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11화>
붉은 눈에서 흐르는 핏물은.
뚝, 뚝…….
반으로 갈라진 뱀의 몸뚱어리에 닿았다.
그러자.
화르르륵……!
은하검흔에 베였던 상처에, 일제히 불꽃이 타올랐다.
[크…… 크아아악……!]
상처를 지지는 불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닌지, 비명을 내지르는 뱀.
하나 그의 고난은 거기서 끝이 나질 않았다.
슈우우욱……!
은하검흔으로 빨려 들어가던 성좌의 무구 일부가, 뱀에게로 향했으니까.
푹! 푹!
무신의 갈라진 몸에, 일제히 꽂히는 무구.
그러자 무신의 몸이 불타오르더니.
반으로 잘렸던 뱀이, 육신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전신에 성좌의 무구가 꽂힌 채, 흉측하게 부풀어 오르는 몸.
[크…… 크으으으…… 이건, 대체…….]
무신이 자신의 변화를 보면서, 당혹해할 즈음.
[진작에 이럴 걸 그랬군. 괜히 힘을 아꼈어.]
적색의 관리자는 이를 만족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함부로 예측하면 안 된단 말이지. 이 정도 힘이면 충분한 줄 알았는데, 시간조차 못 끌 줄이야.]
“시간을 끈다라…… 뭘 하려고 했지?”
[뭘 하겠나? 내가.]
붉은 눈이 번뜩이자, 성지한이 두 눈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명계를 만들 생각인가. 또.”
[그래.]
“상당히 그것에 집착하는군.”
[배틀넷은 구시대의 유물. 공허로 망자를 처리하는 건, 명계의 등장으로 인해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변했네. 이제, 우리에겐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지.]
플랫폼이라니.
이놈은 명계 구축에서 더 나아가서, 아예 새로운 시스템까지 만들 생각인가?
성지한은 번뜩이는 붉은 눈을 보며, 황당해했다.
“배틀넷 말고 새로운 플랫폼이라니…… 뭐 헬이라도 만들 생각인가?”
[헬이라, 그건 어감이 너무 부정적이지. 그것보다, 헤븐넷으로 하는 게 낫겠군.]
“……헤븐넷이라니. 진심이냐?”
[지옥이 있기에, 천국도 있는 것. 지금의 공허처럼 망자를 삭제하지 않고, 거기서 자원을 뽑아낼 수 있다면…… 그 시스템에 있는 이들은 보다 풍요롭게 살 수 있다네. 현재보다는 훨씬 낙원에 가깝겠지.]
죽은 자에게서 자원을 뽑아낸다니.
성지한은 지구에 봉인되었던 적색의 세계수가 떠올랐다.
거기에도, 죽은 적의 일족 귀신들이 붙어 있었지.
적색의 세계수가 다른 세계수보다 더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건.
공허에 잠식되어 삭제되어야 할 적의 일족들한테서 ‘자원’을 뽑아내서 그런 건가?
“죽은 자에게 안식을 주지 않고, 끝까지 굴리는 건가.”
[안식? 안식이야 죽었을 때 이미 주어진다네. 명계에서 운용하는 건 남은 잔재를 재활용하는 것.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그리고 그 명계는, 네가 다스리고?”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않나. 나 말고는 이 시스템을 운용할 존재가 없으니까.]
눈동자에서 피눈물이 멈추고.
적색의 관리자는 가만히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아니…… 하나 더 있군. 너도 가능하겠어.]
“……나?”
[네게도, 적의 재능이 있었지. 오히려 어쩌면 나보다 잘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적과 상극인 청마저 지니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적색의 관리자는, 진지한 어조로 제안을 했다.
[내게 협력하겠는가? 성지한. 명계의 운용권, 반절 나눠 주지. 네가 나보다 뛰어남을 입증하면, 다 넘길 수도 있네.]
“아레나의 주인이 그렇게 죽는 걸 봤는데, 잘도 협력하겠군.”
[그는 능력이 없었으니까. 하나 너는 대우할 가치가 있어.]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곤 피식 웃었다.
아레나의 주인도 버리고.
자신의 작품이라고 평하는 무신도 저렇게 무기 박힌 괴물로 만들어 버렸는데.
저런 놈이랑 협력 관계가 될 수야 없지.
“거절한다.”
[그렇게 대답할 줄은 알았지만, 아쉽군.]
스으으으…….
붉은 눈의 형체가 서서히 흐려졌다.
[그럼, 내 창고지기와 잠시 놀고 있게. 나는 할 일이 많아서 가 보도록 하지…….]
