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97화>
무신의 별, 투성.
이제는 무신밖에 남지 않아,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장소는.
동방삭이 무혼을 주화입마로 바꾸고 난 이후부터,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펑! 펑!
하늘 위에 떠올라 있던 성좌의 무구 중 일부는 터져 나가고.
스으으…….
일부는, 빛을 잃고 땅에 추락하기 시작했다.
[힘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
무혼.
종족 ‘인류’에 있어서, 가장 빼어난 능력이라 ‘별의 능력’으로 선정된 이 힘은.
그럼에도 동방삭의 재능을 모두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주 예전.
무한회귀의 초창기 때에는.
무혼을 통해 동방삭의 무재를 흡수해 보려다, 그와의 재능 격차만 여실히 확인하곤 했다.
한 때는 이를 따라잡아 보려고 했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그의 능력은 차원이 다름을 깨닫고, 그저 무혼으로 그의 무공을 갈취하는 것에만 만족했다.
[……그래선 안 되었거늘.]
슈우욱!
무신은 하늘에서, 성좌의 무구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걸 보며 무력함을 느꼈다.
지금 멋대로 움직이고 폭발하는 성좌의 무구는, 띄운 것의 30% 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제를 벗어나는 무구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멋대로 움직이고, 폭발하는 성좌의 무구.
왜 주화입마에 걸렸다고, 저것들이 알아서 발작을 하는 건지.
무혼에 대해서 이용만 했을 뿐,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무신은.
그저 무력하게 성좌의 무구가 떨어지고, 폭발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통제에서 벗어난 무구의 숫자가, 절반 이상이 되었을 때.
[……이제, 제어할 수 있다.]
남은 성좌의 무구는, 서서히 무신의 컨트롤 아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지닌 무혼.
아니 주화입마의 수치가 999로 떨어지자 가능해진 운신이었다.
‘1천 이상이, 주화입마의 시작 기준이었는가…….’
무신은 그렇게 현 상황을 판단하고는, 얼른 성좌의 무구를 옮기고.
거기서 힘을 한번 흡수해 보았다.
그러자, 그가 지닌 주화입마가 1천 이상을 돌파하며.
쾅! 쾅!
성좌의 무구가, 또 제멋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익……! 동방삭……!]
성좌의 무구에서 흡수하면, 그게 바로 부메랑으로 돌아오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이래서야, 지금까지 모아 놨던 성좌의 무구들을 어떻게 써먹는단 말인가?
‘내가 지금껏 어떻게 이 힘을 모아 왔는데……!’
무신은 실질적으로 쓸모가 없어진 성좌의 무구를 보면서 절망에 빠졌다.
동방삭.
그가 태극마검을 꺼낼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투성에 있는 자신에겐, 타격이 없을 줄 알았다.
아소카의 배신 이후, 동방삭에게 가했던 금제는 크게 강화되어 있었으니.
정신을 차려 봤자, 그냥 죽이면 끝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무혼을 주화입마로 바꾸어, 자신을 이렇게 옭아매다니.
‘이에 반해, 청색의 관리자는 확실히 강해졌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청색의 관리자는 수도 없이 패하면서도.
힘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성좌의 무구가 묶여 버린 자신과는, 정반대의 상황.
거기에, 최후에 동방삭의 팔을 잘랐던 일격은.
성좌의 무구를 쓴다 해도, 대처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그래.
쓴다 해도 쉽지 않은데.
지금처럼 무구에 의한 힘의 증폭이 막혀 버린다면…….
‘붉은 세계수를 회수하는 건 고사하고, 그에게 죽을 것이다…….’
성좌의 무구 없이, 지금 가진 힘만으로 싸운다면 과연 성지한을 이길 수 있을까?
무신은 분노한 와중에도, 냉정하게 이를 따져 보았고.
결론은 빠르게 났다.
[이기지 못한다.]
동방삭의 힘도 제약하던 관리자의 능력에.
그는 아소카의 금륜적보도 사용할 수 있었다.
