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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433화 (433/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433화>

성지한은 핸드폰의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길가메시는 분명 피티아에게 방패로 쓰이고, 빈사 상태가 되었을 텐데.’

그 상태에서 만약 피티아가 그를 제거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그러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건…….

‘아직 저들에게 길가메시의 이용 가치가 남아 있던 건가.’

씨는 없어도, 아직 써먹을 데가 있나 보군.

성지한은 씨를 뿌릴 거라는 길가메시의 메시지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에게 일단 응답했다.

[너 안 죽었냐?]

[오, 응답했구나! 다행히 메시지가 잘 갔나 보군……!]

성지한의 대답에, 즉각 답이 오는 길가메시.

[질문에 답부터 하지그래.]

[아, 그래. 안 죽었냐고 했지? 네 망할 불길에 의해 죽을 뻔했다만, 이놈들이 날 살렸다…….]

[왜 굳이? 씨도 없는 널 살렸냐?]

[씨가 없긴……! 그 말, 믿을 수 없다! 피티아의 말은 거짓일 것이다. 인류의 시초인 내가 후손을 못 볼 리가 있겠나? 실험실 설비에서 다시 테스트하면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거다!]

씨 이야기를 하니까 발작하는 길가메시.

피티아에게서 진실을 듣고도, 아직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후손 보는 걸 상당히 기대했던 모양이니…… 현실 부정을 하고 싶겠지.’

고자란 게 확정되면, 삶의 의지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이놈에게 굳이 더 팩트를 들이 밀 필요는 없겠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뭐 그래. 후손 문제는 니가 알아서 하고…… 어떻게 나한테 연락이 가능한 거냐?]

[그건…….]

[피티아가 널 가만히 내버려 둘 거 같진 않은데,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도록 놔둔다고? 이거 함정 아니냐?]

[……아니, 내가 이렇게 메시지를 보낼 자유라도 얻게 된 건, 아소카 덕분이다. 그에게 맞고 나서, 제약이 조금 풀렸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소카가?]

[그리고 인류가 진화 보너스를 얻으면서, 조금 더 자유를 찾았지. 인류의 진화는 나의 성장과 직결되니 말이다.]

[그래…….]

거참, 우연이 공교롭게 겹쳤군.

성지한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메시지를 지켜볼 때.

[물론, 그렇다고 이렇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수상할 거라곤 생각한다…… 나도 믿기지 않는데, 너는 더하겠지.]

길가메시는 선선히 성지한이 의심을 품을 만하다고 인정했다.

[아니까 다행이군.]

[그러니, 이것도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들어라.]

[뭔데?]

[내 황금의 탑, 기억나느냐?]

[바벨탑?]

[그래. 원래는 에테멘앙키란 이름이 있다만.]

[바벨탑이 편하니까 그거로 하지.]

예전에, 인게임에서 들어간 적이 있었던 바벨탑.

성지한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간단히 답 메시지를 보냈다.

[어쨌든 그 탑, 기억이야 난다만. 그게 왜?]

[바벨탑은 사실 내 권능의 집합체다. 나로서도 아직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지배 코드를, 이 탑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지.]

[……어떻게 실현하려고?]

[바벨탑이 지상에 완성되면, 인류는 마땅히 따라야 할 왕을 따르게 된다.]

성지한은 그 메시지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벨탑에 지배 코드를 뿌리려 하다니.

아주 흉악한 짓을 벌이려고 했군그래.

[원래는, 투성에 있는 것을 지상에 옮기려 했지. 그러면 바벨로니아 지역의 인류부터 나의 명에 따를 테고, 충성스러운 신민들과 함께 나는 지배 영역을 넓힐 심산이었다.]

[패망해서 다행이구나, 너.]

[큭…… 인류라면 마땅히 종의 시초이자 최초의 왕인 나 길가메시를 따라야 하거늘. 네놈은 어찌 그리 반항하느냐?]

[헛소리 더 늘어놓을 거면 메시지 끊는다.]

[……하, 어쩔 수 없군. 자식의 반항은 부모로서 감수해야 할 일이지.]

[나 나간다.]

[아, 알았다. 일단은, 네 진정한 위치는 나중에 자각시키는 것으로 하지.]

진정한 위치라니.

나중에도 자식이라면서 엮을 생각인가?

처음 만났을 때는 저런 소리 하지도 않더니.

‘내 능력을 보고 자꾸 엮으려고 그래서 더 짜증 나네.’

왜 이딴 놈이 인류의 시초가 된 건지.

성지한은 이 세상에 대해 새삼 탄식하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본론만 꺼내.]

[……그래, 알겠다. 본론을 이야기하지. 바벨탑이, 지구에 소환될 거다.]

[뭐?]

[무신과 피티아가, 나를 탑에 융합시켰다. 이것을 지구에 소환시킬 거야. 이미 준비는 끝난 것 같다.]

성지한은 길가메시의 메시지에 눈을 깜빡였다.

