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398화 (398/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398화>

성지한은 얼굴이 굳은 아소카를 보며, 예전에 그가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태극마검은 동방삭의 절기지만…… 마검까지 꼭 그의 길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네.

-동방삭은 영생을 추구해야 했기에, 마검에서 의도적으로 공허를 배제해야 했지.

-하지만 자네가 영원히 살 생각이 아니면, 마검에는 공허가 들어가는 게 자연스럽다네.

-공허의 마검을 완성하면, 영생은 포기해야 하네. 자네의 안에 있는, 세계수도 금이 가며 결국엔 무너지겠지.

성지한이 이를 아소카에게 전해 주자, 그가 입을 다물었다.

“영원히 살 게 아니라면 공허를 쓰라니. 제가 정말 그렇게 이야기한 겁니까.”

“그래.”

“……미래의 제가 당신을 희생시키려 했군요. 마검을 완성하면, 정말 세계수만 사라질 것 같습니까?”

아소카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검에 의해, 내부의 세계수마저도 부서지는 겁니다. 당연히 당신의 원래 육체도, 이를 더욱 견뎌 낼 수가 없지요.”

“나도 공허…… 그 힘을 사용해 볼까 생각해 보긴 했지만, 쓰면 죽는 것을 알아 아직까진 시도하지 않았지. 목숨이야 아까울 게 있겠냐만, 내가 죽으면 적귀들이 다시 창궐할 테니까.”

성지한의 태극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동방삭도, 자신이 공허를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를 말해 주었다.

결국 이들의 요지는, 공허의 마검이 세계수만 정밀타격할 리가 없다 이거군.

성지한의 몸까지 공허가 집어삼켜서, 검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결국 같이 붕괴된다…….

이런 뜻 아닌가?

“근데 아직까지는 멀쩡하다만.”

“그럴 리가…… 몸에 조금의 이상도 없습니까?”

“어, 오히려 공허가 사라지니 좋던데.”

“공허가 사라진다구요…….”

“그래. 너무 늘어도 처치 곤란인 능력인데. 저기 넣으면 사라져 주거든.”

“……그렇습니까.”

성지한의 말에, 아소카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한편.

“흠. 그래서 자네…… 이걸 계속 연공할 건가?”

“그래야죠.”

“영생이 문제가 아니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죽을지도 모르네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허, 참으로 대책 없는 친구일세…….”

동방삭은 그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성지한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이게 나에게 해가 될 거란 생각이, 아직까지는 전혀 안 든단 말이지.’

검의 완성도가 아직 낮아서 그런가.

마검이 성지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넘쳐 흐르는 공허를 제거해 주는 쓸 만한 수단이었지.

물론 태극마검이 더 발전해서, 효과가 강력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 단계까지 가고 생각하자.’

성지한은 공허의 마검을 계속 수련하기로 했다.

“일단은 써먹어 보렵니다.”

“허허……! 그런가?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그럼 내가 조언을 좀 해도 되겠는가?”

“좋죠. 지도편달 좀 부탁드립니다.”

“그럼 일단 봐 보게. 태극의 안에서…….”

성지한이 망설임 없이 배우겠다고 하자, 바로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다가가는 동방삭.

강상 시절 때에는 태극마검을 구상만 하던 그였지만.

지금의 그는 600년을 더 수련하면서 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있었기에, 성지한에게 더 효율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

그런 성지한과 동방삭을 아소카가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는 때에.

[봉인을…… 해제해 주십시오…….]

붉은 세계수의 앞에선, 봉인 해제를 촉구하는 문자만 하염없이 떠올랐다.

* * *

동방삭의 원포인트 레슨 효과는 대단했다.

[공허가 5 감소합니다.]

공허가 감소하면서, 태극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마검.

성지한이 아소카 앞에서 성공시켰던 건, 검의 손잡이에 불과했지만.

슈우우우…….

이번에 태극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작은 단검의 크기는 되었다.

동방삭은 이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는 태를 갖추었군.”

손잡이에서 단검으로 발전한 공허의 마검은, 예전의 동방삭이 꺼냈던 빛의 검에 비해선 보잘것없는 크기였지만.

그래도 그는 이를 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형태는 비록 아쉬울지라도.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은, 동방삭이 오랜 세월 추구해 혼 멸혼의 힘이 담겨 있었으니까.