성지한이 있는 자원 없는 자원 죄다 끌어 써서 싸운 걸, 평시의 전력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 무신은.
이미, 시작부터 패배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은.
[……도망친다.]
도주와 잠적.
그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통상적인 ‘무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뱀 입장에선.
이거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다만 투성도 버리고 혼자 도망치기엔 그간 쌓아 올린 게 아쉬우니.
‘이 투성도 함께 움직여야 하건만.’
성좌의 무구로 힘을 증폭하지 못하는 한, 이 별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방법은 없었다.
무신이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잠겨 있을 무렵.
지이이잉……!
성좌의 무구가 추락하던 하늘에.
하나의 문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동방삭의 만귀봉신과, 흡사한 모양새.
[도, 동방삭…… 대체 또 무슨 짓을……!]
그가 이를 보고 힘을 끌어올리며,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
쩌적!
만귀봉신의 문양이 깨져 나가며.
툭…….
그 안에서, 붉은 눈동자가 떨어졌다.
[내가 이렇게 풀리다니…… ]
데구루루…….
땅바닥에서 붉은 눈이 굴러 오더니.
[네게 곤란한 일이 발생했나 보구나.]
번뜩!
강렬한 빛을 토해 냈다.
붉은빛이 사방에 뻗으며, 떠오른 건 배틀튜브의 화면.
영상은 초고속으로 재생되더니.
[과연…….]
삑!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꺼졌다.
[쯧…… 그것 보아라. 내 말처럼 되지 않았느냐? 자신의 칼에 되레 당하다니.]
[적색의 관리자…….]
[이제는 협력할 마음이 조금 생겼나?]
무신은 물끄러미 붉은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적색의 관리자.
협력을 하기엔, 가장 위험한 상대.
하지만.
‘……주화입마에 묶인 나로선, 현재 방법이 없다.’
아니, 그래.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성좌의 무구도 다 파괴해 버리고, 지금 지닌 힘만 가지고.
청색의 관리자 눈을 피해, 저 먼 곳으로 도주하는 방법.
하지만, 그래서야.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
[이야기는, 들어 보지.]
[후후…… 마음에 들 것이다.]
무신은 결국, 위험한 상대와의 거래를 선택했다.
* * *
무혼이 주화입마로 바뀌고 난 이후.
“이제, 가야겠군.”
동방삭은 홀가분한 목소리로, 그리 이야기했다.
“……가십니까.”
“그래. 지금까지 고마웠네. 덕분에 무신의 노예 생활에서 풀려나, 나름 복수까지 했으니.”
스스스…….
동방삭의 육신에서, 서서히 색이 옅어져 갔다.
그는 구궁팔괘도 위에 꽂힌 태극마검을 잠시 쳐다보다가.
스으윽…….
수염을 쓰다듬었다.
“다만 자네가 해야 할 수련 기회를, 내가 너무 많이 빼앗아 버려서 그게 미안하군.”
“아닙니다. 하는 김에 더 해 주시죠.”
“그럴 수야 있나. 청과 무혼의 합일.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본인이 누려야 하지 않겠나.”
“무혼이 이미 사라졌는데도, 합일이 되겠습니까?”
동방삭은 그 말에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미, 합일은 거의 다 된 상태네. 자네만 깨우치면 될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 얼른 깨우치고, 뱀을 깔끔히 정리하게. 그의 힘을 많이 묶어 두었지만, 시간을 주면 언제 재기할지 모르니까.”
몸이 사라져 가는 순간에도.
동방삭은 태연하게,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했다.
“한데 뱀을 정리하려면, 투성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만.”
“검을 쥐면 알게 될 걸세.”
“태극마검을 말입니까?”
끄덕.
동방삭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지한은 든든한 느낌을 받았다.
아소카도 그렇더니.
동방삭도 한 번 도와주니까, 애프터 케어까지 확실하네.
‘적일 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아군이 되니까 든든하네.’
이러니, 이제 곧 그가 소멸하는 게 더 아쉽군.
스으으으…….
