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43화>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드래곤 로드에게 폭로한 이후, 지금껏 길가메시에게 1g 정도의 미안함은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 대놓고 말하길 잘했군.’
길가메시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란 메시지를 보곤, 그런 감정도 사라졌다.
이 자식은 왜 자꾸 자길 아버지라고 부르라 그래?
[왜 아버지 소리에 집착하냐?]
[나는 이제 후손을 볼 수 없다.]
[그건 예전에 알았잖아. 피티아 말로는 너 씨 없다며.]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나에게 희망은 있었다. 그래. 무신에게 젊음을 빼앗기기 전까지만 해도!]
무신이 길가메시에게 영생을 주었으니, 그걸 회수도 가능한 거였나.
[근데 그거랑 아버지랑 뭔 상관인데?]
[내 직계 후손을 볼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인류 중 가장 뛰어난 이에게 왕위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왕위라…… 뭐 쓸 만한 능력 주냐?]
뭐 쓸 만한 거 주면, 타이핑으로 아버지 소리 정도야 못할 것도 없지.
[내 이름을 쓸 수 있게 허락하지. 너는 앞으로 길가메시 2세가 되는 것이다.]
[꺼져.]
[거기에 이 황금의 탑의 소유권도 공동으로 지닐 수 있다. 그럼 네 생명을 다루는 능력이, 강화될 거다.]
[호오, 그래?]
바벨탑 공동 소유권이라.
‘수상한데.’
길가메시가 아버지 소리 했다고, 바벨탑 소유권을 공동으로 돌릴 이가 아닌데.
거기에 애초에, 이놈은 무신에게 제압당해 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단박에 거절해도 되긴 하겠다만…… 그것보단 들어줄 듯하면서 정보를 더 캐야겠네.’
성지한은 그리 마음먹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공동 소유권은 좋아 보인다만…… 어차피 지금 바벨탑도 네 소유 아니지 않냐? 무신한테 장악당한 거 아니었어?]
[큭…… 투성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황금의 탑이 지구에 소환될 경우,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있다. 네가 협조하면 성공 확률이 더 올라가고.]
[아하, 그리고 그 협조가 아버지 소리 하는 거다?]
[그렇다. 네가 나를 아버지로 인정하고, 네가 나의 일족에 들어오면 바벨탑의 재장악이 용이해진다. 그러면 공동 소유도 다음 스텝으로 진행되겠지.]
길가메시의 인성상, 바벨탑을 재장악하고 나면 공동 소유는 모르는 척할 게 뻔한데.
성지한은 그렇게 결론을 지으면서도, 일단은 답을 이어 갔다.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란 게 아니군. 한데 지금 이 메시지로 아버지 해 봤자 소용없는 거 아니냐?]
[그건 그렇다. 이 탑이 지구에 소환되는 때, 네가 와서 날 아버지로 인정해야 한다.]
[그럼 지금 할 필요는 없네.]
[그래도 미리 연습해 두어라.]
[됐고, 탑은 언제 소환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무신의 근신이 풀리는 즉시, 소환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저번에 한 달 근신이라고 했는데, 벌써 시간이 꽤 흘렀으니.
바벨탑이 지구로 소환되는 건, 이제 시간문제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근데 하나 의아한 점이 있는데.]
[뭐지?]
[너 무신한테 들켜서 젊음을 빼앗겼다며. 근데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냐? 걔네가 감시할 텐데?]
[……나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무신은 분명 피티아에게 날 더 감시하라 명했는데, 현재 그녀는 없군.]
그 질문에, 길가메시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정체 까발려졌다고 젊음을 빼앗았는데, 감시를 또 안 한다고?
‘그렇게 허술한 놈들이 아닌데 말이지…… 혹시 피티아가 옆에서 붙어 가지고 검열하고 있나?’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아버지 소리는 나중에 지구 와서 검토해 볼 테니, 네가 예전에 본 무신 형상 좀 알려 줘 봐. 왜 드래곤 로드랑 머리가 같은 거지? 너랑 예전에 계약할 땐 어떤 상황이었는데.]
무신 쪽의 감시하에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면, 그의 정체를 알려 달라는 물음에 답하진 않겠지.
그리고 성지한의 추측대로.
지금까지 칼답이 오던 메시지가 한동안 오지 않더니.
[음…… 피티아가 왔군. 무신에 대해선 나중에 정리해서, 알려 주겠다.]
갑자기 피티아가 왔다면서 메시지가 끊어졌다.
“역시 감시하고 있는 거였나.”