‘옆에서 직접 붙어 과외 해 주니, 이게 바로 되네.’

무신이 원래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종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가 동방삭 때문이라더니.

진짜 무에 있어선, 초월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빨리 완성시킬 정도면 그냥 동방삭이 공허로 마검 완성했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성지한은 스타 버프 없이도 단검까지 만들게 도와준 동방삭을 보며 그리 생각했지만.

“한데 자네의 몸이 붕괴하지 않는 게 정말 특이하군. 난 이 검을 꺼내자마자 소멸했을 거라네.”

동방삭은 오히려 성지한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그래서 이 힘으로 마검을 만들 시도조차 하지 못했지. 흠…… 어떻게 가능한 건지 짐작조차 안 가는군.”

“뭐, 여러 가지 힘을 지니고 있지만 기본은 평범한 인간입니다.”

“허. 자네가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인류가 이미 스스로 적귀들을 다 때려잡았겠지.”

성지한의 말에 코웃음을 친 동방삭은 손가락으로 붉은 세계수를 가리켰다.

“그럼 이왕 검을 완성했으니, 저놈에게 실험을 해 보는 게 어떠한가?”

“세계수한테 말입니까?”

“그러네. 이 세계는 봉인된 과거의 세계라지? 어차피 미래는 확정되었을 테니, 여기서 내 한이나 풀어 주게. 저 흉물이 좀 박살 나는 걸 보고 싶어.”

성지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외 선생님이 1:1 과외를 완벽하게 해 줬으니, 소원 좀 풀어 줘야겠지.

뚜벅. 뚜벅.

성지한이 공허의 단검을 들고, 붉은 세계수에 다가가자.

[안 됩니다, 주인님! 어서 빨리 봉인을 해제해 주십시오!]

세계수 뿌리가 땅바닥에서 올라오더니, 저절로 끊어지며 문자를 만들어 냈다.

“알았어. 봉인도 해제해 줄게. 근데 이거 통하는지 한 대만 때려 보자.”

[주인님!!]

“근데 왜 내가 주인이야? 우리가 언제 봤다고.”

[적과 영원을 지니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 주인 누군데? 길가메시냐?”

[아닙니다. 설마 모르십니까…….]

길가메시가 주인이 아니라고?

‘그럼 그 녀석이 가르쳐 준 코드도 꽝인 거 아니야?’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단검을 들었다.

그러자.

슈우우우우…….

붉은 세계수에서 운무가 퍼지더니, 거인의 머리 귀신이 나타났지만.

[으…… 이, 이 힘은…….]

[으어어억……!]

성지한이 들고 있는 단검에,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오…… 저 지긋지긋한 귀신이 완전히 사라지는군.”

“확실히, 소멸하는군요.”

“마검에 가장 어울리는 힘은, 역시 공허였는가.”

그리고 뒤에서 적귀가 확실히 소멸했다고 판정하는 동방삭과 아소카.

한편, 이 모습을 본 붉은 세계수는 아까보다 더 빨리 문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주인님! 살려 주십시오! 아까 전에 세계수의 과육도 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 그건 고마워. 하지만 더 줬어야지.”

[더, 더 드리겠습니다!]

후두두두두!

성지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에서 초고속으로 자라나는 사과.

그건 그의 앞에, 우수수 떨어졌다.

조금 전만 해도, 분명히.

-세계수의 과육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1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봉인이 해제되면 이 시간이 단축됩니다.

다시 만들어지기까진, 1년 걸린다고 했는데.

역시 거짓이었나.

‘먹을 시간은 없고, 일단 챙겨 둬야겠군.’

태극마검의 유지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으니까.

과일 먹다간, 태극마검이 사라질 우려가 있었다.

성지한은 인벤토리에 세계수가 떨어뜨린 수백 개의 사과를 쓸어 담은 후.

“고마워.”

[야! 줬잖아!!]

“그래서 고맙다고.”

검을 들어, 나무기둥에 꽂았다.

그러자.

스으으으…….

순식간에 보랏빛으로 물드는 나무.

나무의 껍질에 순식간에 금이 가더니.

펑……!

세계수가, 나무의 끝부분.

잎사귀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그만. 제발 주인님. 이건 아닙니다. 봉인을 해제해 주세요……!]

“이야, 끈질기다 너도.”

봉인 해제를 대체 몇 번 이야기하는 거야.

