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50화>
강남의 선릉.
조선의 왕 성종과 그의 계비가 함께 잠든 이 왕릉 위, 하늘에서.
치이이익……!
“어?”
“뭐, 뭐야. 저거…….”
공간이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황금의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많이 모여 있는 선릉 부근.
점심시간을 맞아, 식사를 끝내고 주변을 산책하던 직장인들은 갑작스레 생긴 변고에 깜짝 놀라면서도.
“와, 신기하네 저거…….”
“뭐 해? 도망치지 않고?”
“별로 안 위험해 보이는데? 가기 전에 사진 좀 찍자.”
몇몇은 핸드폰을 들어서 이 광경을 찍기 시작했다.
황금빛이 땅에 닿고, 그것이 서서히 거대한 탑의 형상을 만들어 낼 때만 해도.
사실 이게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건 없었으니까.
다만.
탑이 바닥부터, 서서히 실체화되기 시작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야, 씨. 너 아직도 찍냐? 뭐 해, 빨리 들어가야지!”
“……어딜 가?”
“뭔 소리야?”
“왕께서 지상으로 내려오셨는데 경배할 준비를 해야지!”
그러면서, 갑자기 땅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탑을 향해 절을 하는 직장인.
“미쳤냐, 너?”
뒤쪽을 바라보고 있던 동료 직장인은 그가 헛소리를 하는 걸 보고 놀라 고개를 돌렸다가.
“아…… 맞네…… 경배해야지…….”
황금의 탑을 보고는, 자신도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빛무리가 내리쬘 때만 해도 신기해하며 시잔을 찍던 사람들은.
탑이 실체화되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눈에 초점이 풀리며 왕에게 복종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사람들이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릴 즈음.
“……난리도 아니네.”
성지한이 도착했다.
하늘 위에 둥둥 떠올라 있는 그는, 오자마자 바로 주변 상황을 살폈다.
‘선릉의 안쪽뿐만 아니라, 울타리 밖에서도 절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군…….’
선릉의 안쪽을 산책하던 사람들은 이미 탑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고.
울타리 밖에서도, 탑이 보이는 근처 사람들부터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황금의 탑이 점점 더 형체를 갖춰 나가며 높아지면.
선릉 주변뿐만 아니라, 강남 일대의 사람들이 죄다 여길 보고 복종할 기세였다.
‘빨리 막아야겠네.’
성지한은 형체를 만들어 나가는 바벨탑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휙!
힘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지상으로 착지했다.
그러자.
“오랜만이네요~”
탑의 1층에는, 피티아와.
“왔나…….”
탑 벽에 머리만 덜렁 붙은 채, 완전히 늙어 버린 길가메시가 그를 맞이했다.
* * *
-저거 누구임?
-설마 길가메시…….
-왜 이렇게 늙었어 ㅋㅋㅋ
-나이 드니 대머리였네 ㅡㅡ; 저놈이 인류에게 탈모 유전자 뿌린 건가.
스타 버프를 받기 위해, 배틀튜브를 켜 두었던 성지한.
시청자들은 피티아와 길가메시 중, 처절하게 변해 버린 길가메시 쪽에 관심을 집중했다.
“늙었군, 길가메시.”
“네놈이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그 사실? 아, 드래곤 로드의 머리랑 무신의 것이 같다는 거 말하는 건가.”
“그래! 네가 그걸 대놓고 말하는 바람에, 바로 발각되었어!”
“음…… 미안. 그래도 젊은 상태로 오래 살았잖아. 늙은 것도 나름 의미있지 않아?”
“뭐……! 그걸 말이라고 하나?”
성지한의 말에 버럭하는 길가메시.
하나 노인이 되어서 그런가.
그의 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사과에 진정성이 1도 느껴지지 않네 ㅋㅋㅋㅋ
-ㄹㅇㅋㅋ
-근데 길가메시한테 잘해 줄 필요 있긴 함?
-없지 ㅇㅇ;
-근데 주변 사람들은 저 대머리 보고 왕이라고 절하고 있냐.
-그러게 성지한을 직접 근처에서 보는데도 탑에 정신 팔렸네 ㄷㄷ
한편.
시청자들은 탑의 주변에서, 이쪽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외부 활동이 극도로 적은 성지한을 지근거리에서 봤음에도, 이쪽엔 눈길 하나도 안 주고 오로지 탑을 향해서만 경배하는 시민들.
다들 눈이 풀린 게, 자의식이 사라진 것 같았다.
‘지배 코드의 힘을 탑이 증폭시키고 있군.’
성지한은 바벨탑이 지닌 힘을 일견 파악한 후.
두 무기를 꺼냈다.
“왕의 행사을 방해하지 말지어다……!”
그러자.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성지한을 만류하려 들었지만.
“가만히 있어요들.”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리 말하자.
뚝.