이젠 무신이라고 부르지도 않는군.
근데 창고지기면, 저놈은 아예 이 투성을 자신의 창고처럼 생각했던 건가.
‘역시 저놈이 진짜 문제야.’
무신보다는, 적색의 관리자가 진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가만히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무기가 잔뜩 박힌 뱀.
몸이 마구 부풀어 올라 있는 게, 정상은 아닌 것 같다.
‘힘을 억지로 끌어낸 상태 같은데…… 굳이 안 싸워도, 오래 못 버티려나?’
이러면, 굳이 싸워 줄 필요가 있나.
성지한은 냉정히 상황을 판단했다.
‘차라리 금륜적보를 써서 지구에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명계를 재구축하려는 목적을 지닌 적색의 관리자.
거기에 자꾸 무신보고 시간을 끌라고 하는 걸 보면.
느낌이, 어째 지구에서 일을 벌이려 하는 거 같단 말이지.
이미 저 상태가 되어 버린 무신과 싸우느니.
금륜적보를 써서, 24시간 전의 장소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무신의 칭호를 얻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무극멸신에 거론되어 있던, ‘무신’의 칭호.
그건, 눈앞의 상대를 자신의 손으로 끝장내야 보상으로 주어지겠지.
그걸 얻지 못하고 지구로 귀환하는 건 아쉽지만.
저 상태의 무신과 싸워 힘을 낭비하느니, 적색의 관리자에 대처하는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한 성지한은, 금륜적보를 사용하려 했지만.
-적색 놈 또 나왔네 진짜 언제 뒤짐 쟨;
-진짜 징글징글하다.
-명계고 뭐고 그냥 좀 죽으라구요 진짜 ㅡㅡ
-어…… 근데 화면이 왜 이러지…….
시청자들의 채팅이 주르륵 올라오다 멈추고.
[배틀튜브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종료됩니다.]
[스타 버프가 해제됩니다.]
배틀튜브가 강제로 꺼졌다.
그러자, 자동으로 종료되는 스타 버프와 초신성.
이와 동시에.
번쩍……!
갈라진 투성을, 거대한 빛의 장막이 감쌌다.
‘이건…….’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배틀튜브의 관리는, 아마 백색의 영역이었을 텐데.
그게 종료되어 스타 버프가 해제되고.
빛의 장막이 투성을 감싼 건, 아무리 봐도 타이밍이 절묘하단 말이지.
성지한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설마, 백색의 관리자가 개입한 건가.’
둘이 협력 관계가 아닐까 하고 추측은 했는데.
이러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군.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할 즈음.
[크으으으…….]
온몸에 무기가 꽂힌 뱀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성지한에게로 다가왔다.
이성을 잃은, 짐승의 눈빛.
‘금륜적보는…… 저 장막에 막힐 것 같고.’
확실히 테스트는 해 보지 않았지만.
성지한은 빛의 장막을 보면서, 느낌이 왔다.
여기서 금륜적보를 쓴다 한들, 저 장막에 막힐 거란 걸.
‘저런 걸 칠 정도면, 그 힘으로 아예 날 공격하는 게 나을 텐데…… 뭔가 제약이라도 있나 보군.’
스타 버프도 끊고, 장막도 쳤지만.
백색의 관리자가 직접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데에는, 이쪽이 모르는 제약 사항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일단은, 뱀부터 잡아야겠네.’
성지한은 눈앞의 무신을 보고, 검을 쥐었다.
이성을 잃은 적.
하나, 그가 내뿜는 기세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힘 자체는, 은하검흔으로 투성을 베기 전 온전한 상태의 무신과 거의 비슷했으니까.
슈우우욱……!
뱀의 몸에서 일제히 성좌의 무구가 떠오르고.
[크으, 크르르……!]
뱀이 입이 쫙 벌리자.
성지한에게로 곧 맹공이 쏟아졌다.
* * *
서해, 해저의 봉인지.
성지한이 태극마검을 뽑고 난 이후, 빛이 멎은 이곳에는.
[조사 시작합니다.]
중국의 잠수함이 내려온 채, 잠수부와 수중로봇이 주변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좋은 결과물이 있으면 좋겠군요.”
“조금 전에 보셨습니까? 한 인간이 행성을 가르던 힘…… 정말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습니다.”
“하하,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할 정도면 좋겠는데 말이죠.”
“성지한도 대표팀에서 은퇴했겠다, 다시 아시아의 1등 자리를 가지고 와야지요.”
“그런데 왜 성지한 방송은 끊긴 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배틀튜브에 이런 에러가 있었나 의아하군요.”