성지한은 끊긴 메시지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러면 길가메시가 지금껏 보냈던 메시지가, 무신 측의 의도가 담겼다 봐도 될 터.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자꾸 권하는 데에도,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 날 낚으려면 웬만하면 무신의 정체 대충이라도 알려 줄 것 같은데…… 굳이 숨기는군.’
머리가 드래곤 로드랑 닮았다는 것 외에도, 굳이 숨겨야 할 게 있나.
성지한은 잠시 그런 의문을 품다가.
‘일단 이번 토너먼트로 성장한 능력치나 정리하자.’
드래곤 로드 덕에 대폭 성장한 능력치 정산을 위해,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 * *
투성에 위치한, 황금의 탑.
폭삭 늙은 길가메시는 피티아를.
정확히는 그녀가 들고 있는 자신의 핸드폰 쪽을 노려보았다.
“피티아…… 이래서야,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느냐…… 어차피 드러난 뱀의 정체, 이야기하면 될 것을!”
“안 돼. 주인님께선 이에 대한 정보를 더 이상 넘겨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
“쯧…… 이놈. 바보가 아니니 눈치챘을 거다. 이젠 내 말을 믿지 않겠지.”
피티아는 그 말에 폰의 메시지를 쭉 바라보았다.
무신의 정체를 물어보자마자 황급히 대화를 종료한 건, 솔직히 자기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그가 황금의 탑으로 오게 만드는 거니까.”
무신의 근신이 끝나자마자, 지구로 소환될 바벨탑.
피티아의 목적은, 성지한은 그리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바벨탑이 인류에 재앙을 가져온다고 하면, 성지한은 함정인 줄 알면서도 오게 될 거야. 그때 네가 그를 탑과 동화시켜 봐.”
“……그러면, 정말로 젊음을 돌려줄 것인가?”
“주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길가메시는 그 말에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성지한이 드래곤 로드에게서 압승을 거둔 이후.
[아무리 아바타라 해도, 드래곤 로드를 이렇게 쉽게 이길 줄은 몰랐군…….]
다시 황금의 탑에 모습을 드러낸 무신은.
[길가메시. 성지한에게 다시 연락해, 그를 탑으로 오도록 유인하라. 그러면 젊음을 돌려주지.]
성지한을 바벨탑으로 유인하라고 지령을 내린 상태였다.
“하나, 뱀의 구두 약속은 믿을 수 없다.”
“주인님의 말씀을 못 믿겠다고?”
“그래. 내 꼬라지를 봐라. 그의 말을 믿을 수 있겠나?”
무신에게 사기 계약을 당한 데다가, 젊음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길가메시.
그는 무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그래서 안 할 거야?”
“……해야지.”
하지만, 무신에게 신뢰가 없다 한들 어차피 길가메시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 주제는 파악해서 다행이네.”
피티아는 그러며 자신의 인벤토리에 길가메시의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이 더러운 물건, 내 인벤토리에 넣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인의 명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사사로운 감정은 접어 둬야 할 때였다.
그렇게 피티아가 등을 돌려 떠나려 할 때.
“피티아.”
“왜?”
“네 진짜 목적은 뭐지? 역시 나한테…… 복수하는 건가?”
길가메시는 잔뜩 쉰 목소리로, 그리 물었다.
“너 따위가 내 목적은 아니야. 그냥 망가지는 걸 보면 즐거울 뿐이지.”
“……그럼, 정말 그때 말한 것처럼, 적색의 불을 지우는 게 목적인가?”
“그래. 적의 일족의 최종목적, 방해해야지.”
실험실에서 자신이 길가메시의 애 낳는 기계로 전락한 건.
적의 일족이, 적색의 관리자를 부활시키려 그랬던 거였으니까.
인류에 내재된 적색의 불을 꺼 버리는 것이야말로, 적의 일족에게 제대로 복수하는 길이고.
더 나아가, 피티아의 후손인 인류를 진정으로 구원하는 길이 될 터였다.
“……너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무신을 믿나?”
“믿어. 날 구원해 주셨으니까.”
길가메시의 말에, 겉으로는 즉답한 그녀였지만.
‘……믿어야 해.’
마음 깊은 곳에선, 그녀도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다만.
‘주인님을 제외하곤, 어차피 이 일을 해 줄 존재도 없어…….’
무신이 관리자가 되는 것 외에, 누가 인류에게 남겨진 적색의 흔적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피티아에겐, 어차피 대안도 없었다.
‘그분을 보다 더 충실히 따라야 해. 그래야 구원을 기대할 수 있어…….’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빡!
“노인 되고 좀 불쌍해서 안 때렸더니, 주인님께 입 함부로 놀리네.”
“이, 이익……!”
자신을 번뇌에 빠트린 길가메시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 머리카락 없으니까 머리에 손바닥 자국 났어. 내 손바닥 크기가 이 정도였구나?”
