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43화>
성지한은 재도전을 눌렀다.
그러자.
[강등 결정전에서 승리합니다.]
[NO.4212 인류가 브론즈 리그에 잔류합니다.]
우르크에게 승리했을 때부터, 게임은 다시 되돌아왔다.
‘베히모스 때부터 시작했으면 잔여 포인트 5를 다시 얻고 시작했을 텐데, 아쉽네.’
이미 강등을 면한 상태로 시작된 미션.
“이, 이놈…… 사냥개 주제에…… 읍읍!”
성지한은 뭐라 말하려는 배런의 입을 초장부터 틀어막고는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음…… 던전 포탈, 수도 없이 철거한 거 같은데. 이게 아니었나?
-뭐 아니었다면 미안하고 ㅎ
-아까와 같은 세계의 일그러짐…… 그건 공허로 인한 세상의 잠식과는 확실히 다른 현상이었다.
-그러네. 던전 포탈 범람으로 인한 멸망은 확실히 아니야.
세계의 멸망을 같이 감상하고는, 이건 공허의 잠식이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그어 주는 외계의 시청자들.
성지한은 그걸 보며 조금 전의 현상을 떠올렸다.
‘세계의 일그러짐…… 그건 강등전에서 패배하고, 육신이 어둠에 잠식되던 때와는 확실히 달랐지.’
저번 생에서, 강등전 패배를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때에는.
성지한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가, 육신이 어둠에 잠긴 채 사라졌다.
성지한도 그때 무명신공으로 어떻게든 버티기만 했을 뿐, 이에 저항하진 못했다.
헌데 강등전 승리 이후, 24시간 후에 발생했던 세계의 일그러짐은.
확실히 그때의 잠식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힘엔, 영원도 결국 무너졌지.’
성지한에게 막대한 생명력을 공급해 주는 스탯 영원.
이것을 지닌 그는, 웬만한 공격 가지고는 전혀 손상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카운트다운이 끝난 후 몸에 생긴 균열은.
영원이 아무리 생명력을 불어넣어도 회복되지 않고, 오히려 체내의 영원마저 부숴 버렸다.
그리고 박살 난 몸뚱어리를, 어디론가로 빨아들였지.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성지한은 그걸 직접 몸으로 맞으면서, 묘한 기시감을 떠올렸다.
이거, 한 번 당해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지한……!”
“믿고 있었습니다!”
“아, 잠시만요.”
“읍…….”
성지한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다가오는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원들을 모조리 결박시켰다.
-아니 저 사람들한테는 나름 감동의 순간인데 ㅠㅠ 저걸 그냥 포스로 묶어 버리시네.
-지금 그게 중요함? 미션 클리어해야지 ㅋㅋㅋ
-근데 저렇게 살아남았다고 기뻐하다가 하루 뒤에 세계 멸망이라니 ㅡㅡ; 좀 불쌍하다 야.
-아 근데…… 진짜 뭐 때문에 멸망한 거야? 미션 때문이 아니라도 이유 알아야 하지 않아?
-으…… 강등 때문도 아니고 던전 때문도 아니라면, 저 미래가 우리한테 펼쳐질 수도 있는 거 아님?
-ㅅㅂ 진짜 그런가?
-으, 성지한도 오래 못 버티던데, 나 같은 일반인은 1초컷 아님?
-1초 버티면 용하지 ㅋㅋ
성지한의 미션 리트라이를 보고는, 처음 게임을 봤을 때에 비해 시청자들의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 멸망의 원인이 리그 강등도, 던전 포탈 때문도 아니었으니.
여기서 이유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으면, 똑같이 멸망하는 미래가 현재 세계에서도 펼쳐질지도 몰랐다.
한편.
‘……아, 설마.’
주변 사람들을 죄다 결박시킨 상태에서, 상객에 잠겼던 성지한은 곧 무언가를 떠올렸다.
세상이 일그러지며, 몸이 박살 나던 감각.
조각난 몸뚱어리가 일그러진 세상 속으로 날아가던 그 느낌은…….
‘태극마검?’
대만의 플레이어로 빙의했던, 동방삭이 처음 선을 보였던 태극마검.
그가 태극을 띄우자, 온 세상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성지한이 이에 저항하자, 태극은 역으로 돌아가며 어둠을 토해 냈다.
게임 속 맵을 완전히 부숴 버리던, 압도적인 힘.
성지한은 첫 번째 게임에서 보였던 세상의 일그러짐이.
태극이 처음, 정방향으로 주행할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나.
‘……아니, 태극마검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힘이 꼭 그것만 있을까.’
성지한은 내심 이게 태극마검이 보이는 현상이 아니길 바랐다.
아무리 동방삭이 무신의 종 중 강한 존재라고 해도, 뭔 인류를 절단 낼 정도의 힘을 보이겠어?
그리고 그가 이 정도로 강하다면, 나중에 무신한테는 어떻게 대항하겠나.
