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62화>
뚜벅. 뚜벅.
성지한은 금이 간 성좌의 석상 쪽으로 접근했다.
짐승 중에서는, 호랑이와 닮은 외형의 석상.
석상의 균열은, 그의 다리 쪽에 나 있었다.
“이놈…… 거기서 당장 나와라!”
이걸 보고 성좌에게 훈계를 들은 원숭이 괴수가 멀리서 소리쳤지만.
슈욱!
성지한은 이에 대꾸도 하지 않고, 금이 간 석상 위를 이클립스로 찍었다.
그러자, 석상의 눈이 반짝였다.
[무슨 짓이지…… 이걸 부순다고 성좌 후원이 끊길 줄 아느냐? 허튼 데 힘을 쓰는구나!]
“그래? 석상이 부서져도 영체는 남으니, 성좌의 후원은 유지되나 보지?”
[영체를 보았느냐? 그렇다. 네가 아무리 날 부수려 해 봤자, 후원은 계속된다. 너는 이제 너보다 훨씬 약한 플레이어들에게 제압당할 일만 남았지!]
“그래?”
[그렇다. 그러니 얼른 꺼져라!]
그러면서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는 성좌의 석상.
그 힘에 성지한의 검은 석상에 제대로 꽂히지 못한 채, 튕겨 나가려 했다.
하지만.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만귀봉신萬鬼封神
검 끝에서 만귀봉신이 그려지자.
슈우우우우!
금이 간 석상에서, 희끄무레한 연기가 급격히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뭐냐……!]
순식간에 만귀봉신 안으로 흡수되는 영체.
성좌의 석상은 상태가 심각한 걸 느낀건지, 강렬한 빛을 번쩍이며 성지한을 어떻게든 튕겨 내려고 했다.
하나.
“좀만 더 먹자.”
성지한은 그 반격을 피하고 견뎌 내면서, 만귀봉신으로 영체를 쭉 빨아들였다.
금이 간 부분이 워낙 작았던지라, 만귀봉신이 제대로 펼쳐졌음에도 상대의 영체를 한 번에 빨아들이진 못했지만.
그는 먹어치운 양에 비해, 만귀봉신의 내부가 급격히 충족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좀만 더 하면 뭐가 나올 거 같은데.’
성지한은 예전, 북벽에서의 게임을 떠올렸다.
거기서 만귀봉신으로 성좌의 파편을 흡수했을 때, 진 안에서 아이템이 튀어나왔지.
이 아이템은 실제로 써먹지는 못해도, 성좌의 기억이 남아 있어 스탯을 올려 주는 데 일조해 주었다.
어디, 이번에도 잘 써먹어 줘야겠어.
그렇게 만귀봉신이 성좌의 영체를 쭉 빨아들이자.
마음이 급해진 건, 성좌 쪽이었다.
[네놈…… 거기서 멀뚱멀뚱 구경만 하지 말고, 빨리 공격해라!]
“힘 조절이 아직 힘듭니다만…….”
[석상이 부서져도 좋으니, 어서 이놈 쫓아내!]
“허락하신 겁니다?”
어떻게든 영체를 빨아들이는 성지한을 쫓아내기 위해, 석상의 파괴도 감수한 성좌.
이에 멀리서 지켜만 보던 원숭이 괴수가 다시 성지한에게 돌진해 오고.
“나도 합세하겠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하나둘씩 합세해 공격을 퍼부었다.
쾅! 쾅!
강렬한 공격이 연속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만귀봉신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던 성지한.
“이야.”
하지만 석상에는 금도 그만큼, 많이 가 있었다.
“고맙다, 애들아. 덕분에 포식하겠어.”
“뭐…….”
성지한이 싱긋 웃으며 허공에 검을 꽂자, 또다시 생겨나는 만귀봉신.
이번 진은, 아까보다도 훨씬 커다란 규모를 자랑했다.
[아니. 이걸 바로 또 만든다고…….]
성좌의 영혼을 흡수할 정도로 절대적인 진.
이걸 바로 다시 만들어 낼 줄은 몰랐는지, 성좌가 깜짝 놀라는 사이.
“잘 먹을게.”
성지한의 만귀봉신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슈우우우!
금이 간 석상 속에서 더 많은 영체가 흡수되고, 진 안이 완전히 차오르며.
펑!
그 안에서, 거대한 송곳니가 튀어나왔다.
‘드디어 나왔군.’
성좌의 경험이 담겨 있는 아이템.
인류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종족의 깨달음이 담겼지만.
이종무해를 지닌 성지한은, 오히려 이를 통해 스탯을 올릴 수 있었다.
‘지금 당장 흡수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군.’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상황.
성지한은 이를 인벤토리에 넣고는, 금이 간 성좌 쪽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만난 성좌의 파편에 비하면, 상대가 온전한 성좌라 그런지.
