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49화>
태양왕의 연구소.
“정말로 성공했다고?”
“네, 17777번째에 이식한 용의 머리,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무신이 태양왕의 17777번째 아들로서 만들어졌을 때.
그는 자아를 의식한 그 순간부터, 언어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긴…….’
꿈틀.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가 시험관의 안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초췌한 얼굴의 백발 남성이었다.
“생체 신호, 양호합니다. 드래곤 로드의 머리와 반발 작용도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육신은 완벽하게 이식된 머리를 받아들였습니다!”
호들갑을 떨면서,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백발 남성.
그리고.
스으으윽…….
그런 남자의 몸 뒤에, 커다란 거인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얼굴 곳곳에 붉은 눈동자가 띄워져 있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거인은.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버텨 주었구나, 아들아.”
부드럽고, 상냥한 음성.
갓 태어난 이에게, 이는 아버지의 정을 흠뻑 느끼게 해 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다음 나온 말의 내용은 목소리의 톤과는 정반대였다.
“너의 육신은 태양왕의 이름을 잇고, 이를 더 찬란히 밝힐 것이다. 내 기꺼이 너의 몸에 들어가겠으니, 태어난 것을 감사히 알라.”
“아아, 주인님께서 아드님을 바로 선택하시다니…… 이는 전례가 없는 일! 17777번 째여, 영광으로 아십시오!”
거인의 말에 호들갑을 떠는 백발 남성.
그러면서도, 금방 뚝 멈추더니.
입꼬리에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뭐, 하지만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을 테니 소용없겠군요.”
“알면 가만히 있겠나. 지금의 육신도 원래는 살기 위해, 꽤 반항을 했었지.”
“14722번째 아드님께 정착하는 데 걸린 시간과 노고가 아쉽습니다만…….”
“아쉬워할 필요 없다. 저 육체를 차지하면 더 이상 갈아탈 필요가 없어지니까.”
거인과 백발 남성의 대화.
갓 태어난 이에게는, 이게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판단이 안 될 내용이었지만.
‘나, 죽는다?’
드래곤 로드의 머리를 이식받았기 때문일까.
17777번째의 아들은 그들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
하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였기에.
저들의 말을 이해한다 한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시험관의 안에서 가만히 눈앞의 상대를 볼 뿐.
“그럼, 낙인부터 각인시키겠다.”
하지만.
태양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치이이익……!
신체의 중심부.
가슴쪽이 타오르며,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새겨진 것은, 17777이라는 숫자.
“흠, 지금 들어가기엔 몸 크기가 너무 작군. 성장촉진제를 투여하라.”
“네, 주인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르르르…….
시험관 내의 액체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콰직. 콰직!
여기저기 부풀어 오르며 터지는 17777번의 신체.
시험관의 유리 너머에선.
뱀의 머리를 한 거인의 몸에 눈동자가 생기려다, 사라지고 있었다.
“신체에 눈동자가 안 생기는군…… 적색의 눈동자가 로드의 머리와 충돌하는가.”
“예,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성장 시간에 여유를 두어야겠군.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 눈동자를 발현하도록.”
“알겠습니다!”
스으윽.
흡족하게 17777번째를 바라보던 태양왕은 머리를 돌렸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으로 몸을 갈아타려는 아비가 떠나고.
“용대가리야. 우리 커져 볼까?”
백발의 남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무언가를 조작하자.
그러자.
부글부글…….
시험관 내의 액체가, 일제히 끌어오르기 시작했다.
* * *
4일 후.
“아, 이거 참. 눈동자가 생기려고 하면 허물을 벗네. 진짜 이 용대가리. 성가셔.”
백발의 남성은 17777번째 아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인인 태양왕은 눈동자가 생길 때까지 성장촉진제를 투여하라고 했는데.
몸도 크고, 용 머리도 상당히 성장해 커다란 시험관이 어느새 좁아 보일 지경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눈동자는 아직도 발현되질 않았다.
“이랬다간 또 끔찍한 벌을 내리실 텐데…… 아, 어떻게 하지?”
남자가 이 용대가리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에 빠질 즈음.
‘더 이상은, 눈의 발현을 막을 수 없다.’
시험관 내의 17777번째 아들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닫고 있었다.