성지한은 일단 세상의 일그러짐에 대해서는 생각을 멈추고, 앞으로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막막하군.’
첫 번째 게임처럼 확고한 목표가 있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
던전 포탈이 멸망 요인이 아니라고 밝혀지니, 이젠 어디서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 것이다.
그때.
[미션 힌트를 받으시겠습니까?]
[100,000,000 GP가 필요합니다.]
성지한의 눈앞에 저번 게임엔 없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2번째로 재도전을 해서, 힌트도 생긴 건가.
-개 막막하게 놔두곤 1억 GP ㅋㅋㅋㅋ
-배틀넷 진짜 양아치구만.
-아니, 가격 너무 선을 넘었는데;; 이건 미션 포기해도 어쩔 수 없다
배틀넷의 횡포에 시청자들의 야유가 나왔지만, 성지한은 주저하지 않고 1억 GP를 사용했다.
그러자.
[HINT – 멸망은 최초의 어비스가 있던 장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줄짜리 힌트가, 메시지 창에 불쑥 떠올랐다.
* * *
-와 1억짜리 힌트가 한 문장임? 너무하네 ㅋㅋㅋㅋㅋ
-최초의 어비스? 그거 북한 땅에 있는 거 아닌가?
-미국에서 한국까지 어떻게 24시간 만에 감;;
-성지한이 경공 쓰면 되는 거 아님?
-아 그런가? ㅋㅋㅋㅋㅋ
한 줄짜리 힌트에서 나온 최초의 어비스를 보고, 시청자들은 쉽게 장소를 유추했다.
북한을 멸망시켰던, 최초의 어비스.
힌트는 성지한이 가야 할 목표를 그리로 인도하고 있었다.
‘최대한으로 경공을 사용하면, 뭐 태평양이야 건널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하나 굳이 워프가 있는데, 태평양을 건널 필요야 없지.
성지한은 배런의 결박을 풀었다.
“이, 이놈…… 길드원까지 묶다니. 날 죽일 셈이냐? 아, 아니지. 아까의 베히모스가 네 몸을 혹시 장악한 거냐?”
“야, 나 한국으로 워프 좀 시켜 줘.”
“……뭐? 그런 장거리를 어떻게 하나?”
“방법 없냐?”
“없다!”
강하게 안 된다고 하는 배런.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도 이 시대를 살아 봤던 몸.
분명히 방법이 없진 않았는데 말이지.
‘차라리 그 방법을 써야겠군.’
성지한은 주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원들을 해방했다.
그러고는 그들을 쭉 돌아보며, 폭탄발언을 했다.
“진유화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자, 중국 스파이 분 나오시죠.”
“……허. 네놈, 무슨 소리냐?! 우리 아메리칸 퍼스트의 선수 중에 중국과 손을 잡은 선수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 말에 배런은 발끈했지만.
“저, 지금 아니면 안 갑니다.”
성지한은 길드원들을 스윽 둘러보며, 특히 한 명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적발에 푸른 눈을 지닌 백인 남성, 아메리칸 퍼스트의 랭커 잭.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번에 강등은 벗어났지만, 또 어떤 위기가 올 줄 모릅니다. 아메리칸 퍼스트의 길드장에게 사냥개라는 모욕을 들으며 사느니, 중국으로 망명하겠습니다.”
“지. 지한…… 그게 무슨 소리예요! 중국이라뇨. 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그, 그래. 지한! 거기에 우리 중에 무슨 중국 스파이가 있겠어! 우린 아메리칸 퍼스트라고!”
“큭…… 사냥개를 사냥개라고 부르지…….”
“닥쳐, 배런!”
소피아가 빽 소리를 지르자, 움찔한 배런.
주변 길드원들도 험악한 표정으로 길드장을 노려보면서, 어떻게든 성지한에게 다가와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 바로 가고 싶습니다. 자, 방송을 보고 있는 중국 관계자분들. 스파이에게 스크롤을 넘겨달라고 해 주세요. 이번이 아니면 그냥 미국에 있겠습니다.”
성지한은 손을 흔들면서, 계속 건너가겠다고 어필했다.
마치 이 세계의 배틀튜브에서, 자신을 호소하는 것 같은 모습.
-와 ㅋㅋㅋㅋ 중국 스파이 나오라고 하다니, 거기서 북한으로 건너가려는 건가?
-근데 아메리칸 퍼스트에 무슨 스파이가 있겠어? 미국 1등 길드인데.
-그냥 질러 본 건가?
성지한 채널의 시청자들은 아무리 그래도 아메리칸 퍼스트에 뭔 중국 스파이냐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하, 저번엔 안 간다고 하더니?”
적발에 푸른 눈을 한 백인 남성이 한숨을 쉬며 다가오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잭?
-저거 잭이지?
-WTF?! 잭이 중국의 스파이었다고?
-무슨, 무슨 무슨 무슨! 아니야! 나 스파이 아니야! 난 아메리칸이라고!