“뭣…….”
“젊음이 사라지니까 참 서럽다. 그치?”
피티아는 길가메시의 정수리에 시뻘겋게 그려진 자신의 손바닥 자국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주인님 말씀이나 잘 들어. 그럼 대머리는 벗어날 테니까.”
“큭…….”
길가메시는 피티아를 노려보았지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두고 봐라. 지구로 가기만 하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당하지만, 지구에서 바벨탑이 설치되기만 한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길가메시는 이를 갈면서, 그때를 기다렸다.
* * *
‘드래곤 로드, 진짜 아낌없이 퍼주었군.’
성지한은 상태창에 뜬 레벨을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레벨 635.
토너먼트 시작 전, 595였던 레벨은.
드래곤 로드의 허물벗기로 인해 총 40이 오른 상태였다.
‘이 정도면 거의 두 달…… 아니 그 이상 레벨 업 도전해도 될까 말까 한 수치인데 말이야.’
거기에 부수적으로, 스탯 적과 무혼도 상당 수치 올라 있었다.
정말 대성좌답게, 퍼주는 것도 클라스가 달랐던 드래곤 로드.
성지한은 대폭 성장한 능력치를 지켜보다가, 이번에 크게 늘어난 잔여 포인트를 주목했다.
‘이번에 벌은 잔여 포인트는 일단 무혼에 투자해야겠군.’
지금 올릴 수 있는 능력치 중, 가장 뒤탈이 없는 건 무혼이었으니.
성지한은 그간 얻었던 잔여 포인트를 깡그리 무혼에 투자했다.
‘딱 600에서 멈추었군.’
잔여 포인트를 모두 쓴 성지한은 상태창을 확인했다.
소속 : 챌린저 리그 – 6
레벨 : 635
무혼 : 600
공허 : 595
적 : 497
영원(불완전) : 40
얼굴의 균열이 한 가닥 더 생기며, 예전에 비해 꽤 성장한 공허 수치와.
여기에 드래곤 로드 덕에, 대폭 성장한 무혼과 적.
특히 적은 예전에 봉황기를 업그레이드할 때 50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500을 곧 바라보고 있었다.
‘500쯤 되면, 적색의 손이 깨어날 법도 한데 아직까진 반응이 없군.’
예전에는 봉인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몇 마디 하더니.
그때보다 적이 대폭 성장한 지금은, 이상하게 손이 조용했다.
‘힘을 모아서 한 번에 깨어나려고 그러나?’
시끄럽던 녀석이 조용하니까 괜히 꺼림칙하네.
성지한은 필살기를 작성해서 적을 더 소모할까 하다가, 여러 줄 시스템 메시지를 살펴보았다.
대부분은 업적을 깼다는 메시지였지만.
[챌린저 리그 - 5에 승급하기 위해선, 레벨이 640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중, 챌린저 리그 승급 조건이 있는 걸 보곤 이에 집중했다.
‘챌린저 5는 650이상 줄 알았는데, 640이네.’
이러면 레벨 5만 더 올리면 대성좌를 초대할 수 있는 거잖아?
다음 토너먼트 때에는, 대성좌 초대 가능하겠네.
‘이건 채널을 통해 알려야겠군.’
성지한은 배틀튜브를 켜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러분. 제가 드래곤 로드 덕에, 레벨 635를 찍었습니다.”
-635?? 미친;
-성장 속도 말이 되냐 진짜…….
-아니 덜 오른 거 아니야? 레벨 9 성좌들이 그렇게 허물로 죽었는데.
-진짜로 죽은 건 아니고 아바타로 사라진 거니, 그 정도만 올랐겠지.
-그래도 넘 적게 올랐다 시스템이 짜네.
레벨 40 성장에, 짜다 아니다 가지고 싸우는 외계의 시청자들.
이미 배틀튜브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플레이어가 된 성지한의 채널엔, 무수히 많은 외계인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어쨌든, 다음 토너먼트는 대성좌들도 참여 가능할 것 같네요. 레벨 640이면 챌린저 5를 가더라구요.”
-챌린저 5면…… 대성좌 참여 가능한 건가.
-드래곤 로드가 자기 참여할 길을 스스로 열었네;
-이것도 다 계획이었음…….
그러며 사실 이게 드래곤 로드의 진짜 설계 아니었냐고 이야기가 나올 즈음.
성지한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그러니 이번에도 토너먼트에 많이들 참여해 주십시오.”
그러자, 채팅창에선 물음표가 압도적으로 떠올랐다.
-??
-저기요. 뭔가 잘못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대체 누가 참여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