이미 육체 전반에는, 태양왕의 낙인이 깡그리 다 새겨진 상황.
적색의 눈동자만 발현되면, 이 신체는 곧바로 그에게 넘어간다.
‘차라리 몰랐으면 나았을까.’
태양왕이 그토록 탐내던, 로드의 머리.
그것이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모르지만.
17777번째는 태어난 지 4일 만에 언어의 이해는 물론, 자신이 처한 현 상황도 모두 다 파악하고 있었다.
차라리 자아가 형성되기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태양왕이 육체를 차지했다면.
억울한 줄도 모르고 몸을 넘겼을 텐데.
‘……산다, 어떻게든 살겠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순 없다.
17777번째는 살겠다는 일념으로, 실험실이 돌아가는 상황 모든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쯧, 허물이나 또 치워야겠네.”
슈우우우…….
시험관의 윗부분이 소용돌이치더니, 거대한 허물이 그리로 빨려 들어갔다.
뱀의 머리에, 거인의 몸뚱어리를 벗겨 냈던 껍질은.
그대로 실험실 바닥으로 튀어나왔다.
“어디 보자…….”
백발의 남성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이를 살펴보더니.
“역시 별거 없네. 소각장으로 가라.”
틱!
손가락을 튕기자, 허물이 반짝하며 사라졌다.
‘허물은, 이곳을 빠져나간다…….’
17777번째 자체야, 태양왕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육체이니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나갈 수 없었지만.
허물은 달랐다.
처음에는 연구 가치가 있나 해서 살피던 백발 남성도, 여러 차례 분석을 한 후에는 이게 쓸모없다고 판정을 지었는지.
저렇게 잠깐 살펴보고는, 죄다 소각장으로 보내고 있었다.
‘허물을 통해 탈출하는 게 유일한 방법.’
빠져나갈 루트는 생각했으니, 이제 이걸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연구해야 했지만.
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에겐,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눈동자, 3개밖에 생기지 않았나.”
눈동자도 결국 신체에서, 3개가 나타나게 되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래선 들어갈 수 없겠군.”
하나 태양왕의 기준에는 차지 않은 건지.
그는 눈동자가 3개밖에 생기지 않은 17777번째를 보며 일을 연기했다.
대신.
“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지? 처벌이 필요하구나.”
태양왕이 백발 남성을 바라보자.
화르르르륵!
그의 몸뚱어리가 일제히 불타올랐다.
“으, 으으…… 주, 주인님……! 죄송, 죄송합니다……!”
타오르고, 재생하고를 반복하는 백발 남성의 몸뚱어리.
고통이 상당한지, 그는 절규하면서 태양왕에게 계속 죄송하단 말을 반복했지만.
“이번 처벌은 하루지만, 다음에도 일이 진척되지 않으면 이틀간 태우겠다.”
스으윽.
그러면서 사라지는 태양왕.
17777번째는, 시험관 너머에서.
백발의 남성이 타오르다 재생하는 광경을 하루동안 지켜보았다.
“차, 차라리 타올라 죽어 버리지…… 왜 다시 재생해서는……! 크. 크으윽……!”
유리를 뚫고, 한참 동안 들려오던 남자의 절규.
17777번째는 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분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생명체가 타올랐다가 재생되는 광경을 계속 지켜보는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한데.
“너…… 눈동자를, 옆으로 움직였어…… 이 꼴을 안 보려고?”
불구덩이 속에서, 절규하던 백발 남성은.
시선을 돌린 17777번째를 보면서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의식은, 분명 없을 텐데…….”
불구덩이 속에서, 번뜩이는 남자의 눈빛.
“……주인님께서 들어갈 육신이니, 험한 짓은 안 하려 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잖아?”
그는 온몸이 타오르는 와중에서도 섬뜩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용대가리야. 우리…… 제대로 실험해 보자.”
단 한 번의 시선처리 실패로 인해.
그의 지옥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주인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피티아의 말에, 무신은 회상에서 깨어났다.
‘백발의 실험자. 그는…… 죽었겠지.’
자신의 실험을 도맡아 했던 백발의 남성.
그의 종족도 범상치는 않아 보였지만, 워낙 옛날 일이었으니.
지금까지 살아 있진 않을 것이다.