만귀봉신으로 그렇게 빨아들였는데도 아직 흡수할 영체는 더 있어 보였다.
‘역시 성좌. 먹을 게 많아.’
성지한은 그렇게 계속 공격을 피하며, 만귀봉신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아, 안 되겠군. 후원을 취소하고, 관으로 들어가겠다……!]
성좌의 석상이 관을 언급하자.
쿠르르르……!
대지가 갈라지더니, 커다란 석상이 단번에 땅 안으로 쑥 들어갔다.
“엇? 성좌께서 가시다니…….”
“젠장, 힘이 조금 줄었군……!”
그러자 성좌 한 명의 후원이 끊기며, 힘이 줄어든 일부 플레이어들.
‘그래도 많이 약해지진 않았군. 한 2-3퍼센트 정도 힘이 줄어든 건가.’
이 정도면 아직도 일대 다의 전투는 하기 힘들겠어.
성지한은 적들의 힘을 측정해 보곤, 시선을 저 멀리로 돌렸다.
그가 노리는 건, 최대한 성좌의 석상이 많은 장소.
‘저쪽으로 가면 되겠군.’
휙!
성지한의 신형이 동쪽을 향해 뻗어 나가자.
“어딜 도망가느냐!”
“빨리 추격하자. 저놈, 성좌의 석상에 허튼짓을 하려고 해……!”
“이러다가 성좌의 후원이 사라지면 우리는 무조건 패배한다고!”
남은 플레이어들도, 얼른 그의 뒤를 쫓았다.
* * *
별의 묘지 맵.
성지한이 완벽히 주도했던 서바이벌의 양상은, 묘하게 바뀐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좌들의 후원을 받은 적 플레이어들이 성지한을 일제히 협공해서 완벽히 열세에 몰린 상황.
-성좌 새끼들 갑자기 왜 저리 나옴?
-그냥 후원받지…… 으으 다 이기다 막판에 쫄리네 ㅡㅡ;
-와 근데 성지한 진짜 잘 피한다; 상대하는 애들 졸라 빡칠 듯.
-ㄹㅇㅋㅋ 사방에서 들이치는데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네.
인류 시청자들은 이런 전투 양상을 보며 다 이긴 게임 넘어가면 어쩌냐고 걱정했지만.
-성좌의 영체를 흡수한다니…… 뭐 저런 게 다 있지?
-석상도 자기 힘으로 부수질 않고, 적 플레이어의 힘을 이용하고 있어.
-벌써 9명째 성좌가 후퇴했군. 플레이어들의 움직임도 크게 느려졌네.
-이걸 이렇게 이긴다고…….
-아 이번엔 지는 줄 알았는데 이놈…….
보는 눈이 몇 단계는 더 높은 외계의 시청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전투의 양상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상대 플레이어의 힘을 이용해서 석상을 깨고, 금이 간 부위에 만귀봉신을 써서 영체를 흡수하는 성지한.
[이 미친놈……! 이러다 영체를 다 빼앗기겠군…… 과, 관으로 들어가곘다…….]
슈우우우…….
벌써 10개째 석상이 대지로 들어가자.
상대 플레이어의 힘도 확실하게 약해진 상태였다.
“언제까지 도망칠 셈이냐!”
“정정당당히 맞서 싸워라……!”
다음 석상을 향해 이동하는 성지한을 보고, 플레이어들이 고성을 내질렀지만.
“12명이 몰려다니면서, 정정당당이 입에서 나오냐?”
“큭……!”
홀로는 성지한을 제압하지 못해, 12명이 팀 짜서 다니는 이들이 할 말은 아니었다.
“성좌의 석상 쪽에 들어서면, 공격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안 그래도 아까 5번째 때 그러려고 했다. 근데 저놈이 부수더군…….”
“그, 그래?”
“그래. 석상에 금만 가면 되니까. 그럼 저 이상한 진으로 성좌의 영혼을 흡수한다. 골치가 아프지…….”
“성좌가 더 관으로 들어가면 이대로 게임은 끝난다. 어떻게든 공격을 성공시켜야 해.”
“그래…… 이제 슬슬 저놈 감당하기 힘들어졌어. 버프가 더 사라지면 우리 다 죽을 수 있다.”
이렇게 상황이 진행되다간, 무조건 진다.
어떻게든 성지한을 공략하기 위해, 12인의 플레이어들은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이런 쓸모없는 것들…….]
[막대한 힘을 부여했음에도, 전혀 써먹질 못하는구나.]
그들을 후원하는 성좌들은, 이미 인내심을 잃은 상태였다.
[성좌의 영혼을 흡수하다니…… 저자는 규격 외다.]
[이번 게임은 포기해야 해. 애초에 빨리 나가려고 이 짓거리 하는 건데, 여기서 영체 잃으면 더 오래 관짝에 있어야 한다.]
[그래. 이번 건은 손절하자.]
