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06화>
성지한은 경험치를 제공하겠다는 이그드라실의 메시지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아무리 레벨 업이 좀 급하다지만, 이그드라실이 할 제안으로는 너무 없어 보이지 않냐?”
거기에 예전에 했던 제안들에 비하면, 이번에 그가 제시하는 조건은 겨우 경험치뿐.
예전에 했던 거래도 거부한 성지한이 이걸 받아들일 거라고 보고, 메시지를 보낸 건가.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언제부터 경험치를 제공하게 된 거임?
-진짜 없어 보이네 ㅋㅋㅋㅋ
-예전엔 인류를 엘프로 만들고 적의 굴레를 철회해 준다더니…… 뭔가 격이 확 떨어진 느낌이네 ㅋㅋㅋ
시청자들도 경험치 보상은 이그드라실의 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나.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이번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단지, 이번 스페이스 리그에 출전만 하면 경험치를 보상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출전만 하라고?”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에 이그드라실이 제시한 조건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표 경기는 몰라도, 스페이스 리그는 웬만하면 챙기려는 성지한에게.
세계수 엘프와의 경기 출전은 이그드라실이 요구하지 않아도, 하려고 했던 것이었으니까.
“경기 출전만 하면 경험치를 준다니…… 어떻게 줄 생각이지?”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출전하면 알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합니다.]
경험치 제공 방법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주지 않는 이그드라실.
[우주수 이그드라실은 단지, 아바타를 통하여 심도 있는 대화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을 덧붙입니다. 경험치는 이에 대한 보상입니다.]
성지한은 그 메시지를 잠시 지켜보다가.
“……뭐, 어차피 나갈 생각이었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니까 더 수상한데…….
-그냥 성지한 님이 스페이스 리그 안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어차피 지금 우리 순위도 최상위권인데 엘프한테 1패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음?
-하지만 그거 무섭다고 뺐다가 엘프전 때마다 성지한 님 빠지면 인류 순위 추락할 거 같은데 ㅡㅡ;
-하긴 성지한 빠지면 세계수 엘프 이길 플레이어가 없지…….
성지한이 출전한다고 하자, 인류 시청자들은 불안감을 내보였지만.
그렇다고 세계수 엘프와의 경기를 포기하자니, 대표팀엔 그 이외의 대안도 딱히 없었다.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합니다.]
[게임이 종료됩니다.]
그렇게 이그드라실과의 대화와 끝날 무렵, 때맞추어 종료되는 게임.
번쩍!
로그아웃된 성지한은 방에서 생각했다.
‘이그드라실…… 또 씨알도 안 먹히는 회유를 하려나.’
굳이 아바타를 통하여 이야기하잔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이놈과 엮여서 크든 작든 이득은 보긴 했단 말이지.
성지한은 결과적으로는 매번 좋게 끝났던 세계수 엘프와의 일을 떠올리며.
스으으으…….
성지한의 방문 너머로 검은 운무가 통과하더니.
그것은 곧 뭉쳐, 그림자여왕의 형상으로 변했다.
“오랜만이군. 후원 플레이어는 많이 모았냐?”
“음. 그대가 자유를 준 덕분에, 괜찮은 플레이어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성지한의 암검, 이클립스에 원래 같이 있던 그림자여왕은.
최근에 후원 플레이어를 본격적으로 모집하기 위해, 잠시 검에서 나와 있던 상태였다.
여왕이 빠져나가면 이클립스에 담긴 그림자기운이 적잖이 줄어들긴 했지만.
‘어차피 수련할 땐 수련장 내부에 공허가 많아서, 그냥 풀어 줬지.’
인류를 서포트하는 후원 성좌 중에서는, 그나마 괜찮은 편인 그림자여왕.
성지한은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는 수련장에 굳이 그녀를 데려가지 않고, 풀어 줘서 활동하도록 했다.
“근데 벌써 후원 다 했냐? 빨리 복귀했네.”
“음. 워낙 내 지닌 힘이 부족해서, 후원 플레이어를 늘리는 건 이 정도가 한계였다. 3년에서 5년 정도면, 투자한 걸 회수할 수 있겠지.”
“3년에서 5년이라…….”
“인류는 그래도 네가 있으니, 스페이스 리그에서 계속 순항하지 않겠어? 투자한 자원을 회수할 때는 금방 오겠지.”
그렇게 그녀가 3~5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그 이후로는 계속 후원 확장을 해 나가겠다고 미래계획을 짜는 걸 보면서.
‘얘, 아소카가 시간을 돌리고 무신의 무한회귀가 밝혀질 때 안 따라왔었나 보군…….’
성지한은 여왕이 그때 없었다는 걸 확인했다.