해저에서 하늘까지 뻗어 나가는 검의 빛을 보면서, 저 에너지원의 정체를 궁금해했던 중국 연구진들은.
성지한이 검을 뽑고 나서자마자, 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많은 건 바라지 않고.
뭐라도 실마리라도 잡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된 조사는.
“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난항에 빠졌다.
“로봇의 제어가 끊겼습니다.”
“제어가 안 된다구요? 아니 왜 갑자기…… 불량품이었던 겁니까?”
“아니, 저번에 시뮬레이션을 했을 때에는 잘 작동했습니다만…….”
수중로봇의 제어가 끊기자, 당황하던 중국 연구진은.
“어…….”
“뭐, 뭐지?”
“어디서, 붉은빛이…….”
잠수함 내에서 갑자기 붉은빛이 퍼지자, 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곧.
스으으…….
잠수함 내부, 천장에 떠오른 거대한 붉은 눈을 발견했다.
“어…….”
“저, 눈은,!”
“적색의…… 관리자?”
방금까지만 해도 성지한의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적색의 관리자.
분명히 투성에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지?
연구진들이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천장을 바라볼 때.
[여기에도 없군.]
붉은 눈동자가, 슬쩍 움직이더니.
화르르륵……!
잠수함 내부에 금방 불길이 치솟았다.
“부, 불이다!”
“으…… 으아악!”
순식간에 화마에 뒤덮여, 불타오르는 사람들.
적색의 관리자는 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니…… 그냥 죽이지 말고, 활용을 해야겠어.]
타오르던 인간을 써먹을 생각을 했다.
그러자.
스으으으…….
불길 속에서, 인간의 몸뚱어리 일부는 더 이상 안 타오르더니.
콰직, 콰직……!
이것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불 속에서, 합쳐지는 인간의 몸뚱어리.
그것은 진흙 반죽하듯 뭉쳐지고, 떼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건, 누더기를 기운 것 같은 인간 융합체.
[이 정도면, 쓸 만하겠구나.]
모양새는 영 아니었지만, 적색의 관리자는 이에 만족하곤.
불타는 잠수함에서 누더기 인간을 빼내, 봉인지가 있던 곳에 가져갔다.
그러자.
해저의 바닥에서, 시뻘건 불꽃이 치솟고.
붉은 배리어가 펼쳐지며, 바닷물을 해저에서 밖으로 밀어내었다.
스으으으…….
그리고 그 공간에.
적색의 관리자가, 붉은 거인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여기서 느껴지는데.”
툭. 툭.
누더기 인간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적색의 관리자는.
그 몸 위로, 짧은 문자를 그려 나갔다.
“이리로 들어오라. 망자가 된 나의 그릇이여.”
그리고 글자를 다 쓴 그가, 누더기 인간을 보고 그리 말하자.
부르르…….
인간 융합체의 눈이, 살짝 떨리더니 곧 눈을 떴다.
“여…… 긴…….”
“길가메시.”
눈을 뜬 상대를 보고, ‘길가메시’라고 칭한 적색의 관리자는.
“기프트를 확인해 보거라. 적색의 대기, 유지되어 있느냐?”
그를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기프트는, 있느냐?”
붉은 눈을 번뜩이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붉은 거인.
누더기 인간의 몸에서 부활한 길가메시는, 현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다가.
“기프트.”
“화, 확인하겠소…… 상태창.”
기프트를 확인하라고, 3번째 말하는 거인을 보곤 일단 상태창을 열었다.
‘……없다.’
적색의 대기.
성지한과 자신의 천수강신이 다른, 이유로 보았던 그 기프트는.
부활한 이 몸에서 확인한 상태창엔, 존재하질 않았다.
“있느냐?”
“……그, 그게.”
여기서 없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면 어떻게 될까.
뻔히 보이는 미래에, 길가메시는 잠깐 대답을 주저했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 없구나.”
적색의 관리자는 금방 이를 눈치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파아악!
기껏 만든 누더기 인간을, 손으로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것 참 곤란하군.”
“커, 컥…… 살려……!”
“이 녀석을 제외하면.”
퍽! 퍽!
길가메시의 호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색의 관리자는 누더기 인간을 손으로 짓누르고 짓밟아서 다시 파편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와 살점이 즐비한 해저에, 적색의 관리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인류에게 남은 그릇은, 공허 소속 하나뿐. 아직 그쪽은 못 건드리는데 말이지…….”
공허 소속의 ‘그릇’.
적색의 관리자가 떠올린 건, 바로 윤세아였다.