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55화>
강상에게 쫓겨난 성지한은 바닥을 바라보았다.
만귀봉신의 위에 덧그려졌던 구궁팔괘도는 이미 사라진 상태.
성지한은 다시 만귀봉신의 문양을 만져 보았지만.
이번엔 구궁팔괘도의 문양이 그려질 듯하더니 중간에 멈추었다.
‘구궁팔괘도의 힘, 서서히 충전되는군…….’
이 속도라면, 대략 2주 정도면 구궁팔괘도가 다시 개진하겠네.
성지한은 그걸 보며 조금 전을 떠올렸다.
‘봉인이 불가능한 존재라 산 건가.’
왜 봉인이 불가능한진 모르겠지만, 무사히 쫓겨난 덕에 이번 구궁팔괘도 진입으로 성지한이 챙긴 이득은 막대했다.
스탯 영원 +3.
그간 무슨 수를 써도 오르지 않던 능력이 대번에 올라 줬으니까.
하지만.
‘저거…… 어떻게 이기지?’
성지한은 막막한 심정이 되었다.
‘……무혼도 강상의 무공을 얻지는 못했지. 애초에 그의 완성된 천마신공은, 동방삭을 통해 내가 배웠으니까.’
인류의 발전된 무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무혼이 발동하지 않았던 건.
동방삭에게서 이미 얻어 냈던 천마신공이, 강상의 천마신공보다 더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금 전엔 상대가 무혼을 발동한 것처럼, 성지한의 무공을 보고 눈부시게 발전했지.
‘결국 무공의 수준도 내가 높았다는 건데…… 운용의 묘에서 완전히 밀린 건가.’
힘의 차이 덕에, 전황 자체야 유리하게 끌고 가긴 했지만.
성지한은 강상에게 무인으로서 압도당했다.
이래서야 태극마검을 이겨 내긴커녕, 그냥 무공으로 압살당하겠는데.
‘……’
성지한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스으으…….
그의 뒤편에 피티아가 나타나며, 그 즉시 배리어를 쳤다.
“타신편이 여기 있다니…… 신기하네요. 동방삭은 분명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너도 쫓겨났나.”
“네. 당신 봉인 안 됐다고, 얌전히 보내 주더라구요. 그러면서 세계수 얻고 싶으면 2주 뒤에 또 오라는데요?”
“2주라…… 알겠다.”
그 정도면, 구궁팔괘도가 다시 충전될 시간이군.
성지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피티아가 눈을 크게 떴다.
“엑, 설마 또 가려구요?”
“갈 생각이다. 이렇게 패배한 채 있을 순 없으니까.”
“동방삭에게 패배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저 진 안의 존재는 성좌 동방삭이 아니라 인간 강상이었던 것 같은데. 그는 이겨야 하지 않겠나.”
“음, 그건 그런가…… 하지만 그러려면, 당신 전력을 다했어야죠.”
“전력?”
“네, 가면도 안 썼잖아요.”
성지한에겐 힘을 크게 부스팅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성좌 특성을 ON 하는 것과, 공허처리장을 쓰는 것.
하나 강상과의 전투에선, 성지한은 이를 일부러 쓰진 않았다.
“가면을 안 써도 힘 자체는 내가 우위였다. 그 상태에서도 못 이기면 나중에 동방삭이나 무신에겐, 어떻게 대항하겠나.”
“음…… 그냥 무인으로 이길 생각은 하지 말고 힘으로 찍어 눌러 버려요. 강상을 제압하고 저 봉인진 안을 장악하면, 동방삭이 무신에게 충성을 보이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그거 알아내면, 뭐가 달라지나?”
“이유를 알아내면, 경우에 따라서 동방삭을 무신과 떼어 놓을 수도 있죠. 동방삭은 강상 시절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아 해요. 거기에 타신편은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봉인진에 떡하니 있고…… 분명 저 진 안에 뭔가 있다니까요?”