그러니까 저렇게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왜 그렇게 보지? 왠지 날 측은하게 바라보는 거 같은데.”
“아니야. 아니야. 잘 하고 있어. 인류 투자할 만해. 내가 있잖아.”
“그거야 그렇다만…….”
성지한을 미심쩍게 바라보던 그림자여왕은, 본격적으로 방에 들어온 용건을 말했다.
“그대여. 이그드라실의 아바타를 만날 땐 나도 같이 가도 되겠나?”
“왜, 아바타 공격하게?”
“아니. 아바타 따위를 죽여 보았자 무의미하지. 다만, 이그드라실이 어떻게 아바타를 움직이는지 궁금해서 그렇다.”
“그래, 같이 가.”
성지한이 왼손을 뻗자.
스으으으…….
그림자여왕의 신체가 다시 검은 운무로 변하더니,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검 안의 공허가 더욱 짙어졌군. 무슨 일이 있었나?]
“수련하다가 수련장 하나 날려 먹었지.”
[수련장을…… 허. 그대가 성좌가 되면, 금방 대성좌를 위협하겠어.]
대성좌라.
‘그때가 과연 올지 모르겠군.’
성지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날짜를 확인했다.
다음 스페이스 리그 경기.
‘세계수 엘프 – 55’와의 게임은, 이제 3일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 * *
3일 후 열리게 된 스페이스 리그 경기.
=이번 스페이스 리그에서의 상대는 바로, 세계수 엘프 55입니다!
=저희가 소속된 브론즈 리그에서 랭킹 1위를 달리는, 초강팀입니다.
=저번에는 세계수 엘프 200이 1등 아니었나요? 참…… 매번 1위가 세계수 엘프 라인으로 뒤바뀌는군요!
인류가 세계수 엘프를 이겨서, 1등 자리에서 끌어내려도.
빈 1등 자리에 올라가는 건, 또 다른 세계수 엘프였다.
-뭔 맨날 엘프 놈들이 1위야 ㅡㅡ
-저번에 우리 잠깐 1등 공기 맡지 않았음?
-ㅇㅇ 근데 쟤들이 하루에 버는 포인트량이 워낙 많아서 따라잡을 수가 없음…….
-그래도 이번에 성지한이 이겨 주면 쟤들도 내려오겠지.
-그럼 또 베일에 쌓인 2등이 1등 차지하고 세계수 엘프로 밝혀질걸?
-징글징글하다 진짜 ㅋㅋㅋㅋ
이번에도 리그 1위가 엘프로 밝혀지자, 또 너냐라는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인류 대표팀의 선수 대기실로 소환된 성지한은.
“지한!”
거기서 소피아를 만났다.
“지한, 요즘 세아 무슨 일 있어요?”
“왜요?”
“요즘 배틀튜브 왜 안 틀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아까부터 한숨만 엄청 쉬던데요. 표정도 심상찮고.”
그러면서 뒤쪽을 바라보는 그녀.
시선이 닿는 곳에는, 혼자 멍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는 윤세아가 보였다.
성지한은 그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아직도 죽상이냐.”
“……누구 때문에 그런데.”
“여행 갔다 온다고 생각하라니까.”
“그게 무슨 여행이야…….”
여행 이야기에 더 다운된 그녀를 보며, 성지한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괜찮아. 내가 다 끝내고 다시 부를 테니까.”
“……그래. 삼촌이 다 끝낼 거면, 나도 있어도 되지 않을까?”
어떻게든 혼자 살지는 않겠다 이거네.
성지한은 윤세아를 탈출시키기 위해, 피난 목적을 다르게 포장하기로 했다.
“꼭 혼자 살라는 게 아니야. 너 인질로 잡히면 내 행동이 제약받거든. 그걸 사전에 차단하는 거지.”
“에이. 그렇게 따지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윤세아의 반문에, 성지한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인질이어도, 제약받지 않지.”
“그, 그래?”
“어, 그러니까 일을 잘 마무리 짓기 위해서라도 잠깐 ‘여행’ 가 있어.”
“으…….”
그 말에 더 고민에 빠진 그녀.
‘오늘은 이 정도만 할까.’
성지한은 여기서 더 밀어붙이지는 않기로 했다.
마지막 순간에 안 간다고 하면, 점혈 찍고 보내야지 뭐.
그때.
지이이잉.
[양 팀의 감독을 소환합니다.]
감독 소환 메시지와 함께, 감독실의 풍경이 대기실의 화면 속에서 보였다.
랭킹 1위와 맞붙어서, 긴장된 얼굴의 데이비스 감독과.
“…….”
어딘가 가라앉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는 엘프 대신관.