‘살아 있었으면 그가 나한테 한 실험을 그대로 돌려주었을 텐데.’
아니, 그대로가 뭔가.
백배 천배는 더 고문했겠지.
무신은 실험관 내에서 당했던 일들을 잠시 떠올리다가.
“그럼 이제 바벨탑…… 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래.]
시선을 피티아에게로 돌렸다.
지금은 이 일에 집중해야겠지.
백발의 실험자야, 관리자가 되면 되살려서 그대로 해 주면 되니까.
[그럼, 내가 문을 열겠다.]
스으으윽.
어둠에 물든 무신이 손을 뻗자.
번쩍……!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지상의 풍경이 나타났다.
[가라. 탑을 매개로 하여, 그를 이리로 데리고 와라.]
“주인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스스스…….
서서히 사라져 가는, 피티아와 황금의 탑.
무신이 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을 때.
저벅. 저벅.
그의 뒤편에서, 동방삭이 다가왔다.
“무신이시여, 한데…… 저도 따라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랬다가는 그가 저기서 스위치를 누를 수도 있다. 유인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여기서 구궁팔괘도를 준비하라.]
“알겠습니다.”
스위치 무력화에 과연 구궁팔괘도가 효과가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볼 법했다.
무신의 명에, 동방삭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자.
‘기나길었던 이번 회차…… 끝을 내겠다. 그리고.’
무신은 지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회차에선, 성지한부터 죽인다.’
변수 하나가 대체 일을 어디까지 꼬아 버렸나.
무신은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모든 회귀의 순간마다 성지한부터 처형하기로 다시 한번 결심했다.
* * *
한편.
‘어차피 고민해 봤자 투성 위치 알 수도 없고…… 수련이나 갈까.’
오늘의 게임도 순식간에 끝낸 성지한은, 여느 때처럼 공허의 수련장을 찾으려 했다.
어차피 투성의 근신 처분 끝나기까진 아직 여유가 좀 있고 하니.
남은 기간 동안, 레벨 업과 수련을 병행하면서 힘을 더 업그레이드하려 한 것이다.
그때.
부르르르…….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성지한, 무신이 근신 기간이 끝나기 전에 행동을 개시하려 한다.]
무신 쪽에 잡혔을 것으로 의심되는 길가메시의 메시지였다.
‘근신을 어긴다고? 무신이?’
성지한은 즉시 답을 보냈다.
[무신이 시스템의 근신을 무시하다니…… 그게 사실이냐?]
[그래. 무신이 네가 저번에 꺼낸 아이템을 보고 크게 자극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처리하겠다며, 당장 바벨탑 소환을 명했다.]
꺼낸 아이템이라면, 세계수 점화 장치를 말하는 건가.
‘신기하군. 이그드라실도 등급만 알 뿐, 아이템 설명을 보여 주기 전까진 그게 뭔지 파악하질 못했는데.’
그 신중한 무신이 시스템의 근신 처벌을 무시할 정도면.
세계수 점화 장치가 어디다 쓰는 아이템인지, 파악하고 있단 뜻이다.
‘길가메시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라 한 건, 대놓고 바벨탑으로 오라는 거겠군.’
저쪽에서 근신을 어기면서까지 탑을 소환한 거면.
분명히 적든 크든 페널티를 받긴 할 텐데, 시간 좀 끌다가 바벨탑을 막는 게 낫나.
‘일단 어디에 소환되는지를 알아야겠네.’
만약에 저번 실험실처럼 바다 한가운데 생성되기라도 하면, 상대적으로 급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으니까.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바벨탑 어디 소환되는데? 중동이냐?]
[아니, 너희 집 근처다.]
[……뭐?]
성지한이 그 메시지에 잠시 당황했을 때.
덜컥!
성지한의 방문이 열렸다.
“사, 삼촌. 있었구나! 큰일이야!”
“무슨 일인데?”
“서, 선릉에…… 이상한 게 생겨나고 있대!”
설마 바벨탑의 소환 장소가 선릉 쪽인가?
‘……진짜 빠르네.’
신중하던 무신이 막상 다급히 행동을 개시하니, 일이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가 볼 테니, 사람들은 일단 다 대피하라고 해.”
“아, 알았어……!”
성지한은 핸드폰을 들고는 바로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