사람들의 움직임이 모두 멈춰 버렸다.
일반인이, 무혼의 공간 장악력을 이겨 낼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절하다가 일어나려는 사람들이 모조리 움직임을 멈추자.
옆에서 이를 보던 피티아가 가볍게 탄성을 내질렀다.
“와, 볼 때마다 강해지네요 당신은. 뭐 바벨탑 소환해도 할 수 있는 게 없겠어요.”
“글쎄. 바벨탑으로 뭘 하려고 했다면, 이걸 선릉에 소환하질 않았겠지.”
스으으윽.
성지한은 암검의 끝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굳이 소환 장소를 여기로 고른 건, 날 유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냐?”
“어머, 벌써 들켰나요?”
“애초에 탑으로 뭘 하려고 했으면, 서울과 가장 먼 곳에서 탑을 소환했겠지.”
“맞아요.”
피티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대업의 변수가 될 당신을 처단하는 것…… 인류 지배 따위야, 언제든지 할 수 있죠. 저희가 우선시해야 할 일은, 성지한. 당신을 처단하는 것입니다.”
-성지한>>>인류인 거야?
-우리 취급 왜 이럼…….
-?? 맞는 말 아냐?
-ㄹㅇ 인류야 그냥 바벨탑 쭉쭉 올라가면 죄다 세뇌될 거 같은데? ㅋㅋㅋㅋ
피티아의 말을, 대부분 수긍하는 인류 시청자들.
성지한은 피티아의 말을 듣곤 피식 웃었다.
“내 처단이 우선이라…… 근데 그게 너희 둘로 되겠어?”
“하, 당연하다. 바벨탑만 있으면……!”
그 물음에 길가메시가 발끈하며 대꾸했지만.
“아뇨, 안 되죠.”
피티아는 단호하게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스으윽…….
그러면서, 서서히 손을 길가메시에게로 향하는 그녀.
“하지만 시간은 끌 수 있겠죠.”
“너. 뭐, 뭐 하려고 내 머리를 만지는 거냐……!”
“뭐 하긴. 쓸모없는 널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하는 거지.”
콰직…….
피티아의 손이 길가메시의 머리를 누르고.
“그. 그만……!”
“터져도 어차피 나중에 재생하잖아? 우는 소리 하지 마.”
펑!
길가메시의 머리가 터져 나가자.
거기서, 핏빛 사슬이 성지한을 향해 뻗어 오기 시작했다.
‘이거, 천수강신인가…….’
멸신결의 마지막 무공이었던 천수강신.
생명의 기운을 흡수하는 붉은 사슬은, 성지한도 한동안은 잘 써먹던 권능이었다.
근래에야 적의 힘이 워낙 강해져서 별로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사슬과 탑까지 통째로 베어야겠군.’
성지한의 암검에서 보랏빛 공허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혼원신공混元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검을 횡으로 베자.
사슬과 탑이 통째로 썰려 나갔다.
-일검에 썰리네.
-이걸 선릉에서 보게 될 줄이야…….
-무덤도 같이 썰리는 각?
-아니 자세히 보니까 바벨탑이랑 사슬만 베이고, 뒤엔 다 멀쩡한데?;
-와…… 검기로 정밀타격이 원래 가능해? 타깃만 싹 베네
-그게 가능하겠음……? 성지한이니까 컨트롤 되는 거지;
-아, 선릉 베였으면 바로 관광 명소 되는 건데 ㅋㅋㅋㅋ
바벨탑과 사슬만 정교하게 베어 버리는, 횡소천군.
시청자들이 멀쩡한 선릉의 풍경을 보고는 약간 아쉬워하고 있을 때.
“길가메시, 힘 제대로 안 써? 늙은 채로 평생 살래?”
피티아는 그리 말하며 바벨탑을 발로 뻥 찼다.
그러자.
[공허의 힘이 들어가 있는 검격이다…… 그렇게 쉽게 재생이 가능한 줄 아느냐!]
탑 안에서 길가메시의 목소리가 들리며.
“말할 시간에 빨리 해.”
[이놈이랑은, 정면 승부를 해서는 안 된다. 인질을 잡아야지……!]
스스스스…….
황금의 탑에서 핏빛 사슬이 사방을 향해 뻗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사슬이 노리는 타깃은, 바로 성지한의 무혼에 의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성지한에게 단칼에 베이고 난 후, 그랑 정면에서 맞붙는 건 답이 안 나온다고 보았는지.
길가메시의 사슬은 집요하게 인간들을 노리려 했다.
-ㅡㅡ 길가메시 치졸한 거 봐라 진짜.
-성좌란 것들이 인질극이라니…….
-아 저러면 어떻게 해?? 인질 구하려다 잡혀가는 거야? ㅠㅠㅠㅠ
-성지한 님, 그냥 인질을 버리심이…….
