 동방삭이었다.
무신이 성좌 사냥을 행할 때, 다른 무신의 종자는 우주에서 크게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단 한 명.
동방삭은 따로이 우주천마라고 불리면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특히 그가 지닌 태극마검太極魔劍은 단 한 번도 막힌 적이 없는, 불패의 검.
길가메시도 동방삭의 다른 무공은 다 대처할 수 있었지만.
태극마검에게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알겠다. 연유를 설명하지.”
굳이 최강의 종과, 이번 일로 충돌할 필요는 없으니.
길가메시는 동방삭에게 순순하게 협조했다.
“나는 세 번째를 깨우려 했을 뿐이다.”
“세 번째 종을…….”
“그래. 그를 본 적이 있나? 단 한 번이라도.”
길가메시의 말에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했다.
무신의 세 번째 종.
다섯 번째인 길가메시도 상당 시간 잠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무신이 안식을 취할 때 종종 나왔던 데에 비해.
세 번째 종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없다.”
“그래.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종. 나는 그를 깨워야 했다.”
“롱기누스를 죽이면서까지?”
“솔직히 이야기하지. 나는, 롱기누스가 패배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소멸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소멸은 불가능할 거라고 확신했지.”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전투 장면을 보여 달라. 그럼 네가 납득하게 해 주지.”
자신 있게 말하는 길가메시.
동방삭은 그를 잠시 노려보더니, 검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사라지는 동방삭의 검.
대신.
지이이잉…….
그의 앞에, 화면이 떠올랐다.
화면 속에서 재생된 건, 성지한과 롱기누스의 전투.
롱기누스가 성지한에게 신살의 창을 사용했으나, 처음에는 엔키두에 의해 방해받고.
두 번째에는 배틀넷의 관리에 의해 막히자.
길가메시는 그 장면을 보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는 재수가 없었군.”
“네 엔키두가 없었으면, 애초에 저 마지막이 오지는 않았을 거다.”
“그건 인정하지.”
그렇게 자신의 창이 봉쇄되고, 역으로 성지한에게 소멸 코드를 쓰이자 소멸하는 롱기누스.
둘은 같은 종인 그가 죽는데도, 담담한 얼굴로 이 장면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더 나아가.
“아무리 그래도 성좌가 아닌 이에게 패배하다니. 무신의 종 중 가장 약하다고 해도, 실망스럽구나.”
그는 패배한 롱기누스에게 냉소를 보였다.
신살의 창이 워낙 강력해서 그렇지.
사실 무신의 종 중에서, 힘으로만 따지면 롱기누스는 가장 약했다.
무신에게 신살의 창을 쓰라고 허락받지 못한다면, 무신의 종 중에서 그가 달성한 전과는 항상 가장 최하위였다.
“엔키두를 가르쳐 준 네가 할 말은 아니군.”
“훗. 사실 알려 주면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인간이 어찌 성좌를 이기겠는가. 하지만 롱기누스가 한계를 금방 보였어. 조상에게 물려받은 혈기가 아깝구나.”
그러다가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자.
“멈춰 보아라. 바로 이것이다.”
길가메시가 손으로 불을 가리켰다.
“이것이 세 번째 종의 권능이다.”
“저 불이?”
“그래. 그리고 저 불이야말로, 우리를 불사의 몸으로 만든 진정한 원동력이다.”
“불사와 관련이 있다니…….”
동방삭은 화면 재생을 멈추고, 푸른 불을 바라보았다.
색만 푸를 뿐, 특이할 게 없어 보이는 불꽃.
동방삭은 반으로 갈라진 바벨탑 안으로 잠시 시선을 돌린 채 말했다.
“무신께서 주신 불사와 영생은, 네 것과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나의 권능은, 무신이 온전히 집행을 하지 못한다. 무신이 너에게 약속했던 영생의 원천은 오히려 저 불에서 나온 것이지.”
“흠…….”
“롱기누스의 몸에서 푸른 불이 피어오른 순간. 그는 다시 살았어야 했다. 아무리 ‘소멸’을 당했다고 해도 말이지. 하지만 어떻게 한 건지, 성지한이 불을…… 꺼 버렸어.”
길가메시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성지한.