현재의 잭이 채팅창에서 열심히 채팅을 치며 자신은 아니라고 호소를 했지만.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졌으니, 어쩔 수 없군. 친구, 가기 전에 이 사람들 다시 묶어 주겠어?”
눈앞의 잭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주변 플레이어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래.”
“지한…… 읍!”
뚝!
성지한에게 애달프게 호소하려던 소피아가 묶이고.
찌익!
잭은 품 안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열리는 푸른 포탈.
“자…… 그럼 먼저 들어가. 나도 따라 들어갈 테니.”
“그래, 고맙군.”
스윽.
성지한은 포탈 안으로 발을 들이며, 생각했다.
‘잭이 예전에 날 회유했던 게, 이번에 도움이 되는군.’
아메리칸 퍼스트 시절, 성지한에게 중국 정부의 제안을 들고 은밀히 그를 회유하려 했던 잭.
그는 배런의 기준에 충족하는 순혈 미국인이었음에도, 무슨 사정에서인지 중국의 스파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가 스파이였던 게 하도 의외였던지라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던 게 이번에 도움이 되었다.
-잭이 누군데 미국 애들 난리났냐?
-아메리칸 퍼스트 유망주일걸? ㅋㅋㅋㅋ
-와, ㅅㅂ 소름이네 ㅋㅋㅋ 성지한 알고 지른 거임?
-에이, 그냥 떠 본 거겠지; 길드원들 쭉 둘러봤잖아.
-그렇지? 야, 근데 제일 스파이 안할 거 같은 애가 했네; 해도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 내 다른 아시안이 할 줄 알았음.
-스파이는 제일 의심 안 살 애가 해야지 ㅋㅋㅋ
-와, 잭 실시간 검색어 1위됨ㅋㅋㅋㅋㅋ
그렇게 스파이 잭에 대한 후폭풍이 한참 불어 닥칠 때.
번쩍!
성지한은 포탈 너머 중국 땅에 발을 디딘 상태였다.
짝! 짝! 짝!
“성지한 선수! 중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대하게 박수를 치며,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거는 동양인 남성.
“진유화님의 제안을 듣고 바로 이렇게 오실 줄이야…… 진작 말씀을 드릴 걸 그랬습니다! 성지한 선수께서 가세했으니, 이제 저희 중국이 랭킹 1위로 올라서겠군요!”
그는 성지한을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있었다.
“여긴…….”
“상하이의 배틀넷 센터입니다. 성지한 선수의 정착을 돕기 위해,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상하이라. 여기서 평양 가려면 동쪽 바다 건너면 됩니까?”
“펴, 평양이요…… 동북쪽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군요.”
동북이구나.
쾅!
성지한은 그 말을 듣자마자, 건물 밖을 향해 포탄처럼 날았다.
“어, 어딜 가십니까……! 마, 막아!”
“벌써 빠져나갔는데요…….”
중국 배틀넷 센터 관계자의 비명성을 뒤로하고, 훨훨 날아가는 성지한.
“동북쪽이라…… 일단 바다 건너면 되겠죠?”
-그렇긴 하죠…….
-근데 상하이에서 동쪽으로만 쭉 가면 일본 나올 텐데.
-제가 상하이 삽니다. 도로표지판 같은 거 봐 주시면, 어디가 북쪽 방향인지 알려 드릴게요.
“오, 감사합니다.”
그렇게 중국인 시청자들의 도움을 받아, 북쪽을 찾은 성지한은.
‘이리로 가면 되겠네.’
바다 위를 뛰어넘어, 최고 속도로 경공을 사용했다.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성지한의 몸.
-와, 개 빠르네 진짜 ㅋㅋㅋㅋ 바다도 막 건너;
-성지한 예전에 시즈루 잡으러 다닐 때 일본 섬 뒤지고 다녔잖아 ㅋㅋㅋ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는데 이 정도야 금방이지.
-아니, 벌써 육지가 보이는 거 같은데요?
-이 정도면 현실 슈퍼맨인가 ㄷㄷ
얼마나 달렸을까.
서해를 넘어서, 도달한 육지에는, 보랏빛 운무가 완연히 덮여 있었다.
던전 포탈이 증식할 만큼 증식하여, 잠식되어 버린 땅.
‘여기서 어비스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일이군.’
이동하는 게 제일 문제네.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보랏빛 운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미약하지만 공허를 품고 있는 연기.
‘제일 짙은 쪽을 따라가자.’
성지한은 공허의 힘을 감지하며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육지에 도달해서 쭉쭉 나아가던 그는.
“여긴가…….”
공허의 운무가 확연히 짙어지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
그곳에서, 거대한 개체를 보았다.
보랏빛으로 물든 거인의 형태.
하나 육체에는, 팔이고 다리고 몸통이고 할 것 없이 붉은 눈이 가득 박혀 있었다.
그리고.
[어비스의 주인 ‘??’을 대면합니다.]
성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