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16화>
하루 뒤, 소드 팰리스의 대기 길드 사무실.
“……그러니 이제 곧, 아레나에서 초심자의 아레나로 인류를 초대할 것입니다.”
성지한은 오랜만에 길드 채널을 통해, 초심자의 아레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진화 보너스를 주는 아레나라니…….
-초심자…… 이거 우리한테 딱 맞는 조건인데?
-우주의 기운이 인류에게로 모이는 느낌이 든다…….
초심자의 아레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참여 조건이 인류에게 딱 맞다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근데 다이아 마스터만 출전 가능하면 성지한이 못 나가잖아…… 그럼 그냥 거기서 들러리 서지 않을까?
-아 그런가 성지한이 못 나가면 진화 보너스 못 챙길 거 같은데 ㅋㅋㅋㅋ
-ㄴㄴ 그래도 같은 하급 종족끼리면 할 만할 듯? 우리도 꽤 세짐.
물론 인류의 필승 카드인 성지한이 못 나가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인류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예전보다 많이 올라간 만큼, 진화 보너스를 꽤 챙겨 올 것으로 기대되었다.
“오너님, 그러면 초심자의 아레나와 관련하여 자세한 경기 내용 같은 건 아직 나오지 않은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러면 초심자의 아레나와 관련된 소식은, 여기서 마무리 짓고…….”
이하연은 채팅창을 힐끗 보더니, 화제를 돌렸다.
“오너님 몸은 좀 어떠신가요? 관리자의 팔을 이식했을 때, 모두가 깜짝 놀랐어요. 거기에 팔뿐인가요. 얼굴에도 상처가 생기고…….”
“몸은 멀쩡합니다.”
탁. 탁.
성지한은 그러며 머리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정신도 마찬가지구요.”
평소랑 별다를 것 없는 성지한의 모습에, 사람들은 안도했다.
-오, 뭐 지배받지는 않나 보네…….
-관리자의 손도 별거 없구만?
-어제는 진짜 식겁했는데 ㅋㅋㅋ
-근데 왜 어비스의 주인이 성지한이랑 똑같이 생겼을까?
-글쎄 ㅋㅋㅋ 도플갱어 같은 몬스터 아니야?
-그런가? 근데 뭔가 열쇠를 줄 때 필사적이던데…….
“어비스의 주인은…… 글쎄요. 추측에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성지한은 길드 채널 채팅을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더 던졌다.
“저희 누나도 이번에 어비스에서 풀려나 귀가했습니다. 지금은 ‘인류’ 상태가 아니지만 몸 상태가 돌아오면, 인사드릴 날이 있을 겁니다.”
-오?!
-성지아 님도 복귀…… 그러고 보니 후원했었지.
-근데 왜 인류 상태가 아닌 거임? ㄷㄷ
-뭐 어때 돌아온 게 어디야 ㅎㅎ
-서포터 한 명 더 추가됐으니 우리나라가 이번 챔스도 지배하겠네.
-원래 지배했음 ㅋ
성녀 성지아가 어비스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성지아 님이 돌아오셨다니, 그럼 대기 길드의 자리도 하나 비워 둬야겠어요!”
“뭐, 언제 인간으로 돌아올지는 모릅니다. 열쇠는 줬는데 안 쓰고 있네요.”
“어…… 왜 안 쓰시죠?”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은 성좌 상태에서 돌아갈 수 없다고, 인벤토리에 열쇠를 넣어 둔 성지아.
성지한은 그냥 돌아오라는 데도 고집불통인 누나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이 어비스 가더니 더 억세졌어.
“그럼, 여러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성지한이 그렇게 길드 채널을 통한 방송을 끝마치고 나자.
이하연이 목소리 톤을 낮춘 채, 그에게 질문했다.
“오너님, 오너님! 그…… 아까. 윤세진 님을 만나 뵈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이혼요?”
“네, 네……!”
“예. 두 분께서 그러기로 합의했습니다.”
진짜구나.
이하연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역시. 예전에 시즈루 때문인지…….”
“예, 뭐. 그것도 있고. 누나가 본 멸망 시나리오에서 모두 매형이 배신하는 결과가 나와서요.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고 하네요.”
“멸망 시나리오라면…… 저번에 오너님께서 플레이했던 것 같은 미래상인가요.”
“네.”
이하연은 그 말을 듣자, 이에 관심을 보였다.
“미래라…… 성녀님께서 보신 미래에 저는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하연 씨의 미래에 대해선. 저도 아는 바가 있긴 합니다.”
“어, 정말요? 성녀님께서 말씀하신 게 있어요?”
“누나한테 들은 건 아니지만.”
툭. 툭.
성지한은 자신의 금 간 얼굴을 두드렸다.
“여기서 좀 얻은 정보가 있죠.”
