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90화>
며칠 후.
[허, 청…… 그 능력이 뭐기에, 이렇게 동방삭에게 뿌리내린 것인가.]
무신은 무혼의 급격한 변화를 보고는 탄식을 흘렸다.
청을 없애려고 그를 집어삼킨 순간, 동방삭의 무혼은 그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밖까지 줄어들었고.
이를 다시 회복시키는 과정에서는, 그놈의 청색 광검이 꼭 하나씩 출현했다.
‘만에 하나 외부의 개입인가 했지만, 집어삼키기만 했을 땐 별 변화가 없었지…….’
동방삭의 변화가 너무 급격했던지라.
혹시나 외부에서 영향을 끼친 건가 해서,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 보았던 무신이었지만.
동방삭의 힘이 줄어든 건, 언제나 그가 청을 제거하려고 들 때뿐이었다.
이쯤 되면, 무혼에 청이 밀접하게 이어졌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열 번을 이러니, 안 되겠구나.]
“……죄송합니다. 무신이시여.”
[되었다. 더 이상은 힘의 낭비.]
무신은 그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투성을 봉인했던 어둠은, 이제 점점 색이 옅어지고 있었다.
[때가 거의 다가왔으니, 전력은 이대로 유지한다. 그 힘으로 세계수를 뿌리 뽑고 돌아와라.]
“알겠습니다.”
무신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동방삭을 보면서, 붉은 눈을 빛냈다.
‘그 후, 확실하게 죽여야겠군.’
청과 밀접해진 동방삭은, 정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이번만 써먹고, 처리한다.
무신은 그렇게 결심하고, 봉인이 풀리는 때를 기다렸다.
그때.
“무신이시여. 혹시…… 성지한이 막으러 오면 그때는 어떻게 대처하면 되겠습니까?”
[청색의 관리자가?]
“예.”
[왜 그가 막으러 오지? 적색의 세계수는 나의 것이다. 나는 지구에서, 내 물건을 회수할 뿐.]
무신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반문했다.
“어쨌거나 지구는 그의 영역. 침입하면, 그가 대응을 올 수도 있기에 여쭈어보았습니다.”
[흠…… 그건 그럴 수 있겠군. 그럼 물건 하나만 가지러 간다고, 정중히 양해를 구해라.]
“정중히, 양해를 말입니까.”
[그래. 굳이 그와 부딪칠 필요는 없지.]
성지한과는 굳이 분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무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우주에 정복할 상대가 얼마나 많은데…….’
대외적 활동이 가능해진 무신이 보기에, 먹음직스러운 행성은 사방에 널려 있었다.
드래곤 로드를 잃은 용족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도,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어서 실버, 골드 리그에서 빌빌거리는 종족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무신에겐, 이들을 혼자서 정복할 힘이 있었다.
‘한데 굳이 관리자와 싸워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맹수끼리 싸워 봤자, 서로 상처만 입을 뿐.
서로 못 본 채 지나치며, 먹잇감만 노리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러니 무신은, 혹시라도 성지한이 알아챌 시 그에게 정중한 양해를 구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로막는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왜 막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나의 물건을 회수하고 얌전히 물러나겠다고 정중히 요청까지 했는데?]
“……세계수 주변의 땅에, 관리자의 고향도 있습니다. 그걸 뽑는다면, 그의 땅도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까?”
[고향…… 관리자가 되었으면서, 고향 따위에 연연하겠는가?]
“혹시 모르니…… 행동 방침을 들으려 합니다.”
무신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동방삭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대답을 하는 걸 보면, 어째 성지한이 막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 같은데.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내가 직접 설득해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무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성지한이 그렇게 나올까 싶었다.
* * *
펜트하우스의 트레이닝 룸.
‘이렇게 끝나다니 아쉽군.’
성지한은 무신이 동방삭의 힘을 그만 통제하는 걸 보곤,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혼을 10번 10씩 떨어뜨렸으니, 관리자 권한을 총 5만 썼네.’
녹색의 관리자에게 투자받은 것의 25퍼센트를, 능력 제어에 쓴 성지한.
하나 그는 이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탯 ‘청’과 무혼이 확연한 연결점을 지닙니다.]
[스탯 ‘청’의 등급이 S급으로 오릅니다.]
스탯 청의 등급이, A에서 S로 올랐으니까.
‘원래는 권한 2천만이 필요했었는데…… 5만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버렸군.’
동방삭을 통한 대리수련.