코드를 읽고 쓸 때부터,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존재라 생각했지만.
그가 푸른 불을 끌 줄은, 정말로 몰랐다.
‘설마 성지한. 그가 세 번째 종과 연관이 있는 존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인간은 아니다.
길가메시가 화면을 보면서, 성지한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휙.
동방삭은 화면 재생을 멈춘 채, 말문을 열었다.
“결국 네 의도는, 롱기누스를 패배토록 하여 푸른 불을 이끌어 내고. 이를 통해 세 번째 종을 깨우겠다는 것이었나?”
“그렇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세 번째를 깨우려는 거지?”
“그건…….”
그때.
쿠르르르르!
투성의 대지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소 움직임이 없던 이 별에서, 이 정도의 지진은 흔치 않은 일.
길가메시는 이 진동을 느끼자, 눈을 반짝였다.
“드디어 깨어났나……! 동방삭. 이유는 가서 말해 주겠다. 일단은, 그를 만나야 한다!”
“……허튼짓하면, 바로 목을 치지.”
“그래. 얼마든지 베어 가라!”
길가메시는 탑의 갈라진 틈새를 통해,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나온 투성의 바깥, 저 멀리에.
푸른빛이 허공 위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저 장소는, 세 번째 종이 묻혀 있는 장소.
“저기군!”
길가메시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성지한의 행동은 예상외였지만.
어쨌거나 세 번째가 깨면, 원래 의도한 바로 일이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생각한 길가메시는, 전속력으로 날아갔고.
‘힘을 아직도 꽤 숨겨 두고 있었군.’
그런 길가메시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던 동방삭도, 곧바로 뒤를 따랐다.
그렇게 금방 다다른, 빛이 터져 나온 장소.
바닥에는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세 번째 종이여! 일어났는가!”
길가메시는 이를 보며, 크게 소리쳤지만.
툭. 툭. 툭.
하늘로 치솟던 푸른빛은 일정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슈우우우…….
허공에서, 커다랗게 생성되는 거대한 검은 손.
[길가메시.]
그 안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려 퍼졌다.
[일을, 크게 벌렸구나.]
“무신…… 어떻게……! 이건 계약 위반이다!”
길가메시는 무신의 목소리를 듣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질렀지만.
[네가 건드린 것은, 우리의 계약보다도 우선시된다…….]
검은 손은 그대로 대지를 내리찍었다.
쿵!
그러자 완전히 멎어 버리는 푸른빛.
빛을 내뿜던, 갈라졌던 대지는 다시 붙고.
세 번째 종이 잠들었던 곳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세 번째가, 우리의 계약보다 우선시된다고…….”
길가메시가 허탈한 표정으로 이를 보고 있을 때.
스으으으…….
형태가 무너지는 검은 손에서, 무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성지한…… 관리대상에 들어갔구나. 동방삭.]
“네, 주인이시여.”
[관리대상에 풀리는 즉시, 네가 성지한을 죽여라. 태극마검을 꺼내어, 완전히 소멸시켜야 한다.]
롱기누스에게 신살의 창을 꺼내라 할 때처럼.
이번에는 동방삭에게, 태극마검으로 성지한을 완전히 소멸시키라고 명령하는 무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한데 지상에서 태극마검을 꺼내면, 행성 지구가 크게 뒤틀릴 수 있습니다만…….”
[상관없다. 인류의 반절은 사라져도 괜찮다.]
태극마검을 꺼내면 지구가 뒤틀릴 거라는 동방삭이나.
인류 반절이 사라질 거라고 예상하는 무신.
얼핏 듣기에는 허황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옆에서 이를 듣던 길가메시는, 이를 전혀 이상하게 듣지 않았다.
동방삭의 태극마검.
그것은 상식의 궤를 아득히 벗어난, 절대적인 검이었으니까.
스으으으…….
[명심해라. 태극마검으로 그를 죽여야 한다…….]
세 번째 종을 다시 봉인하고는, 사라지는 무신의 기운.
“알겠습니다…… 그럼, 그가 성좌가 될 때.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동방삭은 그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하늘에서의 전투가 끝난 후.
강남의 혼란상을 정리한 성지한 가족은 밤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사망자가 없어서 다행이군.”