사실은 회귀 전에 얻었던 정보지만, 굳이 나 회귀했다 할 필요는 없으니까.
성지한의 말에, 이하연이 눈을 반짝였다.
“와, 미래의 전 어때요?!”
“아메리칸 퍼스트의 2군 길드장. 매번 도박중독으로 패가망신하고, 알콜 중독으로 매번 술주정만 부렸습니다.”
“네…….”
“별명은 제로였다고 하는군요. 매번 전 재산이 0원이어서.”
“크흠…… 그거 정말. 아가씨답습니다.”
뒤에 있던 임가영이 비웃음을 애써 참고 헛기침을 했다.
“뭐, 뭔 소리야 그게! 도박, 아니 승부예측에서 손 뗀 지가 언젠데!!”
“누나의 멸망 시나리오에선 제가 이 정도 존재감을 보이지 않았었거든요. 만약 하연 씨가 대기 길드 마스터가 되지 않고, 예전처럼 이성 길드의 부장으로 지냈다면 어땠을까요?”
“그, 그럼…….”
“그럼 아가씨는 또 한탕을 노리고 베팅했을 겁니다.”
“윽…….”
이하연은 임가영의 말에 반박하질 못했다.
이번에 베팅에서 손을 뗀 것도 대기 길드 마스터였던 것에 더불어서, 성지한에게 도박 중독자 이미지로 안 비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그리된 거지.
예전처럼 이성 길드에 있었으면, 분명히 또 승부 분석한다고 돈 마구 베팅했겠지.
“지금 대기 길드의 마스터를 하는 게 가장 희망찬 루트네요.”
“그렇죠.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네, 그런데.”
스윽.
이하연은 성지한에게 다가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으신 거죠?”
“아직까진 이상 없습니다.”
“아직이라고 하시는 게 마음에 걸리네요.”
“뭐,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니까요.”
무신이랑 싸울 땐 가진 힘 모두 쏟아부을 텐데.
그땐 이 폭탄들이 다 터져 버릴지도 모르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수련 좀 하러 가겠습니다.”
“아, 오너님. 가시기 전에 길드의 실적 보고서 좀 가져오겠습니다. 거기에 어제 각국의 정상께서 오너님 안부를 묻는 전화도 쇄도했는데 이에 응대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일, 전적으로 하연 씨한테 맡기죠.”
안 그래도 힘 컨트롤하기 바쁜데, 잡무까지 떠맡을 수는 없지.
성지한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자, 이하연이 그의 빈자리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니, 이거 오너님 길드란 자각은 있으신 거야?”
“요즘은 뭐, 업무 아예 안 보셨지 않습니까. 아가씨도 사람 쓰시면서 일 편하게 하시죠.”
“에휴…… 그래야지. 그래도 각 나라 정상들한테 응대 전화하는 건 남 시키기가 그런데. 가영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해 보겠니?”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결국 또 내가 해야겠네.”
이하연은 손가락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 * *
소드팰리스의 펜트하우스.
“아빠…… 그게 짐 전부야?”
“어, 갈아입을 옷만 있으면 됐지.”
집을 나가기로 한 윤세진은, 캐리어 하나만 끌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럼 세아야. 아빤 아래서 살 테니, 종종 보자.”
“아, 같이 가. 아빠!”
윤세진을 배웅하러 나온 윤세아는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엄마, 갔다 와도 되지?”
윤세진의 얼굴은 보기도 싫은지 공허의 운무를 팍팍 뿌리고 있던 성지아는.
[그래. 갔다 오렴.]
순순히 그녀를 보냈다.
삑.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두 부녀.
둘이 그렇게 가고 얼마 안 있어서.
번쩍!
성지한이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어? 매형 벌써 갔어?”
[그래. 매형이라고 부르지 말고 이젠 윤세진이라고 하렴.]
“매형이 입에 익어서…… 알았어. 차차 고칠게. 짐 싸는 데 시간 걸리는 줄 알았는데 금방 끝났구나.”
윤세진이 아랫집으로 가기 전에 수련장에서 힘 점검이나 하고 오려 했더니.
뭐 벌써 짐을 다 쌌데.
“나중에 인사해야겠다.”
[그러렴. 수련장에서, 볼일은 잘 봤고?]
“어. 힘 조절 테스트 좀 해 봤는데. 아직까진 괜찮아. 둘 다 내 말을 생각보다 잘 듣네.”
길드 채널을 통한 발표 후, 이하연의 보고를 피하기 위해 수련장으로 대피했던 성지한은.
힘 컨트롤을 어느 정도 끝낸 상태였다.
‘이 정도면, 챌린저리그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겠군.’
오늘부터, 챌린저 게임도 매칭을 돌려야겠네.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팔을 바라볼 무렵.