한가롭게 무공으로 겨룰 생각 말고, 가진 힘을 총동원해서 찍어 누르자는 피티아.
그녀는 무신과 동방삭의 관계를 규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네 말대로 이유를 알아냈는데, 여전히 그가 무신에게 충성한다면?”
“그, 그럼…….”
“그럼 그냥 나 죽여 달라고 목 빼놓고 기다려야겠군.”
“그렇지 않아요. 진짜 뭔가 있을 거예요. 예언자의 감이라구요!”
“너 예언자 아니라며 사실은.”
“윽…….”
“적어도, 강상은 내 힘으로 이겨 낸다.”
성지한의 두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낚싯대 든 노인도 이기지 못한다면, 무신이나 동방삭과 싸운다 한들 승산이 없다.
구궁팔괘도 안의 상대는, 성지한이 어떻게든 무로서 넘어야 했다.
그리고.
‘스탯 영원도 세계수 근처에 있으면 오르니까.’
그간 안 오르던 능력치를 올려 주는 구궁팔괘도 안.
그 장소를 힘으로 찍어 눌러서 벌써 부숴 버려선 안 됐다.
이번 기회에 영원도 올릴 만큼 올려야지.
“2주라…… 준비하고 와야겠군.”
“아…… 그냥 제 말대로 하시지…… 아까 봤잖아요. 무공으로는 이기지 못한다니까요? 저 인간 괴물이라구요.”
성지한의 결정에 납득하지 못하고 옆에서 투덜거리는 피티아.
성지한은 소피아의 몸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피티아,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뭐죠?”
“왜 네가 동방삭보다 서열이 높은 거지?”
“……서열요?”
“동방삭이 두 번 째고 네가 네 번째 종이잖아. 하지만 힘의 차이는 압도적인 거 같은데.”
“저도 그렇게 약하진 않거든요? 저 노인네가 규격 외라 그렇지.”
피티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곤 말했다.
“둘째니 넷째니 그건 그냥 순서일 뿐, 딱히 서열은 아니에요.”
“그래? 무슨 순선데 그러니까.”
“종이 된 순서요. 역순이죠. 롱기누스가 가장 나중에 되었고, 길가메시가 가장 처음에 되었고.”
“그럼 네가 2번째로 무신을 따른 거라고? 오래전부터 따랐군.”
“네…… 그래요! 제가 인류에서 가장 늙은 여자라구요.”
“딱히 그런 것까진 안 물어봤는데.”
찌릿.
피티아는 성지한을 힐끗 노려보더니,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이제 돌아가요. 저도 오래 강림해 있을 순 없어서.”
“그래.”
“그리고 2주 후에 저 강상과 맞붙어서 못 이길 거 같으면, 그냥 힘 다 써 버리세요. 그리고 결과 좀 저한테 알려 주고요.”
“내가 이길 때까지 기다려라.”
“으휴…… 그는 인류 최고의 무인, 규격 외의 괴물이라니까요.”
강상을 넘어 보겠다는 성지한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피티아.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할머니 말 듣기엔 내가 너무 치기 어리군그래.”
“야! 누가 할머니야!”
“아. 하긴. 할머니도 젊게 본 건가?”
“……자꾸 그렇게 나오면, 이거 안 줄 거예요?”
스으윽.
피티아는 눈을 흘기며 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위에 글자가 새겨진, 둥그런 얼음조각 파편이었다.
“뭐지 그건?”
“2주 후에 여기로 다시 온다면서요? 여기에 이곳의 정확한 좌표를 찍어 두었어요. 나중에 검우에 이거 꽂으면, 이 위치를 찾을 거예요.”
“오, 잘 받지.”
성지한은 그녀가 건네준 파편을 챙기곤, 해저에서 빠져나왔다.
해수면 위로 올라오자, 피티아는 배리어를 해제했다.
“그럼 저, 몰래 나온 거라 이제 갈게요. 강상에게 도전해 보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가면 쓰세요.”