이 효과는 굉장했다.
그가 깎인 무혼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스탯 청과 무혼의 연결점은, 언제나 새롭게 발전해 왔으니까.
물론 동방삭은 이 능력의 연결고리가 매번 왜곡도가 떨어지며 리셋되었지만.
청색의 관리자인 성지한은 이 발전을 고스란히 남겨 써먹을 수 있었다.
‘이젠 확실히 좀 싸울 만해.’
지이이잉…….
성지한은 동방삭과 적색의 관리자가 싸우던 영상을 다시 틀어 보았다.
저번에 볼 때는, 저 노인네 어떻게 이기나 싶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과 무혼의 결합이 짙어지면서, 둘이 이제 거의 한 몸이나 다름없게 되었으니.
영상을 처음 볼 때랑은, 확실히 힘이 크게 차이 났다.
‘모두 다 동방삭 덕이군.’
자신을 대신하여 청을 수련해 준 동방삭에게 감사를 표하며.
성지한은 영상 속의 그를 다시 한번 분석하고 있었다.
그때.
“삼촌~ 여기 있었네. 나 오늘도 MVP 땄다?”
밝은 기색의 윤세아가 트레이닝 룸에 들어왔다.
“MVP?”
“어, 오늘 스페이스 리그 했잖아. 안 봤어?”
“요즘 그거에 신경 쓸 시간이 없어서. 어차피 인류 잘하지 않냐?”
“그치. 이 세계 랭킹 1등 윤세아 님이 있으니까!”
성지한이 관리자가 된 이후,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라간 윤세아.
그녀는 성지한이 사라진 인류 대표팀의 공백을 모두 매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강력한 힘을 통해 대표팀을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지. 내 대기만성 또 등급 올라갈 거 같거든…… 어. 근데 삼촌. 또 이 영상 봐? 난 이 할아버지 싸우는 거, 차원이 달라서 참고가 안 되던데…….”
“어, 동방삭이랑 곧 싸울 거 같거든.”
“엑, 진짜? 무신이 안 쳐들어온다고 했잖아.”
“뭐 정확히는 침공하러 온 건 아니야.”
저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세계수를 가져가는 것.
성지한은 그간 투성을 염탐하면서, 무신이 정말로 자신과 싸울 의사는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계수 뽑아도 별 부작용이 없었다면 그냥 줬을 텐데 말이지.’
하필 그게 서해 해저에 있고.
뽑으면 서울 땅까지 갈라지는 대지진이 일어나고, 거기서 적귀들이 튀어나온다는 걸 알아 버렸으니.
그냥 뽑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으으…… 엄마가 봤다는 미래구나. 그게.”
성지한의 설명에, 성지아에게 들은 게 있는지 윤세아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어, 막아야지.”
“삼촌, 나도 도와줄까?”
“너? 너 오면 1초 컷이야. 미안하지만 발목 잡기밖에 안 된다.”
“윽…… 세계 랭킹 1등이어도 전혀 쓸모가 없는 거야?”
“동방삭 상대론 그래.”
성지한이 그러면서 보던 영상을 가리켰다.
거기선, 적색의 관리자의 배리어를 뚫는 동방삭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음, 그러네. 관리자도 저렇게 됐는데. 대기만성 등급이 SSS에서 더 올라도 힘들겠지.”
“대기만성 등급이 거기서 더 오른다고?”
그러고 보니, 아까 등급 또 오르겠단 이야길 하긴 했지.
성지한은 새삼 놀란 눈으로 윤세아를 바라보았다.
‘대기만성 기프트, 이거 완전 사기네.’
SSS까지 올라가면 충분히 큰 그릇이라고 할 만한데.
거기서 또 성장을 할 수 있다고?
그럼 EX급 기프트가 되는 건가.
“어…… 원래는 세계 랭킹 1등 달성하고, 스페이스 리그에서 MVP 5회 받아야 해서 불가능할 거라고 봤거든. 삼촌이 초고속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내가 관리자로 빠지면서 된 건가?”
“응. 세계 랭킹 1위야 바로 물려받았고, 오늘 경기 MVP까지 따서 5회 조건도 클리어했어. 그래서 트레이닝 룸 와서 등급 업 해 보려 했지.”
“한번 올려 봐.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네.”
“응.”
성지한의 말에, 윤세아는 바로 대기만성의 등급을 올렸다.
그러자.
파아아앗……!
그녀의 등 뒤로, 공허의 기운이 강렬히 피어올랐다.