다른 세계수 엘프 넘버의 대표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대신관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확실히 다른 대신관에 비해 침울해 보였다.
[1경기의 밴, 셀렉트 카드를 정해 테이블 위에 올리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나자, 먼저 밴과 셀렉트 카드를 낸 데이비스 감독은.
“……여기 있습니다.”
대신관이 셀렉트 카드만을 내자,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성지한 선수를 견제하지 않는군.’
예전부터 세계수 엘프들이 이런저런 수를 쓰다가, 매번 인류에게 승리를 헌납해서 이번엔 정공법으로 나서나 했더니.
세계수 엘프 – 55는 맵만 고를 뿐, 밴 카드를 선택하지 않았다.
저번에 세계수 엘프와 경기할 때보다, 훨씬 강해진 성지한의 힘을 생각해 보면 무조건 밴을 해야 하건만.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이럼 우리야 고맙지.’
데이비스 감독은 벌써 경기를 다 이겼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해서 먼저 열린 밴 카드.
[‘세계수 엘프 - 55’의 1~10위의 선수 중, 3명이 밴당합니다.]
[1, 4, 6위의 선수가 밴당했습니다. 1경기에 출전하지 못합니다.]
“오……!”
밴도 잘 먹혀서, 3명 밴 중 1등 선수를 틀어막을 수 있었다.
=1위가 밴을 당하는군요!
=데이비스 감독. 시작이 좋습니다.
=엘프 측에서 밴 카드를 안 꺼낸 것이 찝찝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아, 그런데 혹시 저번에 성지한 선수와 우주수 이그드라실의 약속 때문에, 밴 카드를 안 꺼내는 것 아닐까요?
=아…… 그런 거면 성지한 선수는 무조건 경기에 출전하겠군요! 그럼 저희의 승리 가능성도 높아지겠습니다!
밴 카드의 결과를 보고, 좋은 스타트를 보였다는 해설진.
하나 이 반응은, 다음 맵 셀렉트에 들어서자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셀렉트 카드는…… 아, 엘프 측이 꺼낸 맵이군요!
=1경기가 진행될 맵은, ‘하늘숲’입니다!
=하필 맵 이름에 숲이 붙었군요!
하늘숲이라.
저 맵엔 또 무슨 흉계를 숨기고 있는 걸까.
데이비스 감독은 선정된 맵 이름을 보고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
상대 엘프 대신관은, 하늘숲이 걸린 걸 보고는 안타까운 탄식을 내질렀다.
저번에 상대하던 대신관들은 대부분, 가식적인 반응을 하던 것에 비해.
이번 세계수 엘프 55의 대신관은, 하늘숲 맵이 걸리자 자신이 상대 감독보다 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뭡니까?”
“……이렇게, 저희는 끝이 나겠네요.”
아니, 뭘 끝이 나?
자기들이 골라 놓곤.
데이비스 감독은 이상한 소리를 하는 대신관에게 그리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래요…… 어디. 당신네 1등에게, 경험치 잘 드시라고 하시죠.”
대신관은 데이비스 감독을 노려보면서, 경험치를 거론했다.
‘……저 말은 설마. 하늘숲 맵이 우주수 이그드라실과 연관이 있는 건가?’
데이비스 감독이 그렇게 의문을 지닌 채, 시작된 1경기 하늘숲 맵.
=맵 이름 그대로, 하늘 위에 숲이 있군요!
=구름이 나무를 받쳐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선수들도 별 어려움 없이 구름을 밟고 서는군요.
=맵 자체는 참 아름답습니다만…… 하필 상대가 상대인지라 무슨 흉계를 숨기고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하늘숲 맵은 이름 그대로, 구름 위에 펼쳐진 거대한 숲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 이거 생긴 건 구름인데 바닥은 단단하네요.”
“딱히 플라이 마법 안 써도 되겠습니다.”
“그래도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엘프 쪽에서 뭔 흉계를 꾸미고 있을지 모르니까.”
출전한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제가 먼저 정찰 가 보겠습니다.”
성지한은 하늘숲의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휙!
그가 본격적으로 경공을 사용하자.
얼마 되지 않아 느껴지는 엘프의 기운.
‘저기 많이 모여 있네.’
성지한은 엘프가 잔뜩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착지했다.
그러자.
엘프들은 성지한을 보더니, 무기를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셨나요.”
머리카락이 온통 초록빛인 엘프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는…….”
머리카락이 일부만 녹색이 아니라, 완전히 녹색이라니.
막대한 생명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상대를 보며, 성지한이 눈빛을 가라앉힐 무렵.
“자.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상대 엘프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손을 뒤로 향했다.
그 손가락은 이미 무릎을 꿇고 있는 엘프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험치부터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