이놈들 또 뭔 짓을 저지르려는 거야.

[왜 소환하려는 거지? 바벨탑의 원래 용도대로, 인류를 지배하려고?]

[……글쎄. 나도 이걸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른다. 지금의 난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한계니까.]

성지한은 그 말에, 아소카와 저번에 토너먼트에서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결국 무신의 힘의 근원은, 성좌의 무구와 황금의 탑이니.

-성좌의 무구는 동방삭이 해결할 테고, 황금의 탑은 내가 무너뜨리겠네.

성좌의 무구 말고도, 아소카가 무신의 힘의 근원으로 주목한 바벨탑.

저 탑이 단순히 지배의 권능만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런 게 지구로 소환된다면, 생각만 해도 찝찝한데.

[……준비가 끝났다면, 바로 소환되는 건가.]

[아니. 성좌 후보자를 건드려서 1달 근신이라고 하더군. 그것이 끝나면 소환될 거다.]

1달 근신.

그게 성좌 후보자를 건드린 페널티인가.

‘1달이면…… 생각보다 처벌이 크지 않군.’

무신이 애초에 성지한을 바로 제거하지 않은 게, 성좌 후보자여서 그런 것 아니었나.

처벌이 1달 근신으로 끝날 정도란 걸 알았다면, 진작에 동방삭이던 피티아던 보내서 자신을 죽이려 들었을 것 같은데.

성지한은 그렇게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길가메시에게 바벨탑이 소환될 장소를 물었다.

[소환 위치는?]

[원래 내가 바벨탑을 소환하려던 위치는 우르크였지만…… 소유권을 빼앗겼으니, 거기가 될진 확실치 않다. 내가 장소를 알게 되면, 바로 메시지를 보내지.]

[상당히 협조적이군 그래.]

[이제 내가 살 길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오래 살아 놓고도, 진짜 살고자 하는 의지 하나는 끈질기구나.

성지한은 길가메시의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그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렇게 살고 싶으면, 다 털어놔 봐. 무신과의 계약이나 그의 정체. 이런 거 말이다. 내가 승리해야 너도 생존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어?]

[그래. 이미 계약도 어그러진 이상, 비밀을 지킬 필요야 없지. 지금 바로]

다 털어놓을 것 같더니, 바로에서 끊기는 메시지.

[피티아 옴. 나중에.]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꼭 중요한 순간에 이러네.

아니.

‘이러면 함정일 가능성도 생각해 둬야 하나.’

무신의 정보를 요구하자, 타이밍 좋게 피티아가 왔다면서 채팅이 끊겼으니.

길가메시는 제 스스로 제약을 푼 게 아니라, 저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바벨탑이 소환되는 곳으로 날 유인하는 게 목표일지도.’

그런 목적이라면, 저들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성공했군.

수상쩍은 바벨탑이 소환되면, 그게 함정이라고 해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함정이라 해도 이쪽에서 써먹을 방법이 없진 않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태양왕에게 받았던 태양핵을 떠올렸다.

투성에 있는 바벨탑을 지구에 소환하는 거라면, 분명 투성과의 연결 통로가 열릴 테니.

그때 태양핵을 통로에 던져 버리면, 껄끄러운 적들끼리 싸움을 붙일 수 있겠지.

‘일단은 정보를 계속 받아 봐야겠군……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메시지가 멈춘 핸드폰 화면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인류, 성지한 없이 초심자의 아레나에서 우승하다!]

[초심자의 아레나 MVP를 받은 윤세아. 명실상부 세계 랭킹 2위로 평가받아.]

[또다시 화속성 보너스? 이쯤 되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운 진화 보너스.]

초심자의 아레나가 끝나고 난 후, 이를 다루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레나를 우승한 선수들에 대해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었고.

그중에서도 전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준 윤세아에게, 이제 그녀가 세계 2위가 아니냔 평가가 상당했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화제를 불러온 건, 바로 이번에도 주어진 화속성 보너스였다.

-아니 뭔 화속성만 계속 주냐??

-체력 +5나 해 주지 ㅡㅡ 솔직히 일반인들은 별 체감 없잖아.

-ㄴㄴ 화상 좀 덜 당함 ㅋㅋㅋㅋ

-와…… 화속성에 집중한 마법사들만 꿀 빠네 ㄹㅇ

-그러니까; 윤세아 이러다 랭킹 2위 마법사들한테 빼앗길지도 모름.

-에이, 윤세아가 무슨 2위임? 이번엔 특수한 케이스로 MVP 딴 거지.

-뭔 소리임 성지한 제외하면 명실상부 2위지; 전사 역할 100퍼센트 수행한 거 못 봄?

-그래도 윤세진이 더 낫다고 봄.

-아직은 미국의 올리버지 그래도.

-?? 같은 경기 본 거 맞나? 눈 어디다 둠?

“그래. 삼촌은 못 이겨도 랭킹 2등은 노릴 만하지 이제!”