‘이 정도면…… 예상보다 강력한데.’
성지한은 그녀가 내뿜는 힘을 보면서,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윤세아가 아무리 인류 랭킹 1위라곤 하지만, 아직 플레이어에 불과한데.
지금 내뿜는 힘은, 흡사 하위 레벨 성좌가 보일 법한 기운과 비슷한 양이었다.
물론.
‘그래도 동방삭에게 1초 컷이란 건 변하지 않지만.’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동방삭과의 전투에 데려갈 정도는 아니었다.
상대는 고위 레벨 성좌도 가볍게 쓸어버리는 괴물이었으니.
윤세아는 그냥 집에서 안전하게 있는 게 나았다.
“어…… 그러면서 나, 공허의 대기大器가 되었다는데. 기프트도 공허의 대기로 변했어. EX급으로!”
“대기만성이 드디어 완성된 거네. 근데 공허 쪽이라니…… 왜 하필 그쪽이냐.”
“아무래도 공허를 다뤄서 그런 거 아닐까?”
윤세아는 그리 대답하며, 신기한 듯 자신의 시스템 창을 이리저리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가 이번에 얻은 능력을 살피던 윤세아는.
“삼촌, 얼굴의 공허 좀 흡수해 봐도 돼?”
“그런 기능도 있어?”
“응, 공허의 대기 특성에 있어.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해서.”
성지한에게 부탁을 해 왔다.
“그래, 해 봐. 너무 많이 빨아들이진 말고.”
얼굴의 공허야 털면 털수록 좋지만, 지금 당장은 동방삭과 싸울 때 필요하니까.
성지한은 그렇게 대답하곤,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았어. 이렇게 하는 건가…….”
그러자 자기도 잘 모르겠단 얼굴로, 손을 가져오는 윤세아.
그녀의 손에 보랏빛의 연기가 살짝 피어오르나 싶더니.
슈우우우우……!
성지한의 얼굴에서 공허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보다, 많이 빨아들이는 것 같은데?”
“어. 뭐, 뭔가 많이 들어오네. 멈출게!”
윤세아가 황급히 손을 떼자, 성지한의 눈앞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탯 ‘공허’가 5 감소합니다.]
손만 가져다 댔을 뿐인데, 5나 감소한 공허.
‘공허의 대기…… 생각보다 흡수력이 더 좋네.’
과연 EX급 특성이라 할 만한 건가.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어, 삼촌. 얼굴 좀 나아졌는데? 갈라진 틈새가 매워졌어!”
윤세아가 깜짝 놀라며, 그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응. 거울 봐 봐!”
“오…… 진짜네.”
트레이닝 룸에 비치된 거울에서, 자신의 얼굴을 본 성지한은.
“……어디?”
고개를 갸웃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평소랑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 봐 봐. 여기 여기. 턱선에 균열 줄었잖아?”
윤세아의 눈엔 다른 점이 보인 건지.
그녀는 정확하게 성지한의 턱을 짚어 주었다.
“아, 그러네. 조금 줄었구나.”
본인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세한 변화.
하지만, 얼굴의 균열이 좋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태극마검을 써서, 공허를 소모할 때도 이 균열이 회복되진 않았는데 말이지.’
윤세아가 이번에 얻은, 공허의 대기.
이 기프트의 성능은, 예상보다도 더 좋았다.
‘이거…… 녹색의 관리자가 알면 탐내겠어.’
공허를 없애는 것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는 녹색의 관리자.
그녀가 공허의 대기 성능이 이렇다는 걸 알게 되면, 지구에 눈독을 들일지 몰랐다.
이건 무조건 숨겨야겠는데.
“야, 이 일. 어디든 절대 이야기하면 안 된다.”
“그, 그래? 배틀튜브에 자랑하려고 했는데…….”
“공허를 없애는 건, 절대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 괜히 이 사실 알렸다가 너 납치될 수도 있어.”
“아…… 알았어.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성지한이 신신당부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윤세아.
“그래. 그리고…… 축하한다. 그릇 완성해서.”
“헤헤, 이거야 삼촌이 관리자가 된 덕분이지. 고마워.”
그녀는 싱긋 웃으며, 축하 인사에 답례했다.
그때.
지이이잉…….
윤세아의 머리 위에서, 보랏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그건 곧 서로 뭉쳐,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저건.’
성지한도 여러 번 봤던.
‘아레나의 주인이 쓰던 모자.’
검은색 중절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