“알아서 할게, 그건.”
“에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소피아의 몸에서 빠져나간 피티아.
“아…….”
몸 주인인 소피아는 눈을 깜빡이더니, 주변을 바라보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희, 바다 위에 있죠?”
“기억 안 나나요?”
“네. 하나도.”
“당신 성좌가 바다 한복판에서 스탯 올려 주는 장소를 찾아줬어요.”
해저의 구궁팔괘도를 한마디로 정리한 성지한.
그 말을 들은 소피아가 눈을 빛냈다.
“그럼 지한 스탯 오른 거예요?”
“그렇죠.”
“스탯도 공짜로 올랐으니 휴가 즐겨요!”
“여기서요?”
“해변가로 가면 되죠!”
“뭐, 평소라면 그래도 되는데…….”
성지한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강상이 펼쳤던 무가 깊게 자리 잡혀 있었다.
현란하게 움직이던 노인의 봉.
자신이 무혼으로 터득했던 천마신공보다 분명 완성도는 떨어졌음에도.
그는 치명타를 입지 않고, 오히려 무공을 발전시켰다.
동방삭은 피티아의 말대로, 인류 최강의 무인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
“지금은 여유가 없네요.”
그를 이겨 내기로 마음먹은 이상.
다른 곳에 한눈을 팔 여유는 없었다.
“에이…… 아쉽네요.”
“다음에 오죠. 모든 일이 다 끝나면.”
성지한은 그렇게 아쉬워하는 소피아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귀환했다.
* * *
8월 10일.
이날은 저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국인 한국과, 준우승국인 미국의 슈퍼컵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캬 슈퍼컵을 우리가 나가네 ㅋㅋㅋㅋ
-챔스 우승부터 말이 안 되긴 했지…….
-ㄴㄴ 성지한 보유국인데 우리가 이기는 게 왜 말이 안 됨 ㅎㅎ
-저쪽에서 밴을 안 해 줬잖아 ㅋㅋㅋ
-근데 슈퍼컵이 원래 챔스 우승국이랑 준우승국이 붙는 거였음?
-정확히는 국가 랭킹 1위랑 챔스 우승국이 붙는 걸걸. 챔스 우승국이 랭킹 1위였으면 2위랑 붙고.
-아하, 그래서 맨날 미국이랑 중국이 슈퍼컵 경기를 했구만.
이벤트성 경기긴 했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빅매치에 기대감을 품고 있는 시청자들.
이 경기에서 전력상 밀리는 건, 아무래도 한국대표팀이었다.
사실 성지한이라는 독보적 플레이어가 없었다면, 우승은 당연히 미국의 차지였을 터.
그래서 한국 대표팀의 노영준 감독은 이번 슈퍼컵에도 성지한이 나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지한이는 정말 나올 생각이 없는 건가.”
윤세진은 성지한의 방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응, 삼촌 저번에 집에 들어오더니, 자기 수련 좀 해야겠다는데. 그 공허의 수련장인가…… 거기로 가서 나오질 않고 있어.”
“처남도 참 대단해…… 그렇게 강한데 수련을 쉬질 않는다니까.”
“그러니까. 삼촌도 좀 쉴 땐 쉬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인류가 너무 삼촌한테 짐을 떠넘긴 거 아닐까?”
“……아무래도 지한이 없었으면 인류가 하위권을 전전했을 테니. 본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크겠지. 나도 처남과 비교할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대표팀 성적에 부담감을 느낀 적이 있었거든.”
시즈루에게 매혹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대표팀의 기둥이었던 검왕 윤세진.
그는 한국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고 살아왔다.
하나 성지한은 한국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떠맡고 있는 형국이니.
“아무래도 이에 따른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겠지…….”
“그래도 아빠는 술 먹고 여기저기서 놀며 환기 좀 시켰잖아. 난 그 당시 아빠 되게 바쁜 줄 알았는데.”
“흠, 흠…… 그 땐 제정신이 아니었어.”