성지한은 세계수의 발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꾹 찔러 넣었다.

사아아아…….

그러자, 나뭇잎에 이어서 사라지는 나뭇가지.

풍성했던 붉은 세계수의 외양이, 빠른 속도로 축소되어 갔다.

“저 흉물이 재생하지 않는군…….”

“공허의 마검이 확실히 효과를 보이는군요. 하지만.”

나무가 사라지는 걸, 유심히 바라보던 아소카가 말을 이었다.

“이대로 세계수를 부수면, 이 세계의 봉인이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봉인을 풀어야, 현실 세계의 동방삭에게 기억이 돌아간다고 했지…… 부수는 것으로는 해제가 안 될까?”

“이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봉인 해제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신 것 같은데…… 한번 실험해 보시겠습니까?”

“그거, 잘못된 코드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툭. 툭.

아소카는 웃으며 자신의 등 뒤에 있는 금륜을 매만졌다.

“시간을 되돌리면 그만이니까요.”

“일단 세이브하고, 로드하자는 건가.”

“세이브, 로드요?”

“그런 게 있어.”

시간을 되돌리는 금륜.

아무리 봐도 저게 제일 사기 같단 말이야.

‘어디 그럼, 사기템 써먹어 볼까.’

성지한은 나무에 꽂았던 단검을 뽑고, 그 옆에 길가메시가 가르쳐 준 코드를 작성했다.

[뱀의 목을 벨 시간이다.]

그리고 그 문구가 작성되자마자.

번쩍! 번쩍!

붉은 세계수에서 빨간빛이 반짝이더니.

[길가메시. 너는 나에게 권한을 빌려줬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권한은 나에게 모두 넘어왔다.]

그 안에서, 무신의 음성이 들렸다.

[사라져라. 우둔한 나의 고객이여.]

뱀의 목을 베자고 코드를 썼는데.

오히려 베이는 건, 이쪽인데…….

그러고는 떠오르는 메시지.

[페이크 코드를 작성했습니다.]

[봉인된 세계를 삭제합니다.]

세계를 삭제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나무 위에, 소멸 코드가 수십, 수백 개가 넘게 작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금방 전역에 퍼져 나가는 소멸 코드.

세상이 모두 붉은 문자 멸에 뒤덮이자,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길가메시 이놈. 쓸모가 없네. 진짜.’

길가메시가 주인이 아니라고 할 때부터 이상했는데.

역시 이런 결과인가.

성지한은 아소카를 바라보며, 신호를 보냈다.

“조금 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부탁하지.”

쿠르르르르…….

그렇게 황금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자.

시간은, 성지한이 코드를 작성하기 전의 시점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파직. 파직…….

금이 가더니, 부서지는 황금의 수레바퀴.

“그거, 일회용이었나?”

“원래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이번에 거스른 흐름이 너무나도 거대했습니다.”

하긴.

까닥 잘못하면 온 세상이 소멸 코드로 뒤덮이는 상황이었으니.

그걸 뒤엎는 게 손쉬운 일은 아니었겠지.

“그래…… 다음 세이브 로드 기회는 없는 거군. 그럼 그냥 부순다.”

[주인님!!]

파아아앗!

성지한은 붉은 세계수의 글자를 무시하고 검을 더 깊숙이 꽂아 넣었고.

[주인…….]

붉은 세계수는 마지막으로 한 글자를 띄운 채, 사라졌다.

그리고, 세상이 암전하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구궁팔괘도의 내진이 붕괴하여, 육합六合, 오행五行, 사상四象이 해제됩니다.]

[‘봉인된 세계수의 파편-2’가 파괴됩니다.]

[파괴된 세계수의 파편에서, 잔류되어 있던 기운을 얻습니다.]

[스탯 ‘영원’이 10 오릅니다.]

[스탯 ‘적’이 10 오릅니다.]

‘이게 봉인의 축이었군, 역시.’

세계수를 부수자, 붕괴하는 내진.

‘10씩이면 쏠쏠하게 올라가네.’

아까 회수한 사과까지 먹으면, 오늘 여기 들어와서 얻어가는 게 상당하겠어.

그리 생각하며 성지한이 여기서의 소득을 정산하고 있을 때.

지이잉…….

[태극마검의 숙련도가 상승하여, ‘기프트 - 마검의 낙인’이 사라집니다.]

뜻밖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