[다행이네. 근데 지한아. 근데 아까 네가 발표할 때, 옆에 있던 길드 마스터랑은 무슨 사이니? 상당한 미인이던데.]
“무슨 사이긴. 동업자지.”
[사귀진 않고?]
“그런 사이는 아니야.”
성지아는 성지한과 이하연의 관계를 캐물었다.
[그런 아가씨랑 겨우 동업 관계로 만족하니? 지한아. 너도 이제 사람 만나야지!]
“이혼 중인 누나한테 연애하란 잔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더욱 그러는 거란다. 나처럼 한 명만 만나고 결혼했다간, 이렇게 이혼할 수도 있는 거야.]
누나 풀어 준 건 좋은데, 집에 무슨 잔소리꾼이 한 명 들어온 느낌이네.
성지한은 손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무신 쓰러뜨리면 안 말려도 할 테니까 걱정 마.”
[이상하다. 미국에선 그렇게 카사노바처럼 지내더니…….]
“그건 또 뭐야. 누나가 본 미래야?”
[응. 그 소피아란 아가씨한테 정착한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리 내 동생이라도 너무하네 싶은 케이스도 많았거든. 최장 9다리까지 봤어 나.]
그때야 가족들도 다 죽었고, 한국도 던전핵에 잠식되어 멸망했으니까.
미국에서 그냥 망나니처럼 산 거지.
성지한은 저번 생의 삶을 잠시 떠올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9다리까지는 안 했는데.’
망혼에 있던 성지한 중에선, 그런 케이스까지 있었던 건가.
[그러니까, 나중에 늦바람 들지 말고 지금 한 명씩 만나렴.]
“그건 무신 목 따고 할 테니 걱정 마시고. 누나야말로, 뭐 좋은 정보 없어? 아직 공허의 마녀잖아.”
[정보? 나 아직 공허에 소속된 몸이라,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돼. 그러다간 네가 힘들게 구해 온 열쇠를 못 쓰게 될 수도 있거든.]
“그럼 열쇠 바로 쓰고 이야기 좀 해 봐.”
[……적어도 초심자의 아레나가 끝날 때까지는 이대로 있으려고. 세아한테 힘을 전폭적으로 몰아줄 거야.]
“그 후엔 열쇠 써라. 진짜.”
[노력해 볼게.]
저렇게 대답하면 안 하던데.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어 물어보았다.
“누나 혹시 피티아 알아?”
[피티아…… 아, 네 성좌 관련 미션 때 본 적이 있었어. 인류의 군림 성좌 중 한 명 아니었니?]
“어. 무신의 종자인데, 누나가 공허의 마녀에서 해방되면 자기가 공허의 마녀로 끌려간다고 했거든.”
[그래? 내가 해방되면 자기가 공허의 마녀가 된다고 했어?]
“어, 신안이 있어서 그렇다고.”
[그래…… 그거에 관련돼서는 전혀 모르겠는데.]
번쩍!
그러면서 성지아는 신안을 소환했다.
[어비스의 주인…… 또 다른 네가 사라진 후 이 신안도 약해졌어. 미래를 보는 힘도 사라지고, 그저 먼 곳만 볼 수 있을 뿐이지.]
“망원경 역할이 끝이야?”
[망원경이라니. 신안이 겨우 그 급은 아니야. 지금 세아를 보고자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다고.]
신안에서 빛이 반짝이자.
윤세진과 윤세아가 가볍게 포옹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타났다.
[이렇게 말이야.]
“신안 유효범위가 어디까진데? 우주 밖도 가능해?”
[아니. 능력을 모두 가동해 봤자 지구 전역이 최대야.]
그럼 투성까지 보는 건 무리겠군.
‘……별 쓸모가 없는데?’
꼭 이런 권능은, 아군이 지니게 되면 약해지더라.
성지한이 그렇게 신안을 보면서 아쉬워하고 있을 때.
삑. 삑삑!
윤세진을 배웅하고 돌아온 윤세아가, 황급히 집 안으로 뛰어왔다.
“삼촌! 삼촌! 메시지 봤어?”
“뭔 메시지?”
“그 하프엘프 커뮤니티! 삼촌 폰으로도 로그인 했었잖아!”
“아니, 못 봤는데. 애초에 폰을 안 들고 다니잖아. 나.”
공허의 수련장에 들어가면, 고장나던 핸드폰.
그래서 안 들고 다니다 보니, 이제는 매번 성지한 방의 충전기에 꽂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왠지 그럴 것 같더라! 봐봐. 삼촌. 길가메시에게서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왔어!”
윤세아는 그러며 성지한에게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거기엔.
[무신의 명으로, 피티아와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성지한, 이번 기회에 그녀를 제거하자. 어떠냐?]
피티아를 제거하자는 길가메시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