“그러니까. 하늘에서 빛 팡팡 터지면서 폭발음 들릴 때는 사단 나는 줄 알았어.”
그러면서 윤세아는 티비를 틀었다.
마침 뉴스에서는.
-와…… 대박. 나 검 타고 있어.
-찍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걸 어떻게 안 찍냐!
검왕의 어검비행을 탔던 일반인들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참, 사진 좀 찍지 말라니까 아예 동영상을 찍었네.”
“아빠…… 말한다고 듣는 사람들이 아니야. 근데, 재밌어 보이긴 한다. 나도 나중에 태워 줘!”
“그래? 타고 싶니? 지금 태워 줄까?”
윤세아가 타고 싶다고 하니까, 바로 밖에 나가서 태워 줄 기세인 윤세진.
“아니. 오늘은 나도 지쳤어…… 나도 나름 사람들 구조해서.”
“그래. 언제든 타고 싶을 때 이야기하렴.”
“근데 아빠 예전보다 더 강해진 거 같다?”
윤세진은 그 말에 웃으면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우리 성좌님이 내게 힘을 부여해 주셨지.”
“매형, 그거 일시적인 겁니다. 지금은 효과 없지 않나요?”
“그때처럼 폭발적인 힘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30퍼센트의 효과는 잔존하고 있는 것 같아. 아예 효과가 없는 정도는 아니야.”
“그래요?”
성지한은 그 말에 눈을 빛냈다.
30퍼센트라.
이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하루 정도만 지속돼도 나쁘지 않은데?
‘후원 플레이어, 더 마련해도 되겠네.’
원래는 성좌 슬롯만 차지할 거 같아서, 딱히 플레이어들 후원할 생각이 없었는데.
30퍼센트 효과가 남아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성지한은 내일 길드로 내려가, 후원자 명단을 좀 추려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집에 오는 길에, 성지한에게 성좌와 싸웠다고 들었던 윤세아는.
“삼촌 근데 하늘에서 싸운 성좌…… 뭐 아이템 떨군 거 없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성지한에게 물어보았다.
“아이템?”
“응, 성좌를 잡았는데! 이럴 땐 보상 좋은 거 받아야지!”
“얻은 게 있긴 하지.”
스윽.
성지한은 인벤토리를 열어, 아까 얻은 물건을 꺼냈다.
“……뭐야, 이거. 막대기?”
“창이다.”
“창이라기엔…… 창끝이 없는데?”
롱기누스의 데이터가 사라지면서 얻은 혈족의 창.
이것은 겉보기에는, 그저 암적색의 나무 창대였다.
창이라기보다는 봉에 어울리는 혈족의 창.
“성좌가 준 아이템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쉽네…….”
“아니, 이것의 쓸모…… 왠지 알 거 같아.”
성지한은 영구보존 데이터에서, 혈족이 창대에 글자를 쓴 걸 떠올렸다.
그리고 그걸 투창해서, 십자가에 박힌 거인을 죽였지.
‘소멸 코드는 직접 접근해야만 쓸 수 있어서 지금 상당히 불편하다. 하지만, 이걸 매개로 소멸의 힘을 원거리에서 발동시킬 수 있으면…….’
그러면, 소멸 코드의 활용성이 더욱 올라가겠지.
성지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롱기누스.
죽고 나서까지, 아낌없이 주는구나.
“실험하러 가야겠다. 먼저 갈게요. 매형.”
“그래. 들어가게, 처남.”
“아, 삼촌. 수련장 가려고? 다녀와~”
먼저 일어나는 성지한을 배웅하는 윤세진 부녀.
그는 그렇게 마루에서 나와, 공허의 수련장으로 진입했다.
새로 얻은 아이템.
확실하게 써먹어서, 활용법을 터득해야지.
그렇게 성지한은 부푼 마음으로 수련장에 진입했지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그를 반긴 건.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눈과 입이었다.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너, 아레나의 주인이냐?”
성지한은 처음엔 심드렁하게 그에게 반응했지만.
[예. 오늘은 중요한 거래를 위해, 급히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거래? 뭔데?”
[공허의 마녀를 풀어 드리겠습니다.]
“……뭐?”
그의 제안을 듣고는,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