“참…… 삼촌은 스트레스 어떻게 푸나 몰라. 이런 건 아빠한테 배워야 하나? 쌓이면 병 될 텐데.”
“크흠. 자, 세아야. 이제 이 이야긴 그만하고 배틀넷 센터 갈까? 슈퍼컵 준비해야지.”
“아. 알았어.”
윤세아는 성지한의 방 쪽을 힐끗 보고는, 윤세진을 따라 집을 나섰다.
한편, 공허의 수련장 안에선.
‘됐군.’
푹!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성지한이, 드디어 강상에게 검을 꽂아 넣고 있었다.
‘그에게 도전한 지 몇천 번…… 아니 만 번도 넘었나.’
10분간 진행되었던 강상과의 전투.
성지한은 요 며칠간, 공허의 수련장에서 이때의 전투를 계속해서 복기하고 재생했다.
가진 힘의 차이도, 무공의 수준도 성지한이 우위인 상황.
여기의 강상이 성지한보다 뛰어났던 건, 전투의 센스와 무공을 적재적소로 운용하는 활용법이었다.
이 능력의 갭을, 수천수만 번의 도전으로 결국 따라잡은 성지한이었지만.
‘아직 부족하단 말이지…….’
성지한은 시뮬레이션 속 강상을 보고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싸우면서 가파르게 성장하던 게 눈에 보이던 강상.
하나 공허의 시뮬레이션 속 그는, 뭔가 압도적인 재능의 번뜩임이 부족했다.
‘차라리 내가 힘을 제약해 봐야겠군.’
시뮬레이션이 강상의 재능을 다 담지 못한다면.
이쪽에서 능력을 제약해서 맞붙으면 되겠지.
성지한은 자신의 힘을 줄인 채로 싸워 보았다.
그러자 아까와는 역으로 밀리는 성지한.
푹!
‘역시, 쉽지 않네.’
힘을 줄인 성지한은 시뮬레이션 속에서 계속 패배를 하면서, 강상과의 격차를 다시금 느꼈다.
목이 베이고, 심장이 꿰뚫리는 장면이 수도 없이 펼쳐졌지만.
“후후…….”
성지한은 자신을 압도하는 무 앞에서,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의 능력을 제약한 채 강상과 맞붙자.
[무혼이 1 오릅니다.]
무혼이 조금씩이지만,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재능의 차이는 현격하지만…….’
동방삭.
그의 재능은 피티아의 말대로 규격 외였다.
힘을 동등하게 맞추니, 강상은 감히 대항하기 힘든 초강자.
그에 비해 성지한은 현 인류 최강이었지만.
아무래도 그와는 재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차이가, 조금씩 좁혀진다.’
무혼 덕분인가.
하늘과 땅만큼 격차가 나던 재능은.
서서히.
아주 조금씩이지만 거리가 좁혀져 가고 있었다.
10초를 버티던 게 1분이 되고.
1분을 버티던 게 5분, 10분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버티기만 하던 상황에서.
“제법이로구나.”
성지한의 검이 강상에게 공세를 펼치고, 그에게서 감탄을 들을 정도가 되자.
발전은 멈추었다.
‘여기서 정체인가.’
처음 압도적으로 밀리던 상황에서, 계속된 도전으로 공수의 교합을 비등하게 끌고 가긴 했지만.
아무리 계속 도전해도, 능력을 제한한 성지한은 동방삭을 압도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이 정도에서 끝을 내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판단하며,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총 10이 오른 무혼.
단순 시뮬레이션 속에서의 전투로 오른 것치고는, 엄청난 수치였다.
물론 그 시뮬레이션을, 총 수만 번도 넘게 돌리긴 했지만.
‘그의 무재를 뛰어넘기 위해선, 다른 자극이 필요하다.’
강상과의 전투만 시뮬레이션해서는, 그를 압도할 수 없다.
성지한은 공허의 수련장을 나서면서,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클래스, 이종무해異種武解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