동방삭의 하반신이 완전히 사라지자.
성지한은 이제, 정말로 끝임을 깨달았다.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성지한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
“수고라. 내가 자네에게 해야 할 말이지. 뒷일은…… 맡기겠네.”
동방삭은 태극마검을 다시 한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혹시 여유가 되면, 자네의 태극마검과 저걸 부딪쳐 보게나.”
“제 걸 이긴다고 장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도 마지막 가는 순간이 되니, 뱀의 생사보다 이게 궁금하군그래.”
“여유 되면 하죠. 여유 되면.”
“약속한 거네.”
파아아앗……!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동방삭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자.
슈우우우……!
밀려났던 바닷물이, 해저로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금방 단절되었던 공간에 차오르는 푸른 물결.
하나 구궁팔괘도에 꽂힌 태극마검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검이 내뿜는 빛은, 오히려 바다를 뚫고 승천하고 있었다.
‘두 태극마검을 부딪쳐 보라니…… 마지막까지 그분답군.’
성지한은 슬쩍 웃다가.
‘그럼, 한번 뽑아 볼까.’
구궁팔괘도에 꽂힌 검을 한번 쥐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성지한이 물속에서, 검을 쥔 순간.
‘……무겁군.’
그는 검을 잡자마자, 지금은 이걸 뽑을 수 없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동방삭이 말했던, 청과 무혼의 합일.
그걸 이뤄 내야, 비로소 이 태극마검을 구궁팔괘도에서 뽑아낼 수 있겠지.
‘깨우치기만 하면 된다고 한 걸 보면,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워낙 동방삭이 수련을 대행해 줘서 그런가.
청과 무혼의 결합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다.
여기서 한 계단만 더 올라서면.
청의 안으로, 무혼을 흡수할 수 있다.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멸신결의 마지막 구결에 관한 정보를 얻습니다.]
‘마지막……?’
마지막이라니.
무신의 종은 총 5명.
멸신결의 구결도 이에 따라 5개 아니었던가.
성지한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은하검흔銀河劍痕의 이름을 인지합니다.]
[은하검흔은 태극마검을 통해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은하검흔이라.
은하에 검의 흔적을 남긴다니.
성지한은 광오하기까지 한 무공명을 보면서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다른 무공들에 비해, 가장 멸신결다운 이름이군.’
은하에 검의 흔적을 낼 정도는 되어야, 신을 죽이겠지.
이거, 청을 무혼과 합일시켜야 할 이유가 또 늘었어.
성지한이 그렇게 한층 더 의욕이 생기는 걸 느꼈을 때.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응?’
갑자기 관리자 창이 열리면서.
[스탯 ‘주화입마’의 한계치가 변경됩니다.]
[스탯 수치가 1100일 때, 주화입마가 발동합니다.]
주화입마의 발동 한도가 상향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게 지금 갑자기 오른다고?’
동방삭이 무혼에서 뒤바꾼 주화입마.
이건 스탯 수치가 1000일 때 본격적으로 발동하는 페널티 능력이었다.
무혼이 1000에 도달할 일이 없는 성지한보다.
성좌의 무구로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무신에게, 본격적인 제약을 가하는 주화입마.
그런데 이것의 한계가, 갑자기 100이나 올라가다니?
거기에.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스탯 ‘주화입마’의 한계치가 변경됩니다.]
[스탯 수치가 1200일 때, 주화입마가 발동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수치는 100이 더 상향되었다.
‘무신에게 동방삭의 제약을 손쉽게 이겨 낼 능력이 있었나.’
하기야.
동방삭에 비해 무의 재능은 현저히 떨어질지 몰라도.
무한회귀를 하면서 오랜 세월 살아온 자이니,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겠지.
역시 방심할 상대가 아니다.
성지한은 그렇게, 처음엔 무신이 능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했지만.
[스탯 ‘적’의 왜곡도가 1 오릅니다.]
추후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곤, 두 눈을 번뜩였다.
‘……적이, 갑자기 지금 오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