-아니 그래도 그건 좀;
꼼짝달싹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뻗어 나가는 핏빛 사슬.
‘쯧, 귀찮게 하네.’
성지한은 이걸 보고는 혀를 차며, 탑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 그의 그림자검은, 어느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암영신결暗影神訣
암혼와류暗魂渦流
슈우우우!
바벨탑 앞에서, 본격적으로 피어오른 검은 소용돌이.
그것은 인질을 잡으려던 길가메시의 사슬을 통째로 빨아들였다.
[피티아! 이러다 다 끌려간다! 잠깐만이라도 시간을 끌어라……!]
“야, 나한테 명령하지 마.”
[이 미친 게 진짜…… 일을 성사시켜야 할 거 아니냐!]
“내가 알아서 해.”
빵!
피티아는 바벨탑을 발로 뻥 차고는, 성지한을 향해 돌진했다.
슈슈슉!
순식간에 몰아치는 얼음의 검.
빙천검우를 응용한 피티아의 공격은, 레벨 8 성좌의 급에 맞게 위협적이었지만.
“이 정도인가.”
성지한의 창에서, 불길이 피어오르자.
그에게로 쇄도하던 얼음검이 일제히 녹아내렸다.
“뭐, 뭐야. 적멸도 아닌데…….”
피티아가 그걸 보고 당황하는 사이.
파지지직!
그녀의 얼굴에, 적뢰가 스쳐 지나갔다.
“읏……!”
그러자 순식간에 타오르는 피티아의 얼굴.
시간을 끌겠다고 나선 게 무색하게, 레벨 8 성좌가 퇴치된 시간은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오, 괴물 진짜…… 내 얼굴 어쩔 거예요?”
스으으으…….
적뢰 맞고 뒤로 물러선 피티아가, 얼굴을 재생하자.
성지한은 창끝을 그녀에게로 겨누었다.
“그런 거치고는 금방 재생했군.”
“무신께서 절 총애하셔서 말이에요. 누구랑은 달리, 젊음 하나는 확실하게 유지되고 있죠.”
[하, 쓸모없는 것! 젊음이 있으면 뭐 하나. 그 짧은 시간도 벌어다 주질 못 하는구나!]
길가메시는 피티아의 말에 발끈했지만.
[하지만…… 발상을 전환한 덕에 일은 성사되었다. 인질, 굳이 붙잡을 필요는 없지……!]
곧, 일이 성사되었다고 알려 왔다.
“뭐?”
분명히 사슬은 다, 암혼와류로 흡수했는데?
성지한이 주변을 바라보자, 탑에서 득의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슬은 막혔지만. 이 왕릉 주변엔 고층 건물이 많더군…… 겁도 없이 여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황금의 탑의 진면모를 보여 주었다.]
성지한이 그 말에 시선을 위로 올리니.
아래층부터 실체를 갖추어 가던 황금의 탑이.
중간은 빛의 형태인 채, 맨 윗 부분만 실체화가 되어 있었다.
‘천수강신으로 인질극은 힘들 거 같으니까, 선릉역 주변 빌딩에 있는 사람들을 세뇌한 건가.’
웬일로 길가메시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올바른 판단을 내렸군.
성지한이 암혼와류로 빨아들였던 길가메시의 사슬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을 때.
[그러니 이제 반항을 멈추어라. 네가 경거망동한다면, 빌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떨어질 테니까. 사람들이 집단 자살 하는 꼴을 보고 싶진 않겠지?]
길가메시는 인질을 붙잡고는, 꼼짝 말라며 협박을 하고 있었다.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아니까, 결국 하는 게 민간인 인질극인가.
-아 미친…….
-무슨 탑이 바닥부터 만들어지지 않고 허공에만 붕 떠서 실체화되냐;
-선릉역 쪽은 지금 쳐다도 보면 안 될 듯…….
-근데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ㄹㅇ 인질극 성공한 거야??
-아 ㅅㅂ 아담과 이브가 뭐 이리 치졸하냐 ㅡㅡ
-개같네 진짜;
현 상황을 보고는,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하는 채팅창.
성지한은 가라앉은 눈으로, 현 상황을 파악했다.
‘결국 이건, 바벨탑이 지닌 지배의 능력이 문제란 건데…….’
지배 코드의 능력을 맘껏 발현하고 있는 바벨탑.
저걸 놔두면, 민간인을 인질로 써먹는 저들의 전략에 결국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럼 해결책은…….
‘저 탑을, 내가 장악한다.’
마침 암혼와류로 빨려 들어왔던 길가메시의 사슬이, 성지한의 눈에 들어왔다.
저걸 통해, 역으로 장악해 들어가면 되겠지.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천수강신天樹降神
그의 몸에서 천수강신의 사슬이 뻗어 나오더니.
콰직!
길가메시의 사슬을 붙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