세계 랭킹 2등 자리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리플창을 보며 씩 웃던 윤세아는.

“근데 진짜 왜 화속성 보너스만 나올까? 좀 이상하지 않아?”

연속된 화속성 보너스에, 의문을 품었다.

[……인류가 적색의 관리자랑 깊은 연관이 있는 게, 여기서도 나타나는 걸까.]

“아, 뭔가 연관이 있는 건 알았는데…… 그렇게 깊은 정도야?”

[응. 세아 네가 저번에 종족 변환 못 한 게, 아마 그 영향인 것 같거든.]

“나 점혈 찍었을 때 이야기구나.”

윤세아는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점혈 찍힌 채로 종족 변환될 뻔한 순간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적색의 관리자랑 연이 깊어서 안 된 거였어?”

[응.]

성지아는 그렇게 대답하며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그때 분명, 동생은 인류가 적색의 관리자 그 자체라고 했었지만.

‘……굳이 이걸 자세히 세아한테 이야기할 필욘 없어.’

성지아는 그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인류에서 실질적 랭킹 2등 했다고 좋아하는 딸한테, 괜히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한편 성지한도 그런 누나의 기색을 읽곤, 화제를 돌렸다.

“이번 진화 보너스…… 아레나에서 선별해서 준 거겠지? 그럼 공허의 의지가 들어갔다고 봐도 되겠군.”

[응, 아마도 그럴 거야.]

성지아가 원래 윤세아를 변환시키기 위해 사용하려던 종족 변화 키트도, 공허의 연구소에서 나온 물건이었지.

인류가 적색의 관리자와 연관이 있다는 건, 이미 저쪽에선 업데이트되었다고 봐도 되었다.

성지한은 이에 대해 떠올리다가, 문득 하나에 생각이 미쳤다.

“누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성좌 후보자를 건드리면 페널티를 주잖아. 그 죄목의 경중은 어디서 판단하고, 벌은 누가 주는 걸까?”

[그거? 글쎄…….]

성지한의 물음이 뜻밖이었는지, 성지아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으음…… 페널티는 정해져 있는 거로 알고 있어. 상당히 중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아는데. 성좌로 발전할 만한 플레이어의 앞길을 막는 건, 배틀넷의 올바른 성장 순환을 방해한다고 보거든.]

“아니, 한 달 근신이라는데.”

[에? 겨우 그거? 아닐걸? 그럼 성좌 되기 전에 다들 싹을 잘라 버리려고 할 텐데. 배틀넷에서 성좌가 나오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 거야.]

“그렇지? 처벌이 너무 솜방망이지?”

[한 달이면 없는 거나 다름없지. 내가 알기론, 그 정돈 아니야 절대.]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스으으…….

바닥에서 음영이 짙게 드리우더니.

그 안에서 그림자여왕이 휙 튀어나왔다.

“한 달 근신은 그냥 휴가지. 그게 무슨 처벌인가? 내가 소문에 듣기로, 성좌 후보자를 공격했던 성좌는 성좌 레벨이 대폭 깎였다고 들었다. 성좌에겐 치명적인 페널티지.”

두 명의 성좌가 그리 말해 주니, 믿음이 가는군.

“그렇게 강력한 처벌을, 한 달 근신으로 무마해 주려면 누가 개입해야 할까?”

“그 정도면…….”

[관리자급은 돼야 하지 않을까? 성좌와 관련된 처벌을 무마해 줘야 하는데…….]

성지한의 물음에, 둘은 조심스레 그리 추측했다.

‘관리자급이면, 후보가 별로 없는데.’

백색과 흑색, 녹색뿐이잖아.

이 중, 매번 수상한 짓거리를 하던 건 단연 녹색이었지만.

‘이번엔 그쪽이 범인이 아닌 것 같아.’

적색의 관리자가 자기보다 상시 관리자로 오르는 걸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성지한보고 임시 관리자가 되는 길을 알려 줬던 게 바로 녹색 아니었던가.

무신도 그쪽에선, 딱히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그것보다는.

‘인류에게 자꾸 화속성 보너스를 주는 공허 쪽이 수상하단 말이지…….’

성지한은 팔짱을 끼며, 곰곰이 따져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음…… 근데 이거 굳이 골머리 썩힐 필요 있나?’

이거 그냥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나 잠깐 수련장 좀 갔다 올게.”

[수련장?]

“어, 아레나의 주인한테 물어보지. 뭐.”

공허 서열 4위니, 아는 게 있겠지.

“아니…… 수련장에 가면, 아레나의 주인을 무조건 만날 수 있나?”

그림자여왕의 의문에, 성지한은 가볍게 답했다.

“거기 부수겠다고 하면 나타나더라고.”

“아, 그래?”

“어,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지. 갔다 온다.”

슈욱!

그렇게 해서 들어선, 수련장에선.

“오셨군요.”

“……와 있었네?”

그가 부르기도 전에, 아레나의 주인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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