게임의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고는, 더 이상 12인의 플레이어에게 기대하지 않기로 한 성좌들.
“아, 아니야. 얘들 할 수 있어! 이제 슬슬 나한테 적응됐다고! 좀만 더 믿어 줘! 너희들 무기 잃으면 안 되잖아!”
인벤토리에 10개째 성좌의 물품을 넣은 성지한은, 성좌의 음성을 멀리서 듣고는 얼른 소리를 질렀지만.
[철수한다!]
[무기야…… 큭, 또 만들면 그만이야!]
이미 성좌들은 게임을 포기했다.
쿠르르르……!
사방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는 대지.
대지에 드높이 자리하던 성좌의 석상들은, 얼른 땅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뭐야 ㅋㅋㅋㅋㅋㅋㅋ
-성좌들 튐??
-성지한 필사적으로 상대 실드 쳐 주네 ㅋㅋㅋㅋ
-아니 그러니까 한 대 좀 맞아 주지, 그렇게 요리조리 피하면 누가 쟤들한테 기대하겠냐고 ㅋㅋㅋㅋ
그리고.
“이, 이런…….”
“축복이 사라졌다…….”
망연자실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12인의 플레이어.
성좌 후원 덕에 강렬한 기세를 내뿜던 그들은.
이제 일개 플레이어로 돌아온 상태였다.
“하…….”
뚜벅. 뚜벅.
성지한은 한숨을 푹 쉬며, 12인의 플레이어들에게로 걸어왔다.
플레이어 중에선, 가장 작은 크기의 성지한.
하지만.
그의 발걸음에,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상태였다.
성좌의 후원이 있을 때도 유효타를 먹이지 못한 강적이었는데.
이제 후원도 사라졌으니,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야, 너희들도 설마 성좌 후보냐?”
“그, 그렇다.”
“진짜? 그랜드마스터 리그 소속?”
“……난 스타 리그인데.”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450레벨부터 500까지 소속되는, 스타 리그.
이놈은 왜 그랜드마스터들이 노는 곳에 껴 있어?
“그럼 레벨 450 이상이란 이야기군.”
“4, 478이다.”
“근데 왜 이리 약해? 내 팔이나 다리 하나는 날렸어야지. 성좌들이 희망을 갖게.”
스으으.
그러면서 강렬히 피어오르는 성지한의 암검.
그걸 본 플레이어 중 하나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너, 너야말로! 뭔가를 속인 거 아니냐…… 어떻게 성좌도 안 된 플레이어가 그런 힘을 지닐 수 있단 말이냐?”
“그래. 힘도 봉인한 존재가, 어찌 이렇게……!”
플레이어들은 지금까지의 전투가 납득이 되지 않았는지, 하나둘 씩 입을 열며 말도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치이이익!
가만히 이를 들어 줄 생각이 없던 성지한이 암검을 가르자.
그들의 몸이 두 동강 나며 떨어졌다.
[스페셜 서바이벌 맵, ‘별의 묘지’에서 1등을 달성했습니다.]
그와 함께 뜨는 게임 종료 메시지.
평소에는 이러면 로그아웃이 되었지만.
[성좌의 후원 없이 1등을 달성했습니다.]
[에픽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성좌 명성을 100,000 획득합니다.]
[별의 묘지에서 부장품을 한 개 고를 수 있습니다.]
이번엔 부장품을 고를 수 있는 에픽 퀘스트 보상 덕분인지, 그는 현실 대신 어둠이 가득한 공간으로 소환된 상태였다.
‘에이, 한 개밖에 안 주네.’
능력 봉인으로 보상 4배라고 해서 에픽 퀘스트도 해당되는가 싶더니, 그렇게 까진 안 주나.
성지한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그때.
번쩍! 번쩍!
사방에서 빛이 터져 나오더니.
각양각색의 모양새를 지닌 무구가, 어둠 속 공간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한 가지 물건을 고를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100개가 넘는 무구.
거기엔 인간이 쓸 만한 병장기보다는, 이게 뭔지 모를 장비가 더 많았다.
아무래도 종족이 다양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아이템이 나온 것 같은데…….
‘내가 쓰긴 다들 너무 크네.’
독존 성좌 중에, 인류랑 비슷한 크기의 종족이 이렇게 없었나.
성지한은 아쉬운 눈으로 장비를 쭉 둘러보았다.
너무 인류와는 궤가 다른 양식의 장비가 많아서 그런지, 확 와닿는 게 없는 부장품.
‘흠…… 그냥 가치가 높은 걸 찾아봐야겠군.’
부장품을 살피던 성지한은 인간에게 맞는 장비를 찾기보단, 아예 밸류를 우선시하기로 했다.
가치가 높은 물건이면, 나중에 다른 거로 물물교환하기도 용이할 테니까.
‘그럼, 보물찾기를 해 볼까.’
스으으…….
성지한의 암검이,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